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서울대] 법무법인 도모 대표변호사 고준용입니다.
최근에는 성범죄 사건으로 경찰이나 검찰의 출석 통보를 받은 분들이 조사 전에 “저도 영상녹화를 요청하면 찍어주나요”라고 먼저 문의하는 경우가 눈에 띄게 늘고 있습니다.
상담을 해보면 “미성년 피해자는 다 영상으로 찍는다고 하던데, 저도 요청하면 당연히 찍어주겠죠”라는 생각으로 별다른 준비 없이 조사에 들어가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막상 조사실에서 영상녹화를 요청하면 수사기관이 “그건 저희가 결정할 사항입니다”라며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고, 준비 없이 진행된 조사에서 나온 진술이 나중에 조서 내용을 두고 다투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최근 대법원은 피의자 진술의 영상녹화에 관해 영상녹화를 할지 여부가 아니라, 하기로 한 이상 그 절차를 얼마나 엄격하게 지켰는지를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영상녹화가 있다고 무조건 유리해지는 것도 아니고, 없다고 무조건 불리해지는 것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아래에서는 성범죄 피의자 조사에서 영상녹화 요청이 왜 법적 권리로 보장되지 않는지, 요청이 거부됐을 때 실제로 무엇을 챙겨야 하는지, 그리고 진술 대립이 많은 성범죄 사건에서 이 문제가 왜 특히 중요한지 살펴보겠습니다.
1. 성범죄 피의자 조사의 영상녹화는 요청만으로 보장되지 않습니다
미성년 피해자 진술은 법으로 영상녹화가 의무화돼 있지만, 피의자 진술의 영상녹화는 수사기관의 재량입니다.
형사소송법 제244조의2 제1항은 “피의자의 진술은 영상녹화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할 수 있다”는 표현이 핵심입니다.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에게 영상녹화를 할 수 있는 권한을 준 것일 뿐, 피의자나 변호인의 요청이 있으면 반드시 응해야 한다는 의무 규정이 아닙니다. 영상녹화를 하는 경우에도 미리 그 사실을 알려주면 되고, 피의자나 변호인의 동의를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반면 19세미만피해자등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규정이 적용됩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30조 제1항은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이 19세미만피해자등의 진술 내용과 조사 과정을 영상녹화장치로 녹화하고 그 영상녹화물을 보존하여야 한다고 정해, 원칙적으로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성범죄 사건에서 “영상녹화가 원칙”이라는 인상이 널리 퍼진 것은 이 규정 때문인데, 이는 피해자 보호를 위한 별도의 제도이지 피의자 조사에 그대로 적용되는 원칙이 아닙니다.
정리하면, 성범죄 피의자 조사에서도 영상녹화를 요청하는 것 자체는 언제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요청을 반드시 관철시킬 수 있는 법적 권리는 인정되지 않고, 실제로 녹화할지는 수사기관의 재량에 달려 있다는 점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미성년 피해자 진술의 영상녹화는 법으로 의무화돼 있지만, 피의자 진술의 영상녹화는 수사기관이 재량으로 결정할 사항입니다.
2. 요청이 거부돼도 위법수사는 아니지만, 진행된 영상녹화는 절차를 지켜야 효력이 있습니다
영상녹화를 거부하는 것과, 영상녹화를 하면서 절차를 지키지 않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영상녹화 요청이 거부됐다는 사정만으로 수사가 위법해지는 것일까요. 형사소송법 제244조의2가 재량 규정인 만큼,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곧바로 절차 위반이 되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여러 차례 조사가 이루어지는 사건에서 모든 조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빠짐없이 영상녹화해야 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은 대법원 판례로도 확인됩니다.
다만 수사기관이 영상녹화를 하기로 한 이상은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형사소송법과 형사소송규칙은 영상녹화의 절차, 방식을 엄격하게 정해두고 있는데, 대법원은 그 취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형사소송법 등에서 조사가 개시된 시점부터 조사가 종료되어 조서에 기명날인 또는 서명을 마치는 시점까지 조사 전 과정이 영상녹화되는 것을 요구하는 취지는 진술 과정에서 연출이나 조작을 방지하고자 하는 데 있다(대법원 2022. 7. 14. 선고 2020도13957 판결).
이 판결은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의 진정성립을 증명하는 방법으로서 영상녹화물이 쓰이려면, 형사소송법이 정한 방식과 절차에 따라 제작된 것이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조사에 앞서 영상녹화 사실을 고지했는지, 조사 종료 후 지체 없이 원본을 봉인하고 피의자가 기명날인·서명했는지 같은 절차가 지켜지지 않으면, 그 영상녹화물은 오히려 신뢰성을 의심받아 증거로서 힘을 잃을 수 있습니다. 이 판결이 다룬 조문은 지금과 문언이 일부 다르지만, 영상녹화 절차를 엄격하게 지켜야 한다는 원칙 자체는 현재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영상녹화 요청을 거부하는 것 자체는 절차 위반이 아니지만, 영상녹화를 하면서 절차를 어기면 그 영상녹화물은 오히려 증거로서 힘을 잃을 수 있습니다.
3. 진술이 유일한 증거인 성범죄 사건일수록 조사 과정의 기록이 방어의 핵심이 됩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말이 엇갈리는 사건에서는, 조사 당시 정확히 무엇을 묻고 답했는지가 결과를 가릅니다.
성범죄 사건에서 영상녹화 요청이 특히 문제되는 이유는, 이 유형의 사건이 물적 증거보다 진술에 크게 의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목격자가 없는 상태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쪽과 피해자의 말이 엇갈리면, 결국 조사 당시 어떤 질문에 어떻게 답했는지, 그 답변이 조서에 얼마나 정확하게 옮겨졌는지가 결과를 가르는 핵심 자료가 됩니다.
이 때문에 조사 과정에서 변호인을 참여시키는 것이 영상녹화 요청보다 훨씬 실질적인 방어수단이 됩니다. 형사소송법 제243조의2 제1항은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이 피의자나 변호인의 신청에 따라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변호인을 신문에 참여하게 하여야 한다고 정해, 영상녹화와 달리 이를 의무 규정으로 두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도 변호인의 피의자신문 참여권을 헌법상 기본권 차원에서 보호하고 있습니다.
변호인이 피의자신문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권리는 피의자가 가지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실현하는 수단이므로 헌법상 기본권인 변호인의 변호권으로서 보호되어야 한다(헌법재판소 2017. 11. 30. 선고 2016헌마503 결정).
이 결정에서 헌법재판소는 검찰수사관이 변호인에게 피의자 후방에 앉으라고 요구한 행위가 변호인의 변호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영상녹화 요청은 관철되지 않을 수 있지만, 변호인을 옆자리에 동석시켜 질문과 답변, 조서에 옮겨지는 표현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게 하는 것은 법이 강하게 보장하는 권리입니다.
진술이 엇갈리는 성범죄 사건일수록, 변호인을 동석시켜 조사 당시의 질문과 답변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게 하는 것이 영상녹화보다 확실한 방어수단이 됩니다.
4. 조서 내용을 나중에 다투게 되면, 영상녹화가 없었다는 점이 아쉬워질 수 있습니다
조서는 법정에서 피고인이 내용을 인정해야 증거가 되고, 그 인정 여부를 다투는 국면에서 영상녹화의 부재가 드러납니다.
영상녹화가 없었다는 사정이 실제로 아쉬워지는 시점은 대개 재판 단계, 조서 내용을 다투게 될 때입니다. 형사소송법 제312조 제1항은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라 하더라도 공판준비나 공판기일에서 그 피의자였던 피고인 또는 변호인이 내용을 인정할 때에 한정해 증거로 쓸 수 있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사법경찰관이 작성한 조서도 같은 조 제3항에 따라 마찬가지입니다.
즉 조사 당시 진술한 내용과 조서에 기재된 내용이 다르다고 판단되면, 법정에서 그 조서의 내용을 인정하지 않는 방법으로 방어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조서의 증거능력이 사라진다고 해서 수사기관이 확보한 다른 자료, 이를테면 피해자 진술, 문자메시지, CCTV 영상 같은 증거가 함께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조사 당시 실제로 어떤 질문과 답변이 있었는지를 뒷받침할 자료가 없다면, “조서와 다르게 말했다”는 주장만으로는 다투기가 쉽지 않습니다.
영상녹화물은 그 자체로 유죄를 증명하는 본증으로 쓰이지는 않고, 조서의 진정성립을 확인하거나 진술인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용도로만 활용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조사 당시 실제 상황을 재구성할 수 있는 유일한 객관적 자료라는 점에서, 영상녹화 요청이 거부됐다면 그 대신 조사 종료 후 조서를 열람할 때 형사소송법 제244조 제2항에 따른 이의제기·정정청구권을 그 자리에서 적극적으로 행사해 두는 것이 이후 다툼을 대비하는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5. 조사 통보부터 재판까지, 절차는 이렇게 진행되고 이렇게 준비해야 합니다
고소·인지 이후 조사 출석 통지를 받은 순간부터의 준비가 사건 전체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성범죄 피의자 조사는 통상 ①관할 경찰서(수원 지역이라면 수원남부경찰서·수원중부경찰서 등) 출석 및 피의자신문 → ②추가 조사 및 보강수사 → ③검찰(수원지방검찰청) 송치 및 기소 여부 결정 → ④기소되면 법원(수원지방법원) 재판의 순서로 진행됩니다. 사안에 따라 조사 단계에서 구속영장이 청구될 수도 있어, 초기 대응의 중요성이 특히 큽니다.
조사 출석 통보를 받았다면, 영상녹화 요청 여부를 포함해 아래 순서로 미리 준비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출석 통지를 받으면 변호인을 통해 영상녹화를 요청할지, 조사 방식에 관해 미리 확인해 둘 사항이 있는지를 정리해 수사기관에 사전에 전달합니다.
조사 당일에는 변호인을 반드시 동석시켜, 질문과 답변이 조서에 어떤 표현으로 옮겨지는지를 그 자리에서 확인합니다.
조사가 끝나면 조서를 꼼꼼히 열람하고, 진술과 다르게 적힌 부분이 있으면 서명 전에 반드시 이의를 제기해 정정하거나 그 취지를 조서에 남깁니다.
이러한 준비는 영상녹화 요청이 받아들여지든 그렇지 않든 똑같이 중요합니다. 조사 초기부터 성범죄 사건 대응 경험이 있는 변호사와 함께 대응한다면, 조서 작성 단계에서부터 이후 재판까지 이어지는 방어 전략을 일관되게 세울 수 있습니다.
마치며
조사 출석 통보를 받으면 “일단 가서 사실대로 말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별다른 준비 없이 조사에 임하는 분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특히 성범죄 사건은 그 자체로 위축되는 사안이다 보니, 영상녹화 요청 같은 절차적인 부분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아직 조사를 받기 전이라면 지금이 가장 준비하기 좋은 시점입니다. 반대로 이미 조사를 받고 조서에 서명까지 마친 뒤라면, 그 조서 내용 중 다투어야 할 부분이 있는지부터 냉정하게 점검해야 합니다. 시점이 다르다고 해서 방어의 기회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조사를 앞둔 단계부터 이미 조서에 서명한 뒤 재판을 준비하는 단계까지, 성범죄 사건의 각 국면을 모두 다뤄온 변호사로서, 조사 초기의 작은 준비 하나가 이후 재판 결과를 얼마나 크게 바꾸는지 여러 번 확인해 왔습니다.
영상녹화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해서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조사를 앞두고 있다면, 혹은 이미 조사를 마쳤다면, 그 시점에서 바로 고준용 변호사를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상녹화를 요청했는데 거부당했습니다. 이의를 제기할 수 있나요?
A. 형사소송법상 영상녹화는 수사기관의 재량 사항이라, 거부 자체를 절차 위반으로 다투기는 어렵습니다. 대신 변호인 참여를 요청하고, 조사 후 조서를 열람할 때 진술과 다른 부분에 이의를 제기하는 방법으로 대응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Q. 미성년 피해자 사건이라 저(피의자)도 당연히 영상녹화가 되는 줄 알았습니다.
A. 그렇지 않습니다. 19세미만피해자등에 대한 영상녹화 의무는 피해자 보호를 위한 별도 규정이고, 피의자 조사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피의자 진술의 영상녹화는 수사기관이 재량으로 결정합니다.
Q. 영상녹화가 있으면 제 진술이 그대로 증거로 쓰이나요?
A. 아닙니다. 영상녹화물은 조서의 진정성립을 확인하거나 진술인의 기억을 환기시키는 용도로만 쓰이고, 그 자체로 유죄를 증명하는 본증으로 사용되지 않습니다.
Q. 조서에 서명하기 전, 제가 말한 내용과 다르게 적힌 부분이 있으면 어떻게 하나요?
A. 서명 전에 반드시 이의를 제기해야 합니다. 형사소송법 제244조 제2항에 따라 이의를 제기하면 그 부분을 조서에 추가로 기재하게 되어 있고, 서명한 뒤에는 다투기가 훨씬 어려워집니다.
Q. 변호인 참여를 요청하면 조사가 저에게 불리하게 진행되지 않을까요?
A. 그렇지 않습니다. 형사소송법은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변호인을 신문에 참여시켜야 한다고 정하고 있고, 헌법재판소도 변호인의 참여권을 헌법상 권리로 보호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변호인 없이 조사에 임하는 쪽이 더 위험합니다.
Q. 조서 내용을 법정에서 인정하지 않으면 무죄가 되나요?
A. 그렇지 않습니다. 조서의 증거능력이 없어져도 다른 증거로 유죄가 인정될 수 있습니다. 조서 내용을 다투려면, 실제 조사 상황을 뒷받침할 자료를 함께 준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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