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법무법인(유한) 안팍 형사전문변호사 최윤호 변호사입니다.
강간 사건으로 억울하다는 마음이 드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형사사건을 맡는 변호사의 입장에서 보면, 이때부터는 ‘누가 더 억울한가’를 이야기하기보다 당시 두 사람 사이에 실제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다시 확인하는 작업이 먼저입니다.
연인이나 소개팅 상대라는 사실이 답이 되지는 않습니다
강간으로 고소당한 분들 중에는 상대방과 이전부터 연인 관계였거나, 소개팅이나 술자리에서 만나 자연스럽게 숙박업소나 집으로 이동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함께 술을 마셨고, 상대방이 먼저 집에 왔고, 스킨십도 서로 했는데 어떻게 강간이 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수사에서는 이러한 이유 하나만으로 결론을 내리지 않습니다.
숙박업소에 함께 들어갔다는 사실과 성관계에 동의했다는 것은 같은 의미가 아닙니다.
이전에 성관계를 가진 적이 있다는 사실 역시 해당 날짜의 성관계에 대한 동의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고소가 접수됐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강간죄가 인정되는 것도 아닙니다.
결국 문제는 바로 그날, 바로 그 성관계가 어떤 경위로 이루어졌는가입니다.
두 사람밖에 없었던 일인데 무엇으로 판단할까요?
강간 사건은 성관계가 있었던 사실 자체보다 그 과정에서 폭행 또는 협박이 있었는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성관계가 이루어졌는지가 쟁점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문제는 성관계가 대부분 둘만 있는 공간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CCTV가 성관계 장면을 촬영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옆에서 상황을 지켜본 사람이 있는 경우도 드뭅니다.
그렇다고 아무런 자료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수사에서는 만나기 전부터 헤어진 이후까지의 상황을 넓게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어떤 대화를 나누며 만났는지, 누가 숙박업소를 예약했는지, 함께 이동하는 모습은 어떠했는지, 성관계 전후 카카오톡이나 문자에서는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다음 날에도 평소처럼 연락했는지 등이 확인될 수 있습니다.
숙박업소나 건물의 CCTV, 택시 이용내역, 카드결제 기록, 통화내역처럼 당시 동선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도 경우에 따라 의미가 있습니다.
어떤 자료 하나가 ‘합의된 성관계’를 자동으로 증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 정황을 모아 고소인의 진술과 피고소인의 진술 중 어느 쪽이 실제 상황과 부합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경찰 조사에서는 생각보다 세세한 질문을 받습니다
상담을 하면서 당시 상황을 물어보면 처음에는 대부분 간단하게 설명합니다.
“술 마시다가 자연스럽게 관계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실제 조사는 그렇게 간단하게 끝나지 않습니다.
어디에서 처음 만났는지, 술은 얼마나 마셨는지, 누가 먼저 자리를 옮기자고 했는지, 숙박업소에는 어떻게 들어갔는지, 방에 들어간 뒤 어떤 대화를 했는지, 스킨십은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상대방이 거부 의사를 표시한 적은 없는지, 성관계가 끝난 뒤에는 무엇을 했는지까지 질문이 이어질 수 있습니다.
몇 달 전 일을 갑자기 설명해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기억이 정확하지 않은 부분도 생깁니다.
여기서 기억나지 않는 내용을 억지로 채워 넣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상대방이 먼저 키스했다”고 했다가 객관적인 자료가 나온 뒤 “제가 먼저 했던 것 같다”고 진술이 바뀌는 식으로 핵심적인 부분의 설명이 계속 달라진다면 진술 전체의 신빙성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조사 전에는 자신에게 유리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기억하는 부분과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부터 구분해 두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상대방에게 연락하는 것은 신중해야 합니다
억울하게 고소당했다고 생각하면 상대방에게 바로 전화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너도 좋다고 했잖아.”
“왜 이제 와서 강간이라고 하는 거야?”
“경찰에 사실대로 이야기해.”
이런 메시지를 보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신고나 고소가 이루어진 상황에서는 직접적인 연락이 오히려 새로운 문제를 만들 수 있습니다.
감정적인 표현이나 반복적인 연락이 남게 되면 사건과 별개로 불리한 정황으로 해석될 가능성도 있고, 상대방에게 진술을 바꾸도록 압박했다는 취지의 주장이 추가될 수도 있습니다.
고소 사실을 알게 됐다면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보다 현재 남아 있는 객관적인 자료를 확보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특히 CCTV처럼 일정 기간이 지나면 사라질 수 있는 자료는 더 그렇습니다.
“합의였습니다”라는 말에도 정확한 증거가 필요합니다
성관계가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 강간 혐의는 부인하는 사건이라면 방어의 핵심은 단순합니다.
성관계 자체를 숨기는 것이 아니라, 왜 합의된 관계였다고 판단했는지를 구체적인 사실관계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다만 그 설명은 고소인의 행동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방식이어서는 곤란합니다.
“싫었으면 따라오지 않았을 것이다.”
“연인 사이였으니 당연히 동의한 것이다.”
“다음 날 연락했으니 강간일 리 없다.”
이런 식의 단정은 각각의 정황이 가질 수 있는 의미를 지나치게 확대하는 것입니다.
대신 당시 두 사람이 주고받은 말과 행동, 관계가 이루어진 과정, 전후 연락, 객관적인 이동 경로 등을 하나씩 맞춰보면서 고소 내용과 배치되는 부분이 있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제가 이런 사건을 검토할 때 의뢰인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도 이것입니다.
억울함을 크게 이야기하는 것과 억울함을 입증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강간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되었다면 경찰서에 가서 모든 것을 설명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전에, 고소 내용이 무엇인지부터 파악하고 당시 상황을 복원할 수 있는 자료가 무엇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첫 조사를 마치고 난 뒤 뒤늦게 자료를 찾는 것보다, 조사 전에 자신의 진술과 객관적인 기록을 충분히 대조해보는 편이 안전합니다.
합의된 성관계였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 사실 역시 결국 수사 과정에서 설득력 있게 설명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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