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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상대방의 대리인에게 속았다면, 제3자 사기가 아니라 바로 취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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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상대방의 대리인에게 속았다면, 제3자 사기가 아니라 바로 취소할 수 있다 

강대현 변호사

계약을 체결할 때 상대방 본인이 아니라 그가 보낸 대리인과 협상하고 도장을 찍는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 대리인이 계약을 성사시키려고 거짓말을 했을 때 벌어집니다. 나중에 상대방 본인은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대리인이 혼자 벌인 일이다"라며 발을 빼고, 속은 쪽은 이를 그저 제3자의 사기로 여겨 취소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민법은 상대방의 대리인이 저지른 기망을 제3자의 사기가 아니라 상대방 본인의 사기로 취급합니다. 이 글에서는 대리인의 기망이 왜 상대방 본인의 책임으로 돌아가는지, 어떤 경우에 그렇게 인정되고 어떤 경우에는 여전히 제3자 사기로 남는지, 계약을 취소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대리인에게 속아 맺은 계약, 왜 제3자 사기와 다른가

계약은 본인이 직접 나서지 않고 대리인을 통해 체결되는 경우가 흔합니다. 민법 제114조 제1항은 "대리인이 그 권한 내에서 본인을 위한 것임을 표시한 의사표시는 직접 본인에게 대하여 효력이 생긴다"고 정합니다. 대리인이 협상하고 서명한 계약이라도 법적으로는 본인이 직접 계약한 것과 같은 효력을 갖는다는 뜻입니다. 이 원칙은 계약의 성립·귀속뿐 아니라 그 계약에 하자가 있는지를 판단할 때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사기로 인한 취소를 정하는 민법 제110조는 두 갈래로 나뉩니다. 제1항은 "사기나 강박에 의한 의사표시는 취소할 수 있다"고 해서 상대방 본인이 직접 속인 경우를 원칙으로 규정하고, 제2항은 "상대방있는 의사표시에 관하여 제삼자가 사기나 강박을 행한 경우에는 상대방이 그 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경우에 한하여 그 의사표시를 취소할 수 있다"고 해서 상대방과 무관한 제3자가 속인 경우를 별도로 다룹니다. 제3자의 사기에 이런 제한을 두는 이유는, 상대방 입장에서는 자신도 모르는 사람의 거짓말까지 책임질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무에서 흔히 벌어지는 오해가 있습니다. 대리인은 상대방 본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니 그의 기망을 무조건 제3자의 사기로 취급해, 상대방이 몰랐다고만 하면 취소를 포기해버리는 경우입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지점에서 분명한 선을 그어 두었습니다.

대리인이 그 권한 내에서 한 행위는 본인에게 직접 효력이 미치므로(민법 제114조), 대리인의 기망 역시 원칙적으로 본인의 기망으로 취급되어 제110조 제1항이 곧바로 적용될 수 있다.

판례가 그은 선 — "상대방과 동일시할 수 있는 자"는 제3자가 아니다

대법원 1998. 1. 23. 선고 96다41496 판결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습니다. 판결은 "의사표시의 상대방이 아닌 자로서 기망행위를 하였으나 민법 제110조 제2항에서 정한 제3자에 해당되지 아니한다고 볼 수 있는 자란 그 의사표시에 관한 상대방의 대리인 등 상대방과 동일시할 수 있는 자만을 의미하고, 단순히 상대방의 피용자이거나 상대방이 사용자책임을 져야 할 관계에 있는 피용자에 지나지 않는 자는 상대방과 동일시할 수는 없어 이 규정에서 말하는 제3자에 해당한다"고 밝혔습니다. 즉 대리인은 원칙적으로 제110조 2항의 제3자가 아니라는 법리를 처음으로 명확히 세운 판결입니다.

이 법리는 이후 대법원 1999. 2. 23. 선고 98다60828, 60835 판결에서 그대로 재확인됐습니다. 은행 출장소장이 어음할인을 부탁받고는, 그 어음이 부도날 경우를 대비해 담보 조로 받아두는 것이라고 속여 고객들에게 금전소비대차 및 연대보증 약정을 체결하게 한 뒤 대출금을 빼돌린 사안이었습니다. 대법원은 "상대방의 대리인 등 상대방과 동일시할 수 있는 자의 사기나 강박은 여기서 말하는 제3자의 사기·강박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하면서, 출장소장의 사기는 은행 또는 은행과 동일시할 수 있는 자의 사기일 뿐이므로 은행이 그 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는지를 따질 필요 없이 곧바로 취소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두 판결을 함께 보면 기준은 분명해집니다. 기망행위를 한 사람이 상대방과 '동일시할 수 있는' 지위에 있었는지가 핵심이고, 대리인이 그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대리인의 기망은 제3자의 사기가 아니라 상대방 본인의 사기이므로, 상대방이 그 사실을 몰랐다거나 알 수 없었다고 항변해도 취소를 막을 수 없습니다.

진짜 대리인인가 — 판단 기준

그렇다면 누구를 "대리인 등 상대방과 동일시할 수 있는 자"로 볼 것인지가 실무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입니다. 96다41496 판결은 이를 판단할 때 기망행위의 구체적인 양상, 그 사람이 상대방 조직 안에서 갖는 지위와 영향력, 조직의 규모, 상대방을 대신해 법률행위를 할 실질적인 권한이 있었는지를 함께 고려했습니다.

실무적으로 가장 뚜렷한 지표는 대리권의 존재와 범위입니다. 위임장, 인감증명서, 계약체결권을 명시한 위임 문서 등으로 상대방이 특정인에게 실제로 계약을 체결할 권한을 부여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면, 그 사람의 언행은 원칙적으로 본인의 언행과 같게 평가됩니다. 단순히 '내가 아는 사람'이라거나 '연락을 도와준 사람' 정도로는 부족하고, 그 사람이 계약조건을 실제로 정하고 확정할 권한을 가지고 협상 테이블에 앉아 있었는지가 관건입니다.

예를 들어 부동산 매매에서 매도인이 지방에 거주하거나 사정이 있어 직접 나서지 못해 배우자·자녀·형제 등에게 위임장을 주고 계약체결을 맡기는 경우가 흔합니다. 이렇게 위임받은 사람이 매매목적물의 하자나 권리관계에 관해 거짓말을 해 계약을 성사시켰다면, 이는 매도인 본인의 기망으로 취급되어 매수인은 매도인이 그 거짓말을 알았는지와 무관하게 계약을 취소할 수 있습니다.

  • 대리권 증빙 — 위임장, 인감증명서, 계약체결권을 명시한 문서가 있는가.

  • 실질적 권한 — 계약조건을 스스로 정하고 확정할 수 있었는가, 단순 전달자에 그쳤는가.

  • 상대방 조직 내 지위·영향력 — 직책이나 관계상 상대방을 대신할 만한 위치였는가.

  • 기망행위의 범위 — 위임받은 계약체결 업무 범위 안에서 이루어진 거짓말인가.

인정된 사례와 남은 사례 — 두 판례의 결론이 갈린 이유

앞서 본 두 판례는 결론에서도 대비됩니다. 은행 출장소장 사건(98다60828)에서는 출장소장이 대출 업무를 실제로 처리할 권한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은행과 동일시할 수 있는 자로 인정되어, 제110조 제1항이 곧바로 적용됐습니다.

반면 상호신용금고 기획감사실 과장 사건(96다41496)에서는 그 과장에게 대출 업무 전반에 대한 감사 권한은 있었지만, 대출계약을 직접 체결할 대리권까지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법원은 그를 회사와 동일시할 수 있는 자가 아니라 제110조 2항이 말하는 제3자로 판단했습니다. 다만 이 사건에서는 회사가 직원의 지위·영향력과 조직 규모에 비추어 감독을 소홀히 한 과실이 있다고 보아, 결국 제2항 경로로도 취소가 인정됐습니다. 결과는 같았지만 법적으로 거쳐간 경로가 전혀 달랐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두 판결을 나란히 놓으면 실무 시사점이 분명해집니다. 상대방과 동일시할 수 있는 진짜 대리인의 기망이라면 상대방의 인식 여부를 따질 필요 없이 곧바로 취소할 수 있고(제110조 1항), 그 정도에 못 미치는 관계자의 기망이라면 상대방이 그 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음을 표의자 쪽에서 입증해야만 취소할 수 있습니다(제110조 2항). 어느 경로로 가는지에 따라 입증책임의 무게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기망행위를 한 자에게 상대방을 대신해 계약을 체결할 실질적 대리권이 있었는지가, 제110조 제1항으로 바로 가는지 제2항의 입증 부담을 지는지를 가르는 분기점이다.

대리인이 아니라 단순 피용자·소개자에 그친다면

계약을 주선한 사람이 모두 대리인은 아닙니다. 거래를 소개만 한 지인, 단순 연락책, 상대방을 대신해 계약조건을 결정할 권한이 없는 직원 등은 원칙적으로 제110조 2항이 말하는 제3자에 해당합니다. 이런 사람의 거짓말에 속았다면 대리인의 기망과는 다른 법리를 적용받습니다.

이 경우 계약을 취소하려면 상대방 본인이 그 소개자나 관계자의 거짓말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는 사정을 표의자 쪽에서 입증해야 합니다. 상대방이 그 소개자를 평소 신뢰해 검증 없이 계약을 밀어붙였다거나, 소개자의 거짓 정보를 상대방도 함께 언급했다는 정황이 있다면 '알 수 있었다'는 과실을 인정받을 여지가 있습니다. 96다41496 판결에서도 회사가 피용자의 지위·영향력과 조직 규모에 비추어 감독의무를 소홀히 한 과실이 있다고 본 것이 같은 맥락입니다.

반대로 상대방이 그 소개자와 전혀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거래를 진행했고 소개자의 거짓말을 알 방법이 없었다면, 표의자는 계약 자체를 취소하기는 어렵고 소개자 개인을 상대로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방법을 검토해야 합니다. 계약을 주선한 사람의 역할과 권한을 처음부터 구분해 두어야 나중에 어느 경로로 대응할지가 명확해집니다.

취소권 행사 방법과 효과

대리인의 기망이 인정되면 표의자는 상대방에게 취소의 의사표시를 하면 됩니다. 반드시 소송을 먼저 걸 필요는 없고, 내용증명 등으로 취소한다는 뜻을 명확히 전달하는 것으로 충분하며, 상대방이 이를 다투면 그다음 단계에서 계약취소 확인이나 부당이득반환 청구 소송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취소의 효과는 민법 제141조에 따라 계약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소급해 무효가 됩니다. 이미 지급한 대금이나 이전받은 재산은 서로 부당이득으로 반환해야 하고, 다만 그 사이 계약목적물이 사정을 모르는 선의의 제3자에게 넘어갔다면 제110조 제3항에 따라 취소로 그 제3자에게는 대항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습니다.

취소권도 영구적이지 않습니다. 민법 제146조는 취소권을 추인할 수 있는 날, 즉 기망 사실을 안 날로부터 3년, 법률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 안에 행사해야 한다고 정합니다. 기망 사실을 알고도 방치하면 취소권 자체가 소멸할 수 있으므로,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시점부터 대응 시한을 계산해 두어야 합니다.

  • 언제 어떤 거짓말에 속아 계약했는지 시간순으로 정리한 경위서

  • 대리인의 대리권을 증명하는 위임장·인감증명서 등 서류

  • 기망 진술이 담긴 문자·녹취·계약 관련 자료

  • 취소 의사를 명확히 전달하는 내용증명 발송 기록

무권대리·표현대리와는 다른 문제

대리인의 기망 문제를 다룰 때 자주 섞이는 쟁점이 무권대리입니다. 대리인에게 애초에 대리권 자체가 없었거나 권한 범위를 넘어 계약을 체결했다면, 이는 사기 취소가 아니라 무권대리의 문제입니다. 본인이 추인하지 않는 한 계약 자체가 본인에게 효력이 없거나, 상대방이 대리권이 있다고 믿을 만한 사정이 있었을 때 인정되는 표현대리 요건을 충족해야 비로소 본인에게 효력이 미칩니다.

반면 이 글에서 다루는 사안은 대리인에게 적법한 대리권이 있었고 계약 자체는 유효하게 본인에게 귀속되는 상황에서, 그 대리인이 계약체결 과정에서 거짓말을 했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계약의 성립·귀속(누구에게 효력이 미치는가)과 그 계약의 하자(사기로 취소할 수 있는가)는 서로 다른 층위의 문제이므로, 대리권의 유무와 범위를 먼저 확인한 다음 기망 여부를 따지는 순서로 접근해야 논점이 섞이지 않습니다.

만약 대리인이 대리권 범위를 벗어난 조건까지 임의로 약속하며 거짓말을 했다면, 그 벗어난 부분은 무권대리로 본인에게 효력이 미치지 않을 수 있고 사기 취소와는 다른 법리로 다퉈야 합니다. 두 쟁점을 뒤섞으면 주장 자체가 흐트러지기 쉬우므로, 위임받은 권한의 범위와 실제 이루어진 기망의 내용을 먼저 사실관계로 정리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대리인의 기망을 제3자의 사기로 오해해 취소를 포기했는데, 아직 늦지 않았나요?

A. 취소권은 기망 사실을 안 날로부터 3년, 계약체결일로부터 10년 안이라면 여전히 행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대리권 증빙이나 기망 정황 자료를 모으기 어려워지므로 가능한 한 빨리 정리해 두는 것이 유리합니다.

Q. 대리인이 보여준 위임장이 알고 보니 위조였다면 어떻게 되나요?

A. 위임장이 위조라면 애초에 대리권 자체가 없었던 것이므로 무권대리의 문제가 됩니다. 계약의 효력을 본인에게 물을 수 있는지는 표현대리 성립 여부에 따라 달라지므로, 이 경우는 사기 취소보다 무권대리 법리로 먼저 접근해야 합니다.

Q. 공인중개사가 거짓 정보를 줘서 계약했는데, 이것도 대리인의 사기로 볼 수 있나요?

A. 공인중개사는 통상 매도인·임대인의 대리인이 아니라 중개행위를 하는 독립된 제3자에 해당합니다. 원칙적으로 민법 제110조 2항이 적용되어, 상대방이 중개사의 거짓말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음을 입증해야 계약을 취소할 수 있습니다.

Q. 상대방 본인이 대리인의 거짓말을 정말 몰랐다면 결과가 달라지나요?

A. 대리인이 상대방과 동일시할 수 있는 지위에 있었다면, 상대방이 실제로 몰랐더라도 취소를 막을 수 없습니다. 민법 제110조 1항은 상대방의 인식 여부를 요건으로 삼지 않기 때문입니다.

Q. 계약을 취소하면 이미 받은 계약금이나 이전된 재산은 어떻게 되나요?

A. 취소로 계약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 되므로 서로 받은 것을 부당이득으로 반환해야 합니다. 다만 목적물이 이미 선의의 제3자에게 넘어갔다면 그 제3자에게는 취소를 주장할 수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Q. 대리인을 상대로 직접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나요?

A. 계약 취소와 별개로 대리인의 기망행위 자체가 불법행위에 해당한다면 대리인 개인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고, 사안에 따라 상대방 본인에게 사용자책임을 함께 물을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맺음말

계약 상대방이 아니라 그가 보낸 대리인에게 속았다는 이유만으로 취소를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리인이 상대방과 동일시할 수 있는 지위에서 계약을 체결했다면 그 기망은 제3자의 사기가 아니라 상대방 본인의 사기로 취급되어, 상대방의 인식 여부와 무관하게 취소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단순한 소개자나 피용자의 거짓말이라면 상대방의 인식·과실을 따로 입증해야 하므로, 처음부터 누구에게 어떤 권한이 있었는지를 정리하는 것이 대응의 출발점입니다.

실제로는 상대방이 "대리인이 혼자 벌인 일"이라며 책임을 떠넘기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수원지방법원에 접수되는 계약취소·부당이득반환 청구 사건을 보면, 대리인을 통해 진행된 거래에서 이런 다툼이 반복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임장 등 대리권 증빙과 기망 정황을 미리 정리해 두는 것이 분쟁을 유리하게 풀어가는 출발점입니다.

조력이 필요하시면 강대현 대표변호사에게 연락주십시오. 신속히 도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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