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매계약서에 잔금일을 적지 않은 채 열쇠부터 넘겨받아 입주하거나 공장·상가를 먼저 쓰기 시작하는 거래가 의외로 많습니다. 이때 매수인은 아직 잔금을 치르지 않았으니 낼 돈이 없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민법은 대금 지급기한을 정하지 않은 매수인이 목적물을 인도받으면 그날부터 대금에 대한 이자를 내도록 정해 두고 있습니다. 반대로 매도인은 이전등기를 해 주지 않았는데 이자까지 받을 수 있는지, 이자를 받으면 그 사이 매수인이 얻은 사용이익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합니다. 이 글에서는 민법 제587조가 이자 지급의무를 언제, 어떤 이자율로 발생시키는지, 그리고 분쟁이 생기면 무엇을 입증해야 하는지 짚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민법 제587조 — 인도받은 날부터 대금 이자를 내는 구조
민법 제587조는 두 가지를 한 조문에 담고 있습니다. 전단은 "매매계약 있은 후에도 인도하지 아니한 목적물로부터 생긴 과실은 매도인에게 속한다"는 것이고, 후단은 "매수인이 대금을 지급하지 아니한 때에는 인도받은 날부터 대금의 이자를 지급하여야 한다. 그러나 대금지급에 대하여 기한이 있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는 것입니다. 즉 계약만 체결했을 뿐 아직 인도하지 않았다면 그 물건에서 나오는 임료나 열매는 매도인 몫이고, 일단 인도가 이루어지면 물건에서 나오는 이익은 매수인에게 넘어가므로 그 대가로 대금의 이자를 매도인에게 내라는 것입니다.
이 조문의 핵심은 쌍방 간 균형입니다. 매수인은 대금을 아직 내지 않은 채 목적물을 쓰거나 수익을 올리고, 매도인은 목적물을 내주었으니 대금 이자라도 받아야 공평하다는 논리입니다. 그래서 이 이자는 매수인의 채무불이행에 대한 손해배상이 아니라, 인도라는 사실에서 법이 직접 발생시키는 법정 대가의 성격을 갖습니다. 매수인이 지체에 빠졌는지, 매도인이 최고를 했는지와 상관없이 인도받은 날이 기산점이 됩니다.
제587조 후단의 이자는 이행지체에 대한 배상이 아니라, 인도로 이익이 넘어간 데 대한 법정 대가다 — 인도받은 날이 기산점이다.
잔금 기한이 없다는 말의 의미 — 단서가 적용되는 경우와 아닌 경우
제587조 후단 단서는 "대금지급에 대하여 기한이 있는 때"에는 이자를 내지 않는다고 정합니다. 따라서 이자 의무 여부는 결국 계약상 대금 지급기한이 정해져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계약서에 "잔금은 2026년 11월 30일에 지급한다"처럼 특정 날짜를 적었다면 그 날짜 전에는 대금 이자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인도가 앞당겨졌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기한의 이익이 있는 동안에는 매수인에게 이자를 낼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계약서에 잔금일이 없거나, 구두로만 "나중에 줄게" 식으로 약속한 경우에는 기한이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이때는 인도받은 날부터 이자가 발생합니다. 잔금일 문구가 있어도 "인도일로부터 몇 개월 내" 같은 불확정 표현이라면 기한의 존재 여부가 다투어질 수 있어, 실제 분쟁에서는 이 문구가 기한인지 단순한 이행 목표인지가 쟁점이 됩니다. 계약서와 오간 문자·메신저 내용이 중요한 증거가 되는 이유입니다.
잔금일이 특정 날짜로 적힌 경우 — 단서 적용, 그 날짜까지 이자 없음.
잔금일 기재가 없거나 구두 약속뿐인 경우 — 인도받은 날부터 이자 발생.
중도금·계약금만 치르고 잔금일이 미정인 경우 — 미지급 잔대금에 대해서만 이자 계산.
인도 시점이 다투어지면 — 열쇠 인수, 이삿짐 반입, 사업자등록 등 점유 이전 증거로 판단.
이자율은 얼마인가 — 법정이율 5%와 상사 6%
제587조는 이자를 낸다고만 할 뿐 이율을 정하지 않습니다. 당사자가 약정이율을 정했다면 그에 따르고, 정하지 않았다면 법정이율이 적용됩니다. 민법 제379조는 법정이율을 연 5푼, 즉 연 5%로 정하고, 상행위로 생긴 채무라면 상법 제54조에 따라 연 6%입니다. 매수인이 사업자이고 영업을 위해 물건을 매수한 거래라면 상사 법정이율이 적용될 여지가 있고, 개인 간 주택·토지 거래는 대개 연 5%입니다.
가정으로 계산해 보겠습니다. 매매대금 4억 원 중 계약금과 중도금으로 1억 원을 치르고 나머지 3억 원은 잔금일 없이 인도부터 받은 경우입니다. 인도 후 1년이 지났다면 연 5% 기준으로 3억 원의 5%인 1,500만 원이 이자입니다. 금액이 작지 않으므로 매수인은 인도 사실만으로 이런 부담이 생긴다는 점을 모르고 시간을 끌다가 이자가 크게 불어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전등기가 안 됐는데도 이자를 내야 하나 — 동시이행과의 관계
매수인이 가장 많이 하는 반론은 "매도인이 아직 이전등기를 해 주지 않았으니 잔금을 안 낸 것이 당연하고 이자도 낼 수 없다"는 주장입니다. 민법 제568조 제2항에 따라 매도인의 재산권 이전 의무와 매수인의 대금 지급 의무는 동시이행 관계에 있고, 상대방이 이행 또는 이행의 제공을 하지 않는 동안에는 자기 채무의 이행을 거절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매수인은 매도인이 등기이전서류를 갖추어 이행을 제공하기 전에는 잔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지체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다만 동시이행 항변권이 있어 지체책임이 없는 것과 제587조의 이자 지급의무가 생기는 것은 별개 문제입니다. 제587조는 지체와 무관하게 인도받은 사실에서 이자의무가 발생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설명입니다. 매수인이 목적물을 사용·수익하는 이익을 누리면서 대금 이자도 내지 않는다면 균형이 깨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실무에서는 매수인이 동시이행 항변을 하더라도 인도받은 날부터의 이자 자체는 부담해야 하는 경우가 많고, 매도인의 이전등기 이행 제공이 있었는지는 별도의 지연손해금 문제로 따로 다투어집니다.
동시이행 항변은 지체책임을 막을 뿐이다 — 인도받아 이익을 누린 이상 제587조의 이자까지 당연히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사용이익과 이자의 관계 — 인도 후 과실은 누구 몫인가
제587조 전단과 후단을 함께 읽으면 인도 시점을 기준으로 이익이 갈립니다. 인도 전에 발생한 임료·수확물은 매도인에게 귀속되고, 인도 후에 발생한 과실이나 사용이익은 매수인에게 귀속됩니다. 그 대신 매수인은 대금 이자를 냅니다. 예컨대 매수인이 인도받은 건물 일부를 제3자에게 세를 놓아 월 임료를 받고 있다면, 그 임료는 매수인의 몫이지만 잔대금에 대한 이자는 매도인에게 내야 합니다.
반대로 계약이 해제되는 경우에는 정리 방식이 달라집니다. 해제로 원상회복을 할 때 민법 제548조 제2항은 반환할 금전에 받은 날부터 이자를 가산하도록 하는데, 매수인이 이미 쓴 목적물의 사용이익은 별도로 반환해야 합니다. 매도인 입장에서는 인도 후 계약이 깨졌을 때 이자 청구와 사용이익 반환청구가 어떻게 맞물리는지 구분해 청구항목을 세워야 하고, 매수인 입장에서는 이미 낸 대금의 이자와 쓴 사용이익이 서로 상쇄되는 구조인지 따져 보아야 합니다.
실무 청구 방법 — 무엇을 증명해야 하고 어디까지 청구되나
매도인이 이자를 청구하려면 우선 인도 사실과 대금 미지급 사실, 그리고 대금 지급기한이 없다는 점을 주장·입증해야 합니다. 기한이 있다는 점은 이를 주장하는 매수인이 밝히는 것이 보통입니다. 인도 사실은 열쇠 인수증, 이삿짐 반입 사진, 관리사무소 입주 기록, 전입신고나 사업자등록 일자, 공과금 명의 변경 내역 등으로 입증합니다. 대금 일부를 지급한 영수증과 계좌이체 내역은 미지급 잔액을 확정하는 자료가 됩니다.
소송에서 청구하는 이자는 인도일부터 잔금 완납일(또는 변론종결일)까지의 제587조 이자와, 이행을 최고한 뒤의 지연손해금으로 나뉠 수 있습니다. 판결 선고 후 금전채무 불이행에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 제3조에 따라 연 12%의 이율이 적용되는 구조라는 점도 알아 두어야 합니다. 매수인은 이자가 쌓이기 전에 잔금을 공탁하거나 조기에 지급하여 부담을 줄일 수 있고, 매도인은 최고서 발송 일자를 증거로 남겨 이후 지연손해금의 기산점을 분명히 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인도 증거 — 열쇠 인수증, 입주·반입 사진, 관리비·공과금 명의 변경 내역.
미지급 증거 — 계약서상 대금 구조, 영수증, 계좌이체 내역.
기한 여부 — 계약서 문구, 문자·메신저 대화, 중도금·잔금 독촉 기록.
이후 단계 — 내용증명으로 최고 후 소 제기, 판결 후에는 연 12% 적용.
자주 묻는 질문
Q. 계약서에 잔금일이 없으면 무조건 인도받은 날부터 이자를 내야 하나요?
A. 대금 지급기한이 없다면 제587조에 따라 인도받은 날부터 대금 이자를 내는 것이 원칙입니다. 다만 구두로라도 특정 시기까지 잔금을 미루기로 합의한 사실이 입증되면 기한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단서가 적용될 수 있습니다. 문자나 메신저 대화가 중요한 증거가 됩니다.
Q. 이전등기를 아직 못 받았는데도 이자를 내야 하나요?
A. 동시이행 항변이 있으면 잔금 지급이 늦어져도 지체책임은 지지 않지만, 제587조의 이자는 인도받은 사실에서 생기는 별개의 의무입니다. 매수인이 목적물을 이미 사용·수익하고 있다면 이자 부담을 인정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매도인의 이행 제공 여부와 인도 이후 실제 사용 정도를 함께 따져야 합니다.
Q. 이자율은 어떻게 정해지나요?
A. 당사자가 이율을 약정했다면 약정에 따르고, 없으면 민법 제379조의 연 5%가 적용됩니다. 상행위로 생긴 채무에는 상법 제54조에 따라 연 6%입니다. 판결 선고 후에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연 12%의 이율이 적용되는 구조입니다.
Q. 인도받은 날이 언제인지 다투면 어떻게 입증하나요?
A. 열쇠 인수 일자, 이삿짐 반입, 전입신고·사업자등록 일자, 관리사무소 기록, 공과금 명의 변경 내역 등으로 점유 이전 시점을 입증합니다. 점유를 넘겨받았다는 사실이 기산점이므로 인도 시점이 하루라도 달라지면 이자액이 달라집니다.
Q. 인도받은 물건을 쓰지도 못했다면 이자를 안 내도 되나요?
A. 제587조의 취지는 인도로 넘어간 이익과 이자의 균형이므로, 점유를 넘겨받았음에도 사실상 사용하지 못할 사정이 있었다면 그 사정이 이자 감면 사유로 주장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는 매수인이 그 사정과 그 책임이 매도인에게 있음을 입증해야 하는 부분이 큽니다.
Q. 매수인이 잔금을 차일피일 미루면 매도인은 계약을 해제할 수 있나요?
A. 매도인이 이전등기 이행을 제공하고 상당한 기간을 정해 잔금을 최고했는데도 매수인이 지급하지 않으면 민법 제544조에 따라 계약을 해제할 수 있습니다. 해제하면 원상회복으로 목적물 반환과 사용이익 정산이 이루어지므로, 이자 청구와 어느 쪽이 유리한지 비교해 선택해야 합니다.
맺음말
잔금 기한 없이 물건부터 넘겨받은 매수인은 민법 제587조에 따라 인도받은 날부터 대금 이자를 부담합니다. 계약서에 잔금일이 있으면 단서가 적용되고, 없으면 연 5%(상사 연 6%)의 법정이율이 기본이 됩니다. 동시이행 항변은 지체책임을 막을 뿐 이자 의무까지 당연히 없애지는 않는다는 점이 분쟁의 핵심입니다.
매도인은 인도 사실과 미지급 사실, 기한 부존재를 증거로 남겨 두고, 매수인은 인도 시점과 잔금 기한 합의를 문서로 정리해 두는 것이 분쟁을 줄입니다. 물건을 먼저 넘기는 거래라면 계약서에 인도일과 잔금일을 모두 명확히 적는 것이 가장 확실한 예방책입니다. 이미 분쟁이 시작되었다면 증거부터 점검한 뒤 대응 방향을 정해 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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