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이 퇴사하면서 챙겨 나온 거래처 목록과 설계 자료가 새 직장에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옛 회사는 대개 퇴사자와 함께 새 회사까지 업무상배임으로 고소합니다. 새 회사 입장에서는 경력직을 채용했을 뿐인데 갑자기 피의자 신분이 되는 셈입니다. 그러나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만 정범이 될 수 있는 신분범이어서, 새 회사가 이득을 봤다는 사실만으로는 공범이 되지 않습니다. 이 글에서는 퇴사자의 자료 유출에 새 회사가 업무상배임의 공범으로 처벌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가르는 기준, 그리고 배임이 아니어도 새 회사가 따로 지게 되는 책임이 무엇인지 정리합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업무상배임은 신분범 — 새 회사는 '사무처리자'가 아니다
형법 제355조 제2항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를 배임으로 처벌하고, 업무상 임무에 위배한 때에는 제356조에 따라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가중합니다. 여기서 범죄의 주체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로 한정됩니다. 옛 회사의 재직자는 이 지위에 있지만, 그 직원을 채용한 새 회사는 옛 회사의 사무를 처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조문에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라는 문구가 있다고 해서 그 제3자가 처벌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문구는 임무를 위배한 사람이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이익을 몰아준 경우에도 배임이 성립한다는 뜻일 뿐, 이익을 받은 제3자를 처벌하는 근거가 아닙니다. 새 회사가 유출된 자료로 매출을 올렸다는 사실은 퇴사자의 배임이 성립한다는 쪽의 정황이지, 새 회사의 처벌을 곧바로 끌어내는 사실이 아닙니다.
배임죄의 정범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뿐이고, 이익을 얻은 제3자라는 사정만으로는 처벌 근거가 되지 않는다.
신분 없는 자의 가담 — 형법 제33조가 열어 두는 길
그렇다고 새 회사가 언제나 안전한 것은 아닙니다. 형법 제33조는 신분이 있어야 성립하는 범죄에 신분 없는 사람이 가담한 경우에도 제30조부터 제32조의 공동정범·교사범·방조범 규정을 적용한다고 정합니다. 즉 새 회사의 대표나 임원이 퇴사자와 함께 자료를 빼 오도록 계획했다면 배임의 공동정범, 반출을 부탁하거나 부추겼다면 교사범이 될 수 있습니다.
이때 요구되는 것은 막연한 이익 수취가 아니라 퇴사자의 임무위배 행위에 대한 인식과 그 실행에 대한 공동가공 또는 교사·방조의 사실입니다. 공동정범이라면 범행을 함께 하겠다는 의사의 연락과, 그 의사에 따라 각자 역할을 나눈 기능적 행위지배가 있어야 합니다. 또한 제33조 단서는 신분 때문에 형의 경중이 달라지는 경우 신분 없는 사람에게 무거운 형으로 벌하지 않도록 정하고 있어, 업무상 신분이 없는 새 회사 측은 가중된 업무상배임이 아닌 단순 배임의 형으로 처벌받는다는 해석이 이 단서에 기초해 논의됩니다.
공동정범 — 퇴사자와 새 회사 관계자가 자료 반출을 함께 계획하고 역할을 나눈 경우.
교사범 — 새 회사 측이 퇴사자에게 특정 자료를 가져오라고 요구해 반출 결의를 일으킨 경우.
방조범 — 반출을 알면서 저장 공간·장비를 제공하는 등 실행을 용이하게 한 경우.
공범 아님 — 채용 후 자료가 반입된 사실을 몰랐거나, 알았더라도 반출 과정에 관여하지 않은 경우.
퇴사 후 반출은 배임의 전제부터 흔들린다 — 사무처리자 지위의 시점
공범 여부 이전에 정범인 퇴사자의 배임이 성립하는지부터 봐야 합니다. 배임의 주체는 행위 당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지위에 있어야 하므로, 퇴사 이후에 옛 회사 자료를 가져가거나 갖고 있던 자료를 쓰는 행위는 임무위배로 보기 어렵습니다. 정범이 성립하지 않으면 공범도 성립할 수 없으므로 새 회사에 대한 공범 혐의도 함께 무너집니다.
반대로 재직 중에 자료를 외부로 반출했다면 사정이 다릅니다. 퇴사를 결심한 뒤 경쟁사로 옮길 목적으로 영업상 중요한 자료를 개인 저장장치나 개인 메일로 빼낸 경우, 판례는 그 자료가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등 회사의 이익에 중대한 것이라면 재직 중 반출 시점에 업무상배임이 성립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수사에서는 반출 일시가 퇴사일 이전인지, 접속 로그와 메일 발송 기록상 언제 어떤 파일이 나갔는지가 가장 먼저 확인됩니다. 퇴사 이후 서버에 원격 접속해 자료를 내려받았다면 배임이 아니라 정보통신망 침입 등 다른 죄명의 문제로 넘어갑니다.
정범인 퇴사자의 배임이 재직 중에 성립했는지가 먼저이고, 새 회사의 공범 여부는 그다음 단계의 문제다.
새 회사의 공범 여부를 가르는 사실관계 — 수사기관이 보는 증거
새 회사가 반출에 관여했는지는 결국 사실관계의 문제이고, 수사기관은 채용 과정에서 오간 자료부터 확인합니다. 입사 제안 이메일이나 메신저에서 '기존 거래처 그대로 가져오라', '설계도를 먼저 보내 달라' 같은 요구가 있었다면 교사나 공동가공의 강한 정황이 됩니다. 반대로 면접에서 경력 위주로만 이야기했고 자료 제공 요구가 없었다면 공범으로 볼 근거가 약해집니다.
채용 이후의 사용 방식도 중요합니다. 새 회사 서버에 자료가 그대로 업로드되고 영업팀이 그 목록으로 영업했다면 반입을 알고 활용한 것으로 평가되기 쉽습니다. 다만 사후에 사용한 사실은 공범 성립이 아니라 아래에서 보는 영업비밀침해의 문제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미 완성된 배임에 대하여 반출 뒤에 단순히 이용한 것은 공동가공이라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채용 협의 단계의 이메일·메신저 — 자료 제공을 요구하거나 암시한 문구 유무.
반출 전후의 연락 기록 — 새 회사 관계자와 퇴사자 사이의 통화·문자 시점.
대가 약속 — 이직 조건에 자료의 가치가 반영된 흔적(성과급·직급 보장 등).
반입 경로 — 자료가 새 회사 서버·공용 폴더에 올라간 일시와 접근자.
사용 내역 — 영업·설계에 실제로 쓰인 범위와 기간.
공범이 아니어도 남는 책임 — 영업비밀 침해와 형사처벌
배임의 공범으로 처벌받지 않는다고 해서 새 회사가 면책되는 것은 아닙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2조 제3호 나목·다목은 부정취득행위가 개입된 사실을 알거나 중대한 과실로 알지 못하고 영업비밀을 취득하거나 사용하는 행위를 영업비밀 침해행위로 규정합니다. 같은 법 제18조 제2항은 제1항 각 호의 행위, 즉 부정한 이익을 얻거나 보유자에게 손해를 입힐 목적으로 영업비밀을 취득·사용·누설하거나 무단 유출하는 행위, 그리고 그런 행위가 개입된 사실을 알면서 영업비밀을 취득·사용하는 행위를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억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합니다. 이득액의 10배가 5억원을 넘으면 이득액의 2배 이상 10배 이하의 벌금이 적용됩니다.
법인에 대해서는 같은 법 제19조의 양벌규정에 따라 임직원이 업무에 관해 위반행위를 하면 법인도 벌금형을 받을 수 있고,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면 면책됩니다. 결국 새 회사는 배임의 공범 혐의에서는 벗어나더라도, 자료가 영업비밀이고 그 사정을 알면서 썼다면 영업비밀 침해로 형사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고소장에 업무상배임만 적혀 있어도 수사 과정에서 죄명이 영업비밀 침해로 바뀌거나 추가되는 이유입니다.
민사 책임 — 금지청구와 손해배상, 고의라면 최대 5배
옛 회사는 형사고소와 별도로 민사 절차도 병행합니다. 같은 법 제10조는 영업비밀 보유자가 침해행위를 하거나 하려는 자에게 행위의 금지·예방을 청구할 수 있고, 침해행위를 조성한 물건의 폐기나 설비 제거도 함께 청구할 수 있다고 정합니다. 가처분이 인용되면 해당 자료를 이용한 제품 출시나 영업이 중단될 수 있어, 새 회사로서는 형사 결과보다 먼저 사업에 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손해배상은 제11조가 고의 또는 과실로 영업상 이익을 침해해 손해를 입힌 자에게 책임을 지우고, 제14조의2가 손해액 산정을 돕습니다. 침해자가 얻은 이익액을 손해액으로 추정할 수 있고(제2항), 손해액 입증이 극히 곤란하면 법원이 상당한 손해액을 인정할 수 있습니다(제5항). 침해가 고의적이라고 인정되면 법원은 손해로 인정된 금액의 5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배상액을 정할 수 있습니다(제6항). 이때 침해자의 우월적 지위, 고의의 정도, 침해 기간·횟수 등이 고려됩니다.
수사 초기 대응 — 새 회사가 지금 해야 할 일
자료가 반입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가장 먼저 해당 자료의 확산을 막아야 합니다. 접근 권한을 최소화하고 반입 경로와 사용 이력을 보존하되, 임의로 삭제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삭제가 증거인멸로 비칠 수 있고, 반출 및 사용 이력을 입증할 자료까지 사라지면 오히려 새 회사의 선의를 주장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보존한 상태에서 외부와 격리하고, 삭제와 반환의 방식은 변호인과 상의해 상대방과 협의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또한 퇴사자와 새 회사의 이해관계가 갈릴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퇴사자는 '새 회사가 요구했다'고 진술해 책임을 나누려 하고, 새 회사는 '몰랐다'고 방어하는 구도가 되기 쉽습니다. 따라서 진술 전에 채용 과정의 기록과 입사 전 서약서, 타사 자료 반입 금지 방침이 실제로 운영되었다는 근거를 정리해 두어야 합니다. 두 사람이 같은 변호인을 선임하면 이해충돌이 생길 수 있으므로 방어 방향을 각각 따져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퇴사자가 몰래 가져온 자료를 새 회사가 쓰기만 해도 업무상배임 공범인가요?
A. 단순히 사용했다는 사실만으로는 배임의 공범이 되기 어렵습니다. 공범이 되려면 퇴사자의 임무위배 행위에 대한 인식과 함께 반출을 계획·교사·방조했다는 가담 사실이 필요합니다. 다만 사용 사실은 영업비밀 침해 책임의 근거가 될 수 있어 별도로 검토해야 합니다.
Q. 퇴사 후에 자료를 가져갔다면 업무상배임이 안 되나요?
A. 배임은 행위 당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지위에 있어야 성립하므로, 퇴사 후 반출은 업무상배임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재직 중에 이미 개인 저장장치로 옮겨 둔 경우에는 그 시점이 기준이 되고, 퇴사 후 원격 접속으로 내려받았다면 정보통신망 침입 등 다른 죄명이 문제 됩니다.
Q. 새 회사 대표가 반출 사실을 몰랐다면 처벌을 피할 수 있나요?
A. 반출에 관여하지 않았고 인식도 없었다면 배임의 공범 책임은 지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다만 영업비밀 침해는 부정취득행위가 개입된 사실을 중대한 과실로 알지 못한 경우에도 침해행위가 되므로 민사책임은 남을 수 있습니다. 형사처벌인 제18조 제1항 제3호는 알면서 취득·사용한 경우를 대상으로 합니다.
Q. 영업비밀로 인정되지 않는 자료라면 책임이 없나요?
A. 영업비밀 침해는 공공연히 알려져 있지 않고 독립된 경제적 가치가 있으며 비밀로 관리된 정보여야 성립합니다. 단순한 업계 공개 정보나 비밀관리가 없던 자료라면 영업비밀 침해는 어렵습니다. 다만 업무상배임은 영업비밀 여부와 별개로 회사에 재산상 손해를 가했는지를 따지므로 두 판단은 구분됩니다.
Q. 법인은 따로 처벌받나요?
A. 임직원이 법인의 업무에 관해 영업비밀 침해 범죄를 저지르면 제19조 양벌규정에 따라 법인에도 벌금형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법인이 위반행위를 막기 위해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면 면책됩니다. 타사 자료 반입 금지 방침과 서약서 징구 같은 평소 관리가 이때 의미를 가집니다.
Q. 고소당한 뒤 퇴사자와 합의하면 모든 게 끝나나요?
A. 합의는 양형과 민사 분쟁 정리에 유리하게 작용하지만, 영업비밀 침해와 배임은 합의만으로 형사절차가 자동 종결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합의서에는 자료 반환·삭제 범위, 사용 중단, 비밀유지 의무를 구체적으로 담아야 하고, 퇴사자 측 진술이 새 회사에 불리하게 흐르지 않도록 사전에 조율해야 합니다.
맺음말
퇴사자의 자료 유출에서 새 회사는 업무상배임의 정범이 될 수 없고, 공범은 반출을 계획하거나 부추기거나 도운 사실이 있을 때에만 성립합니다. 퇴사 후 반출처럼 정범의 배임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경우에는 새 회사의 공범 혐의도 함께 사라집니다. 다만 배임의 공범이 아니라는 사실이 영업비밀 침해에 따른 형사·민사 책임까지 막아 주지는 않으므로 두 갈래를 나누어 방어를 준비해야 합니다.
자료 반입 사실을 인지한 시점의 대응이 이후 결과를 크게 좌우합니다. 증거를 보존하고 접근을 차단한 뒤 채용 과정의 기록을 정리하면, 몰랐다거나 관여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습니다. 시흥 시화·정왕 공단이나 이천 부발처럼 기업이 밀집한 지역에서는 인력 이동이 잦은 만큼 이런 분쟁이 자주 생기니, 고소장을 받기 전이라도 입사 서약과 반입 관리 체계부터 점검해 두시길 권합니다.
조력이 필요하시면 강대현 대표변호사에게 연락주십시오. 신속히 도와드리겠습니다.
의뢰인을 위한 최선의 전략을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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