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삼세판이란 말이 있듯이 우리나라 사람들은 3판까지 가는 걸 참 좋아한다. 재판도 마찬가지로 삼세판을 하는데 보통 1심은 그냥 1심이라고 부르고, 2심은 항소심, 대법원에서 판결하는 3심은 '상고심'이라고 한다. 한편, 상고심 사건의 경우 상고를 제기하면서도 보통은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상고심에서는 이미 사실관계 정리가 다 된 사건을 대상으로 법률적으로 판단하기에 항소심의 결론이 뒤집어질 가능성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2.
항소심에서 패소한 뒤 호기롭게 상고를 제기하더라도 대부분은 제대로 판단도 받지 못한 채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을 받아들게 된다. 그런데 아주 가끔씩 이상한 흐름을 보일 때가 있다. 심리불속행을 내릴 수 있는 기한은 4개월이므로 보통 그 안에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이 나는데 해당 기간을 도과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법원에서 제대로 한 번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심지어 전원합의체 회부 결정이 난다면? 그럼 뭔가 대박이 터질 조짐이 보이는 것이다. 전원합의체는 기존 판례를 바꾼다거나 할 필요성이 있을 때 대법관 전원이 모여서 합의를 진행하는 절차이기 때문이다.
3.
오늘 소개한 사건 또한 바로 그런 케이스이다. 기존에 과거 양육비 청구 소멸시효 관련하여 너무나도 명백하고 단호한 대법원의 리딩 판례가 있었다. 바로 아래 판례다.
당사자의 협의 또는 가정법원의 심판에 의하여 구체적인 지급청구권으로서 성립하기 전에는 과거의 양육비에 관한 권리는 양육자가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재산권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고, 따라서 이에 대하여는 소멸시효가 진행할 여지가 없다고 보아야 한다(대법원2011.7.29.자 2008스67 결정).
2011년에 등장한 위 대법원 판례는 애초에 구체적인 지급청구권으로 성립하기 전의 과거 양육비에 관한 권리는 양육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재산권에 해당하지 않으며, 그에 따라 소멸시효 자체가 진행할 수가 없다는 논리를 펴면서 홀로 자식을 양육한 부 또는 모에게 과거 양육비 청구권을 언제든 행사할 수 있는 길을 터주었다.
4.
그런데 바로 얼마 전, 대법원에서 과거 양육비 청구권 소멸시효 에 관한 법리를 변경하는 전원합의체 판결을 내렸다.
2018스724 양육비 (라) 재항고기각
[당사자의 협의 또는 가정법원의 심판에 의하여 구체적인 지급청구권으로 성립하기 전의 과거 양육비에 관한 권리의 소멸시효 진행 여부가 문제된 사건]
◇이혼한 부부 사이에서 당사자의 협의 또는 가정법원의 심판에 의하여 구체적인 지급청구권으로 성립하기 전의 과거 양육비에 관한 권리에 대하여 소멸시효가 진행하는지 여부(= 적극) 및 그 소멸시효 기산점(= 미성년 자녀가 성년이 되어 양육의무가 종료된 때)◇
가.
자녀가 아직 미성년인 동안 이혼한 부부 사이에서 자녀에 대한 과거 양육비의 지급을 구할 권리는 당사자의 협의 또는 가정법원의 심판에 의하여 구체적인 청구권의 범위와 내용이 확정되지 않는 이상 그 권리의 성질상 소멸시효가 진행하지 않는다고 볼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장래 양육비와 마찬가지로 과거 양육비에 관한 권리는 당사자의 협의나 가정법원의 심판으로 구체적인 내용과 범위가 정해지기 전에는 그 권리의 내용이 확정되지 아니하여 친족법상의 신분으로부터 독립하여 처분이 가능한 완전한 재산권이라고 보기 어렵고, 또 단순히 금전지급의무의 이행을 구하는 것이라기보다 미성년 자녀에 대한 친족법상 신분에 기한 양육의무의 이행을 구하는 권리의 성질을 주로 가지므로 그 권리의 성질상 소멸시효가 진행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나. 자녀가 성년이 되어 양육의무가 종료되면, 당사자의 협의 또는 가정법원의 심판에 의하여 구체적인 청구권의 범위와 내용이 확정되지 않은 이상 자녀에 대한 과거 양육비의 지급을 구할 권리의 소멸시효는 자녀가 성년이 된 때부터 진행한다고 보아야 한다.
(중략)
자녀가 성년에 이르게 되면 이혼한 부부가 공동으로 부담하는 자녀양육의무는 종료하고, 더 이상 자녀에 대한 장래 양육비를 결정하거나 분담하여야 하는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그 부부 사이에는 어느 일방이 과거에 자녀의 양육을 위해 지출한 비용을 서로 정산하여야 하는 관계만이 남게 된다.
(중략)
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간단하게 살펴보면 미성년 자녀의 경우 1)자녀가 미성년인 동안 과거 양육비에 관한 권리에 대하여 소멸시효가 진행한다고 보는 것은 자녀의 복리에 부합하지 않는 점, 2)미성년 자녀에 대한 친족법상 신분에 기한 양육의무의 이행을 구하는 권리의 성질을 주로 가지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자녀가 아직 미성년인 동안 이혼한 부부 사이에서 자녀에 대한 과거 양육비의 지급을 구할 권리는 당사자의 협의 또는 가정법원의 심판에 의하여 구체적인 청구권의 범위와 내용이 확정되지 않는 이상 그 권리의 성질상 소멸시효가 진행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성년에 이른 자녀의 경우 1)과거 양육비의 지급을 구하는 권리에 관하여는 자녀양육의무의 이행을 청구한다는 특성이 상당히 옅어지고 이미 지출한 비용의 정산 내지 구상이라는 순수한 재산권이나 다름없다는 점, 2)자녀가 성년이 되어 양육의무가 종료된 때부터는 아직 당사자의 협의나 가정법원의 심판으로 구체적인 금액이 확정되지 않더라도 친족법상의 신분으로부터 독립하여 처분이 가능한 완전한 재산권이 된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과거 양육비의 지급을 구할 권리의 소멸시효는 진행하며, 그 소멸시효의 기산점은 미성년 자녀가 성년이 되어 양육의무가 종료된 때가 된다고 보고 있다.
5.
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인해 앞으로는 성년이 지난 자녀에 대한 과거 양육비 청구권은 소멸시효가 진행된다고 보아야 한다. 일반적인 채권의 소멸시효는 10년이므로 과거 양육비 청구권도 10년이 적용된다. 즉, 상대방에게 과거 양육비를 청구하고 싶다면 자녀가 성년이 된 날로부터 10년 이내에 청구하여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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