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잘못이 두 번 기록되면, 두 사람의 이야기가 된다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두 건, 하나의 재판으로 묶어 벌금형까지
따로 흘러가던 두 사건을 다시 합치기까지, 검사 출신 변호사가 직접 겪은 이야기
"변호사님, 저 이미 벌금 나온 것 같은데 그냥 내면 안 되나요?"
그가 내 앞에서 처음 꺼낸 말이었다.
당황한 표정이었지만, 상황이 얼마나 위태로운지는 아직 모르는 얼굴이었다.
그는 지방에서 올라와 혼자 서울 생활을 하는 대학생 K씨였다.
생활비가 빠듯하던 어느 날, 인터넷에서 통장을 빌려주면 돈을 준다는 광고를 보았다.
그것이 어떤 범죄인지 그때는 실감하지 못했다.
그렇게 두 차례에 걸쳐 자신의 계좌를 넘겼고, 얼마 뒤 경찰의 연락을 받았다.
내가 기록을 받아 확인해 보니 사건은 두 건이었고, 서로 다른 길로 흘러가고 있었다.
한 건은 이미 약식명령이 내려져 벌금이 정해진 상태였다.
그런데 그 서류가 K씨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고, 정식재판을 청구할 수 있는 기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다른 한 건은 정식으로 기소되어 재판이 진행 중이었다.
K씨는 벌금만 내면 끝나는 줄 알고 있었다.
두 줄로 남을 것인가, 한 줄로 남을 것인가
나는 K씨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지금 두 사건이 서로 다른 창구에서 따로 처리되고 있습니다.
이대로 두면 앞의 사건이 먼저 확정됩니다.
그러면 뒤의 재판을 맡은 재판부는 기록을 이렇게 읽게 됩니다.
'한 번 처벌을 받고도 또 같은 일을 한 사람.'
실제로는 비슷한 시기에, 같은 사정에서 벌어진 두 번의 판단 착오인데도 말입니다."
같은 사실이라도 어떤 순서로 기록에 남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된다.
두 사건을 한 재판에서 함께 판단받는 것과 따로 판단받는 것의 차이는 여기에 있었다.
먼저 이 범죄가 어떤 것인지부터 K씨에게 정확히 알려야 했다.
전자금융거래법은 통장이나 카드, 비밀번호 같은 접근매체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행위 자체를 처벌한다.
그 계좌가 실제로 어떤 범죄에 쓰였는지, 내가 그 범죄를 알았는지와 관계없이 넘긴 것만으로 범죄가 된다.
"보이스피싱에 쓰일 줄 몰랐다"는 말이 방어가 되지 않는 이유다.
여기에 더해, 넘긴 계좌가 실제로 사기 범행에 쓰였다면 사기방조 등 다른 혐의로 이어질 수도 있다.
K씨가 생각한 "그냥 벌금"은 결코 가벼운 절차가 아니었다.
먼저 한 일은 닫히려는 문을 다시 여는 것이었다
나는 두 가지를 동시에 진행했다.
첫째는 약식명령을 받은 사건에 대한 정식재판청구권 회복청구였다.
약식명령은 정해진 기간 안에 정식재판을 청구하지 않으면 그대로 확정된다.
다만 본인이 책임질 수 없는 사유로 그 기간을 지키지 못했다면, 그 사유가 없어진 날부터 정해진 기간 안에 회복을 청구할 수 있다.
K씨의 경우 서류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사정이 있었다.
나는 우편 송달 기록과 주소 관계 자료를 정리해, 기간을 놓친 것이 K씨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을 소명했다.
회복청구는 받아들여졌다. 닫히려던 문이 다시 열린 것이다.
둘째는 두 사건을 같은 재판에서 함께 판단받도록 하는 것이었다.
두 사건은 죄명이 같았고, 행위의 모습도 같았으며, 같은 시기의 같은 경제적 사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나는 이 점을 정리해 재판부에 함께 심리해 줄 것을 요청했고, 재판부는 두 사건을 함께 심리하기로 했다.
검사로 일하던 시절, 나는 절차 하나가 어긋나 결과가 달라지는 경우를 여러 번 보았다.
기록에 무엇이 담기느냐만큼이나, 그것이 어떤 순서로 정리되느냐가 중요하다.
의견서에 담은 것은 변명이 아니라 구조였다
병합이 된 뒤에는 양형이 남았다.
나는 의견서에서 한 가지를 분명히 하고자 했다.
이 두 건은 범죄를 되풀이하는 습관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같은 시기의 같은 궁핍에서 이어진 하나의 잘못이라는 점이었다.
K씨는 부모와 떨어져 혼자 지내고 있었고, 생활비 문제를 부모에게 말하지 못했다.
첫 번째 판단 착오를 수습하지 못한 상태에서 두 번째가 이어졌다.
이 구조를 사실대로 정리해 제출했다.
동시에 변명으로 읽히지 않도록 했다.
K씨는 두 건 모두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계좌를 넘기는 행위가 어떤 범죄에 쓰일 수 있는지, 그로 인해 누가 피해를 입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점도 함께 적었다.
범죄 전력이 없다는 점, 학업을 이어가려는 계획도 자료로 정리했다.
결과는 벌금형이었다
재판부는 두 사건을 함께 심리한 뒤 벌금형을 선고했다.
K씨는 학업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벌금형도 형사처벌이다. 전과가 남지 않는 처분이 아니다.
만약 회복청구를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지 생각해 본다.
앞의 사건은 그대로 확정되었을 것이고, 뒤의 재판에서는 처벌을 받고도 같은 일을 반복한 사람으로 평가되었을 것이다.
같은 행동을 한 같은 사람인데, 기록에 남는 모습은 달라졌을 것이다.
계좌를 넘긴 일로 조사를 받게 됐다면, 이것부터 확인하라
① 자신의 사건이 어느 단계에 있는지부터 확인하라.
수사 단계인지, 약식명령이 내려졌는지, 정식으로 기소되었는지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이 완전히 달라진다.
약식명령은 정해진 기간이 지나면 확정되므로 날짜 확인이 가장 급하다.
② 서류를 받지 못했다면 그 사정을 자료로 남겨라.
주소 변경, 송달 오류처럼 본인 잘못이 아닌 사유가 있다면 회복을 청구할 수 있는 길이 있다.
우편 기록과 주소 관련 자료를 먼저 확보해야 한다.
③ 진행 중인 사건이 여러 건이라면 반드시 함께 검토하라.
따로 처리되면 각각 별개의 처벌 전력으로 평가될 수 있다.
내 사건이 몇 건인지, 각각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 한 번에 파악하는 것이 먼저다.
④ "몰랐다"는 말은 방어가 되지 않는다.
접근매체를 넘긴 행위 자체가 처벌 대상이다.
계좌가 실제 범죄에 쓰였다면 별도의 혐의가 추가될 수 있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
⑤ 지금이라도 계좌 관련 연락은 모두 끊어라.
이미 넘긴 계좌를 추가로 관리해 주거나, 같은 상대에게 다른 계좌를 넘기면 사건이 훨씬 무거워진다.
관련 대화 기록은 지우지 말고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
⑥ 벌금형으로 끝나도 남는 것이 있다.
벌금도 형사처벌이고 전과로 남는다.
계좌가 지급정지되거나 금융거래에 제한이 생길 수 있다는 점도 함께 확인해야 한다.
같은 사람의 이야기가 두 개로 갈라지지 않도록
선고가 끝난 뒤 K씨에게서 짧은 문자가 왔다.
"학교 계속 다닐 수 있게 됐습니다."
이런 사건에서 가장 흔한 실수는 "어차피 벌금이니 그냥 내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건이 몇 건인지, 각각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 서류가 제대로 전달되었는지에 따라 할 수 있는 일과 남게 되는 기록이 달라진다.
K씨가 한 일은 두 번이었다. 그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다만 그 두 번이 기록 위에서 어떤 이야기로 정리되는지는 달라질 수 있었다.
계좌를 넘긴 일로 조사 연락을 받았다면, 혼자 판단하지 말고 첫 조사 전에 대응 방향부터 신중하게 점검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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