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이나 각종 갑질로 인해서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종종 발생하고 있는데요, 간혹 이런 경우에 가해자에게 살인죄를 적용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곤 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세요? 지속적인 괴롭힘에 힘들어하다가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한 피해자에 대해서 가해자들에게 살인죄를 물을 수 있을까요?
저도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사건을 하다 보면 가끔씩 싹 다 잡아다가 피해자가 당한 대로 똑같이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딘가에 가두어 두고 자기보다 센 사람들이 똑같이 괴롭히게 하는 거죠.
하지만 당한 대로 똑같이 해를 가하는 동해보복(同害報復)의 원칙이 현대 사회에서는 허용될 리가 없죠.
그렇다면 적어도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우, 피해자의 사망에 대해서 범죄로 처벌할 수는 없을까요?
먼저 당연히 갑질이나 괴롭히는 행위 자체에 대해서는 처벌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고등학생인 A가 같은 반 학생 B를 지속적으로 괴롭혔고, 매일같이 A에게 폭행을 당하던 B가 어느 날 괴로운 마음에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경우, A는 B에게 상해를 입혔으니 당연히 상해죄로 처벌되겠지요. 그런데 살인죄나 상해치사죄는 어떨까요?
범죄가 성립하려면 행위자의 행위와 발생한 결과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되어야 합니다. 당연한 소리죠.
그런데 B의 사망과 A의 행위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될까요?
자연과학적 인과관계는 '어떠한 사실이 없었더라면 특정한 결과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관계가 존재하면 인정됩니다. 하지만 법에서는 이와 같은 인과관계를 바탕으로 죄의 성립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만일 위와 같이 자연과학적인 인과관계만으로 인과관계가 있다고 인정하게 되면, 예컨대 A의 부모가 A를 낳지 않았다면 B는 사망하지 않았을 테니 A의 부모에게도 살인죄나 상해치사죄의 책임을 물을 수 있고, 같은 논리로 A의 조부모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하게 됩니다.
이 때문에 법에서는 단순히 인과관계를 판단할 때 법적인 '가치 판단'이 개입됩니다.
법원에서는 일반적인 사회생활의 경험에 비추어 어떠한 행위로부터 특정한 결과가 발생할 개연성이 크다면 인과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즉 사회통념에 비추어 인과관계가 인정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지요.
판례의 입장에서 위 예를 살펴보면, 만일 지속적인 학교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이 자살할 것이라는 점에 대한 개연성이 있어야, 다시 말해서 반드시 그렇게 된다고 확실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될 충분히 높은 가능성이 있어야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볼 수 있으므로 A에게 B의 죽음에 대한 범죄는 인정되기 어렵습니다.
피해자에게는 안타까운 일일 수 있지만 학폭이나 괴롭힘을 당한 피해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가 다수는 아니니까요. 단순히 국민감정에 반한다거나 죽어 마땅한 놈이라는 이유로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다만 A에게 인정되는 상해죄 등에 대한 처벌 수위를 정할 때, 발생한 결과도 고려되어 다른 경우보다 처벌이 무거워질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형사상 범죄가 성립하는지와 민사상 배상책임이 있는지는 다른 기준에서 판단이 되기 때문에 민사상 손해배상에서는 피해자의 사망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대법원 2007. 4. 26. 선고 2005다24318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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