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 라이선스 사건에서는 회사가 아니라 개인에게 청구서가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러 회사를 오가며 일하는 프리랜서라면 더 그렇습니다.
설계 프로그램 무단 사용으로 형사 고소와 1억 원대 손해배상 소송을 함께 당한 프리랜서 사건이 있습니다. 형사는 불송치로 끝났고 민사에서는 청구액의 15% 수준만 인정됐습니다. 같은 사실관계에서 두 결론이 왜 달랐는지, 라이선스 위반 연락을 받았을 때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정리해 보았습니다.
1. 프리랜서의 개인 컴퓨터에서 설계 프로그램이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A씨는 건설 설계 분야의 프리랜서입니다. 도면 정리와 수량 산출 같은 일을 맡았습니다. 2020년 말부터 1년 남짓 여러 설계회사의 용역을 받아 회사들이 마련한 합동사무실에서 일했습니다.
A씨는 사양이 높은 개인 컴퓨터를 사무실에 두고 썼습니다. 성능 좋은 컴퓨터는 어느 사무실에서나 인기(?)가 많습니다. 정규직이 아니어서 자리를 비우는 날이 많았고 회사 직원들은 그 컴퓨터를 보조용이나 공유폴더 용도로 쓰겠다고 했습니다. 일감을 받는 처지에서 거절하기도, 암호를 걸어 두기도 어려웠습니다.
그 컴퓨터에서 한 소프트웨어 회사의 설계 프로그램이 라이선스 없이 실행된 기록이 남았습니다. 설계회사들은 정식 라이선스를 가진 곳이었지만 그 라이선스는 소속 직원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2021년 여름 소프트웨어 회사 직원이 무단 사용을 알려 왔습니다. A씨는 다시는 라이선스 계약에 어긋나지 않도록 신경 쓰겠다는 문자를 보내고 회원 탈퇴를 했습니다. 이후 회사는 9천만 원대에 프로그램을 사라고 연락해 왔고 A씨는 응하지 않았습니다. 2~3년이 지나 고소장과 소장이 차례로 날아왔습니다.
2. 형사 고소는 불송치(혐의없음)로 끝났습니다
저작권법 제136조 제1항은 저작재산권을 복제 등의 방법으로 침해한 사람을 처벌합니다. 사건 당시 법정형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었습니다. 형벌은 행위 시의 법률에 따르므로 이후 법정형이 올라가도 개정 전 행위에는 종전 법정형이 적용됩니다(형법 제1조 제1항).
A씨 측은 경찰에 세 가지를 짚었습니다.
로그 기록에 A씨 것이 아닌 아이디들이 남아 있다는 점
회사 직원들이 그 컴퓨터로 프로그램을 썼다는 사실확인서가 있다는 점
A씨가 맡은 도면·수량 작업에는 그 프로그램이 필요 없다는 점
경찰은 2024년 가을 불송치(혐의없음) 결정을 했습니다. 설계회사 정직원인 참고인들은 자신이나 동료가 A씨 컴퓨터로 프로그램을 썼고 A씨 업무는 그 프로그램과 관계가 없었다고 진술했습니다. 로그 기록에 다른 사용자 아이디가 나온다는 점도 이 진술과 맞았습니다. 고소한 회사 측이 설계회사들에 대한 수사 협조 요청을 거부한 점도 결정 이유에 들어갔습니다.
형사 사건에서는 '누가 복제하고 사용했는가'를 특정해야 합니다. 이 사건에서는 로그 기록 속 낯선 아이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됐습니다.
3. 형사에서 혐의없음이어도 민사 책임은 따로 따집니다
형사재판에서 범죄사실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로 증명돼야 합니다(형사소송법 제307조 제2항). 민사재판은 형사 결론에 묶이지 않고 민사 기준에 따라 별도로 판단합니다. 형사에서 혐의없음이 나왔다고 민사 책임이 자동으로 사라지지 않고, 같은 기록을 두고 결론이 갈릴 수 있는 이유입니다. 민사 손해배상에서는 고의뿐 아니라 과실로 권리를 침해한 경우도 배상 책임의 대상이 됩니다(저작권법 제125조).
민사 1심은 2026년 여름 A씨가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자기 컴퓨터에 프로그램을 복제해 썼다고 보고 복제권 침해를 인정했습니다. 직원들이 썼다는 주장은 두 가지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A씨 주장대로라도 자기 컴퓨터로 남이 프로그램을 쓰게 한 것이라는 점, 그리고 2021년 여름 '신경 쓰겠다'고 약속한 뒤에도 그 컴퓨터에서 프로그램이 쓰였다는 점입니다.
내 컴퓨터를 남이 썼다는 사정이 형사에서는 방어가 됐지만 민사에서는 책임의 근거가 됐습니다. 형사와 민사가 함께 진행되는 사건에서는 한쪽에서 한 진술이 다른 쪽에서 어떻게 읽힐지까지 미리 따져 보아야 합니다.
4. 회사의 청구액은 대개 프로그램 정가에서 출발합니다
저작권법 제125조 제2항은 저작재산권자가 그 권리의 행사로 일반적으로 받을 수 있는 금액에 상응하는 액을 손해액으로 청구할 수 있게 합니다. 쉽게 말해 사용료 상당액입니다.
대법원은 이 금액을 침해자가 사용 허락을 받았더라면 사용대가로 지급했을 객관적으로 상당한 금액이라고 봅니다. 저작권자가 침해행위와 유사한 형태의 사용과 관련해 사용계약을 맺고 사용료를 받은 사례가 있다면, 이례적으로 높게 정해졌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사용료를 기준으로 손해액을 산정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 사건의 청구액도 프로그램 가격을 기준으로 한 1억 원대였습니다. 소프트웨어 회사가 내미는 금액은 정가에 프로그램 수와 기간을 곱한 숫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정가표는 실제 사용계약에서 받은 사용료와 다를 수 있으므로, 그 금액이 실제 거래 사례에 근거한 것인지부터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작물이 침해 전에 등록되어 있다면 저작권자는 실제 손해액 대신 저작물마다 1천만 원(영리 목적의 고의 침해는 5천만 원) 이하의 법정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습니다(저작권법 제125조의2). 상대가 어떤 근거로 금액을 청구하는지에 따라 다툴 쟁점도 달라집니다.
5. 법원은 가격표 대신 '상당한 손해액'을 정했습니다
법원은 회사의 계산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프로그램 이용계약은 기간과 범위에 따라 금액이 다양하게 정해질 수 있어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제125조 제2항의 금액을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저작권법 제126조(손해액의 인정)를 적용했습니다. 손해가 발생한 사실은 인정되나 손해액을 산정하기 어려운 때에는 법원이 변론의 취지 및 증거조사의 결과를 참작하여 상당한 손해액을 인정할 수 있다는 조항입니다. 법원은 침해의 모습과 기간, 중지 요구를 받은 뒤의 상황, 현재 가격표 등을 고려해 1천만 원대 중반을 인정했습니다. 청구액의 15% 수준입니다.
가격표가 곧 손해액은 아닙니다. 처음 받은 금액표만 보고 서둘러 합의하기보다 사용 기간과 대수, 실제 사용 범위, 유사 계약의 사용료를 하나씩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6. 경고를 받은 날 이후의 행동이 액수를 움직였습니다
판결이 고려한 사정 가운데 눈여겨볼 대목은 중지 요구를 받은 뒤의 상황입니다. 이 사건에서도 '신경 쓰겠다'는 문자 뒤에 사용 기록이 이어진 점이 불리하게 작용했습니다. A씨는 직원들에게 쓰지 말라고 부탁하고 암호도 걸었다고 설명했지만 법원은 A씨가 낸 자료만으로는 판단을 뒤집기 부족하다고 봤습니다.
경고를 받았다면 그날부터의 조치를 기록으로 남겨야 합니다. 순서가 중요합니다. 먼저 로그 기록, 설치·실행 기록, 원본 파일, 계정 정보처럼 그때까지의 사용 경위를 보여 주는 자료를 그대로 보존하고, 보존한 날짜와 방법을 남깁니다. 그다음 추가 무단 사용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용을 중단하고, 함께 쓰던 회사에 사실을 알리고, 정식 라이선스를 갖추거나 접근 권한을 정리하는 등 적법한 사용 환경을 만드는 과정을 날짜와 함께 기록합니다.
이미 분쟁이 생긴 뒤 자료를 임의로 지우거나 바꾸면 불리한 내용을 숨기려 했다는 의심을 받을 수 있고, 다른 사람이 썼다는 사정처럼 유리한 근거까지 함께 사라질 수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 형사 결론을 가른 것도 컴퓨터에 남아 있던 로그 기록이었습니다. 정리 작업은 자료 보존이 끝났는지 확인한 뒤에 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7. 2026년 8월부터 고의 침해는 최대 5배까지 배상할 수 있습니다
법도 무거워졌습니다. 2026. 8. 11.부터 시행된 개정 저작권법은 저작재산권 침해죄의 법정형을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으로 올리고 징역과 벌금을 함께 부과할 수 있게 했습니다(제136조 제1항).
고의로 침해한 경우 법원이 인정된 손해액의 5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배상액을 정할 수 있는 규정도 생겼습니다(제125조 제4항). 법원은 배상액을 정할 때 고의의 정도, 피해 규모, 침해자가 얻은 이익, 침해 기간과 횟수, 침해자의 재산 상태와 함께 침해행위 이후 침해자가 취한 조치도 고려해야 합니다(같은 조 제5항). 이 규정은 개정법 시행 이후 발생한 침해행위부터 적용됩니다(부칙 제2조).
경고 뒤에도 사용이 이어진 사정은 고의로 평가될 위험을 키우고, 반대로 경고 뒤 곧바로 사용을 멈추고 적법한 환경을 갖춘 기록은 '침해행위 이후 취한 조치'로 검토될 수 있습니다. 시행 이후의 침해라면 경고 이후의 대응이 배상 범위에 더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8. 금액을 다투기 전에 확인할 자료
회사의 연락이나 소장을 받았다면 다음 자료부터 모아 보십시오.
사용된 프로그램의 라이선스 계약과 약관(누가, 몇 대의 컴퓨터에서 쓸 수 있는지)
용역계약서나 업무 지시 자료(작업 도구를 누가 제공하기로 했는지)
로그 기록과 사용자 아이디, 실행 시각(누가 실제로 썼는지)
경고 문자·이메일 원본과 그 뒤에 취한 조치 기록
회사가 제시한 금액의 계산 근거와 실제 사용계약 사례
라이선스 범위가 회사 소속 직원에 한정되는지, 외부 용역자의 컴퓨터 사용까지 허용되는지는 계약 문언에 따라 다릅니다. 실제 사용자가 따로 있다면 그 사람이나 회사와의 책임 분담도 함께 검토할 수 있습니다.
9.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했던 날은 경고 문자를 받은 날이었습니다
돌아보면 이 사건을 가른 것은 하루였습니다. 형사에서는 로그 기록과 직원들의 확인서가 A씨를 지켰습니다. 민사에서는 경고 문자 뒤에도 사용 기록이 이어졌다는 점이 A씨에게 불리했습니다.
라이선스 위반 연락을 받았다면 그날을 기준으로 정리해 보십시오. 그 전의 사용은 누가 어떤 컴퓨터로 했는지 보존한 기록으로 맞춰 보고, 그 뒤에는 추가 사용이 없었다는 사실과 적법한 사용 환경을 갖춘 과정을 기록으로 남겨야 합니다. 회사가 제시한 금액은 계산 근거부터 물어야 합니다.
형사와 민사가 함께 오는 사건이라 한쪽에서 한 말이 다른 쪽 증거가 되기도 합니다. 금액표를 받았다면 서명하기 전에 그 숫자의 근거부터 확인하는 것이 협상의 출발점입니다.
※ 본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구체적인 법률 조언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 개인의 상황에 맞는 정확한 법률 자문은 반드시 전문 변호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 본문의 사례는 제공된 실제 사건 자료를 바탕으로 개인 식별정보를 제거해 재구성한 것으로,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대응 방법 및 결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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