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서울대] 법무법인 도모 대표변호사 고준용입니다.
최근 전월세 계약 상담을 하다 보면, 보일러가 고장 나거나 누수가 생겼는데 집주인이 수리를 차일피일 미루자 세입자가 직접 업체를 불러 고치고 그 비용을 다음 달 월세에서 빼버리는 사례가 부쩍 늘고 있습니다.
상담 오시는 분들 중 상당수는 “집주인이 안 고쳐주니 내가 고치고 월세에서 빼면 그만이다”라고 생각하고 곧바로 실행에 옮깁니다. 그런데 막상 공제한 만큼 월세가 부족하다며 집주인이 “동의도 없이 마음대로 고친 비용을 왜 월세에서 빼느냐”고 문제 삼으면, 그 금액은 순식간에 연체 월세로 둔갑해 계약해지 통보나 명도소송으로 번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최근 대법원은 임대인의 수선의무 범위와 임차인의 비용상환청구권을 지출 시점과 하자의 정도에 따라 엄격히 구분해 판단하고 있습니다. 세입자가 “당연히 돌려받을 돈”이라 여기고 임의로 공제한 금액이라도, 요건을 갖추지 못하면 오히려 세입자에게 불리한 연체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아래에서는 세입자가 직접 수선하고 그 비용을 월세에서 공제할 수 있는 경우와, 그렇게 했다가 오히려 불리해지는 경우를 최근 판례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임대인이 고쳐야 할 하자인지부터 구분해야 합니다
사소한 파손은 세입자 부담이지만, 사용·수익을 방해할 정도라면 임대인의 수선의무입니다.
민법 제623조는 임대인이 목적물을 임차인에게 인도하고 계약존속 중 사용, 수익에 필요한 상태를 유지하게 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보일러·수도·전기 배선처럼 생활에 필수적인 설비가 고장 났다면, 원칙적으로 이를 고쳐야 하는 쪽은 세입자가 아니라 집주인입니다.
다만 모든 하자가 임대인의 수선의무 대상은 아닙니다. 전구가 나가거나 방충망이 살짝 찢어지는 정도처럼 세입자가 별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손쉽게 고칠 수 있는 사소한 파손이라면 임대인은 수선의무를 부담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그것을 고치지 않으면 계약 목적대로 사용·수익할 수 없는 정도라면, 임대인이 수선의무를 부담합니다.
임차 목적물에 파손 또는 장해가 생긴 경우 그것이 임차인이 별 비용을 들이지 아니하고도 손쉽게 고칠 수 있을 정도의 사소한 것이어서 임차인의 사용·수익을 방해할 정도의 것이 아니라면 임대인은 수선의무를 부담하지 아니하지만, 그것을 수선하지 아니하면 임차인이 계약에 의하여 정해진 목적에 따라 사용·수익할 수 없는 상태로 될 정도의 것이라면 임대인은 그 수선의무를 부담한다(대법원 1994. 12. 9. 선고 94다34692, 94다34708 판결).
임대차계약서에 “경미한 수선은 세입자가 부담한다”는 특약이 있더라도, 그 특약이 적용되는 범위는 통상 생길 수 있는 소규모 수선에 한정됩니다. 보일러 완전 교체, 누수 배관 공사, 창호 전체 교체처럼 목적물의 주요 구성부분에 대한 대규모 수선은 특약이 있어도 여전히 임대인이 부담합니다.
사소한 파손은 세입자 몫이지만, 사용·수익을 방해할 정도의 하자와 대규모 수선은 특약이 있어도 임대인의 수선의무입니다.
2. 통지 없이 곧바로 고치면 필요비 인정 자체가 흔들립니다
임대인에게 통지하고 상당한 기간을 준 뒤에도 방치했을 때만 직접 수선이 인정됩니다.
하자가 임대인의 수선의무 범위에 속한다고 해도, 세입자가 통보 한마디 없이 곧바로 업체를 불러 공사부터 진행하면 나중에 분쟁이 생겼을 때 불리해집니다. 실무에서는 세입자가 하자를 발견하면 먼저 임대인에게 문자나 내용증명 등으로 수선을 요구하고, 상당한 기간을 주었는데도 임대인이 이행하지 않을 때 비로소 세입자가 자력으로 수선하고 그 비용을 청구할 수 있다고 봅니다.
민법 제626조 제1항은 임차인이 임차물의 보존에 관한 필요비를 지출한 때에는 임대인에게 그 상환을 청구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보일러 수리비, 누수 배관 공사비처럼 목적물을 원래 상태로 보존하기 위해 꼭 필요한 비용이 여기에 해당하고, 뒤에서 볼 유익비와 달리 지출 즉시 청구할 수 있습니다.
임대인이 수선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목적물을 아예 쓸 수 없는 상태라면 차임 전부의 지급을 거절할 수 있고, 사용·수익에 부분적으로만 지장이 있는 상태라면 그 지장의 한도 내에서만 차임 지급을 거절할 수 있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입니다(대법원 1997. 4. 25. 선고 96다44778, 96다44785 판결). 직접 수선하고 비용을 청구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하자의 정도에 맞는 범위 내에서만 인정된다고 보면 됩니다.
따라서 수선을 진행하기 전 임대인에게 보낸 문자·통화 기록, 하자 상태를 찍은 사진, 견적서와 공사 완료 후 영수증을 순서대로 남겨 두어야 합니다. 이런 자료 없이 “집주인이 안 고쳐줘서 내가 고쳤다”는 주장만으로는 필요비 청구가 인정되기 어렵습니다.
통지와 상당한 기간 부여, 그리고 견적서·영수증 같은 객관적 자료가 있어야 필요비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3. 월세에서 빼는 상계는 필요비에서만 되고, 유익비는 다릅니다
필요비는 지출 즉시 상계할 수 있지만, 유익비는 임대차가 끝나야 청구할 수 있습니다.
필요비는 임차물을 원래 상태로 보존하기 위해 지출한 비용이고, 유익비는 임차물의 객관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지출한 비용입니다. 보일러 교체나 누수 수리비는 필요비에 해당하지만, 발코니 확장이나 이중창·중문 설치처럼 기존에 없던 편의시설을 추가하는 비용은 유익비로 분류됩니다.
민법 제626조 제2항에 따르면 유익비는 임대차가 종료할 때 그 가액의 증가가 현존하는 경우에 한해, 임대인의 선택에 따라 지출한 금액이나 증가액을 상환받을 수 있습니다. 즉 유익비는 계약이 끝나기 전에는 월세에서 미리 빼줄 것을 요구할 수 없고, 법원이 임대인의 청구로 상당한 상환 기간을 따로 정해줄 수도 있습니다.
필요비상환청구권처럼 이미 이행기가 도래한 채권이라면, 민법 제492조에 따라 세입자가 임대인에게 부담하는 월세 채무와 대등액에서 상계할 수 있습니다. 다만 상계는 민법 제493조에 따라 상대방에 대한 의사표시로 이루어져야 하므로, 아무 말 없이 월세를 적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이번 달 월세에서 수리비 얼마를 상계한다”는 뜻을 명확히 통지해야 상계로서 효력이 생깁니다.
또한 비용상환청구권은 민법 제654조가 준용하는 제617조에 따라 임대인이 목적물을 반환받은 날로부터 6개월 안에 행사해야 하므로, 이사를 나온 뒤에도 너무 오래 미뤄두면 청구권 자체가 사라질 수 있습니다.
지출 즉시 상계할 수 있는 것은 필요비뿐이고, 유익비는 임대차 종료 시 가액 증가가 남아 있어야만 청구할 수 있습니다.
4. 금액과 절차를 어기면 오히려 월세 연체로 몰릴 수 있습니다
임대인이 공제를 다투면 그 금액은 연체 월세로 취급되어 계약해지 사유가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세입자가 “이 정도면 필요비가 맞다”고 판단해 월세에서 뺐는데, 임대인이 “동의한 적 없다”, “그 정도 비용이면 과다하다”고 다투는 경우입니다. 세입자가 상계 요건을 제대로 입증하지 못하면, 공제한 금액은 그대로 미납 월세로 남게 됩니다.
주택이든 상가든 차임 연체액이 통상 3기(3개월분)에 이르면 임대인은 계약을 해지할 수 있습니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필요비를 정당하게 공제했다”고 생각한 금액이 몇 달치 누적되면, 뜻하지 않게 3기 연체 요건을 채워 계약해지·명도소송의 빌미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공사 비용이 시세보다 지나치게 높지 않은지, 실제로 지출한 금액인지를 견적서·세금계산서 등 객관적 자료로 뒷받침해야 합니다. 상당성이 인정되지 않는 부분은 필요비로 인정받지 못하고, 그만큼 연체로 남을 위험이 커집니다.
특히 계약서에 “퇴거 시 임차인이 일체 비용을 부담해 원상복구한다”는 특약이 있다면, 이는 유익비 상환청구권을 미리 포기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어 애초에 공제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5. 다툼이 커지면 절차는 이렇게 진행됩니다
임대차분쟁조정과 소송, 어느 쪽이든 자료 정리가 결과를 좌우합니다.
임대인과의 공제 분쟁이 대화로 풀리지 않으면 통상 ①내용증명으로 상환 또는 상계 의사를 명확히 통지 → ②관할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 또는 상가건물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 신청 → ③조정이 성립하지 않으면 관할 법원(수원 지역 임대차라면 수원지방법원)에 필요비·유익비 상환청구 소송을 제기하거나 임대인이 낸 명도소송에 응소 → ④승소가 확정되면 강제집행 절차의 순서로 진행됩니다.
만약 임대인이 먼저 “월세를 연체했다”며 계약해지를 통보하고 명도소송을 제기했다면, 세입자는 그 소송 안에서 필요비상환청구권을 항변이나 반소로 주장하며 상계를 다툴 수 있습니다. 이때도 결국 승패를 가르는 것은 통지·견적서·영수증 같은 객관적 자료입니다.
세입자가 직접 수선을 고민하고 있다면, 공사를 시작하기 전에 아래 순서로 먼저 점검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자가 세입자 과실 없이 생긴 것인지, 사소한 파손을 넘어 사용·수익을 방해하는 정도인지부터 확인합니다.
임대인에게 문자·내용증명 등으로 수선을 요구하고 상당한 기간을 주었는지, 그 기록이 남아 있는지 확인합니다.
공사 견적서·계약서·완료 후 영수증을 갖추어 비용의 필요성과 금액의 상당성을 입증할 수 있는지 확인합니다.
이 세 가지가 갖춰져 있다면 월세 공제(상계)를 주장하기가 한결 수월해지지만, 하나라도 빠져 있다면 임대차 분쟁에 밝은 변호사와 함께 공제 여부와 시점을 다시 판단해 보는 것이 안전합니다.
마치며
세입자 입장에서는 “당장 살아야 하니 내가 고치고 나중에 정산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일을 먼저 처리하는 경우가 많고, 그 사이 통지나 자료를 챙기지 못해 나중에 곤란해지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수선을 기다리다 지쳐 직접 고친 세입자 입장에서는 정당하게 쓴 돈을 왜 못 돌려받는지 억울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갑자기 월세가 줄어든 것을 알게 된 임대인 입장에서도 동의한 적 없는 공사비를 세입자 마음대로 공제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결국 어느 쪽이 옳은지는 하자의 정도, 통지 여부, 비용의 상당성이라는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달려 있습니다.
저는 임대차 분쟁에서 수선비를 청구하는 세입자와, 반대로 무단 공제를 다투는 임대인 양쪽 사건을 모두 다뤄온 변호사로서, 같은 상황이라도 자료를 어떻게 정리했는지에 따라 결론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을 여러 번 보아 왔습니다.
월세에서 얼마를 빼도 되는지 애매하다면, 공제하기 전에 확인하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결론이 달라질 수 있는 바로 그 시점에, 고준용 변호사를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보일러가 고장 났는데 집주인이 연락이 안 됩니다. 그냥 고치고 월세에서 빼도 되나요?
A. 연락이 안 된다는 사실 자체를 문자·통화 시도 기록으로 남긴 뒤 상당한 기간을 기다렸다는 점을 입증할 수 있다면 필요비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공사 전 견적서와 완료 후 영수증은 반드시 갖춰 두어야 합니다.
Q. 계약서에 “소소한 수선은 세입자 부담”이라는 특약이 있는데, 보일러 완전 교체도 세입자가 해야 하나요?
A. 아닙니다. 그런 특약은 통상 생기는 소규모 수선에 한정되고, 보일러 완전 교체처럼 목적물의 주요 구성부분에 대한 대규모 수선은 특약이 있어도 임대인이 부담합니다.
Q. 발코니를 확장했는데 이 비용도 월세에서 뺄 수 있나요?
A. 발코니 확장은 유익비에 해당해 지출 즉시 상계할 수 없습니다. 임대차가 종료될 때 가액 증가가 남아 있는 경우에 한해 임대인의 선택에 따라 상환받을 수 있습니다.
Q. 월세에서 수리비를 뺐더니 집주인이 연체라며 계약해지를 통보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통지·견적서·영수증 등 필요비 지출을 입증할 자료를 정리해 상계 의사표시가 정당했다는 점을 주장해야 합니다. 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 조정이나 소송에서 항변·반소로 다툴 수 있습니다.
Q. 이사 나온 지 한참 지났는데 그때 쓴 수리비를 지금 청구할 수 있나요?
A. 비용상환청구권은 임대인이 목적물을 반환받은 날로부터 6개월 안에 행사해야 하므로, 그 기간이 지났다면 청구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Q. 원상복구 특약이 있으면 수리비도 못 받나요?
A. 퇴거 시 일체 비용을 부담해 원상복구하기로 한 특약은 유익비 상환청구권을 미리 포기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다만 필요비 청구권까지 당연히 포기한 것은 아니므로 특약의 문구를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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