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헌법재판소가 70년만에 획기적인 결정을 했다. 가까운 친족간 재산범죄에 있어 형면제를 시켜주는 형법상 친족상도례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이다. 얼마전 유류분 관련해서도 형제 자매에 대한 유류분 조항을 위헌이라고 결정하고, 유류분 상실 사유를 규정하고 있지 않은 점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한 바 있는데, 요즘 헌재가 특히 가족법 쪽에 대해 전향적인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보더라도 상당히 올바른 방향으로 보인다.
2.
그렇다면 도대체 친족상도례가 무엇일까? 법조문을 통해 한 번 살펴보자.

형법 제328조 제1항을 보면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 간의 권리행사방해죄는 그 형을 면제하고, 제2항을 보면 그 외의 친족이 권리행사방해죄를 범한 때에는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하여 친고죄로 규정하고 있다. 즉,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하는 친족 등 매우 가까운 친족 사이에서는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아예 형 자체를 면제해준다는 것이다. 엄청난 특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외의 친족 또한 반드시 고소를 해야만 처벌할 수 있기 때문에 어영부영 넘어가게 될 확률이 크다. 그야말로 전 근대적인 '친족특혜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참고로 권리행사방해죄란 타인의 점유 또는 권리의 목적이 된 자기의 물건 등을 취거, 은닉 또는 손괴하여 타인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자를 처벌하는 규정이다. 쉽게 말해서 아무리 자기 물건이라도 타인이 점유하고 있는 이상 강제로 가져가버리면 타인의 권리행사가 방해되기 때문에 이를 처벌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형법에서 이러한 친족상도례 규정을 권리행사방해죄에만 두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절도를 비롯해 사기, 횡령 등 대부분 재산범죄에 위 제328조를 준용하는 방식으로 친족상도례를 적용시키고 있다.



3.
원래 친족상도례라는 것은 가족 내부의 문제는 가족끼리 알아서 해결하고,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겠다는 취지에서 규정해놓은 것이다. 실제로 수 십년 전만해도 상속이 개시되면 남자들만 재산을 물려받고, 여자들은 하나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빈번했음에도 여자들이 문제 제기를 하지도 않는 시대였다. 그러나 지금 그렇게 하려했다가는 곧바로 상속재산분할심판청구서를 송달받거나 유류분반환청구 소장을 송달받게 될 것이다 ㅎㅎ 박세리, 박수홍 사건은 말할 것도 없다. 가족 내에서 도저히 해결이 안되는 사안이 너무나도 많다.
여하튼 권리 의식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 아들이 아버지 계좌에 있는 돈을 마음껏 횡령해도 형을 면제 받는 친족상도례 규정이 언제까지 있을 수 있을까 궁금했었는데 마침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하게 된 것이다(참고로 헌법불합치 결정은 형면제 조항에만 해당되고, 친고죄 조항은 합헌 결정을 받았다).
4.
헌법재판소의 친족상도례 형면제 규정 헌법불합치 결정에 대한 요지를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결정주문
형법(2005. 3. 31. 법률 제7427호로 개정된 것) 제328조 제1항은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한다. 법원 기타 국가기관 및 지방자치단체는 2025. 12. 31.을 시한으로 입법자가 개정할 때까지 위 법률조항의 적용을 중지하여야 한다.
□ 이유의 요지
1. 형사피해자의 재판절차진술권
○ 헌법 제27조 제5항은 “형사피해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당해 사건의 재판절차에서 진술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여 형사피해자의 재판절차진술권을 보장하고 있다. 다만, 형사피해자의 재판절차진술권을 어떠한 내용으로 구체화할 것인가에 관하여는 입법자에게 입법형성의 자유가 부여되고 있으므로, 그것이 재량의 범위를 넘어 명백히 불합리한 경우에 비로소 위헌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
2. 심판대상조항이 형사피해자의 재판절차진술권을 침해하는지 여부(적극)
○ 심판대상조항은 재산범죄의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일정한 친족관계를 요건으로 하여 일률적으로 형을 면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 심판대상조항은 직계혈족이나 배우자에 대하여 실질적 유대나 동거 여부와 관계없이 적용되고, 또한 8촌 이내의 혈족, 4촌 이내의 인척에 대하여 동거를 요건으로 적용되며, 그 각각의 배우자에 대하여도 적용되는데, 이처럼 넓은 범위의 친족간 관계의 특성은 일반화하기 어려움에도 일률적으로 형을 면제할 경우, 경우에 따라서는 형사피해자인 가족 구성원의 권리를 일방적으로 희생시키는 것이 되어 본래의 제도적 취지와는 어긋난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
- 심판대상조항은 강도죄와 손괴죄를 제외한 다른 모든 재산범죄에 준용되는데, 이러한 재산범죄의 불법성이 일반적으로 경미하여 피해자가 수인 가능한 범주에 속한다거나 피해의 회복 및 친족간 관계의 복원이 용이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예컨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상 횡령이나 업무상 횡령으로서 이득액이 50억 원 이상인 경우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으로 가중처벌될 수 있는 중한 범죄이고, 피해자의 임의의사를 제한하는 정도의 폭행이나 협박(공갈), 흉기휴대 내지 2인 이상 합동 행위(특수절도) 등을 수반하는 재산범죄의 경우 일률적으로 피해의 회복이나 관계의 복원이 용이한 범죄라고 보기 어렵다.
- 피해자가 독립하여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사무처리능력이 결여된 경우에 심판대상조항을 적용 내지 준용하는 것은 가족과 친족 사회 내에서 취약한 지위에 있는 구성원에 대한 경제적 착취를 용인하는 결과를 초래할 염려가 있다.
- 그런데 심판대상조항은 위와 같은 사정들을 전혀 고려하지 아니한 채 법관으로 하여금 형면제 판결을 선고하도록 획일적으로 규정하여, 거의 대부분의 사안에서는 기소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이에 따라 형사피해자는 재판절차에 참여할 기회를 상실하고 있다. 예외적으로 기소가 되더라도, ‘형의 면제’라는 결론이 정해져 있는 재판에서는 형사피해자의 법원에 대한 적절한 형벌권 행사 요구는 실질적 의미를 갖기 어렵다.
○ 로마법 전통에 따라 친족상도례의 규정을 두고 있는 대륙법계 국가들의 입법례를 살펴보더라도, 일률적으로 광범위한 친족의 재산범죄에 대해 필요적으로 형을 면제하거나 고소 유무에 관계없이 형사소추할 수 없도록 한 경우는 많지 않으며, 그 경우에도 대상 친족 및 재산범죄의 범위 등이 우리 형법이 규정한 것보다 훨씬 좁다.
○ 위와 같은 점을 종합하면, 심판대상조항은 형사피해자가 법관에게 적절한 형벌권을 행사하여 줄 것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하는바, 이는 입법재량을 명백히 일탈하여 현저히 불합리하거나 불공정한 것으로서 형사피해자의 재판절차진술권을 침해한다.
5.
헌법재판소는 친족상도례 형면제 규정에 대해 2025.12.31.을 시한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하였는 바, 2025.12.31.까지는 위 친족상도례 형면제 규정이 여전히 적용될 것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헌법불합치 결정을 하더라도 계속 적용하는 경우는 '잠정 적용' 결정을 할 때이고 위 친족상도례 헌법불합치 결정에서는 헌재가 '적용 중지' 결정을 하였는 바, 원칙적으로 2024. 6. 27.부로 친족상도례 형면제 규정은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유의하자. 즉, 정신이 살짝 오락가락하시는 아버지 계좌에서 슬금슬금 빼드시고 계신 분이 있다면 즉시 중지하는 게 좋을 것이다. 야금야금 파먹다가 앞으로는 쇠고랑을 차게될 수도 있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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