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은 사람이 곧 만든 사람은 아니다
미성년 시절의 일로 아청법 성착취물 제작 혐의를 받은 청년, 경찰 불송치 결정까지
아청법 사건에서 범죄 성립 요건부터 다시 따지기까지, 검사 출신 변호사가 직접 겪은 이야기
"변호사님, 저 이거 처벌받으면 인생 끝나는 거 아닌가요?"
그가 내 앞에서 처음 꺼낸 말이었다.
목소리는 떨렸고, 손에는 경찰 출석요구서가 들려 있었다.
죄명란에 적힌 낯선 법률 이름을 그는 몇 번이고 다시 읽고 있었다.
그는 스무 살을 갓 넘긴 R씨였다.
얼굴에는 아직 앳된 티가 남아 있었다.
그런 그가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그중에서도 성착취물 제작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되어 내 사무실을 찾아왔다.
사건은 R씨가 미성년자였던 시절의 일이었다.
R씨는 SNS에서 알게 된 또래와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였다.
그러던 중 상대방의 제안으로 성적인 내용이 담긴 영상이 촬영되었다.
촬영에 쓰인 기기는 상대방의 것이었고, 그 영상을 R씨에게 보낸 사람도 상대방이었다.
R씨는 시간이 한참 지나 경찰의 연락을 받고 나서야, 그 일이 자신에게 어떤 혐의로 돌아왔는지 알게 되었다.
아청법 사건은 수사가 시작되는 것만으로도 한 사람의 일상 전체를 흔든다.
R씨도 그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받은 문서의 작성자는 누구인가
나는 R씨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문서를 예로 들어 볼게요.
누군가 작성한 문서가 내 메일함에 들어왔다고 해서, 내가 그 문서의 작성자가 되지는 않습니다.
작성자인지는 누가 그 문서를 기획했고, 누가 쓰게 했고, 누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움직였는지로 따집니다.
다만 받은 문서를 계속 가지고 있는 것은 또 다른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먼저 이 사건에 적용되는 법이 얼마나 무거운지부터 정확히 알아야 했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11조 (아동·청소년성착취물의 제작·배포 등)】
① 아동·청소년성착취물을 제작·수입 또는 수출한 자는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⑤ 아동·청소년성착취물을 구입하거나 아동·청소년성착취물임을 알면서 이를 소지·시청한 자는 1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아동·청소년성착취물은 아동·청소년이 등장해 성적 행위를 하는 내용을 표현한 영상·화상 등을 말한다.
제작죄의 법정형은 살인죄에 버금갈 만큼 무겁다.
그리고 이 법에서는 촬영에 등장한 아동·청소년이 동의했다는 사정만으로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지 않는다.
또 하나 알아야 할 점이 있다.
직접 카메라를 들지 않았더라도, 아동·청소년에게 촬영을 요구하거나 시켜서 영상이 만들어지게 했다면 제작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래서 이 사건의 질문은 "영상이 있느냐"가 아니었다.
"R씨가 그 영상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기획하거나 요구하거나 이끌었느냐"였다.
나는 영상이 만들어지고 전달된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따졌다
검사로 일하던 시절, 나는 아청법 사건 기록을 적지 않게 보았다.
이런 사건은 결과물의 존재만으로 혐의가 빠르게 굳어지기 쉽다.
그래서 이번에는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확인했다.
첫째, 촬영을 누가 제안하고 진행했는가.
기록상 촬영은 상대방의 제안으로 시작되었고, 상대방의 기기로 이루어졌다.
R씨가 촬영을 요구하거나 구체적인 방식을 지시했다고 볼 자료는 확인되지 않았다.
둘째, 영상은 어떻게 R씨에게 왔는가.
영상을 보낸 것은 상대방이었다.
R씨가 영상을 보내 달라고 요청하거나, 얻어내기 위해 무언가를 한 흔적은 없었다.
셋째, 당시 두 사람은 어떤 관계였는가.
두 사람 모두 미성년자인 또래였다.
금전이나 대가가 오간 사정도 없었고, 영상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거나 유포된 흔적도 없었다.
나는 이 사정들을 사실대로 정리해, R씨를 제작의 주체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서를 경찰에 제출했다.
아울러 미성년자인 또래 사이에서 사적으로 이루어진 일이라는 사정도 함께 설명했다.
다만 이 부분은 판례상 인정 범위가 매우 좁은 예외적 논리다. 그래서 주된 주장이 아니라 보충적인 사정으로만 제시했다.
이 글을 읽는 분이 "서로 동의했으니 괜찮다"고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경찰의 결론은 "불송치"였다
경찰은 의견서와 수사기록을 검토한 뒤,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지 않는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R씨는 재판에 넘겨지지 않았다.
다만 불송치 결정이 곧 모든 절차의 끝을 뜻하지는 않는다.
고소인 등은 불송치 결정에 이의신청을 할 수 있고, 이의신청이 있으면 사건은 검찰로 송치된다.
검사가 기록을 검토한 뒤 경찰에 재수사를 요청할 수도 있다.
아청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됐다면, 이것부터 확인하라
① 첫 조사 전에 반드시 변호사와 혐의의 구조부터 확인하라.
제작, 소지, 배포는 성립 요건과 법정형이 모두 다르다.
어떤 혐의로, 어떤 사실관계가 문제되는지 모른 채 진술하면 의도와 다르게 요건을 채우는 진술이 기록에 남을 수 있다.
② 영상을 누구에게도 보내거나 올리지 마라.
배포나 제공은 그 자체로 별도의, 더 무거운 범죄가 된다.
해명하려고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것도 마찬가지다.
③ 영상과 기기를 임의로 처리하지 마라.
받은 영상을 계속 가지고 있는 것은 소지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반대로 수사가 시작된 뒤 임의로 지우거나 기기를 초기화하면 불리한 정황으로 비칠 수 있다.
어떻게 다룰지는 반드시 변호인과 상의해야 한다.
④ 압수수색과 임의제출의 차이를 알고 대응하라.
영장에 의한 압수수색에는 따라야 하지만, 집행 과정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
임의제출을 요청받았다면 제출 범위와 방식을 변호인과 먼저 확인하는 것이 좋다.
⑤ "서로 동의했다"는 사정만으로 안심하지 마라.
아청법에서 아동·청소년의 동의는 원칙적으로 범죄 성립을 막지 않는다.
사건의 쟁점이 무엇인지 정확히 짚는 것이 먼저다.
⑥ 불송치 결정 뒤에도 절차가 남아 있다는 점을 기억하라.
이의신청이나 재수사 요청이 있을 수 있으므로, 이후 절차까지 대비해 두어야 한다.
한 번 만들어진 영상은 누구의 것도 아니게 된다
사무실을 나서던 날, R씨는 짧게 인사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제 정말 다시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이 사건이 R씨 한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생각했다.
영상 속에 있던 상대방도 미성년자였다.
이런 영상은 한 번 만들어지면, 처음 의도와 상관없이 누구도 그 흐름을 온전히 통제할 수 없게 된다.
그 위험을 가장 크게 떠안는 사람은 영상 속의 아이들이다.
그래서 어떤 관계였든, 어떤 마음이었든 만들지 않는 것이 가장 확실한 보호다.
아청법 위반 혐의로 조사 연락을 받았다면, 혼자 판단하지 말고 첫 조사 전에 대응 방향부터 신중하게 점검하기를 바란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등 일부 정보를 각색하였습니다.)
로톡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콘텐츠 내용에 대한 무단 복제 및 전재를 금지하며, 위반 시 민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