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은 주식회사 정관에 정해진 임원 퇴직금 산정식의 문언을 그대로 적용하여, 퇴임한 사내이사에게 퇴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선고하였습니다. 특히 회사가 "정관의 퇴직금 산정 기준인 평균임금에 곱하는 '재임일수'는 '재임연수'의 오기"라고 다투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사안입니다.
임원 퇴직금은 근로기준법이나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이 적용되는 영역이 아닙니다. 상법 제388조는 이사의 보수를 정관에 그 액을 정하지 아니한 때에는 주주총회 결의로 정하도록 하고 있고, 퇴직금 역시 재직 중 직무수행의 대가로 지급되는 보수의 일종으로 같은 규율을 받습니다. 결국 정관에 산정식이 적혀 있다면 그 문언 자체가 재판규범이 됩니다. 이 사건은 그 문언을 사후에 뒤집을 수 있는지가 정면으로 다투어진 사례로 저희 법무법인 대환이 퇴임 임원을 대리하여 승소한 사건입니다.
1. 사건의 개요
B 회사는 4개의 회사가 각 25% 지분을 가진 주주로 참여하여 설립된 회사로, 주주사들이 상품을 공급하면 B 회사가 백화점 등 매장에서 이를 판매하는 구조로 운영되었습니다. A는 주주사 중 한 곳의 대표이사였는데, 주주사들의 책임경영을 위하여 B 회사의 대표이사 겸 사내이사로 취임하였습니다. 이후 어느 시점에 대표이사에서 사임하고 사내이사로만 재직하다가 사내이사에서도 퇴임하였습니다. 총 '등기이사'로서의 재임기간은 약 5년 9개월입니다.
A가 B 회사로부터 받은 금원은 대표이사 겸직 기간에는 월 1,600,000원, 사내이사 단독 재직 기간에는 월 800,000원이었습니다. 다만 그 지급 명목은 '급여'가 아니라 '관리수수료'였고, 세금계산서를 발행하는 방식으로 처리되었습니다. 설립 당시 주주사들이 회사 운영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임원 급여를 낮게 정하였는데, 금액이 작다 보니 4대 보험료와 세금이 부과될 경우 실수령액이 지나치게 줄어드는 문제가 있어 세무·회계 처리상 편의를 위하여 채택된 형식이었습니다.
B 회사 정관의 임원 보수·퇴직금 조항(이하 '이 사건 조항')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제3항(퇴직금의 산정) 임원의 퇴직금 산정은 [평균임금(기본금+상여금) × 재임일수]로 한다.
A는 이 조항에 따라 퇴직 직전 3개월(92일) 동안 지급받은 2,400,000원을 그 기간의 총일수로 나눈 평균임금 26,086원에, 재임일수 2,116일을 곱한 약 5,500만원의 지급을 구하였습니다. B 회사는 이를 전부 다투었습니다.
2. 회사의 세 가지 항변과 법원의 판단
가. "관리수수료는 급여가 아니다"
B 회사는 A에게 지급한 돈은 급여가 아닌 수수료이므로, 이를 기초로 한 평균임금 산정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저희는 금원의 성격은 명목이나 형식이 아니라 실질에 따라 판단되어야 한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대법원 2020. 4. 9. 선고 2018다290436 판결은 이사의 보수에는 월급, 상여금 등 명칭을 불문하고 이사의 직무수행에 대한 보상으로 지급되는 대가가 모두 포함된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A는 자신의 본업이 따로 있었음에도 B 회사에 상근하면서 운영관리·자금관리·매출관리·직원관리·백화점 상품영업·사업계획 수립 등 이사로서의 직무를 실제로 수행하였고, 그 대가로 매월 정기적으로 고정액을 지급받았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B 회사가 "대표이사와 3명의 사내이사는 별도의 급여를 받지 않고 소정의 관리수수료로 회사를 최소한의 비용으로 운영하는 데 동의하였다"고 진술한 부분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이 진술은 등기임원 전원이 직무수행의 대가로 관리수수료를 받기로 합의하였다는 것을 회사 스스로 인정한 것에 다름 아닙니다. 만약 그 금원이 직무수행의 대가가 아니라면, 임원들이 아무런 직무수행 없이, 또는 아무런 지급사유 없이 매월 고정액을 수취하였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법원은 ① A가 관리수수료 명목으로 지급받은 돈 외에 별도의 급여 등을 수령하지 아니한 사실, ② A가 실제로 대표이사 및 사내이사로서의 직위에서 업무를 수행한 사실, ③ 위 관리수수료가 업무 난이도나 업무량과 상관없이 매월 고정적으로 지급된 사실을 인정하여, 이를 이 사건 조항에서 정한 '기본금'에 해당하는 급여로 보았습니다.
나. "재임 중 배임행위가 있었으므로 퇴직금을 청구할 수 없다"
B 회사는 A의 재임기간 중 법인카드 사용 등에 문제가 있어 배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이유로 퇴직금 지급의무를 다투었습니다.
법원은 이에 대해 우선 회사가 주장하는 사정과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배임행위가 있었다고 보기 부족하다고 하였고, 나아가 설령 배임행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정관에서 정한 퇴직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볼 만한 아무런 자료가 없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실무적으로 눈여겨볼 부분은 후자로, 정관이나 임원 퇴직금 규정에 비위행위를 이유로 한 지급 제한·감액 사유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면, 회사가 사후에 임원의 비위를 들어 지급을 거절하기는 어렵다는 취지이기 때문입니다.
다. "'재임일수'는 '재임연수'의 오기다" — 이 사건의 핵심 쟁점입니다.
B 회사의 주된 방어논리는 이것이었습니다. 통상 임원 퇴직금은 '평균임금 × 30일 × 근속연수'로 산정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일수'를 기준으로 하면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상 근로자의 퇴직금보다 통상 많은 금액이 산출되므로, 이 사건 조항의 '재임일수'는 명백한 오기라는 것입니다. 회사는 발기인 중 1인의 확인서를 제출하여 임원들 사이에 퇴직금 부존재의 합의가 있었다는 주장도 덧붙였습니다.
저희는 정관 해석의 원칙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주식회사의 정관은 회사의 조직과 활동을 정하는 근본규칙으로서 자치법규의 성질을 가지므로, 그 해석은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규범적 의미 내용을 확정하는 법규해석의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문언 자체가 비교적 명확한 개념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원칙적으로 다른 해석방법을 동원할 필요가 없거나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대법원 2024. 7. 11. 선고 2020다258824 판결 등 참조). '재임일수(在任日數)'는 그 문언상 '재임한 날의 수'를 의미함이 일의적으로 명백하여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정관의 체계와 연혁이 더해졌습니다. 이 사건 조항은 같은 조문 안에서 ① 퇴직금 산정에는 '재임일수'를, ② 특별위로금 산정과 그 계산방법에는 '재임연수'를 각각 구별하여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제3항의 '재임일수'가 단순한 오기라면, 같은 조 다른 항에서는 '재임연수'라는 정확한 용어를 쓰면서 유독 제3항에서만 다르게 기재한 사정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또한 이 정관은 발기인 전원의 동의를 거쳐 공증까지 마친 것이고, 2018년 제정 이후 2024년 개정 과정에서도 해당 문언이 아무런 수정 없이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6년이 지나 정관을 개정하면서까지 발견하지 못한 '오기'라는 설명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습니다.
법원은 처분문서의 문언 해석에 관한 대법원 2011. 5. 13. 선고 2010다58728 판결의 법리를 전제한 뒤, 다음 사정들을 종합하여 오기라고 보기 부족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1) 제3항이 평균임금에 재임'일수'를 곱하여 퇴직금을 산정함을 명확하게 정하고 있는 점
2) 제4항이 재임'연수'의 계산방식을 정하고 있는 것은, 제3항 때문이 아니라 재임'연수'를 지급기준으로 삼는 특별위로금(제6항)의 계산을 위하여 필요한 것으로 설명될 수 있는 점
3) 근로기준법 제2조 제1항 제6호가 평균임금을 3개월간 지급된 임금 총액을 그 기간의 총일수로 나눈 금액, 즉 1일치 임금으로 정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 만일 '재임일수'를 '재임연수'로 본다면 정관상 이사 임기 3년을 모두 재임하더라도 3일치 임금에 해당하는 퇴직금만 받게 되어 퇴직금이 이례적으로 과소해지는 점
4) 회사 스스로는 정당한 퇴직금을 '30일치의 평균임금 × 재직연수' 방식으로 주장하였는데, 이는 단순히 '재임일수'를 '재임연수'의 오기로 보는 것과도 다른 계산식인 점
5) 이 사건 조항 중 제3항만이 '재임일수'를 정하고 있는 것이 단순한 오기에 불과하다고 볼 만한 다른 사정이 없는 점
세 번째와 네 번째 사정이 특히 주목할 만합니다. 세 번째는 회사의 해석을 그대로 밀고 나갔을 때 도달하는 불합리한 결론을 드러낸 것이고, 네 번째는 회사가 실제로 내세운 대안적 계산식이 자신의 '오기' 주장과도 일치하지 않는다는 모순을 지적한 것입니다. 문언과 다른 해석을 구하는 당사자는 단순히 "오기"라고 말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고, 그것이 어떤 경위로 발생한 오기인지, 오기라면 올바른 기준은 무엇인지를 일관되게 제시하여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점이라 할 것입니다.

3.정리하며
이 사건에서 확인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회사 측면에서 정관 정비는 그 자체로 리스크 관리입니다. 임원 퇴직금 조항을 둘 때에는 산정 단위(일·월·연)를 명확히 하고, 지급기일과 비위행위 등에 따른 지급 제한·감액 사유를 함께 규정해 두어야 합니다. 이 사건처럼 조문 하나의 단위 표기가 결과를 좌우할 수 있고, 정관에 근거가 없는 지급 거절 사유는 사후에 주장하더라도 받아들여지기 어렵습니다. 또한 정관을 개정하면서도 문제 조항을 그대로 두었다는 사정은, 뒤늦게 오기를 주장할 때 오히려 불리한 정황으로 작용합니다.
임원 측면에서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보수의 명목이 아니라 실질이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세무상 편의로 '수수료' 등으로 처리하였더라도 직무수행의 대가로 정기적·고정적으로 지급되었다면 보수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실질을 증명할 자료 — 실제로 수행한 직무의 내역, 지급의 정기성과 고정성을 보여주는 자료 — 는 재직 중에 남겨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다른 하나는 퇴임 후 지급 청구를 서면으로 남겨두라는 것입니다. 지연손해금 기산일에서 적지 않은 차이가 발생합니다.
임원 퇴직금 분쟁은 근로관계 분쟁과 겉모습이 비슷해 보이지만, 적용 법리와 판단 구조가 다릅니다. 근로기준법이 아니라 상법과 정관 해석이 중심에 놓이고, 근로자성 인정 여부가 지연손해금 기산일 같은 지점에서 다시 문제 됩니다. 이 판결은 그 차이가 실제 사건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비교적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입니다.
로톡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콘텐츠 내용에 대한 무단 복제 및 전재를 금지하며, 위반 시 민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