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처 사장님 부탁으로 "앞으로 납품받는 외상대금은 내가 책임진다"는 취지의 보증서에 도장을 찍었는데, 정작 서류 어디에도 금액 한도는 적혀 있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 거래처가 부도가 나자 공급업체가 수천만 원, 수억 원의 외상대금을 보증인에게 청구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보증인은 사업자라 보증인 보호를 위한 특별법의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 판단은 절반만 맞습니다. 이 글에서는 장래에 계속 발생하는 외상대금을 보증하는 근보증에서, 보증 서면에 최고액이 없을 때 민법이 어떻게 보증인을 보호하는지, 그리고 청구를 받았을 때 무엇부터 확인해야 하는지 짚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근보증이란 — 거래처 외상 보증이 일반 보증과 다른 이유
보통의 보증은 이미 발생한 대출금 1억 원처럼 금액이 정해진 주채무를 대상으로 합니다. 반면 근보증은 앞으로 발생할 불확정한 다수의 채무를 한꺼번에 보증하는 계약입니다. 거래처가 공급업체로부터 매달 원자재를 외상으로 받아 가는 계속적 거래에서, 보증인이 "이 거래에서 생기는 외상대금 일체"를 보증하는 경우가 전형적입니다. 민법 제428조 제2항은 보증이 장래의 채무에 대해서도 가능하다고 정하고 있고, 근보증은 그 연장선에 있습니다.
문제는 근보증의 위험이 보증 시점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보증서에 서명하는 날에는 외상 잔액이 0원일 수도 있는데, 거래가 확대되면 보증채무는 보증인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커질 수 있습니다. 거래량을 정하는 사람은 보증인이 아니라 주채무자와 채권자입니다. 그래서 입법자는 보증인이 부담할 한도를 보증하는 시점에 서면으로 못 박도록 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이 한도가 바로 최고액입니다.
확정채무 보증 — 이미 발생한 금액이 있어 보증인이 부담 범위를 알 수 있음.
근보증 — 앞으로 발생할 외상대금·물품대금 등 불확정 채무를 보증하므로 한도가 핵심.
연대보증 형태로 근보증을 한 경우에도 최고액 규율은 그대로 적용됨.
"일체의 채무", "거래로 인한 모든 채무"라는 문구는 한도를 정한 것이 아니라 범위만 넓힌 것.
근보증의 위험은 보증하는 날이 아니라 그 뒤 거래가 커지는 동안 생긴다 — 그래서 민법은 한도를 서명하는 날 서면에 고정하게 한다.
민법 제428조의3 — 최고액을 적지 않으면 효력이 없다
핵심 조문은 민법 제428조의3입니다. 제1항은 "보증은 불확정한 다수의 채무에 대해서도 할 수 있다. 이 경우 보증하는 채무의 최고액을 서면으로 특정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제2항은 "채무의 최고액을 제428조의2 제1항에 따른 서면으로 특정하지 아니한 보증계약은 효력이 없다"고 정합니다. 여기서 효력이 없다는 것은 청구가 감액된다는 뜻이 아니라, 그 보증계약 자체가 처음부터 성립한 효과를 갖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보증채무가 100만 원이든 1억 원이든 최고액이 서면에 없다면 근보증은 통째로 무효가 됩니다.
이 규정은 2015년 민법 개정으로 신설되어 2016년 2월 4일부터 시행되었고, 시행 이후 체결되거나 갱신되는 보증계약에 적용됩니다. 중요한 점은 이 조항이 보증인의 신분이나 채권자의 종류를 가리지 않는 민법의 일반 규정이라는 것입니다. 개인 사업자든 법인이든, 채권자가 은행이 아니라 일반 거래처이든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공급업체와 거래처 사이의 외상대금을 보증한 사업자도 이 조항의 보호를 받습니다. 보증인보호법의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이 민법상 보호까지 막지는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보증서에 "채무자가 귀사와의 거래로 부담하는 일체의 물품대금을 연대보증함"이라고만 적혀 있고 금액란이 비어 있다면 어떨까요. 이 경우 채권자는 보증인에게 이행을 구할 수 없고, 보증인이 따로 시효나 변제 항변을 하지 않아도 최고액 미특정이라는 사유만으로 청구를 다툴 수 있습니다.
민법 제428조의3 제2항 — 최고액을 서면으로 특정하지 않은 근보증은 효력이 없다. 보증인이 사업자인지 여부는 이 조항의 적용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보증인보호법 대상이 아닌데 민법이 적용되는 구조
보증인 보호를 위한 특별법(보증인보호법) 제6조에도 같은 내용의 근보증 규정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법은 보증인의 범위를 좁게 정의합니다. 제2조 제1호는 기업이 영위하는 사업과 관련된 타인의 채무를 보증한 경우, 기업의 대표자·이사·과점주주 등이 그 기업의 채무를 보증한 경우, 동업자의 동업 관련 채무를 보증한 경우를 보증인에서 제외합니다. 거래처 외상대금을 사업상 이유로 보증한 사업자는 이 제외 유형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아, 보증인보호법으로는 보호받지 못합니다.
이 지점에서 오해가 생깁니다. 보증인보호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말을 보호 규정이 전혀 없다는 말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2016년 2월 4일 시행된 개정 민법으로 같은 취지의 근보증 최고액 규정이 민법 본문에 들어왔기 때문에, 보증인보호법의 문이 닫혀 있어도 민법의 문은 열려 있습니다. 두 법의 차이는 보호의 범위에 있습니다. 보증인보호법에는 보증기간을 정하지 않으면 3년으로 보는 제7조 같은 추가 보호가 있지만, 민법 제428조의3은 최고액 특정이라는 핵심 요건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보증인보호법 적용 — 사업과 무관한 호의 보증이 중심, 최고액 특정(제6조)과 보증기간 3년 간주(제7조) 등이 적용됨.
보증인보호법 제외 — 기업 사업 관련 보증, 대표자·이사·과점주주 보증, 동업 관련 보증 등.
민법 제428조의3 — 위 구분과 무관하게 모든 근보증에 최고액 특정을 요구함.
제외 유형에 해당한다는 말만 믿고 포기하기 전에 민법 조항부터 확인할 것.
"서면으로 특정"의 의미 — 대법원 2018다282473 판결
실무에서 다투는 지점은 서면에 최고액이 있었느냐입니다. 대법원 2019. 3. 14. 선고 2018다282473 판결은 이 문제를 직접 다루었습니다. 이 사건에서 공장 신축공사를 도급받은 회사의 레미콘 대금을 다른 회사가 연대보증했는데, 계약서에는 계약기간, 현장명, 대금지급조건, 레미콘의 규격과 단가는 있었지만 총 공급량이나 보증채무의 최고액은 없었습니다. 원심은 보증이 유효하다고 보았으나, 대법원은 이를 뒤집고 사건을 환송했습니다.
대법원이 제시한 기준은 두 갈래입니다. 보증인의 보증 의사가 표시된 서면에 최고액이 명시적으로 적혀 있어야 하고, 명시되어 있지 않더라도 서면 자체로 보아 최고액이 얼마인지 객관적으로 알 수 있어 명시한 것과 동일시할 수 있을 정도의 구체적 기재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판결은 입법 취지를 보증인이 자신이 지게 될 법적 부담의 한도를 미리 명확히 알 수 있게 하려는 데 있다고 설명합니다. 단가는 있으나 수량이 없다면 곱셈의 결과, 즉 총액을 알 수 없으므로 최고액이 특정되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이 판결에서 읽히는 실무적 결론입니다.
이 판결은 보증인 쪽에서 정리해 둘 가치가 있는 또 하나의 쟁점도 다루었습니다. 보증은 제428조의2 제1항에 따라 보증인의 기명날인 또는 서명이 있는 서면이어야 하는데, 판결은 서명은 보증인이 직접 이름을 써야 하지만 기명날인은 타인이 대행해도 무방하다고 보았습니다. 회사 직원이 명판과 법인인감을 찍은 사안에서도 날인 요건은 충족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내가 직접 서명한 게 아니다"라는 주장만으로는 부족하고, 최고액 미특정이라는 별도의 방어선을 준비해야 합니다.
최고액이 적힌 것처럼 보이는 경우 — 실제로 문제가 되는 문구들
현실의 보증서는 완전히 비어 있는 경우보다 애매하게 적힌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문구가 최고액 특정으로 인정되고 어떤 문구가 부족한지 구분해야 청구를 다툴 수 있습니다. 판례의 기준에 따르면 숫자가 직접 적힌 한도액이 있거나, 서면만 보고도 총액을 계산할 수 있는 정도여야 합니다. 보증의 기초가 되는 거래 약정서에 기재된 사항을 보증 의사가 표시된 서면과 어떻게 연결해서 볼지가 다툼이 됩니다.
"금 일억 원정" 같은 금액 기재 — 최고액이 명시된 것으로 유효 가능성이 높음.
"거래로 발생하는 일체의 채무" — 범위만 있고 한도가 없어 무효 가능성이 큼.
단가와 거래기간만 있고 수량이 없는 경우 — 총액을 알 수 없어 최고액 특정이 부족함(위 대법원 판결 사안).
금액란이 공란인 채 서명하고 나중에 채권자가 채워 넣은 경우 — 보충권 범위와 서명 시점의 합의 내용이 쟁점.
"원금 및 이자 일체" 식 기재 — 원금 한도가 있는지, 이자·지연손해금이 한도에 포함되는지를 문구로 확인.
공란에 채권자가 나중에 금액을 써넣은 사안은 실무에서 자주 문제가 됩니다. 서명 당시 최고액이 비어 있었다면 그때 서면으로 특정된 것이 아니므로, 나중에 채워 넣은 금액이 보증인이 사전에 동의한 범위 안에 있었는지 별도로 입증되어야 합니다. 이 입증 책임을 둘러싼 공방에서 계약서 원본, 보증서가 작성된 경위를 보여주는 문자·메일, 보증 당시 채권자와 오간 대화 기록이 결정적인 자료가 됩니다.
최고액이 있어도 끝나지 않는다 — 보증인이 활용할 수 있는 다른 방어선
보증서에 최고액이 적혀 있어 제428조의3으로 무효를 주장하기 어렵더라도 보증인에게는 다른 수단이 남아 있습니다. 첫째는 최고액 자체의 상한입니다. 보증인은 최고액을 넘는 부분을 부담하지 않으므로, 청구 금액이 최고액을 초과했다면 초과분은 다툴 수 있습니다. 둘째는 채권자의 정보제공·통지의무입니다. 민법 제436조의2에 따라 채권자는 보증계약을 체결할 때 주채무자의 채무 관련 신용정보를 알고 있으면 보증인에게 알려야 하고, 주채무자가 채무를 3개월 이상 이행하지 않는 경우에는 지체 없이 보증인에게 알려야 합니다.
채권자가 이 의무를 위반하여 보증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같은 조 제4항에 따라 법원은 그 내용과 정도를 고려해 보증채무를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거래처가 석 달 넘게 대금을 연체해 왔는데도 공급업체가 이를 알리지 않고 외상 공급을 계속 늘린 사정이 입증된다면, 그 이후에 늘어난 외상분에 대해 보증책임을 줄일 근거가 됩니다. 셋째는 보증기간과 근보증 해지입니다. 보증기간의 정함이 없는 계속적 보증에서 보증인이 일정한 사정이 있을 때 장래에 대해 보증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지는 사안에 따라 다투어지므로, 해지 의사는 내용증명으로 남겨 두는 편이 좋습니다.
청구를 받았을 때의 대응 — 순서와 준비할 자료
공급업체로부터 내용증명이나 지급명령, 소장이 도착하면 보증인은 먼저 보증서 원본 또는 사본을 확보해야 합니다. 보증서가 몇 장인지, 최고액란이 있는지, 서명·날인 시점은 언제인지, 기간과 거래 범위가 어떻게 적혀 있는지를 하나씩 확인합니다. 지급명령 이의신청 기간이 짧다는 점은 특히 유의해야 합니다. 지급명령은 송달받은 날부터 2주 이내에 이의신청을 하지 않으면 확정될 수 있어, 보증이 무효라는 주장은 이 기간을 지켜 소송으로 가져가야 합니다.
보증서 원본·사본 확보 — 최고액란, 서명·날인, 작성일, 보증 범위 문구를 확인.
기초 거래계약서·거래원장·세금계산서 — 청구액이 실제 외상 잔액과 일치하는지 대조.
최고액 초과 여부와 시기별 잔액 — 연체가 시작된 시점과 그 이후 증가액 구분.
채권자의 통지 이력 — 연체 통보를 받은 적이 있는지 메일·문자·통화 기록 정리.
이미 일부 변제했다면 변제 경위와 영수증 — 이후 무효 주장과의 관계를 정리.
일부를 이미 갚았다면 사정이 복잡해집니다. 민법 제428조의2 제3항은 보증인이 보증채무를 이행한 경우 그 한도에서 서명·서면 방식의 하자를 이유로 무효를 주장할 수 없다고 정합니다. 이 조항은 서면의 방식 하자에 관한 규정이므로 최고액 미특정 사안에 그대로 적용되는지는 별개로 따져야 하지만, 변제로 이어진 사정은 채권자에게 유리한 사실로 쓰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청구를 받은 시점에 일부 금액이라도 서둘러 갚아 분쟁을 줄이려는 판단은 보증서 검토를 마친 뒤로 미루는 편이 안전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보증인보호법 대상이 아니라는 말을 들었는데 정말 보호받을 수 없나요?
A. 보증인보호법은 기업 사업과 관련된 보증이나 대표자·동업자의 보증을 보증인에서 제외합니다. 그러나 민법 제428조의3은 보증인의 신분과 무관하게 근보증 전체에 최고액 특정을 요구하므로, 보증인보호법 밖의 사업자도 이 조항을 근거로 다툴 수 있습니다. 보증서 작성 시점이 2016년 2월 4일 이후인지 먼저 확인하십시오.
Q. 최고액이 비어 있는 보증서에 서명했다면 갚을 필요가 없나요?
A. 근보증에서 최고액을 서면으로 특정하지 않았다면 민법 제428조의3 제2항에 따라 보증계약은 효력이 없습니다. 다만 채권자가 보증서 외의 다른 서면이나 사정으로 최고액이 특정되었다고 주장할 수 있고, 판례는 서면 자체로 최고액을 객관적으로 알 수 있는지를 봅니다. 보증서의 실제 기재 내용에 따라 결론이 달라집니다.
Q. 단가와 거래기간은 적혀 있는데 수량이 없으면 최고액이 특정된 건가요?
A. 대법원 2018다282473 판결 사안이 그런 경우였고, 대법원은 총량이나 최고액이 없어 최고액이 특정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서면만으로 총액을 계산할 수 없다면 명시한 것과 동일시할 수 없다는 취지입니다.
Q. 최고액이 적혀 있다면 그 금액은 무조건 내야 하나요?
A. 최고액은 보증인이 부담할 수 있는 상한일 뿐 실제 채무가 그만큼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실제 외상 잔액이 최고액보다 적다면 잔액까지만 부담하고, 채권자가 제436조의2의 통지의무를 어겼다면 법원이 보증채무를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습니다.
Q. 직원이 회사 도장을 찍은 보증도 효력이 있나요?
A. 대법원은 보증인의 서명은 직접 써야 하지만 기명날인은 타인이 대행해도 무방하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대리 날인이라는 사실만으로는 보증을 다투기 어렵고, 대리권 유무와 최고액 특정 여부를 함께 검토해야 합니다.
Q. 지급명령을 받았는데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요?
A. 지급명령은 송달받은 날부터 2주 이내에 이의신청을 해야 확정을 막을 수 있습니다. 이의신청 후 정식 소송으로 넘어가면 최고액 미특정으로 인한 무효, 청구액 과다, 채권자의 통지의무 위반 등을 순서대로 주장하게 됩니다.
맺음말
거래처 외상 근보증은 보증하는 날에는 위험이 보이지 않다가 거래가 커진 뒤에 한꺼번에 청구로 돌아오는 구조입니다. 민법 제428조의3은 그 위험을 보증 서면에 최고액을 적게 하는 방식으로 통제하며, 이 규정은 보증인보호법의 대상이 아닌 사업자에게도 적용됩니다. 최고액이 비어 있거나 총액을 알 수 없는 문구라면 보증 자체가 무효일 수 있다는 점을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보증서에 최고액이 있더라도 청구액이 상한을 넘는지, 채권자가 연체를 알리지 않았는지, 실제 외상 잔액이 얼마인지를 따로 따져 보면 부담을 줄일 길이 열릴 수 있습니다. 청구서를 받았다면 서둘러 변제하거나 합의하기에 앞서 보증서 원본과 거래 자료부터 갖춰 점검해 보시길 권합니다.
조력이 필요하시면 강대현 대표변호사에게 연락주십시오. 신속히 도와드리겠습니다.
의뢰인을 위한 최선의 전략을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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