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신동우 변호사입니다.
"비가 그렇게 왔는데 어쩌겠어요. 재난문자도 갔잖아요. 차를 안 옮긴 분 책임도 있죠."
세워 둔 차가 물에 잠겼는데 관리사무소에서 이런 답을 들으면 말문이 막힙니다. 정말 천재지변이었나 싶어서 그냥 넘어가야 하나 고민하게 되고요.
얼마 전 보도된 사연도 비슷했습니다. 폭우가 내린 날 아침, 경남 거제의 한 아파트 옹벽 아래 주차장에서 6m쯤 되는 높이의 물이 한꺼번에 쏟아져 세단을 덮쳤고 차주는 결국 폐차를 해야 했습니다. 관리사무소는 배수구 청소를 성실히 했고 피할 수 없는 사고였다는 입장이었다고 합니다.
비가 원인이면 아무도 책임이 없는 걸까요? 제 생각은 다릅니다. 법이 먼저 들여다보는 건 강수량보다 시설 쪽이거든요.
비 때문인데 아파트가 왜 물어주나요
민법 제758조 제1항은 공작물을 잘못 설치하거나 잘못 관리해서 남에게 손해를 입히면 그 공작물을 점유한 쪽이 배상하도록 정합니다. 옹벽도 배수구도 배수관도 공작물입니다. 단지 안 공용시설이라면 관리하는 쪽이 1차 책임자가 될 가능성이 크고요. 점유자가 주의를 다했다고 증명하면 그다음은 소유자 차례인데, 소유자에게는 그런 항변이 없습니다.
"폭우랑 같이 일어난 일인데도요?"
대법원은 공작물의 하자가 사고의 공동원인 중 하나이면 손해는 그 하자로 생긴 것이라고 봅니다(대법원 2025. 9. 26. 선고 2025다211711 판결). 비가 같이 원인이 됐더라도 배수 시설이 제 역할을 못 한 게 원인 중 하나라면 책임은 남는다는 얘기입니다.
다만 이 말씀은 꼭 드려야겠습니다. 시설에 하자가 있었다는 사실은 피해자가 증명해야 합니다.
관리사무소가 하는 말, 통할까요
배수구 청소를 했다는데요
청소는 관리 노력을 보여 주는 사정입니다. 그런데 법원이 따지는 건 그 시설이 그 자리에서 통상 갖춰야 할 안전성을 갖췄느냐입니다. 위험성에 비례해 사회통념상 요구되는 방호조치를 다했는지가 기준이고요. 옹벽 아래를 주차장으로 쓰는데 위에 모인 물이 배수관 없이 그대로 떨어지는 구조였다면, 청소를 아무리 열심히 했어도 하자로 평가될 여지가 큽니다.
예측할 수 없는 비였다는데요
불가항력이 인정될 때도 있습니다. 문턱이 높을 뿐이죠. 대법원이 불가항력으로 본 하천 범람 사건은 600년 또는 1,000년 발생빈도의 강우였습니다(대법원 2003. 10. 23. 선고 2001다48057 판결). 하천 사건이라 옹벽에 그대로 옮길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를 불가항력으로 보는지 감은 잡힙니다.
해마다 여름이면 집중호우가 반복되는데 예측을 못 했다는 말은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을 겁니다. 눈여겨볼 건 재난문자 이야기입니다. 문자가 여러 통 왔으니 차주도 잘못이라고 하면, 그 비가 예측 가능했다고 스스로 말하는 셈이 될 수 있으니까요.
차를 안 옮긴 차주 잘못이라는데요
차주 과실은 배상액을 줄이는 사유입니다(민법 제763조, 제396조). 책임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옹벽 배수구에서 그만한 물이 쏟아질 줄 일반 차주가 알기도 어렵습니다. 주차가 허용된 자리였고 새벽 시간대였다면 과실 비율이 크게 잡히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사건마다 달라서 몇 퍼센트라고 장담은 못 드립니다.
시에도 물을 수 있나요
주차장을 시가 설치·관리하고 그 설치나 관리에 하자가 있었다면 국가배상법 제5조 제1항에 따라 지방자치단체도 책임 주체가 될 수 있습니다.
갈림길은 물이 넘친 원인입니다. 옹벽 위 배수 설비가 원인이면 아파트 쪽, 주차장 자체의 배수나 위치가 원인이면 시 쪽이 문제 됩니다. 둘 다 원인이라면 함께 책임질 수도 있고요. 옹벽과 주차장의 소유·관리 주체를 먼저 확인하고, 필요하면 양쪽을 모두 상대로 청구하는 방법을 검토해 볼 만합니다.
지금 챙겨야 할 것
비가 그치기 전에 찍어 두세요
물이 어디서 어떻게 쏟아졌는지는 비가 그치면 다시 보기 어렵습니다. 현장 사진과 영상, 블랙박스, 주변 CCTV부터 확보하세요. 배수구와 배수관 위치, 막힘 여부, 옹벽 위로 물이 모이는 구조도 남겨 두시고요. 관리사무소와 주고받은 문자, 그 시간대 강수량 자료도 나중에 쓸모가 있습니다.
보험으로 먼저 받고 나머지를 청구하세요
자기차량손해 담보가 있다면 보험으로 먼저 받고 보험사가 아파트나 시에 구상하는 방식이 현실적입니다. 자기부담금처럼 보험으로 메워지지 않는 손해는 직접 청구하면 됩니다. 아파트가 가입한 배상책임보험이 있는지도 관리사무소에 물어보세요.
기한을 적어 두세요
손해와 가해자를 안 날부터 3년, 불법행위를 한 날부터 10년이 지나면 청구할 수 없습니다(민법 제766조). 책임 공방이 길어져도 이 기간은 그대로 흘러갑니다.
비는 아무도 막지 못합니다. 그 물이 어디로 떨어질지는 사람이 정한 일이고요.
참고 기사: 「[기가車] "내 차에 물폭탄이 떨어졌는데"…책임 없다고 모르쇠하는 아파트」, 『아이뉴스24』, 2026.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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