아버지에게 독약 5번 갖다놓은 아들, 대법원은 왜 무죄로 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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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독약 5번 갖다놓은 아들, 대법원은 왜 무죄로 봤을까 

박재성 변호사

안녕하세요, 박재성 변호사입니다.

마실 수도 없는 치사량의 메탄올을 소주병에 담아 아버지 집 앞에 다섯 차례 갖다놓고, 그것도 모자라 사망한 친할머니의 이름으로 "빨리 보고 싶다"는 쪽지까지 함께 두고 떠난 30대 아들. 이 잔혹한 행위에 대해 오늘 대법원은 1·2심의 유죄 판단을 뒤집고 '특수협박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오늘 오후부터 거의 모든 언론이 이 판결을 일제히 보도하고 있고, 댓글창에는 "이게 어떻게 무죄냐"는 시민들의 격앙된 반응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그러한 분노가 생기는게 사실입니다.

다만 변호사의 시선으로 보면, 이번 대법원 판결은 결코 가해자를 풀어주려는 판결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형법이 어떤 원칙 위에 서 있는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신호탄이라 할 만한 판결입니다.

오늘은 이 사건이 왜 그렇게 판단될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그 결론이 결국 우리 모두를 어떻게 지키는지를 차분히 짚어보려 합니다.

다섯 번의 메탄올 소주병, 그리고 다섯 번의 메모

먼저 사건의 줄거리부터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30대 남성 A씨는 아버지 B씨와 오랜 갈등을 겪어왔습니다. A씨는 치사량을 넘는 메탄올이 들어 있는 소주병을 다섯 차례에 걸쳐 아버지 집 앞에 갖다놓았고, 함께 둔 쪽지에는 이미 세상을 떠난 친할머니의 이름으로 "빨리 보고 싶다"는, 자살을 암시·유도하는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검찰은 A씨에게 특수존속협박(형법 제284조·제283조),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보복협박, 스토킹처벌법 위반 등의 혐의를 함께 적용해 기소했습니다. 1심과 2심 재판부 모두 모든 혐의를 유죄로 보고 A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 1부(주심 신숙희 대법관)는 이 가운데 특수존속협박 부분만 떼어내어 무죄 취지로 판단하고, 사건을 원심 법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보복협박과 스토킹처벌법 위반 부분은 유죄로 그대로 유지하면서 말이지요.

대법원이 본 것은 '휴대'라는 두 글자였습니다

대법원의 판단을 가른 결정적인 단어는 형법 제284조에 적힌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라는 문구였습니다.

형법은 단순히 협박한 경우(제283조)보다,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 협박한 경우(제284조)를 훨씬 무겁게 처벌합니다. 무엇이 이 두 죄를 가르느냐, 바로 '휴대'라는 행위입니다.

그렇다면 '휴대'란 정확히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일까요.

대법원은 "범행 현장에서 위험한 물건을 직접 몸에 지닌 채, 또는 사실상 지배·사용할 수 있는 상태에서 상대방을 위협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즉, 협박하는 그 순간에 그 위험한 물건을 자신의 지배 하에 두고 언제든 사용할 수 있어야 비로소 '휴대'라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A씨는 메탄올 소주병을 집 앞에 두고 곧장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아버지가 그 병을 발견했을 때 A씨는 이미 다른 곳에 있었지요. 다시 말해, 협박의 결과물을 만들어낸 그 순간에는 위험한 물건이 더 이상 A씨의 지배 안에 있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처벌받지 않는다는 말일까요? 그건 아닙니다!

여기서 가장 흔한 오해 한 가지를 짚고 가야겠습니다. 이번 판결이 A씨를 풀어준 것이 결코 아닙니다.

대법원은 특수협박 부분만 무죄로 본 것이지, 단순 협박이나 보복협박, 스토킹처벌법 위반은 그대로 유죄로 두었습니다. 다섯 번에 걸친 협박 행위는 여전히 처벌됩니다. 단지 그것이 '특수협박'이라는 가중처벌 조항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뿐이지요.

쉽게 말해 형량은 다소 줄어들 수 있어도, 협박 자체가 면죄부를 받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왜 이렇게 엄격하게 해석해야 할까요

여기서 누구나 가질 만한 의문이 따라옵니다. "독약을 다섯 번이나 갖다놨는데 그게 어떻게 일반 협박과 같은 무게로 다뤄지나"라는 직관적 분노 말입니다.

우리 헌법은 '죄형법정주의'라는 큰 원칙을 두고 있습니다. 어떤 행위가 어떤 죄에 해당하는지는 법률에 명확히 정해져 있어야 하고, 그 법률은 가능한 한 엄격하게 해석해야 합니다.

만약 '휴대'라는 단어를 "그 자리에 갖다놓은 것까지 포함한다"고 넓혀버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식당에 칼이 놓여 있다가 손님이 위협을 느꼈다면, 동네 공구함에 망치가 있다가 누군가가 두려움을 느꼈다고 한다면?

그 경계선은 한없이 모호해집니다.

법은 매번 결과의 도덕적 무게만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무거운 처벌일수록 그 적용 요건은 더욱 정확하게 그어져 있어야 하고, 그 선을 함부로 넘지 않을 때 비로소 법치국가의 안전망이 작동합니다. 오늘의 판결은 가해자를 봐주려는 것이 아니라, "결과가 아무리 끔찍하더라도 가중처벌은 조문이 정한 바로 그 모습일 때만 적용한다"는 형사법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를 다시 한번 확인한 것입니다.

정리하며

형사 사건은 결국 '어떤 행위가 어떤 조문에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가'를 가리는 정밀한 작업입니다.

같은 사실관계라도 어떤 죄목으로 기소되느냐에 따라 형량이 크게 달라지고,

피해자나 가해자 모두, 어떤 죄목으로 고소하고 고소당하느냐에 따라 변호 전략 또한 완전히 달라지지요.

형사 절차에서 어려움을 겪고 계시다면, 다소 억울한 부분이 존재하신다면 언제든 편하게 문의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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