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2025. 7. 24. 선고 2023다240299 전원합의체 판결】
『3. 제1, 2 차용금 이자채무에 대한 시효이익 포기 여부(제2 상고이유)
가. 원심의 판단
원심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원고가 제1, 2 차용금의 각 변제기까지 발생한 이자채무(이하 '제1, 2 차용금 이자채무'라 한다)에 대한 소멸시효 완성의 이익을 포기하였다고 판단하였다. 원금채무의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았으나 이자채무의 소멸시효가 완성된 상태에서 채무자가 채무를 일부 변제한 때에는, 그 액수에 관하여 다툼이 없는 한 그 원금채무에 관하여 묵시적으로 승인하는 한편 그 이자채무에 관하여 시효완성의 사실을 알고 그 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원고는 제1, 2 차용금 원금채무의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았으나 제1, 2 차용금 이자채무의 소멸시효는 완성된 상태에서 2016. 2. 6.부터 2017. 7. 6.까지 제1 내지 4 차용금을 일부 변제함으로써, 제1, 2 차용금 이자채무에 관하여 소멸시효 완성의 이익을 포기하였다.
나. 시효이익 포기 추정 법리의 타당성
원심은 '채무자가 시효완성 후 채무를 승인한 경우에는 시효완성의 사실을 알고 그 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법리(대법원 1967. 2. 7. 선고 66다2173 판결 등, 이하 '추정 법리'라 한다)에 근거하여 위와 같은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추정 법리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타당하지 않다.
1) 추정 법리는 시효완성 후 채무자의 채무승인으로부터 시효완성에 관한 채무자의 인식 및 그 시효이익 포기에 관한 채무자의 의사표시를 추정하는 법리이다. 이러한 인식의 추정 및 의사표시의 추정은 경험칙에 근거하여 인정되는 사실상 추정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러한 추정은 경험칙으로 뒷받침되지 않거나 오히려 경험칙에 어긋난다.
시효완성에 대한 인식의 추정은 경험칙에 근거한다고 보기 어렵다. 시효완성 여부는 소멸시효기간, 소멸시효 기산점, 소멸시효의 중단 또는 정지 사유 등 다양한 요소에 따라 결정된다. 이러한 요소에 대한 판단은 때로 불명확하고 복잡하므로 단지 소멸시효기간이 지났다는 사정만으로 채무자가 시효완성 사실을 알았다고 일반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채무자가 시효완성 사실을 알았는지는 개별 사안의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해야 할 문제이지, 경험칙에 따라 일률적으로 추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시효이익 포기의 의사표시 추정도 경험칙에 근거한다고 보기 어렵다. 시효이익 포기는 시효완성을 알고 있음을 전제로 하는 의사표시이다. 그런데 채무자가 시효완성으로 인하여 그 기산일로 소급하여 채무에서 해방되는 법적 이익을 누리게 된다는 점을 알면서도 그 이익을 포기하고 채무를 부담하겠다는 의사표시를 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보통의 채무자라면 이처럼 자신의 법적 이익을 스스로 포기하고 굳이 불리한 법적 지위를 자청할 가능성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경험칙에 비추어 보면 시효완성 후 채무승인은 채무자가 시효완성 사실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하였을 가능성이 더 높다.
시효완성 후 채무승인을 하는 채무자의 인식과 의사에 관한 경험칙은 나라마다 크게 달라질 성격의 것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추정 법리는 비교법적으로 볼 때이례 적인 법리로 평가된다. 예를 들어 독일이나 미국에는 이러한 추정 법리가 존재하지 않고, 시효이익 포기 여부는 개별 사안별로 살펴보아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프랑스에도 추정 법리는 존재하지 않고, 시효의 묵시적 포기는 시효를 주장하지 않는 의사가 명확히 드러나는 사정이 있는 경우에 인정된다는 민법 규정(제2251조 제2항)이 있다. 일본에도 현재 추정 법리는 판례상 채택되어 있지 않다.
2) 소멸시효 중단사유인 채무승인과 시효이익 포기는 서로 구별되어야 하는 개념이다.
소멸시효 중단사유인 채무승인은 소멸시효가 완성되기 전에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으로 채권을 상실할 자에 대하여 상대방의 권리 또는 자신의 채무가 있음을 알고 있다는 뜻을 표시함으로써 성립하는 관념의 통지이다. 시효이익 포기는 소멸시효가 완성된 후에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을 알면서 이로 인한 법적 이익을 받지 않겠다는 효과의사를 표시함으로써 성립하는 의사표시이다.
이처럼 시효이익 포기는 단순히 채무에 관한 인식을 표시하는 것을 넘어, 자신에게 법적으로 보장된 시효이익의 포기라는 법적 효과를 의욕하는 효과의사의 표시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채무승인과 뚜렷하게 구별된다. 이러한 효과의사는 채무자에게 불리한 법적 결과를 채무자의 자기결정에 따라 정당화하는 시효이익 포기의 핵심적인 요소이다. 이는 채무승인 행위에는 요구되지 않는 요소이므로, 시효완성 후 소멸시효 중단사유에 해당하는 채무승인 행위가 있었더라도 그것만으로는 곧바로 소멸시효 이익의 포기라는 의사표시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대법원 2013. 2. 28. 선고 2011다21556 판결 등 참조).
추정 법리는 이러한 채무승인과 시효이익 포기의 근본적인 차이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채무승인 행위가 있으면 이로부터 곧바로 시효이익 포기의 의사표시를 추정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이는 추정이라는 간편한 법적 수단에 기대어 세밀하고 엄격하게 이루어져야 할 효과의사에 대한 탐구 과정을 일단 생략하도록 허용한다는 점에서 문제이다. 이러한 생략은 시효이익 포기의 의사표시 해석 과정을 부실하게 만들고, 그 결과 시효이익의 포기 여부에 관한 채무자의 의사결정의 자유를 침해할 위험도 수반한다.
3) 대법원은 권리 포기 등 중대한 불이익을 가져오는 의사표시는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법리를 펼쳐 왔다.
채권의 포기 또는 채무의 면제는 묵시적인 의사표시에 의하여 할 수도 있지만 그 의사표시의 해석은 엄격해야 한다(대법원 2013. 6. 13. 선고 2011다94509 판결). 손해배상청구권의 포기는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포기한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는 상황에 있었는지, 포기의 동기나 이유가 있는지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신중하게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07. 11. 29. 선고 2005다64552 판결).
동시이행항변권의 포기는 명시적 의사표시뿐만 아니라 묵시적 의사표시로 이루어지는 것도 가능하지만, 묵시적 의사표시의 해석을 통한 동시이행항변권 포기의 인정은 엄격하고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대법원 2025. 6. 26. 선고 2025다209893, 209894 판결). 한쪽 당사자가 주장하는 약정의 내용이 상대방에게 권리를 포기하는 것과 같은 중대한 불이익을 부과하는 경우에는 그 약정의 의미를 엄격하게 해석하여야 한다(대법원 2021. 7. 21. 선고 2021다219116 판결).
이상의 법리는 권리나 이익을 스스로 포기하는 등의 의사표시가 있었는지를 판단할 때에는 그 이례성과 결과의 중대성에 비추어 당사자가 실제로 자신에게 불리한 법적 결과를 의욕하고 그 의사를 외부로 표시한 것인지를 여러 사정에 비추어 엄격하고 신중하게 살펴보아야 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특히 일정한 행위로부터 그 행위자의 의사를 추단하는 묵시적 의사표시의 경우에는 이러한 해석 기준이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 추정 법리는 시효완성 후 채무승인이라는 행위만을 근거로 하여 채무자에게 중대한 불이익을 가져오는 시효이익 포기의 의사표시를 손쉽게 추정한다. 이는 권리나 이익을 포기하는 의사표시에 대해 엄격하고 신중한 해석을 요구하는 대법원 판례의 일반적인 원칙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4) 소멸시효는 권리자가 일정 기간 동안 권리를 행사하지 않아 유동적이고 불안정한 상태가 발생한 경우 일정한 요건 아래 권리를 소멸시킴으로써 법적 안정성을 도모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를 통해 채무자는 소멸시효가 완성되면 채무의 부담에서 벗어나는 법적 이익을 누리게 된다. 민법은 이러한 법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채무자가 이러한 소멸시효의 이익을 미리 포기하지 못하게 하는 한편(제184조 제1항), 법률행위에 의하여 소멸시효를 단축 또는 경감하는 것은 허용하면서도 배제, 연장 또는 가중하는 것은 금지하고 있다(제184조 제2항). 이는 채권자가 채무자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을 수 있음을 고려하여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으로 인한 이익을 정당하게 누릴 수 있도록 배려하는 한편, 의사표시 또는 법률행위의 이름 아래 소멸시효 제도의 목적이 부당하게 좌절되지 않도록 하는 조항이다.
한편 민법 제184조 제1항의 반대해석상 시효완성 이후 채무자가 시효이익을 포기하는 것은 허용된다. 다만 소멸시효 제도의 취지나 채무자 보호에 관한 위 규정들의 내용에 비추어 볼 때 시효이익 포기의 의사표시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소멸시효 완성으로 인한 채무자의 법적 이익이 부당하게 침해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그런데 추정 법리는 시효완성 후 채무승인이라는 사정만 있으면 그 사정으로부터 시효완성 사실에 대한 인식과 시효이익 포기의 의사표시를 추정하고, 채무자에게 이러한 추정을 번복할 부담을 부과한다. 이는 채무자를 본래 법이 예정하지 않았던 불리한 지위에 놓이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법리가 추정의 번복을 거의 인정하지 않는 재판 실무와 결합할 경우 채무자의 구조적 열위는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또한 추정 법리는 대부업체나 추 심업체 등이 시효완성 후 채무자에게 일부 변제 등 채무승인 행위를 압박하거나 유도함으로써 시효이익을 포기하게 하는 데 악용되는 등 금융 소비자의 이익을 침해할 우려도 있다. 이러한 면에서 추정 법리는 정책적으로도 부당한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
다. 판례의 변경
이와 달리 채무자가 시효완성 후 채무를 승인한 경우 시효완성의 사실을 알고 그 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본 대법원 1967. 2. 7. 선고 66다2173 판결, 대법원 1992. 5. 22. 선고 92다4796 판결, 대법원 1999. 1. 26. 선고 98다46808 판결, 대법원 2013. 5. 23. 선고 2013다12464 판결, 대법원 2022. 5. 12. 선고 2021다244, 251 판결 등을 비롯하여 그와 같은 취지의 판결들은 이 판결의 견해에 배치되는 범위에서 이를 모두 변경하기로 한다. 』
1. 문제의 소재
민법 제184조 제1항은 ‘소멸시효의 이익은 미리 포기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채무자가 소멸시효가 완성된 이후의 시기에 채무 중 일부를 변제하는 행위를 한 경우 등에 있어서 채무를 승인하고, 시효완성 사실을 알고 그 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가 문제될 수 있습니다.
2. 종래의 대법원판례
대법원 1967. 2. 7. 선고 66다2173 판결 등 종래의 대법원판례는 [채무자가 시효완성 후 채무를 승인한 경우에는 시효완성 사실을 알고 그 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여 채무자가 소멸시효가 완성된 이후의 시기에 채무 중 일부를 변제하는 행위를 한 경우 등에 있어서 채무를 승인하고, 시효완성 사실을 알고 그 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판단해 왔습니다.
3. 대법원 2025. 7. 24. 선고 2023다240299 전원합의체 판결
가. 사안의 개요
원고는 피고로부터 4차례에 걸쳐 총 2억 4,000만 원을 차용하였고, 그 중 제1, 2차용금 이자채무의 소멸시효가 완성된 상태에서 피고에게 1,800만원을 일부 변제하였고, 이후 원고 소유의 부동산에 관하여 실시된 경매에서 근저당권자인 피고가 461,436,162원을 배당받는 내용으로 배당표가 작성되어 원고는, 피고에 대한 배당액이 피고의 실제 대여원리금 채권액을 초과한다고 주장하면서 배당표 경정을 청구하는 배당이의의 소를 제기 하였습니다.
나. 소송의 경과
제1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이 선고되었는데, 제1심에서 소멸시효는 쟁점이 아니었습니다.
이후 제2심(이하 ‘원심’이라 합니다.)에서 원고는 ‘제1, 2차용금 이자채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주장하였는데, 원심은 [원고가 제1, 2차용금 이자채무의 소멸시효가 완성된 상태에서 차용금을 일부 변제함으로써 제1, 2차용금 이자채무에 관한 소멸시효 완성의 이익을 포기하였다고 판단 하였습니다.
다만, 원심은 원고의 일부 변제와 관련하여 변제충당 법리에 따라 배당액 중 일부가 감액되어야 한다고 보아 원고의 배당이의 청구를 일부 인용 하였습니다.
이에 원고가 원심판결 중 원고 패소 부분에 대하여 상고를 제기 하였습니다.
다.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 2025. 7. 24. 선고 2023다240299 전원합의체 판결은
[나. 시효이익 포기 추정 법리의 타당성
원심은 '채무자가 시효완성 후 채무를 승인한 경우에는 시효완성의 사실을 알고 그 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법리(대법원 1967. 2. 7. 선고 66다2173 판결 등, 이하 '추정 법리'라 한다)에 근거하여 위와 같은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추정 법리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타당하지 않다.
1) 추정 법리는 시효완성 후 채무자의 채무승인으로부터 시효완성에 관한 채무자의 인식 및 그 시효이익 포기에 관한 채무자의 의사표시를 추정하는 법리이다. 이러한 인식의 추정 및 의사표시의 추정은 경험칙에 근거하여 인정되는 사실상 추정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러한 추정은 경험칙으로 뒷받침되지 않거나 오히려 경험칙에 어긋난다.
시효완성에 대한 인식의 추정은 경험칙에 근거한다고 보기 어렵다. 시효완성 여부는 소멸시효기간, 소멸시효 기산점, 소멸시효의 중단 또는 정지 사유 등 다양한 요소에 따라 결정된다. 이러한 요소에 대한 판단은 때로 불명확하고 복잡하므로 단지 소멸시효기간이 지났다는 사정만으로 채무자가 시효완성 사실을 알았다고 일반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채무자가 시효완성 사실을 알았는지는 개별 사안의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해야 할 문제이지, 경험칙에 따라 일률적으로 추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시효이익 포기의 의사표시 추정도 경험칙에 근거한다고 보기 어렵다. 시효이익 포기는 시효완성을 알고 있음을 전제로 하는 의사표시이다. 그런데 채무자가 시효완성으로 인하여 그 기산일로 소급하여 채무에서 해방되는 법적 이익을 누리게 된다는 점을 알면서도 그 이익을 포기하고 채무를 부담하겠다는 의사표시를 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보통의 채무자라면 이처럼 자신의 법적 이익을 스스로 포기하고 굳이 불리한 법적 지위를 자청할 가능성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경험칙에 비추어 보면 시효완성 후 채무승인은 채무자가 시효완성 사실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하였을 가능성이 더 높다.
시효완성 후 채무승인을 하는 채무자의 인식과 의사에 관한 경험칙은 나라마다 크게 달라질 성격의 것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추정 법리는 비교법적으로 볼 때이례 적인 법리로 평가된다. 예를 들어 독일이나 미국에는 이러한 추정 법리가 존재하지 않고, 시효이익 포기 여부는 개별 사안별로 살펴보아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프랑스에도 추정 법리는 존재하지 않고, 시효의 묵시적 포기는 시효를 주장하지 않는 의사가 명확히 드러나는 사정이 있는 경우에 인정된다는 민법 규정(제2251조 제2항)이 있다. 일본에도 현재 추정 법리는 판례상 채택되어 있지 않다.
2) 소멸시효 중단사유인 채무승인과 시효이익 포기는 서로 구별되어야 하는 개념이다.
소멸시효 중단사유인 채무승인은 소멸시효가 완성되기 전에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으로 채권을 상실할 자에 대하여 상대방의 권리 또는 자신의 채무가 있음을 알고 있다는 뜻을 표시함으로써 성립하는 관념의 통지이다. 시효이익 포기는 소멸시효가 완성된 후에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을 알면서 이로 인한 법적 이익을 받지 않겠다는 효과의사를 표시함으로써 성립하는 의사표시이다.
이처럼 시효이익 포기는 단순히 채무에 관한 인식을 표시하는 것을 넘어, 자신에게 법적으로 보장된 시효이익의 포기라는 법적 효과를 의욕하는 효과의사의 표시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채무승인과 뚜렷하게 구별된다. 이러한 효과의사는 채무자에게 불리한 법적 결과를 채무자의 자기결정에 따라 정당화하는 시효이익 포기의 핵심적인 요소이다. 이는 채무승인 행위에는 요구되지 않는 요소이므로, 시효완성 후 소멸시효 중단사유에 해당하는 채무승인 행위가 있었더라도 그것만으로는 곧바로 소멸시효 이익의 포기라는 의사표시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대법원 2013. 2. 28. 선고 2011다21556 판결 등 참조).
추정 법리는 이러한 채무승인과 시효이익 포기의 근본적인 차이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채무승인 행위가 있으면 이로부터 곧바로 시효이익 포기의 의사표시를 추정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이는 추정이라는 간편한 법적 수단에 기대어 세밀하고 엄격하게 이루어져야 할 효과의사에 대한 탐구 과정을 일단 생략하도록 허용한다는 점에서 문제이다. 이러한 생략은 시효이익 포기의 의사표시 해석 과정을 부실하게 만들고, 그 결과 시효이익의 포기 여부에 관한 채무자의 의사결정의 자유를 침해할 위험도 수반한다.
3) 대법원은 권리 포기 등 중대한 불이익을 가져오는 의사표시는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법리를 펼쳐 왔다.
채권의 포기 또는 채무의 면제는 묵시적인 의사표시에 의하여 할 수도 있지만 그 의사표시의 해석은 엄격해야 한다(대법원 2013. 6. 13. 선고 2011다94509 판결). 손해배상청구권의 포기는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포기한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는 상황에 있었는지, 포기의 동기나 이유가 있는지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신중하게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07. 11. 29. 선고 2005다64552 판결).
동시이행항변권의 포기는 명시적 의사표시뿐만 아니라 묵시적 의사표시로 이루어지는 것도 가능하지만, 묵시적 의사표시의 해석을 통한 동시이행항변권 포기의 인정은 엄격하고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대법원 2025. 6. 26. 선고 2025다209893, 209894 판결). 한쪽 당사자가 주장하는 약정의 내용이 상대방에게 권리를 포기하는 것과 같은 중대한 불이익을 부과하는 경우에는 그 약정의 의미를 엄격하게 해석하여야 한다(대법원 2021. 7. 21. 선고 2021다219116 판결).
이상의 법리는 권리나 이익을 스스로 포기하는 등의 의사표시가 있었는지를 판단할 때에는 그 이례성과 결과의 중대성에 비추어 당사자가 실제로 자신에게 불리한 법적 결과를 의욕하고 그 의사를 외부로 표시한 것인지를 여러 사정에 비추어 엄격하고 신중하게 살펴보아야 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특히 일정한 행위로부터 그 행위자의 의사를 추단하는 묵시적 의사표시의 경우에는 이러한 해석 기준이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 추정 법리는 시효완성 후 채무승인이라는 행위만을 근거로 하여 채무자에게 중대한 불이익을 가져오는 시효이익 포기의 의사표시를 손쉽게 추정한다. 이는 권리나 이익을 포기하는 의사표시에 대해 엄격하고 신중한 해석을 요구하는 대법원 판례의 일반적인 원칙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4) 소멸시효는 권리자가 일정 기간 동안 권리를 행사하지 않아 유동적이고 불안정한 상태가 발생한 경우 일정한 요건 아래 권리를 소멸시킴으로써 법적 안정성을 도모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를 통해 채무자는 소멸시효가 완성되면 채무의 부담에서 벗어나는 법적 이익을 누리게 된다. 민법은 이러한 법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채무자가 이러한 소멸시효의 이익을 미리 포기하지 못하게 하는 한편(제184조 제1항), 법률행위에 의하여 소멸시효를 단축 또는 경감하는 것은 허용하면서도 배제, 연장 또는 가중하는 것은 금지하고 있다(제184조 제2항). 이는 채권자가 채무자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을 수 있음을 고려하여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으로 인한 이익을 정당하게 누릴 수 있도록 배려하는 한편, 의사표시 또는 법률행위의 이름 아래 소멸시효 제도의 목적이 부당하게 좌절되지 않도록 하는 조항이다.
한편 민법 제184조 제1항의 반대해석상 시효완성 이후 채무자가 시효이익을 포기하는 것은 허용된다. 다만 소멸시효 제도의 취지나 채무자 보호에 관한 위 규정들의 내용에 비추어 볼 때 시효이익 포기의 의사표시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소멸시효 완성으로 인한 채무자의 법적 이익이 부당하게 침해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그런데 추정 법리는 시효완성 후 채무승인이라는 사정만 있으면 그 사정으로부터 시효완성 사실에 대한 인식과 시효이익 포기의 의사표시를 추정하고, 채무자에게 이러한 추정을 번복할 부담을 부과한다. 이는 채무자를 본래 법이 예정하지 않았던 불리한 지위에 놓이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법리가 추정의 번복을 거의 인정하지 않는 재판 실무와 결합할 경우 채무자의 구조적 열위는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또한 추정 법리는 대부업체나 추 심업체 등이 시효완성 후 채무자에게 일부 변제 등 채무승인 행위를 압박하거나 유도함으로써 시효이익을 포기하게 하는 데 악용되는 등 금융 소비자의 이익을 침해할 우려도 있다. 이러한 면에서 추정 법리는 정책적으로도 부당한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
다. 판례의 변경
이와 달리 채무자가 시효완성 후 채무를 승인한 경우 시효완성의 사실을 알고 그 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본 대법원 1967. 2. 7. 선고 66다2173 판결, 대법원 1992. 5. 22. 선고 92다4796 판결, 대법원 1999. 1. 26. 선고 98다46808 판결, 대법원 2013. 5. 23. 선고 2013다12464 판결, 대법원 2022. 5. 12. 선고 2021다244, 251 판결 등을 비롯하여 그와 같은 취지의 판결들은 이 판결의 견해에 배치되는 범위에서 이를 모두 변경하기로 한다.]고 판시 하였습니다.
4. 대법원 2025. 7. 24. 선고 2023다240299 전원합의체 판결의 취지
종래 대법원판례는 채무자가 시효완성 후 채무의 일부를 변제하는 행위를 한 경우 등에 있어서 채무를 승인하고, 시효완성 사실을 알고 그 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판단해 왔습니다.
그런데, 대법원 2025. 7. 24. 선고 2023다240299 전원합의체 판결은 [채무자가 시효완성 후 채무를 승인하였더라도 이로써 ‘채무자가 시효완성 사실을 알면서도 그 이익을 포기하는 의사표시를 하였다’고 추정할 수 없고, 채무자가 시효완성 사실을 알면서도 시효이익을 포기하는 의사표시를 하였는지는 개별 사안의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합리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는 취지로 판시하면서 종래의 대법원판례를 변경 하였습니다.
이에 채무자가 시효완성 후에 채무의 일부를 변제하였다는 사정만으로 시효완성 사실을 알고 그 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고, 개별적으로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시효이익을 포기한 것인지 여부를 합리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고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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