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계약서에 경업금지약정 조항이 없어, 소송 할 수 있을까?
내가 십 년이나 일하던 미용실이었지만 더 이상의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원래 대규모 헤어샵도 아니었기에 프랜차이즈 가능성도 없으니 내가 직접 점장이 될 가능성도 없다. 그나마 이곳에서 계속 일했던 건 기술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지금 원장이 대형 프랜차이즈보다 더욱 뛰어난 미용 기술을 갖고 있으니 이 점은 무척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기술을 배우고 난 뒤 5년도 넘게 성실하게 일을 했으니 도리를 다 했다고 생각한다. 이제 나도 내 헤어샵을 오픈할 때가 온 것이다.
*다음은 법률사무소 봄 실제 의뢰인 사건을 각색한 것입니다.
원장에게 독립한다고 이야기하기 전에 내 주변 선배, 동기 헤어디자이너에게 이것저것 창업 시 주의할 점을 물었다. 그중 한 명이 “‘경업금지약정' 조심해!”라는 것이다. 사실 나는 동기의 말을 듣기 전에 경업금지약정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다행히 고용계약서를 보니 “경업금지약정" 조항이 전혀 없었다. 혹시 몰라 변호사 사무실을 두 군데 찾아서 상담도 해 보았다. 그랬더니, 내가 독립하더라도 전혀 문제없다는 것이다. 정말 뛸 듯이 기뻤다.
“그만두고 독립하는 것까지 말릴 수는 없지만, 건너 편에 창업을 한다니 조금 너무한 거 아니야?” 원장의 말이다. 10년간 같은 샵에서 일했으니 가족 같은 마음으로 축복해 주길 바랐다. 하지만, 원장이 화를 내는 것이다. 건너편에 창업하는 건 기존 단골을 뺐겠다는 것과 다름없다며 큰소리가 오고 갔다. 내가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까지 해 주었지만, 원장의 화는 멈추지 않았다. 너무 서운했지만, 할 수 없다. 좋은 마음으로 헤어지는 건 내 욕심이었나 보다.
직원이 나간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직원에게 원장 직함을 주고 나는 뒤로 물러나려고 했었다. 이미 10년간 내 모든 헤어 테크닉을 전수해 주었고, 또 직원도 성실하게 일했으니 고맙기도 했다. 하지만, 코로나 때문에 헤어샵 사정이 급 어려워졌다. 인근에 1인 헤어샵도 많이 들어오면서 경쟁도 치열해졌다. 그런데 갑자기 그만두겠다는 말에 할 수 없이 현업에서 물러나려고 했던 계획은 취소하고 내가 계속 원장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다.
“법적인 문제도 없다는데, 왜 이리 화를 냅니까?” 직원의 말에 더욱 화가 났다. 알고 보니 그동안 건너편에 창업하려고 이미 변호사 상담도 여러 차례 했다는 것이다. 솔직히 배신감이 들었다. 나에게 말하지 않고 뒤통수를 치려고 작정한 것처럼 보였다.
그날로 직원이 그만두고 나서, 그녀는 정말 건너편에 헤어샵을 창업했다. 길 건너라 우리 미용실에서도 바로 보인다. 벌써 그 직원에게 머리를 하던 단골은 발길을 끊었다. 참 분하고 화도 났다. 늦었지만, 나도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다.
선생님은 고용계약서에 경업금지약정 조항이 없어
법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다리에 힘이 풀렸다. 이미 직원이 법적 검토를 했다는 때부터 설마했는데.. 직접 상담하며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더욱 힘이 빠졌다. “변호사님, 정말 방법이 없을까요? 경업금지약정으로 소를 제기할 수 없다면, 제 고객을 빼앗아 갔다는 것으로 손해배상 소송이라도 할 방법은 없을까요?” 정현주 변호사와 상담하기 전 법률사무소 봄 블로그를 보니 경업금지 사례 중 손해배상을 별도 청구할 수 있다는 걸 알았기에 질문해 보았다.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할 수는 있습니다만, 청구하는 금액 그대로 승소할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물론 최대한 청구하겠지만, 인용이 되더라도 그 금액은 크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상대방은 소송에 걸린다는 생각을 (전혀) 하고 있지 않을 것이기에, 긴 소송의 기간동안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을 것은 분명합니다. 소송에 걸린다는 것은 큰 스트레스니까요.
그래, 난 단기간 힘든 건 버틸 수 있다. 하지만, 상도를 무시한 그 녀석은 꼭 건너편에서 몰아내고 싶다!
이런 이야기까지 들었지만 물러설 수 없었다. 첫째, 감정이 너무 상했고(아무리 그래도 건너편에 오픈하고 단골을 빼가는 건 너무했다.) 둘째, 직원 샵이 오픈하자마자 손해배상 소송에 대응하느라 마케팅에 집중할 수 없으면 상대를 힘들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단기적으로 단골을 빼앗겨 힘들긴 하겠지만,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신생 헤어샵이라면, 아마 버티기 어려울 것이니 적어도 포기하고 이사라도 갈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그 정도면 승소나 마찬가지이다.
상담을 마치고 나오며 바로 상담했던 변호사를 선임했다. 소송 결과 돈이 아니더라도 내가 원하는 목적이라도 달성하면 좋겠다.
로톡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콘텐츠 내용에 대한 무단 복제 및 전재를 금지하며, 위반 시 민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