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이코노미 전문가 칼럼 / 법무법인 청향 윤희창 파트너변호사)
1. 기본적 사실관계
콘도 신축 사업의 시행사인 피고와 공사 수급인인 원고는 콘도 신축 공사에 관한 도급계약을 체결하였고 사전 청약을 실시하였으나,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금융위기 및 부동산 경기 악화에 따라 청약률이 약 9%에 그치는 등 콘도 분양 실패가 명확해지자 원고는 공사가 일부 진행된 상황(공정률 약 33%)에서 공사를 중단하였고 피고도 관할관청에 공사휴지 신청을 하는 등 실질적으로 원고의 공사 중단을 받아들였다.
이후 원고는 피고의 이 사건 콘도에 대한 후순위 근저당권 설정이 채무불이행에 해당하여 도급계약을 해제한다고 주장하며 피고를 상대로 기성 공사대금 지급을 청구하였고, 피고는 원고의 공사 중단이 채무불이행에 해당하여 도급계약을 해제한다고 주장하며 원고를 상대로 건물 기성부분 철거 등을 청구하는 한편, 원고의 청구에 대한 소멸시효 항변을 하며 만일 원고가 불안의 항변권을 취득함으로써 이행거절 권능이 있는 것이라면 원고의 기성 공사대금 청구권 소멸시효 기산일은 이행거절 시점이라고 주장하였다.
2. ‘불안의 항변권’에 관한 법리
민법 제536조 제2항은 쌍무계약의 당사자 일방이 상대방에게 먼저 이행하여야 하는 의무를 지고 있는 경우에도 “상대방의 이행이 곤란할 현저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동시이행의 항변권을 가진다고 하여 이른바 ‘불안의 항변권’을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상대방의 이행이 곤란할 현저한 사유’란 선이행채무를 지게 된 채무자가 계약 성립 후 채권자의 신용불안이나 재산상태의 악화 등의 사정변경으로 반대급부를 이행받을 수 없게 되고, 이로 인하여 당초의 계약 내용에 따른 선이행의무를 이행하게 하는 것이 공평과 신의칙에 반하게 되는 경우를 말한다. 이러한 불안의 항변권을 발생시키는 사유를 신용불안이나 재산상태 악화와 같이 채권자 측에 발생한 객관적․일반적 사정만으로 제한하여 해석할 이유는 없으므로, 당사자 쌍방의 사정을 종합하여 상대방의 채무가 아직 이행기에 이르지 않았더라도 이행기에 이행될 것인지 여부가 현저히 불투명하게 된 경우에는 선이행채무를 지고 있는 당사자라도 상대방의 이행이 확실하게 될 때까지 자기의 채무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특히 상당한 기간에 걸쳐 공사를 수행하는 도급계약에서 일정 기간마다 기성공사금 등의 명목으로 그 대가를 나누어 지급하기로 약정되어 있는 경우, 그와 같은 공사대금의 지급은 수급인의 장래 원만한 이행을 보장하는 전제로서 기능하므로, 계약 성립 후 발생한 제반 사정으로 인하여 수급인이 공사를 계속 진행하더라도 그에 따르는 공사대금의 상당 부분을 약정대로 지급받을 것을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없게 되어 수급인에게 당초의 계약 내용에 따른 선이행의무의 이행을 요구하는 것이 공평에 반하게 되었다면, 비록 도급인에게 신용불안 등의 사정이 없다고 하여도 수급인은 민법 제536조 제2항에 의하여 계속공사의무의 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대가적 채무 간에 이행거절의 권능을 가지는 경우에는 비록 이행거절 의사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아니하였다고 할지라도 이행거절 권능의 존재 자체로 이행지체책임은 발생하지 아니한다(대법원 1997. 7. 25. 선고 97다5541 판결, 대법원 2012. 3. 29. 선고 2011다93025 판결 등 참조).
3.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아래와 같은 이유로 원고의 공사 중단이 민법 제536조 제2항에 따른 이행거절 권능에 의한 것일 뿐 원고의 귀책사유로 인한 채무불이행에 해당하지 않으며,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았다고 판단한 원심의 결론을 유지하였다.
1) 이 사건 콘도에 대한 사전 청약률은 약 9%에 그치고 수금된 사전청약대금이 전체 공사대금의 1%에 그치는 등 사전청약이 실패하였는데, 피고 역시도 청약자들로부터 사전청약금을 지급받고도 본계약 전환을 통보하는 등의 분양계약 체결로 나아가지 않고 청약자들에게 사전청약금을 반환하기도 하였다.
2) 원고는 위와 같이 분양 실패가 분명해졌기 때문에 공사를 중단하였는데, 원고가 공사 중단 전까지 투입한 공사비 등을 고려하면 분양 실패 외에 원고가 공사를 중단할 만한 다른 사정이 없어 보이고, 피고도 원고의 공사휴지 요청을 받아들여 관할관청에 ‘경제여건 및 분양시장 악화’를 이유로 공사휴지 신청을 하는 등 실질적으로 원고의 공사 중단을 받아들였다.
3) 당사자간 도급계약상 공사대금은 분양수입금을 재원으로 하여 최초 분양계약서 상의 분양대금 납입 일정에 따라 순차 지급하기로 하였으므로, 위와 같은 사정을 감안하면 원고가 이 사건 공사를 완료하였더라도 피고로부터 그 반대급부인 공사대금을 지급받을지 여부가 현저히 불투명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이는 원고의 공사대금에 관한 담보의 실질적 가치를 고려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4) 따라서 원고로 하여금 이 사건 공사를 계속 수행하게 하는 것이 공평과 신의칙에 반하는 경우에 해당하고, 당사자간 사업 재개 방안을 추진하였으나 모두 결렬된 점에 비추어 원고의 이 사건 공사 중단에 관한 불안의 항변권의 기초가 되는 사정은 이 사건 공사 중단 후에도 지속되었다고 볼 수 있다.
5) 또한, 원고가 불안의 항변권을 행사하여 공사의무의 이행을 거절하였더라도 피고의 공사대금 채무 이행기가 이행거절 시점으로 변경되지는 않고, 이 사건 도급계약에서 정한 바에 따라 ‘최초 분양계약 체결 후 계약금 내지 중도금의 지급시기’가 도래하거나 ‘최초 분양계약이 체결되지 않을 것으로 확정된 때’에 도래하므로, 이 사건 공사를 중단한 때 원고의 기성공사대금 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진행된다고 볼 수는 없다.
본 판결은 피고의 분양수입금을 재원으로 하여 분양대금 납입 일정에 따라 원고에 대한 기성 공사대금을 순차 지급하기로 한 도급계약 조건을 불안의 항변권 인정의 핵심적인 근거로 판단한 사안으로, 도급인의 분양 성과와 수급인의 공사 의무를 직접적으로 연관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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