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자대표회의가 관리업체를 자를 때 — 계약서 제13조가 민법 제689조를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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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자대표회의가 관리업체를 자를 때 — 계약서 제13조가 민법 제689조를 이긴다 

신지수 변호사

위탁관리계약은 위임계약이므로 입주자대표회의는 언제든 해지할 수 있다. 오랫동안 관리 현장에서 통용되어 온 명제입니다. 이번 판결은 그 명제가 계약서 앞에서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해지사유의 증명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도 함께 확인시켜 줍니다.

1. 사안

관리업체는 2022년 10월 입주자대표회의와 계약기간 2022년 11월 1일부터 2024년 10월 31일까지로 하는 공동주택 위·수탁관리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월 위탁관리수수료는 1,788,504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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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 제13조는 '계약의 해지'라는 표제 아래 일곱 가지 해지사유를 열거하고, 제2항에서 해지하고자 할 경우 계약해지 30일 전까지 상대방에게 서면으로 통보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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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 입주자대표회의는 구성원 30명 중 21명의 찬성으로 계약 해지를 결의하고, 같은 해 10월 여섯 가지 사유를 들어 해지를 통보했습니다. 직원 감원과 인건비 편중, 급수펌프 고장으로 인한 단수 사태, 안전관리 지적사항 공사비를 장기수선충당금이 아닌 수선유지비로 잘못 집행하여 과태료가 청구된 점, 책임방수공사를 계약서 없이 진행한 점, 28억 원대 장기수선충당금 만기 도래 후 즉시 재예치하지 않은 점, 감사의 내용증명에 답변하지 않은 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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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업체는 잔여 계약기간의 위탁수수료 상당액을 손해배상으로 청구하는 본소를, 입주자대표회의는 1억 6,496만 원의 손해배상을 구하는 반소를 각각 제기했습니다. 법원은 본소를 인용하고 반소를 전부 기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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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계약상 해지사유가 인정되지 않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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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먼저 이 위탁관리계약이 민법상 위임계약에 해당한다고 확인한 뒤, 수임인의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기준으로 각 해지사유를 검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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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수펌프 고장 부분에서는 두 차례 단수 사태가 발생한 사실 자체는 인정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원인이 업체의 관리의무 위반에 있다는 점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보았습니다. 오히려 관할 시청이 입주자대표회의에 단수 사고의 원인을 '제2기계실 배전반 노후'로 통보한 자료가 결정적이었습니다. 행정기관의 원인 통보 한 장이 업체를 구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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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수선충당금 재예치 지연에 관하여는, 만기 도래 후 약 16일이 지나 재예치하여 그 기간의 이자 상당 기회비용 상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기는 한다고 인정하면서도, 그 사실만으로 당연히 선관주의의무 위반이라고 단정하기 어렵고, 업체가 내부규정이나 지침, 입주자대표회의의 결의사항을 위반하였다는 등 책임을 지울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나아가 설령 잘못이라고 가정하더라도 재예치에 소요되는 기간을 감안할 때 계약 해지를 정당화할 정도에 이른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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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사유들도 마찬가지로 증거 부족으로 배척되었습니다.

3. 민법 제689조 임의해지의 차단

여기서 통상의 방어논리가 등장합니다. 위임계약은 각 당사자가 언제든지 해지할 수 있으므로(민법 제689조 제1항),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한 해지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더라도 임의해지로서의 효력이 인정된다는 것입니다. 대법원 2015. 12. 23. 선고 2012다71411 판결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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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재판부는 대법원 2019. 5. 30. 선고 2017다53265 판결의 법리를 적용했습니다. 민법 제689조 제1항, 제2항은 임의규정에 불과하므로 당사자의 약정으로 그 적용을 배제하거나 내용을 달리 정할 수 있고, 당사자가 위임계약을 체결하면서 해지사유 및 절차, 손해배상책임 등을 민법과 다른 내용으로 정하였다면, 민법 제689조가 그 약정과 별개로 독립적으로 적용된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약정에서 정한 해지사유와 절차에 의하지 않고는 계약을 해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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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 계약 제13조는 해지사유와 그에 따른 손해배상, 해지의 유예기간 및 서면 통보에 관하여 민법과 다른 내용을 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입주자대표회의는 민법 제689조가 별개로 적용된다고 볼 특별한 사정에 관하여 아무런 주장·입증을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약정 해지사유가 인정되지 않는 이상 해지 통보는 무효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4. 손해배상 범위와 반소의 전부 기각

손해는 실제 해지된 날부터 계약 만기까지의 위탁수수료 합계 18,577,364원으로 산정되었습니다. 무효인 해지 통보로 인해 업체가 잔여 계약기간의 위탁수수료라는 이행이익을 상실했다는 논리입니다. 지연손해금은 상법상 연 6퍼센트가 적용되었고, 기산점은 이행청구의 의사표시가 담긴 소장 부본 송달 다음 날로 정해졌습니다.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의무는 이행기의 정함이 없는 채무로서 이행청구를 받은 때부터 지체책임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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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소는 항목별로 모두 기각되었습니다. 수도펌프 고장 수리비 약 1억 45만 원은 고장 원인이 업체의 선관주의의무 위반이라는 점이 인정되지 않아서, 재활용품 수거비 미납분 1,743만 원은 증거 부족으로, 장기수선충당금 이자 상당 손해 339만 원은 선관주의의무 위반이 인정되지 않아서, 수목전지계약 관련 손해 3,960만 원은 의무위반과 손해 발생이 모두 증명되지 않아서 각각 배척되었습니다.

5. 평석

첫째, 이 판결은 '위탁관리계약은 위임이니 언제든 해지할 수 있다'는 통념을 정면으로 깨뜨립니다. 대부분의 위·수탁관리계약서에는 해지사유와 30일 전 서면통보 조항이 들어 있습니다. 그 조항이 존재하는 순간 민법 제689조는 뒤로 물러납니다. 입주자대표회의가 주민 다수의 뜻이라며 해지를 결의하더라도, 계약서에 열거된 사유에 해당하지 않으면 그것은 채무불이행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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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뒤집어 보면 이 사건은 절차를 지키지 못해 진 사건입니다. 이 계약서 제13조 제1항 제6호는 준수의무와 책임한계 위반과 관련하여 1차 주의, 2차와 3차 경고를 하여 시정을 요구하였으나 시정하지 않았을 때를 해지사유로 정하고 있었습니다. 입주자대표회의가 문제를 인식한 시점부터 주의·경고·시정요구를 각 서면으로 발송하고 회신을 받아 두었다면, 같은 사실관계에서도 결론이 달라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관리업체를 교체하려는 입주자대표회의는 해지 통보서를 쓰기 전에 계약서의 절차 조항부터 읽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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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해지사유의 증명책임은 해지한 쪽에 있습니다. 그리고 시설 고장 사안에서 승패를 가르는 것은 '노후'와 '관리 소홀'의 구별입니다. 이 사건에서는 관할 시청의 원인 통보가 업체를 구했습니다. 반대로 입주자대표회의가 이길 수 있었던 유일한 길은 정기점검일지, 정비 이력, 하자 통보 후 무대응 기록 같은 문서였습니다. 관리 소홀은 심증이 아니라 문서로 증명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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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반소 전부 기각에서 배울 것이 많습니다. 손해 항목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인정되지 않습니다. 항목마다 의무위반, 손해의 발생과 액수, 그리고 그 사이의 인과관계라는 세 겹의 구조를 각각 증명해야 합니다. 1억 원이 넘는 펌프 수리비 청구가 무너진 것은 청구액이 커서가 아니라 고장 원인 증명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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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관리업체 측에도 짚을 점이 있습니다. 잔여기간 수수료 전액이 이행이익으로 인정되었지만, 이론적으로는 계약이 존속했더라면 업체가 지출했을 비용, 즉 관리업무를 수행하지 않음으로써 절약된 비용을 공제해야 한다는 항변이 가능합니다. 이 사건에서는 그러한 주장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입주자대표회의 측 대리인이라면 반드시 검토해야 할 방어 논점입니다.

6. 실무 체크리스트

입주자대표회의: 해지 전 계약서의 해지사유 조항과 절차 조항을 대조하십시오. 주의·경고·시정요구는 반드시 서면으로, 회신 여부까지 기록으로 남기십시오. 해지 통보서에는 계약서 조항과 사유를 특정하여 기재하고, 30일 전 서면통보 기한을 준수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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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업체: 시설 고장이나 사고 발생 시 관할 관청의 원인 통보, 점검 이력, 즉시 조치 내역을 확보하여 보관하십시오. 이 자료가 훗날 해지의 정당성을 다투는 유일한 근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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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측 공통: 계약 체결 단계에서 해지사유를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두면 분쟁이 늘고, 지나치게 좁게 두면 교체가 불가능해집니다. 사유의 구체성과 절차의 명확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계약서 설계의 핵심입니다.

아파트·집합건물 분쟁, 혼자 판단하지 마십시오

공동주택 관리를 둘러싼 분쟁은 겉으로는 사소해 보여도 그 밑에 공동주택관리법, 집합건물법, 민법, 각 단지의 관리규약과 자치규정이 겹겹이 깔려 있습니다. 오늘 소개한 사건들이 보여주듯, 승패를 가르는 것은 대개 실체적 정당성이 아니라 계약서의 한 조항, 규약의 한 문장, 그리고 그때그때 남겨 둔 서면 한 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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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법무법인 랜드로에서 부동산 분야를 전담하는 변호사로서 입주자대표회의와 관리단, 관리업체, 개별 입주자와 구분소유자 모두를 대리해 왔습니다. 그 경험에서 말씀드리면, 대부분의 분쟁은 소송이 시작되기 훨씬 전에 이미 결론이 정해집니다. 계약서에 서명하기 전, 해지를 통보하기 전, 회의에 불참하기 전에 한 번만 검토받으셨다면 막을 수 있었던 사건이 너무 많습니다.

이런 문제가 있으시다면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

· 위·수탁관리계약의 체결·변경·해지와 그에 따른 손해배상 분쟁

· 입주자대표회의 구성, 동별 대표자 선거·해임, 결의 무효확인

· 관리비·장기수선충당금의 용도 외 사용, 사업자 선정지침 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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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자치단체의 과태료·영업정지 등 행정처분에 대한 불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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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랜드로 | 부동산 전문변호사 신지수

초기 상담 단계에서 계약서와 관리규약, 회의록만 검토해도 다툼의 방향과 승산은 상당 부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이미 분쟁이 시작되었더라도, 또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더라도 편하게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 본 글은 공개된 판결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일반적인 법률 정보이며, 개별 사안에 대한 법률자문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사안은 반드시 변호사의 검토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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