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죄명이 붙었다고 같은 사건은 아니다
절도 혐의 두 건, 하나는 알리바이로 다투고 하나는 피해 회복으로 마무리하기까지
인정할 것과 다툴 것의 경계를 나눈 사건, 검사 출신 변호사가 직접 겪은 이야기
"변호사님, 저 전과 생기는 건가요?"
그가 내 앞에서 처음 꺼낸 말이었다.
두 손은 무릎 위에서 꼭 쥐어져 있었다.
처벌의 무게보다, 자신에게 기록이 남는다는 사실 자체를 더 두려워하는 얼굴이었다.
그는 두 아이를 키우는 H씨였다.
법을 어겨 조사를 받는 일은 생애 처음이었다.
그런 그가 절도 혐의로 경찰서 출석요구서를 받아 들고 내 사무실을 찾아왔다.
사건 내용은 이러했다.
H씨는 동네 상점에서 반지와 팔찌를 가방에 넣었다. 피해 금액은 수만 원 수준이었다.
그런데 기록을 받아 읽어보니 혐의는 한 건이 아니었다.
다른 날짜의 절도 혐의가 하나 더 붙어 있었다.
H씨는 뒤엣것에 대해서는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고 했다.
하나의 파일에 담겼다고 같은 사건은 아니다
나는 H씨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수사기록에는 두 건이 같은 죄명으로, 같은 파일에 함께 묶여 있습니다.
그렇다고 두 건을 한 덩어리로 대응하면 안 됩니다.
전부 인정하면 하지 않은 일까지 떠안게 되고, 전부 부인하면 인정하는 부분의 진정성까지 의심받습니다.
두 건을 갈라서, 각각에 맞는 방식으로 대응해야 합니다."
인정하는 한 건은 피해를 회복하고 사건을 가장 가벼운 절차로 마무리하는 방향으로 잡았다.
부인하는 한 건은 객관적인 자료로 다투기로 했다.
방향이 갈리는 만큼 첫 조사에서의 진술도 정확해야 했다.
어느 날짜의 어떤 행위를 인정하고 어떤 행위를 부인하는지, 경계를 흐리지 않고 진술하도록 함께 정리했다.
지도 위의 두 지점은 같은 시각에 겹칠 수 없다
부인하는 혐의부터 살펴보았다.
수사기관이 제시한 근거는 상점 CCTV 영상 속 인물의 인상착의가 H씨와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영상이 무엇을 말하는지보다, 그날 H씨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먼저 확인했다.
H씨는 그 날짜에 다른 지역에 있었다고 했다.
말로만 남은 기억은 증거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기록으로 남는 흔적을 찾았다.
하이패스 통행 기록이 있었다. H씨의 차량이 그날 고속도로를 이용해 먼 지역으로 이동한 기록이었다.
카드 결제 내역도 있었다. 같은 날 그 지역의 매장에서 결제한 기록이었다.
나는 통행 시각과 결제 시각을 지도 위의 이동 경로에 얹어 정리했다.
두 지점 사이의 거리와 이동에 걸리는 시간을 계산하면, H씨가 그 시각에 상점에 있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검사로 일하던 시절, 나는 인상착의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올라온 기록을 적지 않게 보았다.
닮았다는 인상은 출발점이 될 수는 있어도, 그것만으로 사람을 특정하기에는 약하다.
시간과 위치가 남긴 객관적인 기록은 인상보다 훨씬 단단하다.
의견서에 이 자료들을 정리해 제출했고, 이 부분 혐의는 더 이상 문제되지 않았다.
인정하는 한 건에서 가장 먼저 한 일
남은 한 건은 다투지 않았다.
H씨는 조사 초기부터 자신이 한 일을 숨기지 않고 인정했다.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피해 회복이었다.
변호인을 통해 상점 측에 연락했고, 피해 금액을 전액 변제했다.
사과의 뜻도 함께 전했다. H씨가 직접 찾아가 사과하고 싶어 했지만, 그 부분은 변호인을 통해 진행하도록 했다.
피해자가 부담을 느끼지 않는 방식이어야 사과가 사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상점 측은 H씨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혀주었다.
그 위에 나머지 사정을 정리해 의견서로 제출했다.
H씨에게 아무런 범죄 전력이 없다는 점을 담았다.
피해 금액이 크지 않고, 미리 계획한 정황도 없었다는 점을 정리했다.
조사 초기부터 사실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 반성이 말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함께 적었다.
범행 당시 H씨가 처해 있던 개인적인 사정도 자료와 함께 소명했다.
다만 그 내용은 H씨의 사생활에 해당하므로 이 글에는 적지 않는다.
결과, 그리고 남는 것과 남지 않는 것
이 사건은 정식 재판으로 가지 않고 마무리되었다.
H씨는 결과를 알게 된 날 짧은 문자를 보내왔다.
"아이들한테 부끄럽지 않아도 되겠네요."
나는 그 문장을 한참 바라보았다.
다만 분명히 해두고 싶은 것이 있다.
형이 선고되지 않았다고 해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 되지는 않는다.
수사를 받은 기록 자체는 남는다. 그리고 H씨가 한 행동이 잘못이 아니었다는 뜻도 아니다.
H씨가 얻은 것은 면죄부가 아니라,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킬 기회다.
절도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됐다면, 이것부터 확인하라
① 인정할 부분과 다툴 부분의 경계부터 정하라.
여러 건이 한 사건으로 묶여 오는 경우가 많다.
전부 인정하거나 전부 부인하는 대응은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날짜와 행위 단위로 기록을 확인한 뒤 조사에 임해야 한다.
② 기억에 의존하지 말고 기록을 찾아라.
카드 결제 내역, 교통 이용 기록, 통신 기록, 진료 기록처럼 시간과 위치가 남는 자료가 있다.
시간이 지나면 조회가 어려워지는 자료도 있으므로 빨리 확보해야 한다.
③ 피해 회복은 빠르되, 접촉 방식은 신중하게 하라.
피해가 회복되었는지는 이후 절차에서 중요하게 고려되는 사정이다.
다만 당사자가 직접 찾아가거나 반복해 연락하면 다른 문제로 번질 수 있다.
④ 물건을 임의로 처분하거나 돌려놓지 마라.
가져온 물건을 몰래 되돌려 놓거나 버리는 행동은 오히려 불리한 정황이 될 수 있다.
물건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변호인과 상의해야 한다.
⑤ "금액이 적으니 괜찮겠지"라고 생각하지 마라.
피해 금액이 적더라도 절도죄가 성립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반복되거나 여러 건이 함께 문제되면 판단은 달라진다.
⑥ 사건이 가볍게 마무리되더라도 이후 관리가 필요하다.
같은 상점이나 유사한 행위가 다시 문제되면 이전 사건의 처리 전력이 함께 고려된다.
절차가 끝난 뒤의 행동이 가장 중요하다.
닮았다는 인상과, 기록이 말하는 사실
이 사건을 마치고 나서 다시 확인한 것이 있다.
사람은 사건을 통째로 보려 하지만, 절차는 행위 하나하나를 따로 본다는 것이다.
인정할 것을 인정하는 일과 하지 않은 것을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일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경계가 분명할 때 두 이야기 모두가 신뢰를 얻는다.
그리고 그 경계를 세우는 것은 주장이 아니라 기록이다.
절도 혐의로 조사 연락을 받았다면, 혼자 해명하려 하지 말고 첫 조사 전에 대응 방향부터 신중하게 점검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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