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에서 나온 매연이나 폐수, 화학물질 유출로 건강이나 재산에 피해를 입은 주민들은 흔히 정확히 어떤 물질이 원인이었는지, 사업장에 과실이 있었는지부터 자신이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환경오염피해 배상책임 및 구제에 관한 법률(실무에서 흔히 환경오염피해구제법이라 불립니다)은 이런 통념과 달리 사업자의 고의·과실을 따지지 않는 무과실책임을 원칙으로 삼고, 나아가 인과관계까지 일정한 요건 아래 추정해 피해자의 입증 부담을 크게 덜어줍니다. 문제는 이 두 제도가 정확히 어떤 요건에서 작동하고, 사업자 쪽이 어떻게 반박해 오는지를 모른 채 막연히 "법이 있으니 배상받겠지"라고만 생각하다가 정작 소송에서 필요한 자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이 글에서는 무과실책임과 인과관계 추정이 실제로 어떤 요건과 절차로 작동하는지, 배상을 받기까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짚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환경오염피해구제법이 적용되는 시설과 피해의 범위
공장의 매연이나 폐수, 화학물질 유출로 인근 주민이 피해를 입었을 때 근거가 되는 법률은 환경오염피해 배상책임 및 구제에 관한 법률입니다. 이 법 제2조 제1호는 "환경오염피해"를 시설의 설치·운영으로 인한 대기오염·수질오염·토양오염·해양오염·소음·진동,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원인으로 다른 사람의 생명·신체(정신적 피해를 포함)와 재산에 발생한 피해로 정의합니다. 다만 해당 사업자 자신이 입은 피해나 그 사업자의 종업원이 업무상 입은 피해는 이 법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시설"은 같은 조 제2호에 따라 해당 사업장·창고·설비뿐 아니라 장소 이동을 수반하는 기계·기구·차량까지 포함하는 넓은 개념이고, "사업자"는 그 시설에 대한 사실적 지배관계에 있는 소유자·설치자·운영자를 뜻합니다.
이 법이 적용되는 시설의 범위도 정해져 있습니다. 제3조는 대기오염물질배출시설, 폐수배출시설, 지정폐기물 처리시설, 건설폐기물 처리시설, 가축분뇨 배출시설, 토양오염관리대상시설, 유해화학물질 취급시설, 소음·진동배출시설 등을 열거하고 있어, 인허가나 신고를 받아 운영하는 일반적인 공장·사업장 상당수가 여기에 포함됩니다. 반대로 이런 인허가·신고 대상 시설에 해당하지 않는 소규모 사업장에서 발생한 피해라면 이 법이 아니라 민법상 일반 불법행위 법리로 다퉈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피해 원인이 된 시설이 이 법의 적용대상인지부터 확인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대기오염물질배출시설 — 공장 굴뚝 등에서 매연·분진·유해가스를 배출하는 시설
폐수배출시설·폐수무방류배출시설 — 폐수를 하천이나 바다로 배출하는 시설
지정폐기물 처리시설·건설폐기물 처리시설 — 유해 폐기물을 처리·보관하는 시설
유해화학물질 취급시설 — 화학물질관리법상 주요취급시설이나 유해화학물질 영업시설
토양오염관리대상시설·소음·진동배출시설 — 토양오염 우려시설, 공장·공사장의 소음·진동 배출시설
이 법의 무과실책임과 인과관계 추정은 아무 피해에나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제3조가 열거한 인허가·신고 대상 시설로 인한 피해에 한해 작동한다.
사업자의 무과실책임 — 왜 과실을 따지지 않는가
이 법의 핵심은 제6조 제1항입니다. "시설의 설치·운영과 관련하여 환경오염피해가 발생한 때에는 해당 시설의 사업자가 그 피해를 배상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어, 사업자의 고의나 과실이 있었는지를 요건으로 삼지 않습니다. 민법상 일반 불법행위 손해배상은 가해자의 고의·과실을 피해자가 입증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 조항은 그 요건 자체를 빼버려 사업자가 아무리 방지시설을 갖추고 관리 매뉴얼을 지켰다고 주장해도 원칙적으로 배상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듭니다. 법이 정한 유일한 면책 사유는 전쟁·내란·폭동이나 천재지변, 그 밖의 불가항력으로 피해가 발생한 경우뿐입니다.
같은 조 제2항은 시설 운영이 중단된 뒤에도 그 중단 전 상황으로 인해 피해가 발생했다면, 현재 그 부지를 소유하거나 운영하는 자가 아니라 당시 시설을 운영했던 사업자가 배상책임을 지도록 합니다. 예를 들어 공장이 조업을 멈춘 지 여러 해가 지난 뒤, 과거 지하에 매립되거나 스며든 오염물질이 지하수를 오염시켜 인근 주민에게 피해가 발생했다면, 폐업 이후 부지를 사들인 새 소유자가 아니라 오염을 유발한 당시 사업자를 상대로 배상을 청구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피해자로서는 현재 그 자리에 있는 사업체가 누구인지가 아니라, 오염이 발생한 시점에 그 시설을 실제로 운영한 자가 누구였는지를 등기부·인허가 이력·법인등기 변경사항 등으로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인과관계 추정 — 상당한 개연성이란 무엇인가
무과실책임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피해자가 시설과 피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과학적으로 완벽하게 입증해야 한다면, 배출된 물질의 확산 경로나 체내 축적 기전을 개인이 밝혀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9조 제1항은 "시설이 환경오염피해 발생의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볼 만한 상당한 개연성이 있는 때에는 그 시설로 인하여 환경오염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정합니다. 엄밀한 인과관계 증명이 아니라 개연성만 보이면 인과관계가 있는 것으로 취급된다는 점에서, 이는 피해자의 입증 부담을 크게 낮추는 규정입니다.
다만 "상당한 개연성"이 막연히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제9조 제2항은 그 판단 기준으로 시설의 가동과정, 사용된 설비, 투입되거나 배출된 물질의 종류와 농도, 기상조건, 피해발생의 시간과 장소, 피해의 상태와 그 밖에 피해발생에 영향을 준 사정을 열거합니다. 예를 들어 공장이 특정 유해물질을 배출한 시기와 인근 주민에게 관련 증상이 나타난 시기가 겹치고, 풍향이나 수계상 그 물질이 주민 거주지까지 도달할 수 있는 위치 관계가 확인된다면 상당한 개연성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반대로 배출 시점과 피해 발생 시점 사이에 상당한 시차가 있거나, 지리적으로 오염물질이 도달하기 어려운 위치라면 개연성 인정이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추정이 깨지는 경우 — 사업자의 반증
인과관계 추정은 절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제9조 제3항은 환경오염피해가 다른 원인으로 발생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거나, 사업자가 환경오염피해 발생의 원인과 관련된 환경·안전 관계 법령 및 인허가조건을 모두 준수하고 환경오염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노력하는 등 제4조 제3항에 따른 책무를 다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면 추정이 배제된다고 정합니다. 즉 사업자는 단순히 "우리는 배출허용기준을 지켰다"는 정도의 소명만으로는 부족하고, 관계 법령과 인허가조건을 모두 준수했고 예방을 위해 실제로 노력했다는 점까지 함께 증명해야 추정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이 반증 요건이 오히려 유리한 지렛대가 됩니다. 사업장 인허가 조건 중 하나라도 어긴 정황, 배출허용기준을 초과한 이력, 관계 행정기관의 시정명령이나 과태료 처분 이력이 확인되면 사업자의 반증은 성립하지 않고 추정은 그대로 유지됩니다. 따라서 소송을 준비하는 단계에서는 사업장의 인허가 내역과 환경관리 이력, 관할 지방환경관서나 지방자치단체의 단속·행정처분 자료를 정보공개청구 등을 통해 확보해 두는 작업이 실질적으로 승패를 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배상책임한도와 한도가 사라지는 세 가지 경우
제7조는 사업자의 배상책임에 2천억원의 범위에서 시설의 규모와 발생할 피해의 결과 등을 고려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한도를 두고 있습니다. 대형 사고라도 사업자의 존속 자체를 위협하지 않도록 한도를 설정한 것인데, 피해 규모가 크면 이 한도가 오히려 피해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조항은 세 가지 예외를 함께 정해 두었고, 이 예외에 해당하면 한도 자체가 적용되지 않아 사업자가 피해 전액을 배상해야 합니다.
환경오염피해가 사업자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발생한 경우
사업자가 안전관리기준을 준수하지 않거나 배출허용기준을 초과해 배출하는 등 관계 법령을 준수하지 않은 경우
사업자가 피해의 확산방지 등 방제를 위한 적정한 조치를 하지 않은 경우
실무적으로는 배출허용기준 초과 여부가 가장 자주 다투어지는 지점입니다. 관할 지방환경관서의 단속 결과나 사업장의 자가측정 기록에서 배출허용기준을 초과한 사실이 확인되면, 피해 규모가 아무리 크더라도 사업자는 배상책임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전액을 배상해야 합니다. 따라서 피해자로서는 배상책임한도에 미리 겁먹기보다, 사업장의 법령 준수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부터 밟는 편이 실익이 큽니다.
여러 사업장이 얽힌 경우 — 연대책임과 구상권
산업단지처럼 여러 공장이 밀집한 지역에서는 어느 사업장의 배출물질이 실제 피해의 원인인지 특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상황을 위해 제10조는 "환경오염피해를 발생시킨 사업자가 둘 이상인 경우에 어느 사업자에 의하여 그 피해가 발생한 것인지를 알 수 없을 때에는 해당 사업자들이 연대하여 배상하여야 한다"고 정합니다. 피해자로서는 굳이 원인을 제공한 특정 사업장 하나를 정확히 지목하지 못하더라도, 개연성이 있는 인근 사업자 전체를 상대로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사업자들 사이의 내부 정산 문제는 제11조의 구상권으로 해결됩니다. 다른 사업자의 시설로 인한 피해를 자신이 먼저 배상한 사업자는 실제 원인을 제공한 시설의 사업자에게 구상할 수 있고, 시설에 사용된 자재나 역무 제공자에 대해서는 그 제공자에게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있을 때에만 구상이 가능합니다. 이 구조는 피해자의 배상 확보를 우선하고, 누가 실제로 얼마를 부담할지는 사업자들 사이에서 사후에 정리하도록 설계된 것이어서, 피해자가 원인 규명 지연으로 배상 자체를 못 받는 상황을 막아줍니다.
소송 준비 — 정보청구권, 소멸시효, 환경책임보험
피해배상청구권의 성립과 범위를 확정하려면 시설의 가동과정이나 배출 물질 정보가 필요한데, 이런 자료는 대부분 사업자만 갖고 있습니다. 제15조의 정보청구권은 피해자가 사업자에게 시설의 가동과정·투입 및 배출 물질 관련 정보의 제공이나 열람을 청구할 수 있도록 정하고, 사업자가 영업상 비밀 등을 이유로 이를 거부하면 피해자는 기후에너지환경부장관에게 정보 제공 또는 열람 명령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사업자가 임의로 자료를 내주지 않는다고 해서 소송을 포기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배상청구권을 언제까지 행사해야 하는지는 이 법에 별도 규정이 없어, 제5조 제1항에 따라 민법의 규정을 따릅니다. 민법 제766조에 따라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불법행위가 있었던 날로부터 10년이 지나면 청구권이 시효로 소멸하므로, 피해를 인지한 시점을 기록해 두고 그로부터 3년을 넘기지 않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아울러 제17조는 특정대기유해물질 배출시설, 특정수질유해물질 배출시설, 지정폐기물 처리시설, 주요 유해화학물질 취급시설 등 일정 시설의 사업자에게 환경책임보험 가입을 의무화하고 있어, 사업자의 자력이 부족한 경우에도 보험을 통해 실제 배상을 받을 여지가 있는지 함께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공장 매연으로 호흡기 질환이 생겼는데, 정확히 어떤 물질 때문인지 제가 증명해야 하나요?
A. 인과관계 추정 규정이 있어 상당한 개연성만 보이면 되고, 특정 물질을 화학적으로 정확히 특정해 인과관계를 완벽히 증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개연성 판단을 위해서는 시설의 가동과정, 배출 물질의 종류·농도, 피해발생 시기와 장소 등 관련 자료를 최대한 확보해 두는 것이 유리합니다.
Q. 공장이 배출허용기준을 지켰다고 주장하면 배상을 못 받나요?
A. 배출허용기준 준수 사실만으로 인과관계 추정이 자동으로 배제되지는 않습니다. 사업자는 관계 법령과 인허가조건을 모두 준수했고 예방을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까지 증명해야 하며, 그 사실이 증명되지 않으면 추정은 그대로 유지됩니다.
Q. 공장이 이미 폐업했는데도 배상받을 수 있나요?
A. 제6조 제2항에 따라 시설 운영 중단 전의 상황으로 발생한 피해라면 과거 그 시설을 운영했던 사업자가 배상책임을 집니다. 다만 그 사업자의 소재나 자력 확보가 관건이므로, 폐업 전 환경책임보험 가입 이력이 있는지 함께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Q. 여러 공장이 밀집한 곳이라 어느 공장에서 배출된 물질인지 특정이 안 되는데 소송이 가능한가요?
A. 제10조의 연대책임 규정 덕분에 특정 사업자를 정확히 지목하지 못하더라도, 원인 제공 가능성이 있는 사업자들에게 연대하여 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사업자들 사이의 책임 비율은 이후 구상권 절차에서 정리됩니다.
Q. 손해배상은 언제까지 청구해야 하나요?
A. 이 법에는 별도의 소멸시효 규정이 없어 민법 제766조가 그대로 적용됩니다.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불법행위가 있었던 날로부터 10년 안에 청구권을 행사해야 시효 소멸을 피할 수 있습니다.
Q. 배상금액에 상한이 있다고 들었는데 큰 피해는 다 배상받지 못하나요?
A. 원칙적으로 2천억원 범위 내에서 배상책임한도가 정해져 있지만, 사업자의 고의·중대한 과실이나 관계 법령 위반, 방제조치 미이행이 확인되면 한도가 적용되지 않아 피해 전액을 배상받을 수 있습니다.
맺음말
환경오염피해구제법은 사업자의 무과실책임과 인과관계 추정이라는 두 축으로 피해자의 입증 부담을 크게 낮춰 놓은 법률입니다. 다만 이 두 제도 모두 아무 조건 없이 자동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시설이 이 법의 적용대상인지, 상당한 개연성을 뒷받침할 자료가 얼마나 구체적인지, 사업자의 반증이 요건을 갖췄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배상책임한도나 연대책임, 소멸시효처럼 세부 조항 하나하나가 실제 배상액과 청구 가능 여부를 좌우하므로, 막연히 "법이 있으니 배상받겠지"라고 생각하기보다 초기 단계에서부터 관련 자료를 체계적으로 모아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화성 향남·남양 일대처럼 공장과 산업단지가 밀집한 지역에서는 인근 주민들이 동시에 유사한 피해를 겪는 경우가 흔하고, 그만큼 사업장의 인허가 이력과 배출 자료를 확보하는 과정이 사건의 성패를 가르곤 합니다. 오염 피해를 인지했다면 시효가 흐르기 전에 관련 자료부터 정리해 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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