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 건물이 담보신탁으로 넘어가면 등기부상 소유자 명의는 신탁회사(수탁자)로 바뀌지만, 세입자 입장에서는 여전히 원래 건물주와 계약하고 임대료도 그쪽에 내는 경우가 많아 혼란스럽습니다. 문제는 그 원래 건물주가 어느 날 신탁원부에 적힌 약정을 근거로 자신에게 여전히 명도청구 권한이 있다며 세입자를 내보내려 할 때 벌어집니다. 그러나 신탁으로 소유권이 완전히 넘어간 이상, 원래 건물주가 그 약정만으로 명도를 청구할 수 있는지는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이 글에서는 신탁된 상가 건물에서 원래 건물주의 명도청구가 왜 막히는지, 세입자는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 짚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신탁된 상가 건물, 소유권은 누구에게 있나
신탁법 제2조는 신탁을 "위탁자가 수탁자에게 특정 재산을 이전하거나 담보권 설정 등 처분을 하고, 수탁자로 하여금 일정한 목적을 위하여 그 재산을 관리·처분·운용하게 하는 법률관계"로 정의합니다. 상가 건물을 담보로 대출을 받으면서 그 건물을 신탁회사에 맡기는 담보신탁 구조가 실무에서 흔한데, 이 경우 등기부상 소유자 명의는 위탁자(원래 건물주)에서 수탁자(신탁회사)로 완전히 넘어갑니다. "명의만 잠깐 옮겨둔 것"이 아니라 법적으로 소유권 자체가 이전되는 것입니다.
신탁법 제4조 제1항은 등기할 수 있는 재산권에 관하여 신탁 등기를 하면 그 재산이 신탁재산에 속한다는 사실을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있다고 정하고, 신탁법 제31조는 수탁자가 신탁재산에 대한 권리와 의무의 귀속주체로서 관리·처분 등 필요한 모든 행위를 할 권한을 가진다고 정합니다. 신탁계약으로 이 권한을 제한하거나 일부를 위탁자에게 남겨두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런 별도 약정이 없는 한 원칙은 분명합니다. 신탁이 설정된 순간부터 그 부동산에 대한 권리의 귀속주체는 수탁자이고, 원래 건물주는 신탁계약이 별도로 정한 범위 안에서만 그 부동산에 관여할 수 있습니다.
신탁이 설정되면 상가 건물의 소유권은 대내외적으로 완전히 수탁자에게 넘어가고, 위탁자는 신탁계약이 별도로 정한 범위 안에서만 그 부동산에 관여할 수 있다.
신탁원부에 적힌 특약, 세입자에게도 효력이 있는 이유
신탁원부란 등기관이 신탁등기를 할 때 위탁자·수탁자·수익자의 인적사항, 신탁의 목적, 신탁재산의 관리방법, 그 밖의 신탁 조항 등을 기재한 서면입니다. 부동산등기법 제81조 제3항은 이 신탁원부를 등기기록의 일부로 본다고 명시하고 있어, 등기부를 열람·발급받으면 누구나 신탁원부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고 그 기재 내용은 공시된 등기사항으로서 제3자에게도 대항력을 가집니다.
이 대항력이 실제로 문제 된 사건이 대법원 2022. 2. 17. 선고 2019다300095, 2019다300101 판결입니다. 오피스텔을 담보신탁한 사안에서 신탁계약에 "위탁자는 수탁자의 사전 승낙을 받아 위탁자 명의로 신탁부동산을 임대한다"는 조항이 있었고 이 내용이 신탁원부에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대법원은 이 약정이 신탁원부에 기재되어 임차인에게도 대항할 수 있으므로,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는 소유자인 수탁자가 아니라 계약상 임대인인 위탁자에게 있고, 나중에 그 부동산을 취득한 사람도 임대인 지위를 승계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판결은 오피스텔에 관한 주택임대차보호법 사안이지만,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제3조 역시 대항력(제1항)과 임대인 지위 승계(제2항)에 관하여 사실상 같은 구조를 취하고 있어, 신탁된 상가 건물에도 같은 법리가 그대로 적용된다고 보는 것이 실무의 일반적인 이해입니다.
원래 건물주가 임대인 지위를 인정받는 경우 — 신탁 이후 새로 체결된 임대차
위 판례가 보여주듯, 원래 건물주가 신탁 설정 이후에도 계약상 임대인 지위를 유지하는 경우가 실제로 있습니다. 다만 이는 다음 요건이 모두 갖춰졌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신탁원부에 "위탁자 명의로 임대할 수 있다"는 취지의 특약이 기재되어 있을 것.
해당 임대차 건에 대해 실제로 수탁자의 사전 승낙을 받았을 것(승낙서 등으로 확인 가능).
그 임대차가 신탁 설정 이후에 새로 체결된 계약일 것.
이 세 가지가 갖춰지면 원래 건물주는 그 임대차에 관한 한 계약상 임대인으로 인정받고, 보증금 반환의무도 원래 건물주가 부담합니다. 그러나 이때 원래 건물주가 갖는 것은 어디까지나 임대차계약의 당사자라는 채권적 지위일 뿐, 소유자로서 갖는 물권적 지위가 아니라는 점이 다음 항목에서 결정적인 차이를 만듭니다.
그래도 명도청구는 별개다 — 물권적 청구권과 채권적 청구권의 구분
민법 제213조는 소유물반환청구권을 "소유자는 그 소유에 속한 물건을 점유한 자에 대하여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고 정합니다. 이 청구권의 주체는 오직 소유자뿐입니다. 신탁이 설정된 이상 소유자는 수탁자이므로, 원래 건물주는 이 물권적 청구권을 애초에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 있지 않습니다.
반면 임대차 계약이 유효하게 종료된 경우(계약기간 만료,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제10조 제1항 제1호가 정한 3기 차임 연체 등 정당한 해지사유 발생 등), 계약당사자인 임대인은 임대차 종료에 따른 목적물반환청구라는 채권적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이 채권적 청구권은 소유자가 아니어도 계약당사자이기만 하면 행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물권적 청구권과 다릅니다. 다만 이 채권적 청구권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적법한 임대인 지위를 가진 그 임대차'에 대해서만 성립한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소유권에 기한 명도청구는 수탁자만 할 수 있고, 원래 건물주가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임대인인 임대차계약이 적법하게 종료됐을 때의 목적물반환청구뿐이다 — 이 둘을 혼동하면 명도청구의 근거 자체가 무너진다.
신탁 "이전"부터 있던 세입자에게는 통하지 않는 이유
여기서 실제로 많이 벌어지는 함정이 드러납니다. 세입자가 신탁 등기가 이루어지기 전에 이미 건물의 인도와 사업자등록 신청을 마쳐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제3조 제1항의 대항력을 갖추고 있었다면, 신탁등기와 동시에 "임대할 권리를 승계한 자"인 수탁자가 같은 조 제2항에 따라 법률상 당연히 임대인 지위를 승계합니다. 즉 원래 건물주는 그 순간부터 이 임차인에 대해서는 더 이상 임대인이 아니게 됩니다.
이후 원래 건물주가 신탁원부에 적힌 "위탁자 명의로 임대차를 체결할 수 있다"는 특약을 근거로 이 임차인에게 명도를 청구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 특약은 신탁 설정 이후 새로 체결되는 임대차에 관한 것이지, 신탁 이전부터 존재해 이미 법정승계로 임대인 지위가 넘어간 기존 임차인에게는 적용될 여지 자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원래 건물주는 이 임차인에 대해 계약당사자도, 소유자도 아니어서 명도청구를 할 당사자적격 자체가 없는 상태에 놓입니다.
위탁자와 수탁자가 내부적으로 "기존 임대차도 위탁자가 계속 관리한다"고 사적으로 합의했더라도 결론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제15조는 이 법 규정에 위반되어 임차인에게 불리한 약정의 효력을 부정하는 편면적 강행규정이므로, 임차인의 동의 없이 이미 발생한 법정승계 효과를 위탁자·수탁자 사이의 사적 합의만으로 뒤집을 수는 없습니다.
세입자가 확인해야 할 것 — 신탁원부와 대항력 취득 시점
명도청구를 받았거나 앞으로의 위험을 미리 점검하려는 세입자라면 다음을 순서대로 확인해야 합니다.
등기부등본 갑구·을구에서 신탁 등기 여부와 신탁등기 접수일자를 확인.
관할 등기소에서 신탁원부를 별도로 발급받아 "위탁자 명의 임대 가능" 특약과 수탁자 사전승낙 요건 여부를 확인.
자신의 사업자등록 신청일(대항력 발생일)과 신탁등기 접수일의 선후관계를 직접 비교.
임대차계약서상 임대인 명의가 위탁자인지 수탁자인지, 계약체결일이 신탁등기 전인지 후인지 확인.
대항력 취득 시점이 신탁등기보다 앞선다면 임대인 지위는 이미 수탁자에게 법정승계된 것이므로, 원래 건물주 명의로 온 명도청구 자체의 근거가 약합니다. 반대로 신탁등기 이후에 계약을 체결했고 수탁자의 사전승낙까지 받은 정황이 확인된다면, 원래 건물주가 계약상 임대인으로서 정당한 해지사유를 근거로 명도를 구하는 것 자체는 가능하다는 점도 함께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명도소송이 들어왔을 때 세입자가 낼 수 있는 항변
원고가 원래 건물주(위탁자)인 명도소송이라면, 먼저 원고가 소유자도 아니고 자신에 대한 계약상 임대인도 아니라는 점을 들어 당사자적격 흠결을 항변할 수 있는지부터 검토해야 합니다. 이를 뒷받침하려면 등기부등본과 신탁원부, 자신의 사업자등록 신청일을 증명하는 자료를 함께 제출해 대항력 취득시점이 신탁등기보다 앞선다는 사실을 소명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대항력이 인정되어 계약이 유지되는 상황이라면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제10조의 계약갱신요구권도 함께 검토할 수 있습니다. 전체 임대차기간이 10년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정당한 사유 없는 갱신 거절에 맞설 수 있는 권리이므로, 명도청구에 대응하는 것과 별개로 갱신요구를 적극적으로 행사해 두는 것이 안전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상가 건물이 신탁된 걸 몰랐는데, 이런 경우도 보호받을 수 있나요?
A. 신탁 여부를 몰랐더라도 건물의 인도와 사업자등록 신청으로 대항력을 갖춘 시점이 신탁등기보다 앞선다면 법률상 보호를 받습니다. 신탁원부는 등기기록의 일부로 공시되므로, 몰랐다는 사정 자체가 대항력 판단에 영향을 주지는 않습니다.
Q. 신탁원부는 등기부등본만 떼면 같이 나오나요?
A. 일반 등기부등본에는 신탁 등기 사실과 신탁원부 번호까지만 표시되고, 신탁원부 자체의 상세 내용은 관할 등기소에서 별도로 신청해 발급받아야 확인할 수 있습니다.
Q. 원래 건물주와 계약했는데 수탁자의 사전승낙을 받았는지 세입자가 어떻게 확인하나요?
A. 신탁원부에 사전승낙이 요건으로 기재되어 있다면, 계약 체결 당시 원래 건물주에게 수탁자 명의의 승낙서를 요구해 확인해 두는 것이 가장 확실합니다. 이미 계약한 뒤라면 신탁원부 발급과 함께 수탁자에게 직접 승낙 여부를 문의할 수 있습니다.
Q. 신탁 이후에 계약했다면 세입자는 불리한 입장인가요?
A. 신탁 이후 계약이라도 신탁원부에 위탁자 명의 임대 특약이 있고 수탁자 사전승낙까지 받은 계약이라면, 임대인은 원래 건물주이고 그 임대차 자체는 유효하게 보호됩니다. 다만 이 경우 임대인 지위가 수탁자가 아닌 위탁자에게 있다는 점을 계약 당시 분명히 확인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Q. 수탁자가 직접 명도청구를 하면 세입자는 방어할 방법이 없나요?
A. 수탁자는 소유자이므로 원칙적으로 명도청구권이 있지만, 세입자의 대항력 취득시점이 신탁등기보다 앞선다면 수탁자도 임대차 관계를 그대로 인수한 상태이므로 정당한 해지사유 없이는 명도를 구할 수 없습니다. 계약갱신요구권 행사 여부와 해지사유 존재 여부를 함께 다투어야 합니다.
Q. 명도소송에서 진다면 언제까지 건물을 비워야 하나요?
A. 판결이 확정되면 통상 판결에서 정한 기한 또는 강제집행 절차에 따른 시점까지 명도해야 하며, 구체적 기한은 사안마다 다릅니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차임 연체가 누적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도 향후 대응에 중요합니다.
맺음말
신탁된 상가 건물에서 원래 건물주가 신탁원부의 특약만을 근거로 세입자에게 명도를 청구할 수 있는지는, 결국 그 임차인의 대항력 취득 시점이 신탁등기보다 앞서는지 뒤서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신탁 이전부터 대항력을 갖춘 임차인이라면 임대인 지위는 이미 법률상 수탁자에게 넘어가 있어, 원래 건물주에게는 소유자로서의 물권적 청구권도 계약당사자로서의 채권적 청구권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반대로 신탁 이후 수탁자의 사전승낙을 받아 위탁자 명의로 새로 체결된 계약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으므로, 명도청구를 받았을 때는 등기부와 신탁원부부터 확인해 자신이 어느 쪽에 해당하는지부터 정리해 보시길 권합니다. 수원을 비롯한 경기남부 지역에서도 담보신탁 형태로 운영되는 상가 건물이 적지 않은 만큼, 이런 통보를 받으면 서둘러 대응하기보다 권리관계부터 차분히 점검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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