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기 범행은 조직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뉴스에서도 자주 보이는 ‘리딩방’, ‘폰지사기’ 모두 비슷한 맥락입니다. 조직적으로 이루어지는 투자사기 사건에서 자주 발견되는 문제는 피해자와 공범 사이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투자사기 사건을 상담하다 보면, “저도 돈을 잃은 피해자인데, 경찰은 왜 저를 조사하는 건가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억울하다고 느끼는 것이 당연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건에서 피해자와 공범을 가르는 기준이 ‘누가 돈을 잃었는가’는 아닙니다. 그 기준을 모르는 상태에서 수사기관에 사정을 아무리 자세히 설명해도 억울함이 해소될 개연성은 사실상 거의 없습니다.
아래에서는 조직적으로 이루어지는 투자사기 사건에서 왜 피해자와 공범의 경계가 흐려지는지, 그리고 그 경계를 판단할 때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① 돈을 잃은 사람이 왜 공범으로 조사를 받게 될까요?
투자사기 사건에서, 특히 조직적으로 이루어지는 사기 사건에서 수사기관은 단순히 그 사람이 돈을 잃었는지를 기준으로 지위를 판단하지 않습니다. 피해자들의 돈이 어디로 흘러갔는지 경로를 살펴보고, 그 경로에 관여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돈을 잃었어도 일단은 조사의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기 조직의 수법도 한번 고려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주범들은 먼저 들어온 돈으로 나중에 들어온 사람에게 수익을 실제로 지급하면서, 피라미드 구조를 형성하려고 합니다. 피라미드 구조를 유지하려면 새로운 돈이 계속 들어와야 하는데, 이때 기존에 돈을 넣었던 사람들에게 역할이 부여되기 시작합니다.
새로운 사람을 가장 효율적으로 데려오는 통로는 이미 돈을 넣은 사람들을 활용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르는 사람의 권유는 의심을 받지만,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의 권유는 쉽게 의심받지 않습니다. 특히, 권유하는 사람이 실제로 수익을 얻은 것을 보여준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당한 유혹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사건에서는 돈을 잃은 사람과 다른 사람의 돈을 끌어온 사람이 같은 사람인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먼저 돈을 넣은 사람이 자신의 돈을 회수하기 위해서 새로운 사람을 끌어오는 경우가 상당수입니다. 이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은 방어의 출발점이 될 수는 있어도, 그 자체로 결론이 되지는 않습니다.
② 같은 행동이라도 그 행동의 의미는 정반대일 수 있습니다.
조사에서 수사기관이 문제 삼는 행동은 대체로 비슷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투자를 권유하였다, 조직의 지시를 하부 회원들에게 전달하였다, 하부 회원을 관리하였다, 단체 대화방의 관리자를 맡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행동의 목록만 놓고 보아서는 조직적으로 이루어지는 사기의 공범과 피해자가 쉽게 구별되지 않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행동은 같아도, 그 행동의 이유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먼저 범행의 구조를 알고 새로운 돈을 끌어오기 위해 의도적으로 위와 같은 행동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와 달리, 조직의 지시를 이행하면 자신의 돈을 회수할 수 있다는 말을 그대로 믿고 똑같은 행동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돈을 지키기 위해 조직의 요구에 따르는 것이 예외적인 경우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는 조직이 회원을 붙잡아 두는 방식에 해당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앞의 경우와 달리, 행동만 보고 단순하게 공범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실제로 조직 사기의 경우 추가 모집을 하지 못하거나 추가로 투자를 하지 않는 회원들에게는 불이익을 주는 규칙을 정해두고, 공개적으로 회원들에게 압박을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미 많은 돈을 투자한 사람일수록 상부의 지시를 따를 유인이 커지고, 투자한 돈을 회수하기 위한 의도로 지시를 따르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물론 이분법적으로 행위자의 의사가 구별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자신의 돈을 회수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고 해서 그 사정만으로 모든 행동에 법적 책임이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겉으로 드러난 행동만으로 행위자의 지위가 결정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③ 무엇을 했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알고 있었는지를 봅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저지른 범죄에서 흔히 말하는 공범, 즉 공동정범으로 평가되기 위해서는 각자가 그 범행을 자기 범죄로 삼아 함께 실행하려는 의사가 있어야 하고, 각자가 맡은 역할이 범행 전체에서 본질적인 기여를 하였다고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조직 안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였다는 것만으로 공동정범의 요건이 충족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실무에서는 당사자가 실제로 한 행동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행동의 배경을 확인합니다. 예를 들면 그 사람이 조직의 실제 구조를 알고 있었는지, 조직의 핵심적인 정보를 공유받고 있었는지, 범행이 성공하여야 얻을 수 있는 이익을 기대하고 있었는지, 반대로 자신도 조직의 설명을 그대로 믿고 있었는지, 그리고 이미 넣은 자신의 돈을 지키기 위하여 움직인 것인지와 같은 사정들입니다.
행동의 배경을 확인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실무에서는 객관적인 자료들을 통해 행위자가 그 당시에 가지고 있던 의사를 추인해 볼 수 있습니다. 조직이 그 사람에게 무엇을 설명하였는지, 언제 어떤 정보를 알려주었는지, 그 사람이 무엇을 묻고 있었는지가 대화 내역과 문서에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④ 조직 내에서 중간 지위에 있었다는 사실 자체는 판단기준이 되지 않습니다.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사기 사건은 시간이 지나면 층이 갈립니다. 가장 위에 있던 사람들은 돈을 가지고 사라지고, 가장 아래에 있던 사람들은 피해자로 남습니다. 그리고 수사의 대상으로 남는 것은 그 사이에 있던 사람들입니다.
문제는 그 중간에 한 종류의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피해자이면서 다른 피해자를 데려온 사람이 있고, 조직의 지시를 수행하였지만 범행의 실체는 알지 못하였던 사람이 있으며, 자신도 손해를 보았지만 범행을 알면서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 세 사람은 조직도를 기준으로 보면,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그래서 조직 안에서 어느 위치에 있었는가는 확인의 출발점이 될 수는 있어도 그 자체가 판단기준이 되지는 않습니다. 공범으로 의심할 만한 사정이 존재한다는 것과, 그 사람이 범행을 알고 공동으로 가담하였다고 인정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실제로 제가 진행하였던 투자사기 사건에서도 조직 안에서 상당한 역할을 맡고 있던 분이 공범으로 지목되어 구속영장이 청구되었습니다. 외관만 놓고 보면 수사기관이 의심할 만한 사정이 적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외관을 하나씩 나누어 살펴보면, 조직 안에서의 위치만으로 공모를 단정하기는 어려운 사정들이 확인되었습니다. 결국 두 차례 청구된 구속영장은 모두 기각되었습니다.
⑤ 손실은 결론이 아니라 정황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돈을 잃었다는 사실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사실이 설득력을 갖는 방식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다릅니다.
돈을 잃었다는 사정만으로 책임을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돈을 잃었다는 것이 명확한 증거로 확인되기 어려운 경우도 있고, 일시적으로만 손해가 난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으며, 수익은 타인 명의로 이미 현금화한 경우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손실은 당사자의 지위를 결정해주는 유일한 판단기준이 아니라, 그 사람이 범행의 핵심적인 정보를 알지 못하였을 수도 있겠다는 것을 보여주는 간접 정황에 해당합니다.
한편 조직적으로 이루어지는 투자사기 사건의 경우 대체로 특정 시점을 수익 실현의 기회로 삼고, 일시적으로 많은 현금을 확보하려고 합니다. 실제 그 범행을 계획한 자들의 입장에서는 시점과 방법 등 그 기회에 관한 정보가 수익과 직결되기 때문에, 아무에게나 그 정보를 공유해주지 않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당사자가 손실을 입은 경위도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금전이 오가는 방향이나 시점, 반복성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조직이 수익실현을 실제로 계획한 시점에 당사자가 투자를 하였는지, 얼마나 하였는지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핵심 정보를 공유받는 사람이라면, 하필 그 시점에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돈을 투자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피해자와 공범은 처음부터 나뉘어 있는 두 무리가 아닙니다. 수사와 재판은 어느 편인지를 먼저 정해 놓고 사람을 나누는 절차가 아니라, 그 사람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하려 하였는지를 하나씩 확인해 가는 절차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건에서 “저도 돈을 잃었으니 공범이 아닙니다”라는 말만으로 대응을 준비하기에는 부족합니다. 오히려 “제가 정보를 알고 있었다면, 그 시점에 이렇게 많은 돈을 투자했겠습니까”라는 말이 더 설득력이 있습니다. 같은 사실을 말하고 있지만, 앞의 문장은 단지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으로만 보이고, 뒤의 문장은 억울한 사정을 증명해줄 수 있습니다.
꼭 알아두세요
1) 여러 사람이 함께 범죄를 실행한 것으로 평가되려면 범죄를 공동으로 실행하려는 의사와 그 의사에 기초한 기능적 행위지배가 인정되어야 합니다(형법 제30조 참조). 그 판단에서는 범행에 가담하게 된 경위, 범행에 대한 인식이나 예견의 정도, 실행행위와의 관련성, 범행의 결과에 대한 지배력 등이 함께 고려됩니다.
2) 공동정범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에도 방조범이 문제될 수 있습니다. 방조는 정범의 범행을 돕는다는 인식이 있으면 성립하고 그 인식이 확정적일 것까지 요구되지는 않으며, 다만 그 형은 정범의 형보다 감경됩니다(형법 제32조 참조).
3) 사기죄의 기망행위는 다른 사람을 착오에 빠뜨리는 행위이므로, 자신도 조직의 설명을 그대로 믿은 상태에서 들은 내용을 전달한 것에 그친다면 편취의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편취의 고의는 자백이 없는 이상 재산 상태, 거래의 이행과정, 피해자와의 관계 등 객관적인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합니다(대법원 2018. 8. 1. 선고 2017도20682 판결 등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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