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제폭력으로 입건된 분들이 가장 많이 묻는 것은 합의만 하면 끝나는 것 아니냐는 질문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어떤 죄로 입건됐는지, 두 사람이 어떤 관계인지에 따라 다릅니다.
결혼을 앞둔 연인과 다투다 폭행·협박으로 입건됐다가 공소권없음으로 끝난 사건이 있습니다. 이 사건을 바탕으로 처벌불원으로 끝나는 경우와 끝나지 않는 경우, 그리고 합의 과정에서 놓치기 쉬운 점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1. 새벽 말다툼이 폭행·협박 신고로 번졌습니다
A씨는 결혼을 준비하던 30대 남성입니다. 2025년 여름 친구들에게 연인을 소개하는 술자리가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연인이 한 말이 마음에 걸린 채 집으로 돌아왔고 새벽 무렵 말다툼이 시작됐습니다.
A씨의 원룸에서 다툼은 점점 커졌습니다. 연인이 어머니에게 전화하려 하자 휴대전화를 빼앗았습니다. 양손을 잡아 흔들고 나가려는 연인의 발목을 잡아당겼습니다. 벽 쪽으로 밀어붙인 채 주먹을 쥐고 욕설을 했고, 칼이 어디 있느냐며 싱크대 쪽으로 갔습니다.
연인은 문을 열고 나가 도와 달라고 외쳤고 이웃이 신고했습니다. 경찰은 폭행과 협박 혐의로 사건을 접수했습니다. 술자리에서 들은 말 한마디가 이렇게까지 번질 줄은 A씨도 몰랐다고 했습니다.
2. 연인 사이의 폭력도 행위별 죄명으로 판단합니다
연인 사이에서 일어난 일도 수사에서는 폭행, 협박, 상해, 감금처럼 실제 행위에 해당하는 형법상 죄로 판단됩니다. 그래서 '교제 중 다툼'이라는 같은 상황이라도 어떤 행위가 있었는지에 따라 적용 조문과 법정형, 합의의 효과가 크게 달라집니다.
같은 다툼 안에서도 행위마다 죄가 따로 검토될 수 있습니다. 휴대전화를 빼앗은 행위, 몸을 잡아당긴 행위, 위협하는 말과 동작이 각각 어떤 죄에 해당하는지 나누어 보는 것이 대응의 출발점입니다. 폭행은 주먹으로 때리는 행위에 한정되지 않고 사람의 신체에 대한 유형력 행사를 넓게 포함합니다. 손을 잡아 흔들거나 몸을 잡아당기거나 벽으로 밀어붙이는 행동도 폭행으로 평가될 수 있어, "때리지는 않았다"는 설명만으로는 혐의를 다투기 어렵습니다.
3. 폭행·협박은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습니다
형법 제260조 제1항(폭행)은 사람의 신체에 폭행을 가한 사람을 2년 이하의 징역, 50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합니다. 형법 제283조 제1항(협박)은 사람을 협박한 사람을 3년 이하의 징역, 50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합니다.
두 죄 모두 피해자의 명시한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형법 제260조 제3항, 제283조 제3항). 이른바 반의사불벌죄입니다. 수사 단계에서 피해자의 처벌불원 의사가 명시적으로 확인되면 공소를 제기할 수 없으므로 통상 공소권없음으로 사건이 종결됩니다. 기소된 뒤라도 제1심 판결 선고 전까지 처벌불원 의사가 표시되면 법원은 공소기각 판결을 하게 됩니다(형사소송법 제232조 제3항, 제327조).
한 번 밝힌 처벌불원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형사소송법 제232조 제3항). 대법원은 합의금 일부만 받고 합의서를 써 준 피해자가 나머지를 받지 못한 경우에도 처벌불원을 철회할 수 없다고 봤습니다. 받지 못한 돈은 민사상 채무로 남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합의서에 서명하는 순간의 무게가 그만큼 큽니다. 반대로 가해자 쪽에서는 합의금 지급을 약속만 해 두고 지키지 않으면 민사 청구를 받게 되므로, 지급 방법과 시기를 합의서에 분명히 적어야 합니다.
4. 칼을 손에 쥐지 않았어도 특수협박이 될 수 있습니다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 협박했다면 형법 제284조(특수협박)가 적용됩니다. 법정형은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입니다. 특수협박에는 반의사불벌 규정이 없습니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아도 처벌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대법원은 '휴대하여'를 범행 현장에서 사용하려는 의도 아래 위험한 물건을 소지하거나 몸에 지니는 것으로 봅니다. 사용하려는 의도가 있었는지는 범행 동기, 물건을 지니게 된 경위와 사용 방법, 두 사람의 관계, 범행 전후의 정황을 모두 고려해 판단합니다. 꼭 손에 쥐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현장의 물건을 사실상 지배하며 언제든 곧바로 쓸 수 있는 상태면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그 사건에서 대법원은 피고인이 칼을 계속 들고 있지는 않았어도 좁은 공간에서 칼이 가까이 있어 언제든 쓸 수 있었고 여러 차례 칼을 언급한 점을 들어, 특수협박을 인정하지 않은 원심을 돌려보냈습니다.
이 사건 A씨도 칼이 어디 있느냐며 싱크대 쪽으로 갔습니다. 다만 칼을 꺼내거나 집어 들지는 않았습니다. 조사에서는 칼을 쓰려던 것이 아니라 그만큼 화가 났다는 표현이었다고 진술했습니다. 경찰도 이 부분을 특수협박이 아닌 협박으로 다뤘습니다.
칼을 찾는 말 자체가 상대에게 준 공포는 작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법은 그 칼을 곧바로 쓸 수 있는 상태였는지와 쓰려는 의도가 있었는지로 선을 긋습니다. 같은 말을 했더라도 칼을 손 닿는 곳에 꺼내 두었거나 실제로 집어 들었다면 결론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5. 상해와 감금은 처벌불원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다툼 과정에서 상처가 생겨 신체의 건강상태가 나빠지거나 생리적 기능에 장애가 생긴 정도라면 상해죄(형법 제257조 제1항)가 문제 될 수 있습니다. 진단서는 중요한 자료지만 진단서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상해가 인정되는 것은 아니고, 상처의 정도와 치료 경과를 함께 봅니다. 나가려는 사람을 일정 시간 동안 나가지 못하게 했다면 감금죄(형법 제276조 제1항)가 문제 될 수 있습니다.
상해죄와 감금죄에는 폭행·협박과 달리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는 규정이 없습니다. 합의와 처벌불원은 처벌 수위를 정할 때 유리한 사정으로 고려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사건이 끝나지는 않습니다. 같은 다툼이라도 어떤 행위가 인정되느냐에 따라 합의의 효과가 전혀 달라지는 이유입니다.
6. 경찰은 처벌불원을 확인하고 공소권없음으로 끝냈습니다
A씨는 혐의를 모두 인정했고 변호인과 함께 피의자 조사를 받았습니다. 사건 일주일 뒤에는 양가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A씨가 직접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 뒤로 A씨는 따로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연인은 사건 당일 진술에서 이미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이후 합의가 이뤄졌고 처벌불원서도 제출됐습니다. A씨 측은 반성문과 가족 탄원서, 합의서와 처벌불원서를 붙여 의견서를 냈습니다.
경찰은 2025년 8월 폭행과 협박 모두 불송치(공소권없음) 결정을 했습니다. 피해자가 처벌을 바라지 않는 의사를 명시했고 처벌불원서를 제출했다는 이유였습니다.
7. 사실혼이라면 처벌불원이 있어도 가정보호사건이 될 수 있습니다
같은 행동이라도 두 사람이 어떤 관계인지에 따라 절차가 달라집니다.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가정폭력처벌법)은 배우자뿐 아니라 사실상 혼인관계에 있는 사람과 배우자였던 사람도 가정구성원으로 봅니다(제2조 제2호). 폭행과 협박, 상해, 감금 등은 가정구성원 사이에서 일어나면 가정폭력범죄가 됩니다(같은 조 제3호).
가정폭력처벌법 제9조는 피해자가 처벌을 희망하지 않는다는 명시적 의사표시를 한 경우에도 검사가 사건을 가정보호사건으로 처리할 수 있게 합니다. 이때 검사는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해야 합니다. 형사처벌 대신 접근 제한이나 수강명령 같은 보호처분을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사건은 결혼을 앞둔 연인 사이였고 사실혼 관계는 아니었습니다. 함께 살며 생활을 같이하는 관계였다면 사실혼에 해당하는지가 먼저 다퉈질 수 있습니다.
8. 합의 과정에서 놓치기 쉬운 점
처벌불원은 피해자가 스스로 밝히는 의사여야 합니다. 합의를 서두르는 마음에 상대에게 반복해서 연락하거나 찾아가면, 그 행동이 압박으로 받아들여져 새로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상대가 거절했는데도 연락이나 방문이 이어지면 스토킹 문제로 번질 수도 있습니다.
합의서에는 다음 내용이 분명히 들어가야 합니다.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문구(단순한 '원만히 해결' 표현만으로는 해석이 갈릴 수 있습니다)
합의 대상이 되는 사건과 죄명
합의금의 액수, 지급 방법과 기한
합의서가 수사기관에 제출됐는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처벌불원 의사는 수사기관이나 법원에 표시되어야 효력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생각해 두어야 합니다. 폭행·협박이라도 피해자가 처벌불원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일반 사건처럼 기소될 수 있습니다. 이때는 혐의를 인정하는지, 피해 회복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재발을 막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가 처분과 양형에 영향을 줍니다. 상대가 합의를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혔는데도 설득하려고 계속 연락하는 것은 피해 회복 노력으로 평가되기 어렵고 오히려 불리한 사정이 될 수 있습니다.
조사를 앞두고 있다면 사건 당시 상황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다툼이 시작된 경위, 각 행동이 일어난 순서, 상대가 나가려 했을 때의 상황, 위험한 물건이 어디에 있었는지는 죄명을 가르는 사실들입니다. 기억과 다른 진술을 하거나 상대에게 진술을 바꿔 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사건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으므로, 인정할 부분은 인정하고 다툴 부분은 근거와 함께 정리하는 방식이 안전합니다.
9. 사과는 빠를수록, 연락은 신중할수록 좋습니다
입건된 뒤 시점별로 챙길 일을 적어 봅니다.
신고 당일 — 상대가 원하지 않는다면 직접 연락하지 않습니다. 같은 행동이 되풀이되면 스토킹 문제까지 생길 수 있습니다
조사 전 — 인정할 부분과 다툴 부분을 나눕니다. 위험한 물건을 곧바로 쓸 수 있는 상태였는지, 상처가 어느 정도였는지, 상대를 나가지 못하게 했는지에 따라 죄명이 바뀔 수 있습니다
합의할 때 — 처벌불원 문구가 분명히 들어가는지, 합의금을 언제 어떻게 줄지 정합니다
합의 뒤 — 약속한 대로 지급하고 상대가 원하지 않는 연락은 하지 않습니다
사과를 서두르는 마음과 연락을 참는 판단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는 쉽지 않습니다. 사과도 방법이 틀리면 압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사과의 시기와 방식, 합의서의 문구는 입건 직후부터 미리 정리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 본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구체적인 법률 조언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 개인의 상황에 맞는 정확한 법률 자문은 반드시 전문 변호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 본문의 사례는 제공된 실제 사건 자료를 바탕으로 개인 식별정보를 제거해 재구성한 것으로,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대응 방법 및 결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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