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사건에서 '성인지 감수성' 판단기준에 대한 판례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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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사건에서 '성인지 감수성' 판단기준에 대한 판례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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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사건에서 '성인지 감수성' 판단기준에 대한 판례 변화 

현문경 변호사

[판례소개] 성범죄사건에 대한 '성인지 감수성' 판단기준을 구체화 시킨 대법원 판례(대법원 2024. 1. 4. 선고 2023도13081 판결)



안녕하세요?

언제나 의뢰인의 곁에서 의뢰인을 먼저 생각하는 현문경 변호사입니다.

오늘은 성범죄 사건을 판단함에 있어 적용되는 '성인지 감수성'에 관하여 기존 대법원 판결 내용을 구체화시킨 대법원 판례를 소개해드립니다.



1. 공소사실의 요지

이 사건 공소사실의 요지는,

『피고인은 자폐성 장애 등으로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서 다음과 같이 범행하였다.

피고인은 2021. 6. 24. 23:15경 부산도시철도 1호선 서면역에서 다대포 해수욕장역으로 운행 중인 전동차에서, 피해자(여, 19세)의 옆 자리에 앉아 피해자의 왼팔 상박 맨살에 자신의 오른팔 상박 맨살을 비비고, 피해자가 이를 피해 옆 좌석으로 이동하자 재차 피해자의 옆 자리로 이동하여 위와 같은 방법으로 대중교통수단인 전동차에서 피해자를 추행하였다.』


라는 것입니다.

2. '성인지 감수성'을 설시한 기존 대법원의 판단

'성인지 감수성'이란 2018년에 선고된 대법원 판결(대법원 2018. 10. 25. 선고 2018도7709 판결)에서 등장하였으며, 이는 성범죄 사건에 대해 판단할 때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에 대한 판단기준 중 하나로 설시된 것으로, 판결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법원이 성폭행이나 성희롱 사건의 심리를 할 때에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도록 유의하여야 한다. 우리 사회의 가해자 중심의 문화와 인식, 구조 등으로 인하여 성폭행이나 성희롱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알리고 문제를 삼는 과정에서 오히려 피해자가 부정적인 여론이나 불이익한 처우 및 신분 노출의 피해 등을 입기도 하여 온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성폭행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피해자의 성정이나 가해자와의 관계 및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개별적, 구체적인 사건에서 성폭행 등의 피해자가 처하여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

즉, 성범죄의 유뮤죄를 판단함에 있어 피해자에게 이른바 '피해자다움'을 강요해서 쉽게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하지 말고, 구체적인 상황을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3. 기존 대법원 판단을 기초로 한 잘못된 수사관행

위 대법원의 판단은 성범죄의 피해를 입고도 가해자와의 관계나 사회적 인식 등이 두려워 쉽게 대처하지 못하던 기존의 성범죄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수사기관에서 위 대법원 판례를 적용함에 있어 그 의미를 잘못 확대해서 해석한 나머지 범죄혐의의 입증책임을 피의자 또는 피고인에게 전가시키는 일이 발생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즉, 경찰이나 검찰단계에서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기만 하면 '성인지감수성'을 근거로 일단 '피해자의 진술이 진실이라는 것을 전제'하여, 피의자 또는 피고인이 이와 반대되는 명백한 증거를 제출하지 않으면 범죄혐의를 인정하는 일이 실무관행으로 자리잡아 버린 것입니다.

이는 법이론상으로 범죄사실에 대한 입증책임을 수사기관에 부담하게 한 형사법의 원칙에 반할 뿐만아니라, 형사법의 대원칙인 '무죄추정의 원칙'에도 위반되는 중대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또한 실무적으로도, 성범죄로 기소된 사건 중 다른 증거 없이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만이 있는 상황에서 피의자 또는 피고인이 본인 스스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증거'를 직접 수집해야 하는 문제점이 있었고, 혹시 범죄혐의를 부인하였다가 나중에 중한 형벌을 받을 것을 두려워한 피의자 또는 피고인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혐의를 인정하고 피해자와의 합의를 강요당하는 등 억울한 일을 양산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4. 원심법원의 판단 : 피고인의 항소 기각(공소사실 유죄)


원심인 서울동부지방법원은 ① 피고인 측이 제출한 소견서 등만으로는 추행의 고의가 없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② 피고인의 지적 또는 의지적 상태가 자신이 한 행동의 사회적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수준의 상태에 해당한다고 볼 정도는 아닌 점, ③ 피고인이 피해자의 맞은편에 앉아 있다가 피해자 옆으로 옮겨 앉은 후 공소사실 기재와 같은 행위를 한 점에 비추어 자폐성 장애로 인한 상동행동에 기인한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이유로 하여, 추행의 고의를 부인하는 피고인의 주장을 배척하고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하였습니다.



5. 대법원 2024. 1. 4. 선고 2023도13081 판결 : 파기환송(피고인에게 추행의 고의가 없다는 취지)

<주 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동부지방법원에 환송한다.

<이 유>

성범죄 사건을 심리할 때에는 ‘성인지적 관점’을 유지하여야 하므로, 개별적ㆍ구체적 사건에서 성범죄 피해자가 처하여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지만, 이는 성범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제한 없이 인정하여야 한다거나 그에 따라 해당 공소사실을 무조건 유죄로 판단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피고인이 일관되게 공소사실 자체를 부인하는 상황에서 공소사실을 인정할 직접적 증거가 없거나, 피고인이 공소사실의 객관적 행위를 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고의와 같은 주관적 구성요건만을 부인하는 경우 등과 같이 사실상 피해자의 진술만이 유죄의 증거가 되는 경우에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더라도 피고인의 주장은 물론 피고인이 제출한 증거, 피해자 진술 내용의 합리성ㆍ타당성, 객관적 정황과 다양한 경험칙 등에 비추어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피고인의 주장을 배척하기에 충분할 정도에 이르지 않아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면,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피고인이 수사과정에서 공소사실을 부인하였고 그 내용이 기재된 피의자신문조서 등에 관하여 증거동의를 한 경우에는, 형사소송법에 따라 증거능력 자체가 부인되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 내용이나 진술의 맥락ㆍ취지를 고려하지 않은 채 그 중 일부만을 발췌하여 유죄의 증거로 사용하는 것은 함부로 허용할 수 없다.

6. 대법원 판결의 의미

2018년 '성인지감수성'을 설시한 대법원 판결이 선고된 이후, 성범죄 사건에서 다른 증거 없이도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만 있으면 유죄가 쉽게 인정되는 잘못된 관행이 형성되었고, 이를 면하기 위해서 피의자 또는 피고인이 자신에게 죄가 없음을 적극적으로 입증하여야 하거나 중한 형벌을 피하기 위해서 거짓으로 죄를 인정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위 대법원 판결은 다른 증거 없이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유죄판결을 선고했던 기존의 하급심 판결과 실무상 잘못 운영되고 있는 수사기관의 관행에 대하여 경종을 울리는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위 판결은 종전의 '성인지감수성'을 내용으로 하는 기존의 대법원 입장을 번복하는 것이 아니라, '성인지감수성'을 이유로 하더라도 이것이 형사법의 대원칙인 '무죄추정의 원칙' 보다는 우위에 설 수 없다는 당연한 내용을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으로서, 실무상 잘못 확대해석되고 있는 '성인지감수성'에 관한 판례의 내용을 더욱 구체화시켰다고 보아야 합니다.

위 판결로 인하여 앞으로의 하급심 법원에서는 다른 증거없이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피고인에게 유죄를 선고하는 경우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수사기관에서도 피해자의 진술 외 다른 객관적인 증거들을 적극적으로 수집하기 위한 노력을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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