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행 사건에서 '정당방위' 입증
폭행 사건에서 '정당방위' 입증
법률가이드
고소/소송절차수사/체포/구속폭행/협박/상해 일반

폭행 사건에서 '정당방위' 입증 

맹조영 변호사

어렸을 때를 떠올려 보면, 싸움이라는 게 한쪽이 가만히 맞고만 있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누가 먼저 시비를 걸었든, 주먹이 날아오면 본능적으로 손이 올라가고, 막다 보면 어느 순간 밀치게 되고, 밀치다 보면 한 대 때리게 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끝나고 나면 선생님 앞에서는 결국 "둘 다 잘못했다"는 이야기를 듣곤 합니다.

폭행 사건을 상담하다 보면,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저는 맞기만 했어요. 밀려오는 주먹을 막았을 뿐인데, 저도 폭행으로 고소당했습니다.

어린 시절 운동장에서의 싸움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선생님 앞이 아니라 수사기관과 법원 앞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분명 나는 피해자인데, 어느 순간 가해자도 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오늘은 이런 상황에서 정당방위를 어떻게 주장하고, 실제로 어떤 증거를 모아야 하는지 정리해보려 합니다.

정당방위, 실제로 인정받기 어려운 이유

형법 제21조 제1항은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 형법 제21조(정당방위) ① 현재의 부당한 침해로부터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法益)을 방위하기 위하여 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조문만 보면 단순해 보이지만, 실무에서 정당방위를 인정받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여기서 '상당한 이유'란 침해행위에 의하여 침해되는 법익의 종류와 정도, 침해의 방법, 침해행위의 완급, 방위행위에 의해 침해될 법익의 종류와 정도 등 일체의 구체적 사정들을 참작하여 판단됩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이른바 '맞붙어 싸움' 법리입니다. 대법원은 "맞붙어 싸움을 하는 사람 사이에서는 공격행위와 방어행위가 연달아 행하여지고 방어행위가 동시에 공격행위인 양면적 성격을 띠어서 어느 한쪽 당사자의 행위만을 가려내어 방어를 위한 정당행위라거나 정당방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 보통"이라고 판시하고 있습니다(대법원 2010. 2. 11. 선고 2009도12958 판결).

다만 같은 판결에서 중요한 예외를 두었습니다. "겉으로는 서로 싸움을 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실제로는 한쪽 당사자가 일방적으로 위법한 공격을 가하고 상대방은 이러한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이를 벗어나기 위한 저항수단으로서 유형력을 행사한 경우에는, 그 행위가 새로운 적극적 공격이라고 평가되지 아니하는 한, 이는 사회관념상 허용될 수 있는 상당성이 있는 것으로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본 것입니다(같은 판결).

결국 핵심은 "서로 싸운 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맞으면서 방어한 것"임을 보여줄 수 있느냐에 있습니다.

증거 확보 — 사건 직후가 골든타임입니다

정당방위 주장의 성패는 결국 증거에 달려 있습니다. 법정에서 "저는 맞기만 했어요"라는 말만으로는 부족합니다.

CCTV가 가장 강력합니다. 누가 먼저 때렸는지를 직접 보여주니까요. 문제는 대부분의 CCTV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동 삭제된다는 점입니다. 사건이 발생하면 그날 바로 현장 주변 CCTV 설치 여부를 확인하고, 경찰서나 건물 관리자에게 보존을 요청해야 합니다.

CCTV를 통해 입증할 수 있는 것은 누가 먼저 물리력을 행사했는지, 피고인의 행위가 소극적 방어인지 적극적 공격인지, 그리고 쌍방 폭행의 정도와 지속 시간 등입니다.

상해진단서도 즉시 받아두세요. 어디를 얼마나 다쳤는지는 누가 먼저 공격했는지를 판단하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특히 팔 안쪽이나 손등에 생긴 상처는 방어 과정에서 생기는 전형적인 형태여서, 소극적 방어를 입증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사진도 함께 찍어두세요.

제3자 목격자가 있다면 반드시 연락처를 확보하세요. 이해관계 없는 목격자의 진술은 당사자 진술보다 훨씬 신빙성이 높게 평가됩니다. 헌법재판소도 "이해관계인이 아닌 제3의 목격자가 있는지에 대한 추가적인 조사를 통하여 사실을 규명하고자 하는 수사상 노력을 하였어야 한다"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헌법재판소 2007. 8. 30. 선고 2007헌마344 결정).

그 외에 블랙박스 영상, 녹음 파일, 112 신고 내역 등도 상황에 따라 유용한 증거가 됩니다.

수사과정 및 법정에서의 방어 전략

증거를 갖추었다면, 법정에서 어떤 논리로 풀어갈지가 중요합니다.

첫째, "일방적 공격 + 소극적 방어" 구도를 만드는 것이 기본입니다.

대법원은 실제로 소극적 방어행위를 인정한 사례들이 있습니다.

대법원 1986. 6. 24. 선고 86도276 판결은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달려들어 주먹으로 오른쪽 눈을 1회, 양어깨를 2,3회 구타하자 이를 제지하기 위하여 피고인이 피해자의 어깨를 잡고 왼손으로 2,3회 팔목을 밀고 당기는 등 승강이를 벌이다가 피해자를 두고 그 자리를 피한 정도라면 피고인의 위와 같은 행위가 외형상 폭행에 해당된다 하더라도 사건의 경위와 상황 등에 비추어 이는 피해자의 위법한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이를 벗어나기 위하여 필요한 최소한도의 소극적 방어에 불과하여 사회상규에 어긋나지 않는 행위로서 위법성이 없다"고 판시하였습니다.

대법원 1986. 7. 22. 선고 86도751 판결도 "피해자가 피고인의 팔을 당기고 하여 아무말없이 뒤돌아가는데 다시 오른팔을 확 잡아당기고 가슴부분을 1회 때리고 또 다시 때리려는 것을 보고, 피고인으로서는 더이상 맞지 않으려고 피해자의 가슴을 밀어낸 정도의 행위로서는 비록 외형상 그것이 폭행에 해당한다 하더라도 그 동기나 당시의 상황으로 봐서 불법한 공격적인 행위로 나아간 것이라고 할 수 없고 이는 오히려 먼저 당한 폭행과 같은 새로운 폭행을 당하지 않으려고 본능적으로 한 소극적 방어행위(저항)에 지나지 않아 사회상규에 어긋나는 행위라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이 판례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포인트가 있습니다. 상대방이 먼저 물리력을 행사한 점, 피고인이 회피하려 한 점, 피고인의 행위가 벗어나기 위한 최소한이었다는 점, 행위 후 바로 자리를 떠난 점 등입니다. 이런 요소들을 증거로 뒷받침할 수 있으면 정당방위 인정 가능성이 올라갑니다.

둘째, 상대방이 쌍방 폭행을 주장할 때는 상해 정도 비교가 효과적입니다.

내가 입은 상해가 상대방보다 중하다면, 일방적 공격을 받았다는 유력한 증거가 됩니다. 헌법재판소 2013. 8. 29. 선고 2011헌마743 결정은 "피해자가 입은 상해는 청구인이 피해자로부터 일방적으로 공격을 당하는 상황에서 더 이상 맞지 않기 위해 손을 휘젓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하면, 청구인의 행위는 피해자의 폭행을 제지하거나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저항수단으로서 사회통념상 허용될 만한 정도의 상당성이 있는 행위로 볼 수 있다"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

또한 헌법재판소 2007. 8. 30. 선고 2007헌마344 결정에서도 "수적으로 우위에 있던 상피의자들이 청구인 일행에게 상해를 가하고 스스로 가해자로서 청구인 일행에게 피해를 배상하는 합의까지 하였음에도 쌍방 폭행으로 주장하고 있으나, 청구인의 혐의사실을 인정하기 위한 증거들은 모두 그 신빙성에 의문이 간다"고 판시하여, 수적 우위와 상해 비교가 쌍방 폭행 주장을 반박하는 데 효과적임을 보여주었습니다.

셋째, 상대방 진술의 신빙성을 흔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대법원 2008. 6. 26. 선고 2007도6843 판결은 "저항수단으로서 유형력의 행사가 소극적인 방어의 한도를 벗어난 것으로서 별도의 폭력의 범의에 기한 것인지 여부를 판정함에 있어서는, 선제공격을 가한 자나 그와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측의 일방적 진술 또는 그 진술에 주로 의존한 상해진단서의 기재만으로 쉽게 단정지어서는 곤란하고, 다른 객관적인 증거가 존재하거나 그렇지 않다 해도 위 일방의 진술 혹은 상해진단서의 증빙력을 합리적으로 인정하기에 족한 정황의 존재에 대한 소명이 필요하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상대방 진술에 모순이 있거나 객관적 증거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이를 구체적으로 짚어야 합니다.

넷째,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더라도 과잉방위라는 카드가 있습니다.

형법 제21조 제2항은 "방위행위가 그 정도를 초과한 경우에는 정황에 따라 그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제3항은 "야간이나 그 밖의 불안한 상태에서 공포를 느끼거나 경악하거나 흥분하거나 당황하였기 때문에 그 행위를 하였을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정당방위가 안 되더라도 여기서 멈추면 안 됩니다.

  • 형법 제21조(정당방위) ② 방위행위가 그 정도를 초과한 경우에는 정황(情況)에 따라 그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다. ③ 제2항의 경우에 야간이나 그 밖의 불안한 상태에서 공포를 느끼거나 경악(驚愕)하거나 흥분하거나 당황하였기 때문에 그 행위를 하였을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주의할 점

몇 가지 놓치기 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방어 행위가 "새로운 적극적 공격"으로 평가되면 정당방위는 인정되지 않습니다. 과도한 반격, 지속적인 폭행, 흉기 사용 등이 있으면 어렵습니다. 방어는 "벗어나기 위한 최소한"이어야 합니다.

사건 직후의 행동도 법원이 봅니다. 바로 112에 신고했는지, 병원에 갔는지, 현장에서 경찰을 기다렸는지. 이런 사후 행동 하나하나가 방어 의사를 보여주는 간접 증거가 됩니다.

증거 제출은 빠를수록 유리합니다. CCTV나 진단서 같은 객관적 증거는 수사 초기 단계부터 적극적으로 내는 것이 좋습니다.

마치며

판례는 정당방위 인정에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엄격하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제대로 된 증거를 갖추고, 적절한 법리 구성을 하면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건 직후의 대응입니다. CCTV 보존 요청, 상해진단서 발급, 목격자 연락처 확보. 이 세 가지를 기억해두시면 좋겠습니다.

혼자서 판단이 어려운 상황이라면, 초기 단계에서 변호사의 조력을 받는 것을 권합니다. 증거 확보 시기를 놓치면 아무리 좋은 변론도 한계가 있습니다.

본 글은 일반적인 법률 정보 제공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법률 자문은 담당 변호사와 반드시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로톡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콘텐츠 내용에 대한 무단 복제 및 전재를 금지하며, 위반 시 민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맹조영 변호사 작성한 다른 포스트
조회수 175
관련 사례를 확인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