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사건에 연루되어 대응을 준비할 때 가장 먼저 혐의를 인정할 것인지를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어렵게 혐의를 인정하기로 결정을 하고 나면, 이제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됩니다.
“합의를 하고 싶은데, 피해자 연락처는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의외로 이 질문부터 막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합의를 하기로 마음먹은 후 빨리 피해자에게 연락해야 할 것 같은 조급한 마음이 생기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실무에서는 첫 연락 시기나 방법을 잘못 선택해서 합의가 어그러지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그만큼 언제 연락할 것인지, 누가 연락할 것인지, 어떤 경로로 연락할 것인지를 전략적으로 정해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판단도 없이 무작정 연락부터 하다가, 정작 합의를 할 수 있었던 사건에서 피해자의 마음이 닫히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실무에서 합의를 결심한 뒤 피해자와의 연락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분들을 위한 의견을 나누고자 합니다.
① 피해자에게 연락하기 전에, 지금 연락을 해도 되는 상황인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합의를 시도하려는 쪽에서는 연락을 성의의 표현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건이 발생하고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는데, 아무런 연락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당연히 연락을 시도하는 것이 성의를 보이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성의를 보이기 위한 연락이 달리 보일 수도 있습니다. 잊고 싶었던 기억인데, 겨우 일상으로 돌아왔는데, 문자 하나 또는 부재중 전화 기록으로 인해 예전에 힘들었던 기억이 계속 떠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연락 방법을 정하기 전에, 지금이 연락을 해도 되는 상황인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피해자가 이미 연락을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혔는지, 피해자 조사가 끝났는지, 두 사람 사이에 원래 알던 관계가 있었는지에 따라 같은 연락이 전혀 다르게 평가될 수 있습니다.
특히 피해자 조사가 이루어지기 전에 접촉을 시도하는 경우에는 주의가 필요합니다. 사과를 하려던 연락이 진술을 회유하려는 시도로 받아들여질 수 있고, 그 사정이 수사기관으로부터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도 있습니다.
합의를 위한 연락이라는 목적이 있다고 해서 모든 연락이 허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피해자가 연락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는데도 계속 연락하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합의를 위한 연락이었다고 하더라도, 구체적인 연락의 방법과 횟수, 상대방의 의사 등에 따라 별도의 법적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반복적인 전화나 문자 등이 스토킹행위로 평가될 가능성도 있으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② 피해자의 연락처를 모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피해자의 이름조차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이름은 알지만 연락할 방법이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럴 때 ‘피해자를 모르니 합의도 어렵겠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렇게 단정할 일은 아닙니다.
가장 먼저 고려할 방법은 담당 수사관을 통하는 것입니다. 다만 이 대목에서 오해가 많습니다. 수사기관이 피해자의 연락처를 알려주는 것이 원칙은 아닙니다. 실제로는 담당 수사관에게 합의 의사를 전달하고, 피해자가 연락을 받아들일 의사가 있는 경우 연락 방법을 안내받는 방식 등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연락처는 전달되지 않고, 수사기관이 합의를 중재해 주지도 않습니다.
실제로 제가 진행하였던 강제추행 사건에서도 의뢰인은 합의 의사가 있었지만, 피해자의 인적사항은 전혀 알지 못하였습니다. 첫 경찰 조사에서 수사관에게 합의 의사를 전달하였고, 수사관은 피해자의 동의를 얻어 저에게 연락처를 전달해 주었습니다. 피해자가 과도한 합의금을 요구하여 결과적으로 합의가 되지는 않았고, 이 과정에서 수사관이 연락처를 전달해주는 것 이외에 합의 과정에 관여하지도 않았습니다.
피해자에게 대리인이 선임되어 있다면 그 대리인을 통해 의사를 전달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 부분은 뒤에서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검찰 단계에서는 형사조정을 신청해 볼 수도 있습니다. 조정위원이 중간에서 양측의 의견을 전달하기 때문에, 직접 연락이 닿지 않는 상황에서도 합의 의사를 전달할 통로가 생깁니다.
재판 단계에서는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알지 못하더라도 형사공탁을 통해 피해회복의 뜻을 표시할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만 공탁은 직접 합의를 위한 연락과는 성격이 다르므로, 구체적인 사건에 따라 별도로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반대로 연락처를 스스로 알아내려는 시도는 권해드리지 않습니다. 주변 사람을 통해 수소문하거나 사회관계망을 뒤져 연락하는 방식은, 합의를 시작하기도 전에 피해자에게 또 다른 두려움을 주는 행동이 될 수 있습니다.
③ 연락처를 알고 있어도, 직접 연락하는 것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닙니다.
연락처를 알고 있다면 의뢰인 본인이 직접 연락할 수도 있고, 변호인이 대신 연락할 수도 있습니다. 본인이 직접 연락하는 것이 나은 경우가 분명히 있습니다. 사과의 말은 다른 사람을 통할수록 흐려지고, 피해자가 바라는 것은 절차적인 정리가 아니라 당사자의 사과인 경우도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직접 연락하는 경우에는 되돌리기 어려운 위험이 따릅니다. 피의자가 직접 한 말은 그대로 자료로 남습니다. 통화 녹음과 문자 화면은 수사기관에 제출될 수 있고, 사과를 하려던 문장이 혐의를 실제보다 넓게 인정하는 진술로 읽힐 수도 있습니다.
아울러 사정을 설명하려던 말이 변명이나 책임 전가로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통화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았던 말이 나오면, 앞서 준비했던 대응과 다른 방향으로 사건이 흘러갈 수도 있습니다. 특히, 형사 사건 당사자들 사이의 대화는 감정이 격해질 수 있고, 이때 의도하지 않았던 발언이 계획을 망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변호인을 통한다고 해서 언제나 안전한 것은 아닙니다. 변호사의 이름으로 가는 연락은 피해자에게 공식적인 절차처럼 느껴져 오히려 방어적인 반응을 부를 때가 있습니다. 진심으로 사과할 마음이 있었는데도 그 마음이 전달되지 않았다고 느끼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실무에서는 변호인이 먼저 연락해 피해자의 의사를 확인한 뒤, 피해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의뢰인의 사과를 전달하는 방법을 택하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당사자가 직접 연락할 것인지 변호인을 통할 것인지는 편의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전 연락의 맥락과 피해자의 성향, 의뢰인의 감정 상태 등을 고려해 신중하게 판단하여야 합니다.
④ 피해자에게 변호사가 선임되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피해자에게 변호사가 선임되어 있다면, 합의와 관련된 연락은 원칙적으로 피해자 본인보다는 그 대리인을 통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의뢰인 본인이 연락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경우에는 사건에 관한 의사소통을 대리인을 통해 진행하려는 의사가 반영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직접 연락하기보다 대리인을 통해 의사를 전달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그 뜻을 무시하고 연락하면 사과의 의도나 내용과 무관하게 피해자는 더욱 적대적인 태도를 보일 수도 있습니다.
대리인을 통해 연락할 때에는 전달할 내용을 미리 정리해 두는 편이 낫습니다. 대리인은 전달자이기 때문에, 이쪽에서 말한 내용이 피해자에게 그대로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사과의 뜻, 사과를 하고 싶은 방식, 준비할 수 있는 범위를 정리해 두면 전달 과정에서 뜻이 흐려지는 것을 줄일 수 있습니다.
다만 대리인이 있다고 해서 합의가 빨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연락 자체는 수월해지지만 사건 전체를 고려한 전략적인 판단이 개입하기 때문에, 오히려 시간이 더 걸리기도 합니다.
⑤ 연락하기 전에 합의의 방향부터 정해두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연락을 해도 되는 상황인지, 어떤 경로로 연락할 것인지, 누가 연락할 것인지를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정해 두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연락이 닿은 다음에 무엇을 말할 것인지, 그리고 합의가 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지입니다.
혐의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연락을 하면, 사과를 하다가 사건의 범위까지 인정하게 되는 일이 생깁니다. 준비할 수 있는 범위를 정하지 않은 채 연락을 하면, 상대방이 처음 제시한 금액이 협상의 기준이 되어 버립니다. 합의가 되지 않을 경우를 정해 두지 않으면, 대화가 시작된 뒤부터는 계속 끌려가게 됩니다.
연락이 닿았다고 해서 합의가 시작되는 것도 아닙니다. 피해자가 연락을 받고도 거절할 수 있고,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시간을 더 달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 모든 경우가 실패는 아닙니다. 합의는 한 번의 연락으로 정해지는 일이 아니라,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계속 열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피해자에게 연락하는 일은 합의를 준비하는 단계가 아니라 이미 합의가 시작되는 장면입니다. 적어도 연락처를 누르기 전에 무엇을 말할 것인지와 합의가 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지를 정해 두신다면, 첫 연락에서 사건을 그르치는 일은 줄어들 수 있습니다.
꼭 알아두세요
1) 공판 단계에서는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알지 못하는 경우에도 법원에 형사공탁을 할 수 있습니다(공탁법 제5조의2). 다만 죄명과 사건의 경과에 따라 공탁이 양형에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으므로, 공탁 전에는 그 필요성을 반드시 검토해야 합니다.
2) 상대방에게 변호사가 선임되어 있는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그 변호사를 통하여 연락하게 됩니다. 대리인을 건너뛰고 당사자에게 직접 연락하면 사과의 내용과 무관하게 피해자가 적대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습니다.
3) 피해자가 연락을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힌 뒤에 반복하여 연락하는 것은, 합의를 위한 것이라는 사정만으로 정당화되지 않습니다. 연락이 닿지 않는다면 담당 수사관이나 피해자 대리인을 통하는 방법을 먼저 고려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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