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대법원에서 이미 이혼했더라도 혼인 무효 처분을 할 수 있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습니다. (대법원 2024. 5. 23. 선고 2020므15896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이는 1984년 부부가 이미 이혼했다면 혼인 무효 처분을 구할 소의 이익이 없다고 판단했던 대법원 판례가 40년 만에 변경된 이례적인 판례로 볼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이혼 무효를 다투는 사건에 대해 이미 혼인 관계가 해소되었기에 실익이 없다고 판단하여 내린 판결이었으나, 최근 혼인관계에서 예전보다 많은 법률관계가 형성되어 기존의 혼인 여부에 대한 분쟁 등을 해결할 수 있는 유효한 수단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혼인 무효의 확인을 구할 이익이 인정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이전에는 혼인무효는 사실상 성립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였습니다.당사자 사이에 혼인의사의 합치가 없는 경우 혼인 무효의 사유로 다루었기에 사기 등의 기망행위에 따라 혼인하였을지라도 이미 서로 간의 혼인 의사가 있었기에 실질적인 혼인 의사 부존재를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혼인 무효가 아닌 혼인 취소로 판결이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당사자도 모르게 혼자 혼인 신고서를 작성하여 혼인이 된 일부 사례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사안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대법원의 판결로 인해 앞으로는 사안에 따라 무효인 혼인 전력이 잘못 기재된 가족관계등록부 등으로 인해 불이익을 받아 온 당사자의 실질적 권리구제가 가능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혼인무효와 이혼
법률혼이 무효인 혼인은 처음부터 혼인의 효력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이혼은 이혼 후에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혼 전 혼인을 전제로 발생한 법률관계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따라서 혼인 무효와 이혼의 법적 효과가 달라 이혼 후에도 혼인관계가 무효임을 확인할 실익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혼인이 무효라면 민법상 인척간의 혼인 금지 규정 및 형법상 친족상도례 규정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또한 민법상 일상 가사 채무에 대한 연대책임도 물을 수 없습니다.

혼인무효와 취소
제815조(혼인의 무효) 혼인은 다음 각호의 어느 하나의 경우에는 무효로 한다.
1. 당사자 간에 혼인의 합의가 없는 때
2. 혼인이 제809조 제1항의 규정을 위반한 때
3. 당사자 간에 직계인척관계(直系姻戚關係)가 있거나 있었던 때
4. 당사자 간에 양부모계의 직계혈족 관계가 있었던 때
제816조(혼인 취소의 사유) 혼인은 다음 각호의 어느 하나의 경우에는 법원에 그 취소를 청구할 수 있다.
1. 혼인이 제807조 내지 제809조(제815조의 규정에 따라 혼인의 무효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를 제외한다.
이하 제817조 및 제820조에서 같다) 또는 제810조의 규정을 위반한 때2. 혼인 당시 당사자 일방에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악질 기타 중대사유 있음을 알지 못한 때
3. 사기 또는 강박으로 인하여 혼인의 의사표시를 한 때
민법에 규정된 혼인 무효와 취소 사유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혼인의 무효와 취소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혼인의 무효는 혼인이 처음부터 이루어져서는 안 되는 혼인이기 때문에 혼인 무효의 효력은 소급해서 발생합니다. 반면 혼인 취소는 혼인이라는 형식에는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일단 유효한 혼인으로 보지만 취소 사유가 있는 경우 일방의 청구로 혼인이 취소되는 것입니다.
둘의 결정적인 차이는 혼인 무효의 경우 혼인 기록이 남지 않지만, 혼인 취소의 경우 이혼과 마찬가지로 기록이 남는다는 것입니다. 무효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점에서 사유도 다르고 인정되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지만, 최근 판결에 따라 당사자의 권리구제 방법을 확대하였기에 앞으로는 인용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또한 혼인무효의 경우에는 당사자 간에 혼인의 합의가 없는데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신고를 한 경우라든지, 근친혼에 해당하는 경우가 있는데 결국 근친혼을 제외하면 당사자 쌍방 또는 일방에게 혼인의 의사가 없었는데 혼인이 된 경우를 의미합니다. 여러분들이 흔히 알고 계신 사기 결혼은 혼인 무효가 아닌 혼인 취소 사유에 해당합니다. 직업이나 재산 등을 속여 외관을 설정하고 혼인하거나 이혼 경력, 자녀의 존재 등을 숨기고 결혼하거나 협박, 회유 등을 해서 결혼하는 등의 경우는 모두 무효가 아닌 혼인 취소의 사유입니다.
그렇다면 혼인 취소를 청구할 수 있는 자격이 되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혼인취소 당사자적격
제817조(연령위반혼인 등의 취소 청구권자) 혼인이 제807조, 제808조의 규정을 위반한 때에는 당사자 또는 그 법정대리인이 그 취소를 청구할 수 있고 제809조의 규정을 위반한 때에는 당사자, 그 직계존속 또는 4촌 이내의 방계혈족이 그 취소를 청구할 수 있다.
제818조(중혼의 취소 청구권자) 당사자나 그 배우자, 직계혈족, 4촌 이내의 방계혈족 또는 검사는 제810조를 위반한 혼인의 취소를 청구할 수 있다.
위에 조문에 따라 취소 사유를 인지한 당사자는 물론 혼인의 취소를 청구할 수 있지만, 연령을 위반한 혼인이나 중혼의 경우에는 친족 중 일부, 심지어 중혼은 검사가 취소를 청구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규정은 미성년자가 혼인 취소를 하지 않을 때 가족들이 미성년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정으로 볼 수 있고, 검사는 여러 가지 사건의 처리를 위하여 혼인 취소를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혼인취소를 무기한 인정하는 것은 취소를 청구할 수 있는 일방의 상대방에게 큰 불이익이 따르게 되므로 일정 사유를 근거로 혼인취소권의 소멸 역시 규정하고 있습니다.
혼인취소청구권의 소멸
제819조(동의 없는 혼인의 취소청구권의 소멸) 제808조를 위반한 혼인은 그 당사자가 19세가 된 후 또는 성년 후견 종료의 심판이 있고 난 뒤 3개월이 지나거나 혼인 중에 임신한 경우에는 그 취소를 청구하지 못한다.
제820조(근친혼등의 취소청구권의 소멸) 제809조의 규정을 위반한 혼인은 그 당사자 간에 혼인 중 포태(胞胎)한 때에는 그 취소를 청구하지 못한다.
위 규정들은 미성년자 제한능력자가 성년 또는 능력자가 된 경우 혼인취소권을 소멸시키도록 하거나, 자를 임신한 경우 혼인취소권을 소멸시키도록 함으로써, 이미 형성된 가정과 태아를 보호하기 위한 규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단, 근친혼의 경우 무효와 취소 사유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에 무효의 경우에는 취소와 달리 기한 없이 무효의 확인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제822조(악질 등 사유에 의한 혼인취소청구권의 소멸) 제816조 제2호의 규정에 해당하는 사유 있는 혼인은 상대방이 그 사유 있음을 안 날로부터 6월을 경과한 때에는 그 취소를 청구하지 못한다.
제823조(사기, 강박으로 인한 혼인취소청구권의 소멸) 사기 또는 강박으로 인한 혼인은 사기를 안 날 또는 강박을 면한 날로부터 3월을 지난 때에는 그 취소를 청구하지 못한다.
해당 규정들 역시 기왕에 형성된 혼인관계를 보호하는 규정들로, 상대방의 악질 등 사유나 사기, 강박에 대해 인지하고도 일정 기간이 지나간 경우 혼인 취소를 청구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이를 빌미로 다시 상대방을 협박하는 등의 상황을 미리 방지하고, 사유를 알고도 취소를 청구하지 않은 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이를 용서하고 혼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보겠다는 입법자의 취지로도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는 혼인취소청구권의 소멸일 뿐 이혼 사유에 장애가 될 수는 없으므로 혼인 관계를 소멸시키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혼인이 취소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혼인무효의 경우 앞서 언급한 대로 처음부터 혼인이 없었던 상태로 모든 것을 되돌리는 것이 원칙입니다.
혼인취소의 효력
제824조(혼인취소의 효력) 혼인 취소의 효력은 기왕에 소급하지 아니한다.
제824조의2(혼인의 취소와 자의 양육 등) 제837조 및 제837조의2의 규정은 혼인 취소의 경우에 자의 양육 책임과 면접교섭권에 관하여 이를 준용한다.
제825조(혼인취소와 손해배상청구권) 제806조의 규정은 혼인의 무효 또는 취소의 경우에 준용한다.
혼인 취소의 효력은 기왕에 소급하지 아니하므로, 이미 성립한 혼인은 일단 유효하다고 보고 취소가 인정되는 경우 장래에 대하여 혼인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이혼과 유사한 효력이 있으나 이혼은 혼인의 파탄이 원인이지만 취소는 사기 등 일방의 과실이 혼인 관계를 파탄시킬 정도로 신뢰를 망가뜨린 것이 원인으로 이혼은 혼인 자체를 유효하게 유지해 온 것을 인정하는 전제하에 혼인 파탄 시점을 기준으로 부부관계를 해소하지만, 혼인의 취소는 혼인 자체가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전제로 취소 청구 시점에 원상회복을 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 민법은 혼인을 취소하게 되면, 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이혼에 준하여 양육권과 양육비, 면접교섭권을 판단하고, 손해배상의 경우에는 이혼과 같은 재산분할이 아니라 약혼에 준하여 판단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혼인 취소의 효력은 기왕에 소급하지 않는다는 법률의 의미는 혼인취소가 비록 처음부터 혼인이 없었던 것으로 취급하는 의미가 있다고 하더라도 혼인 이후 형성된 경제적, 사회적 효과들을 소급하여 원상회복하는 무효와는 달리 이미 형성된 효과들은 인정하는 바탕에서 손해배상 등의 방법으로 혼인 관계를 해소하겠다는 의미입니다.
혼인의 무효와 취소는 이혼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혼은 유효하게 성립한 혼인 생활을 유지하던 중 후발적으로 발생한 사유들에 의해 혼인 관계가 파탄에 이르러 혼인 관계를 해소하는 것이라면 무효와 취소는 혼인 자체가 가진 문제점을 파악하여 이를 바로잡기 위한 절차입니다. 혼인무효소송과 취소소송의 경우 본안의 특성상 일반적인 이혼소송보다 더욱 엄격하게 진행되는 편이므로 어떤 문제가 법이 규정하는 사유에 해당하는지 반드시 이혼전문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진행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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