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에 큰 피해를 남긴 투자·베팅 조직 사건이 있었습니다. 핵심 조직원들이 차례로 수사를 받게 되는 과정에서 의뢰인도 그 공범 중 한 사람으로 지목되었습니다. 수사기관의 시선에서 의뢰인은 의심할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의뢰인에게는 실제로 조직 안에서 상위 등급이 부여되어 있었고, 의뢰인은 회원 모집에도 관여하였으며, 단체 대화방의 관리자로 지정되어 있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은 “억울한 피해자가 공범으로 몰렸다”는 한 문장으로 시작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처음부터 던져야 했던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조직 안에서 중간 관리자처럼 보이는 사람을, 우리는 어디까지 공범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3줄 요약
사건: 다단계 조직에서 상위 등급 회원이 사기 공범으로 지목되어 구속영장이 청구된 사건
쟁점: 조직 내 지위와 역할만으로 다른 회원들에 대한 사기 범행의 공모를 인정할 수 있는지
결과: 구속영장 두 차례 청구, 모두 기각
변호사의 핵심포인트
1) 의뢰인에게 불리한 외관이 있다면 무작정 그 사정을 부인하기보다는, 외관은 그대로 인정하되 그 외관이 무엇을 증명하고 무엇까지는 증명하지 못하는지를 구분하는 접근법이 필요합니다.
2) 조직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가와 범행의 핵심 정보를 공유받았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공모 여부는 무엇을 했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알고 있었는지에서 갈릴 수 있습니다.
3) 고의는 내심의 문제라 직접 증명하기 어렵지만, 본인이 실제로 이익을 얻었는지 아니면 오히려 손실을 입었는지는 객관적인 자료로 남습니다. 경제범죄 사건에서는 이러한 객관적인 사정이 고의를 판단할 때 중요한 정황이 될 수 있습니다.
조직도상 의뢰인은 ‘중간 관리자’처럼 보일 여지가 충분했습니다.
사건을 맡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의뢰인에게 불리한 사실을 정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앞서 본 사정에 더해 의뢰인은 조직이 운영하던 사무실에 드나들며 상부의 지시 사항을 하부 회원들에게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수사기관이 이런 사정을 근거로 의심을 품은 것 자체가 부당하다고만 할 수는 없었습니다.
한편 의뢰인의 입장에서는 당장 구속을 피하기 위해 섣불리 혐의를 인정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 단계에서 혐의를 인정하면 나중에 이루어질 공판단계에서도 같은 입장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의뢰인은 불리한 사정이 있다는 것은 잘 알지만, 억울한 사정이 있다며 어느 정도 위험을 부담하더라도 혐의를 부인하기를 원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먼저 해야 할 일은 불리한 외관을 없는 것처럼 다투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 외관이 정확히 무엇을 증명하는지, 그리고 무엇까지는 증명하지 못하는지를 나누어 보는 일이었습니다.
조직은 의뢰인을 설득하고 안심시켜야 할 대상으로 대하고 있었습니다.
의뢰인이 조직을 처음 알게 된 경위부터 확인했습니다. 의뢰인은 지인의 권유로 조직에 가입했다고 하였습니다. 그 지인은 의뢰인에게 투자를 권유하였고 의뢰인은 그 설명을 믿고 자기 돈을 넣었습니다. 가입한 뒤에는 조직의 다른 구성원으로부터 교육을 받으라는 안내를 받았고, 해외에서 열리는 세미나에도 참석했습니다.
여기서 눈에 들어온 장면이 있었습니다. 조직은 의뢰인에게 “이것은 사기가 아니다”라고 계속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명절에는 조직 상부에서 폰지 사기와 자신들의 사업이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하는 인사말을 보내기도 했고, 조직이 사기라는 소문이 대화방에 공유되었을 때에는 “예전부터 돌던 이야기”라며 회원들을 안심시켰습니다.
만약 의뢰인이 처음부터 공모자였다면, 조직이 굳이 의뢰인을 상대로 자신들의 사업이 진짜라고 설득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조직이 유명 기업과 관련이 있다고 보여주려는 세미나에 데려가고, 교육을 받게 하고, 사기가 아니라고 안심시켜야 할 대상이었다는 것은 적어도 그 시점까지 의뢰인이 설득의 대상, 다시 말해 기망의 대상이었다는 뜻한다고 볼 여지가 있었습니다.
조직 내에서 의뢰인의 등급이 높다는 사실만으로 핵심 공범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수사기관은 의뢰인이 조직 내에서 높은 등급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의뢰인이 회원 모집에 적극적이었던 것, 조직의 지시에 따라 하부 회원을 관리한 것, 대화방 관리자로 지정된 것은 모두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등급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조직 내에서 핵심적인 지위에 있었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요?
이 조직에서 등급은 하부 회원 수가 일정한 기준을 넘으면 자동으로 올라가는 구조였습니다. 별도의 심사나 승인 절차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의뢰인의 등급이 올라간 것은 의뢰인이 직접 모집한 인원 때문이 아니라, 의뢰인이 모집한 사람이 다시 모집한 인원까지 합산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등급이 실질적인 의미를 갖지 못했다는 점은 핵심 조직원들이 의뢰인의 등급을 대하는 태도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핵심 조직원은 단체 대화방에서 의뢰인의 등급을 다른 등급과 구별하지 않은 채 제재를 예고했고, 실제로 의뢰인도 단체 제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더 결정적인 것은, 그 핵심 조직원이 제재 당시 의뢰인의 등급이 올라간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대화가 남아 있었다는 점입니다.
조직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사람에게는 벌어지지 않았을 일들입니다.
의뢰인은 왜 다른 회원들을 모집하면서 조직의 지시를 따르려 했을까요?
상부의 지시를 이행한 것은 분명 공모관계를 인정할 수 있는 불리한 외관이었습니다. 하지만 의뢰인이 지시를 이행한 것이 범행을 실행하기 위해서였는지, 아니면 자신이 이미 넣은 투자금과 수익을 지키기 위해서였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이 조직은 추가 모집을 하지 못하거나 투자를 이어가지 않는 회원에게 퇴장 등의 제재를 가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대출까지 받아 돈을 넣은 의뢰인의 입장에서는 제재를 피하기 위해 지시를 이행할 동기가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그 동기를 두고 다른 회원들을 속이려는 의사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조직이 수익을 실현한 그날, 의뢰인과 가족도 함께 돈을 잃었습니다.
이 사건에는 조직이 대규모로 수익을 실현한 특정한 하루가 있었습니다. 특정 시점을 미리 정해 두고 그때까지 최대한 많은 돈을 끌어모은 다음 한 번에 빠져나가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날 의뢰인과 그 가족은 조직의 안내에 따라 베팅을 했고, 전액을 잃었습니다. 배우자와 아들 명의의 계정까지 포함하면 손실은 가족 전체로 수억 원대에 이르렀습니다.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이를 확인해 주는 자료들을 모두 정리해 제출했습니다.
여기서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돈을 잃었다는 사실만으로 공범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손실을 감수하는 공범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사건에서 제가 법원에 드리고 싶었던 말씀은 조금 다른 것이었습니다. 조직의 수익 실현 시점은 범행에서 가장 중요한 정보인 것이 분명한데, 의뢰인이 바로 그 시점에 상당한 자금을 투입하였다는 것은 조직으로부터 그 정보를 공유받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을 뜻했습니다. 나아가 수익실현을 위해 가장 중요한 시점에 대한 정보를 모르고 있었던 의뢰인에게 단지 조직 내 등급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지위나 공모관계를 단정할 수는 없을 고려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범행이 드러난 뒤, 의뢰인이 한 일은 조직을 고발하는 일을 돕는 것이었습니다.
손실을 입은 직후 의뢰인이 곧바로 조직의 실체를 확신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원금이라도 돌려받으려고 조직 상부에 여러 차례 사정을 했습니다. 대출까지 받아 투자한 사람이 하루아침에 현실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원금을 보장해 주겠다는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것을 확인하면서, 의뢰인은 조직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뒤 의뢰인은 이미 조직을 고발한 다른 피해자에게 핵심 조직원의 본명과 연락처를 넘겼고, 다른 피해자들과 주고받은 대화 내역도 그대로 공유했습니다. 하부 회원들에게는 더 이상 돈을 넣지 말라고 연락을 돌렸습니다.
이 과정은 의뢰인의 진술로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고발인이 담당 수사관에게 보낸 문자에는 의뢰인을 두고 “피해를 막고자 마지막까지 노력했던 분”이라는 표현이 있었고, 하부 회원 여러 명이 “의뢰인이 더 이상 베팅하지 말라고 거듭 당부했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제출해 주었습니다.
자신 역시 수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상황에서 조직의 실체를 밝히는 데 적극적으로 협조했다는 사정은, 공모관계를 판단할 때 가볍게 볼 수 없는 정황이었습니다.
두 번의 구속영장 청구, 두 번의 기각
법원이 어떤 이유로 기각 결정을 했는지, 그 구체적인 판단 내용까지 알 수는 없습니다. 결정문에 판단 이유가 상세히 기재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의뢰인에 대한 실제 자료들을 보면 의뢰인이 폰지 사기 조직의 공범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이 사건에서 구속영장은 두 차례 청구되었습니다. 첫 번째 청구가 기각된 뒤, 새롭게 밝혀진 사실 없이 가담 시점과 피해자 수만 바뀐 채 다시 청구되었습니다. 첫 번째 청구서에 적혀 있던 가담 시점이 두 번째 청구서에서는 두 달 뒤로 옮겨져 있었고, 변론과정에서 이 변경 자체를 문제 삼았습니다. 공모를 시작한 시점이 두 달이나 달라졌다면, 그 변경의 근거가 무엇인지, 각각의 가담 시점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무엇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법원은 두 번째 청구도 기각했습니다.
‘공범처럼 보이는 사람’의 형사책임을 판단할 때 단정할 수 없는 것
다단계 구조의 사기 사건에는 구조적인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조직의 중간에 있는 사람은 아래에서 보면 가해자로 보이고, 위에서 보면 이용당한 피해자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핵심 조직원들은 바로 그 지점을 이용해, 책임을 중간에 있는 사람에게 넘기고 빠져나갑니다.
그래서 이런 사건에서는 구분해서 보아야 하는 사실들이 있습니다. 우선, 조직 안에서 맡은 역할과 범죄의 공모는 같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역할은 조직 안에서 부여될 수 있지만, 그 역할을 수행했다는 사정만으로 범죄에 대한 공동가공의 의사까지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음으로, 적극적으로 행동했다는 사실과 범죄의 고의가 있었다는 사실은 별개입니다. 자기 돈을 지키려고 열심히 움직인 사람도, 겉으로는 열심히 움직인 사람으로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외관만으로 공모관계를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외관이 의심의 출발점이 될 수는 있어도, 그 자체가 결론이 될 수는 없습니다.
꼭 알아두세요
1) 구속영장이 기각되어도 수사는 계속될 수 있고, 동일한 범죄사실에 대해 구속영장이 다시 청구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동일한 범죄사실에 관하여 다시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경우에는 그 취지와 이유를 청구서에 기재해야 합니다(형사소송법 제201조 제5항 참조).
2) 여러 사람이 함께 범죄를 저질렀다고 인정되려면 범죄를 공동으로 실행하려는 의사의 결합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공모는 명시적인 모의가 아니라 암묵적인 의사의 결합으로도 인정될 수 있지만, 조직 내의 지위나 직함만으로 곧바로 공모가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뿐만 아니라 그 역할을 수행하면서 범죄를 인식하고 공동으로 실행하려는 의사가 있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3) 구속영장청구서에 기재되는 범죄사실 역시 피의자가 어떤 범죄사실로 구속을 청구받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특정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피의자의 가담 시점이나 범행 내용이 청구 과정에서 달라졌다면, 그 변경의 내용과 근거가 무엇인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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