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을 하다 보면 가장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그럴 의도는 없었습니다.”
억울함이 담긴 말이고, 많은 경우 사실입니다. 그런데 같은 말을 수사기관이나 법정에서 되풀이하면 잘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대부분 이렇게 되묻습니다. 제 마음속의 일을 저 말고 누가 알 수 있습니까.
이 질문은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고의는 상당수 형사사건에서 처벌 여부를 결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요건인데, 정작 그 고의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고의를 두고, 무엇으로 인정하는지를 아는 것은 상당히 중요합니다. 그에 따라 고의를 둘러싼 대응법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통해 고의를 인정하는지에 대한 답을 먼저 말씀드리면, 법원은 본인의 말에서 그 답을 찾지 않습니다. 대신 그 당시 당사자를 둘러싼 객관적인 사정을 판단의 근거로 삼습니다.
① 재판은 “무슨 생각이었는지”를 묻지만, 그 답을 본인의 말에서 찾지는 않습니다.
고의는 마음속의 사실입니다. 그러나 마음속의 사실이라고 해서 증명의 대상에서 빠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의 인식도 다른 사실과 똑같이 재판에서 증명되어야 하는 사실입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고의는 어떤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인식)와, 그럼에도 그렇게 되어도 상관없다고 받아들였는가(의사)로 이루어집니다. 둘 다 사람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밖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문제는 고의를 증명하는 방법입니다. 눈으로 확인할 수 없으니 본인에게 물어보는 것이 가장 빠를 것 같지만, 그 말의 신빙성이 곧바로 문제됩니다. 물론 당사자가 하는 말의 내용을 참작하기는 하지만, 그 말의 내용에만 의존하여 판단을 하면 고의를 인정하는 사람만 처벌을 받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고의가 있었는지 따져보는 작업은 사실상 자백 여부를 묻는 절차가 되어 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소송에서는 다른 방법으로 접근합니다. 개인이 인식할 수 있는 정보가 무엇인지, 어떤 의사로 행동하였는지 등 바깥의 사정들을 확인한 다음, 이와 같은 사정에 있는 사람이라면 일반적으로 어떤 인식과 의사를 가지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운지를 판단합니다. 다시 말해 고의는 본인의 진술만으로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 바깥의 사정들을 통해 추단됩니다.
이 구조를 이해하면 “그럴 의도는 없었습니다”라는 해명이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왜 잘 통하지 않는지도 설명이 됩니다. 그 말은 증명의 재료가 아니라 증명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내심의 의사를 반복해서 말하는 것보다, 일반적으로 그런 의사를 가지기 힘든 상황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객관적인 자료를 제시하는 것이 훨씬 설득력이 있습니다.
② 법원은 그 사람이 어떤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지를 포함한 객관적인 사정을 고려합니다.
그러면 수사기관과 법원은 바깥의 사정 중에서도 무엇을 볼까요? 실무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은 그 행위를 통해 누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는가에 대한 이해관계입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예컨대 업무상 배임죄의 고의는 “본인에게 손해가 간다는 것을 알면서, 자기나 제3자가 이익을 얻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는가”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그렇다면 애초에 그 사람이 이익을 얻을 자리에 있지 않았거나, 오히려 상대방이 손해를 입을 때 자신도 함께 손해를 입는 자리에 있었다면 당사자의 고의를 인정하기 어려워집니다. 이해관계가 모든 범죄에서 같은 비중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재산상 이익이 문제되는 사건에서는 거의 결정적입니다.
재산범죄에서 고의와 관련된 방어의 방향을 결정할 때도 이해관계는 우선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관적인 진술에 의존하는 것보다는, 이해관계에 관한 객관적인 사정을 설명하는 것이 차라리 그 사람이 그 당시에 어떤 인식과 의도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설명해줍니다.
그리고 이해관계를 보여주는 객관적인 사정은 대개 이미 존재하는 자료 안에 있습니다. 지분 관계, 자금의 흐름, 계약상의 지위, 그 사람이 실제로 지고 있던 위험 같은 것들입니다. 그래서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는 당사자가 하는 말보다는 객관적인 자료들을 우선적으로 검토하고, 변호사도 이러한 판단 기준에 따라 상담할 때 의뢰인이 하는 말만큼이나 객관적인 자료들을 검토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제가 맡았던 업무상 배임 사건에서도 이러한 문제가 중요했습니다. 의뢰인은 기존 회사의 이사로 있으면서 유사한 영업을 하는 회사를 새로 설립했고, 이후 기존 회사의 매출이 줄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사정만 보면 의뢰인에게 불리해 보였지만, 의뢰인 역시 기존 회사의 주주로서 회사의 손해가 자신의 경제적 손해로 이어지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이 사건에서 실제로 어떤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어떤 이유로 배임의 고의와 손해의 인과관계를 검토했는지는 아래 업무사례에서 자세히 소개하겠습니다.
③ 선한 동기도, 나쁜 감정도 그 자체로는 고의를 좌우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자주 생기는 오해가 있습니다. 동기와 고의를 같은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동기는 왜 그 행위를 했는가의 문제이고, 고의는 그 행위가 어떤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받아들였는가의 문제입니다. 엄밀히 보면 층위가 다릅니다. 그래서 동기가 아무리 이해할 만한 것이어도 그 결과를 인식하고 받아들인 이상 고의가 인정될 수 있고, 똑같이 동기가 이해되더라도 행위자가 그 결과를 인식하지 못했거나 용인했다고 볼 수 없는 이상 고의가 부정될 수 있습니다.
동기와 고의를 구분하는 접근법은 고소를 한 쪽이나 당한 쪽 모두에게 적용됩니다. 고소를 당한 쪽은 자신이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길게 설명하고 싶어 하지만, 그 설명은 대체로 동기에 관한 것이어서 고의를 다투는 데에는 결정적일 수 없습니다. 고소를 한 쪽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방이 평소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감정을 품고 있었는지를 강조하지만 그것 역시 상대방의 고의를 직접적으로 설명해준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투자 조직이 문제가 된 사건에서도 그랬습니다. 의뢰인은 조직 내부에서 상위 등급으로 분류되어 있었고, 다른 회원들을 관리하는 위치에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피해자들이 의뢰인에게 악감정을 가지게 된 것도 이 때문이었고, 수사 과정에서도 그 부분이 강조되었습니다. 그러나 조직이 부여한 등급이나 역할, 그리고 그로 인해 생긴 감정은 의뢰인이 실제로 어떤 인식과 의사를 가지고 있었는지와는 별개의 문제였습니다.
이처럼 형사사건에서는 상대방에게 좋지 않은 감정이 있었다는 사정이나 조직에서 맡았던 역할만으로 고의를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④ “반드시 그렇게 하려던 것은 아니었습니다”라는 말은 고의를 부정하지 못합니다.
반대 방향의 오해도 있습니다. 고의를 분명히 인식하고 의도한 경우로만 한정하여 해석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법이 요구하는 고의는 그보다 넓습니다.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인식하면서도 그래도 상관없다고 받아들이고 행위로 나아갔다면 고의가 인정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미필적 고의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확실히는 몰랐습니다”, “설마 그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습니다”라는 해명은 수사 과정에서 예상보다 피의자에게 유리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은 했다"는 말만으로 곧바로 고의가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가능성을 인식하면서도 그 결과가 발생해도 상관없다는 태도로 행위에 나아갔다면, 미필적 고의가 문제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조사에서는 고의를 확인하기 위한 질문 과정에서는 미필적 고의까지 고려한 여러 각도에서 나옵니다. 질문의 취지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은 했다”고 답하면, 스스로 불리한 진술을 남긴 것일 수 있습니다.
물론 가능성을 인식했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고의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의사까지 인정되어야 하고, 그 의사 역시 앞에서 본 것과 같은 방식으로 바깥의 사정을 통해 판단됩니다. 결국 어느 방향에서 접근하든 확인해야 할 것은 같습니다. 그 당시 당사자를 둘러싼 객관적인 사정이 어땠는가입니다.
⑤ 준비해야 할 것은 해명이 아니라, 그 해명을 뒷받침하는 객관적인 사정입니다.
형사 사건 상담에서 혐의를 부인하는 사건이라면 상담할 때 “무슨 생각이었는지”를 묻는 데에만 시간을 쓰지는 않습니다. 개별적으로 보면 다양한 사정이 있을 수 있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대체로 답변이 비슷한 경우가 많고, 의뢰인의 말씀만으로는 증명되는 사실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변호사가 의뢰인의 말을 왜 믿지 못하는가’에 대한 문제가 아닙니다. 변호사는 수사기관이나 법원이 하는 판단기준에 따라 그들보다 먼저 의뢰인이 하는 말의 신빙성을 따져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술만 듣지 않고 그 당시에 대한 객관적인 사정들을 확인하려고 합니다.
어떤 돈이 오갔는지, 누구에게 무엇을 알렸는지, 무엇을 굳이 감추지 않았는지, 스스로 어떤 위험을 지고 있었는지를 확인합니다.
형사 사건에서 기록을 다시 읽으면 이미 제출되어 있던 자료 안에서 결론을 바꾸는 사정이 뒤늦게 발견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없던 증거를 만들어냈기 때문이 아닙니다. 같은 자료를 고의라는 질문에 맞추어 다시 배열했을 때 새로운 의미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확인된 객관적인 사정이 수사기관이 가지게 될 의심과 배치된다면, 그것은 어떤 해명보다 강력한 방어 논리가 될 수 있습니다.
꼭 알아두세요
1) 고의는 자백이 없어도 증명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사기 사건의 경우, 대법원은 “사기죄의 주관적 구성요건인 편취의 고의는 피고인이 자백하지 않는 한 범행 전후 피고인의 재력, 환경, 범행의 내용, 거래의 이행과정, 피해자와의 관계 등과 같은 객관적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합니다(대법원 2018. 8. 1. 선고 2017도20682 판결 등 참조).
2) 업무상 배임죄에서 피고인의 고의를 입증하는 방법에 관하여, 대법원은 “사물의 성질상 고의와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을 증명하는 방법에 의하여 입증할 수밖에 없고, 무엇이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에 해당할 것인가는 정상적인 경험칙에 바탕을 두고 치밀한 관찰력이나 분석력에 의하여 사실의 연결상태를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방법에 의하여야 한다”는 입장입니다(대법원 2004. 7. 22. 선고 2002도4229 판결 참조).
3)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려면 범죄사실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한 인식과 함께 그 위험을 용인하는 내심의 의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 의사가 있었는지는 행위자의 진술이 아니라 외부에 나타난 행위의 형태와 그 당시의 상황 등 구체적인 사정을 기초로 추인하여 판단합니다(대법원 2024. 4. 4. 선고 2021도15080 판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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