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한 번도 들어온 적 없는 외국인이 해외에서만 마약을 유통하고 그 돈을 세탁했다면, 한국 수사기관이 손댈 수 없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형법과 마약류 불법거래 방지에 관한 특례법은 이런 경우에도 한국의 재판권이 미치도록 하는 별도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핵심은 국외범 조항이 어떤 범죄에, 어떤 조건으로 적용되는지이고, 이는 원칙 선언이 아니라 구체적인 조문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외국인이 국외에서 저지른 마약 밀수와 자금세탁이 어떤 법적 근거로 한국에서 처벌 대상이 되는지, 재판권이 있어도 실제 처벌까지 넘어야 하는 절차의 벽은 무엇인지 짚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원칙은 속지주의 — 외국인의 국외범이 예외적으로만 처벌되는 이유
형법이 적용되는 범위를 정하는 기본 원칙은 속지주의입니다. 형법 제2조는 대한민국 영역 내에서 죄를 범한 내국인과 외국인 모두에게 형법을 적용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이 원칙을 뒤집어 보면, 외국인이 대한민국 영역 밖에서 저지른 범죄에는 원칙적으로 대한민국 형법이 미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마약을 밀수하고 그 대금을 세탁하는 행위가 처음부터 끝까지 외국에서만 이뤄졌다면, 속지주의만으로는 한국이 개입할 근거가 없습니다.
이 원칙에는 몇 가지 예외가 법률로 마련돼 있습니다. 형법 제3조는 대한민국 국민이 국외에서 저지른 죄 전부에 형법을 적용하는 속인주의를 정하고, 형법 제5조는 내란·외환·통화위조 등 국가적 법익과 직결된 특정 범죄에 한해 피해자나 국적을 따지지 않고 외국인에게도 형법을 적용합니다. 형법 제6조는 그 외의 범죄라도 대한민국 또는 대한민국 국민을 상대로 저지른 경우 외국인에게 형법을 적용하되, 행위지 법률상 범죄가 되지 않거나 그곳에서 소추·형집행이 면제되면 예외로 한다는 단서를 두고 있습니다. 문제는 마약범죄가 형법 제5조가 열거한 목록에 들어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형법 제2조 국내범 — 대한민국 영역 내 범죄는 내·외국인 모두에게 적용.
형법 제3조 내국인의 국외범 — 국적만으로 국외의 모든 죄에 적용.
형법 제5조 외국인의 국외범 — 열거된 국가적 법익 범죄에 한정, 피해자 무관.
형법 제6조 대한민국·국민에 대한 국외범 — 피해자 요건 + 행위지 이중범죄 요건.
외국인이 대한민국 영역 밖에서 저지른 범죄는 원칙적으로 한국 형법이 미치지 않는다 — 국외범 처벌은 법률이 별도로 정한 예외에서만 가능하다.
마약류관리법엔 국외범 조항이 없다 — 특례법이 메우는 공백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은 마약·향정신성의약품·대마의 수출입·제조·매매 등을 처벌하는 기본법입니다. 제58조는 마약 등을 수출입·제조·매매한 자를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영리 목적이거나 상습이면 사형·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정하고, 제59조는 향정신성의약품·대마 관련 행위를 1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처벌합니다. 그런데 이 법 안에는 현재 국외범을 별도로 규정한 조항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조문 체계상 국외범을 담았을 법한 제65조를 확인해 보면 본문이 삭제된 채 조 번호만 남아 있습니다. 즉 마약류관리법만 놓고 보면, 외국인이 대한민국 영역 밖에서 저지른 마약범죄를 이 법만으로 처벌할 근거는 없습니다.
이 공백을 메우는 것이 1995년 제정된 마약류 불법거래 방지에 관한 특례법입니다. 이 법은 국제협력 하에 마약류 불법거래를 조장하는 행위를 방지해 마약류범죄의 진압·예방을 도모하고, 마약류 불법거래 방지에 관한 국제연합 협약의 효율적 시행을 뒷받침하기 위해 제정됐습니다. 이 법 제12조가 국외범을 정하고 있으며, "제6조부터 제8조까지 및 제10조는 형법 제5조의 예에 따라 대한민국 영역 밖에서 해당 죄를 범한 외국인에게도 적용한다"고 규정합니다. 오늘 다루는 국외범 처벌의 실질적 근거는 마약류관리법이 아니라 바로 이 조문입니다.
마특법 제12조가 적용되는 4개 범죄 — 밀수·자금세탁·수수·선동
제12조는 마특법 전체가 아니라 제6조, 제7조, 제8조, 제10조 네 개 조문에 한정해 국외범 규정을 적용합니다. 반면 마약류로 오인해 가짜 물품을 사고파는 행위를 처벌하는 제9조는 국외범 대상에서 빠져 있습니다. 입법자가 세계주의를 어느 범죄 유형에 적용할지 조문 단위로 선별해 두었다는 뜻이고, 실제로 어떤 행위가 국외범 처벌 대상인지 판단하려면 사실관계가 이 네 조문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제6조(업으로서 한 불법수입 등) — 마약류관리법상 수출입·제조·매매 등을 업으로 한 경우. 사형·무기 또는 10년 이상 징역에 1억원 이하 벌금 병과, 대상 물질에 따라 3년 이상 유기징역에 3천만원 이하 벌금 병과.
제7조(불법수익등의 은닉 및 가장) — 마약자금 세탁. 7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 미수범 처벌, 예비·음모는 2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
제8조(불법수익등의 수수) — 불법수익인 정황을 알면서 수수한 경우. 3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
제10조(선동 등) — 마약류범죄·자금세탁의 실행이나 마약 남용을 공연히 선동·권유. 3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
국외범 규정은 마특법 전체가 아니라 업으로 한 밀수(제6조)·자금세탁(제7조)·불법수익 수수(제8조)·선동(제10조) 네 조문에만 적용된다.
'업으로 한' 밀수의 의미 — 해외 총책도 예외 없다
마특법 제6조가 처벌하는 것은 단순한 1회성 밀수가 아니라 마약류관리법이 정한 수출입·제조·매매 등의 행위를 업(業)으로 한 경우입니다. 실무상 '업으로 하였다'는 것은 같은 종류의 행위를 반복·계속할 의사로 영리를 목적 삼아 행하는 것을 말하며, 조직적으로 마약을 조달해 여러 차례 유통을 지시하거나 관리하는 위치에 있었다면 단 한두 차례의 적발만으로도 업으로 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단순 소지·투약처럼 반복·영업의 성격이 없는 행위는 마약류관리법의 적용 대상일 뿐 제6조의 대상은 아니라는 점도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그려보면, 해외에 근거지를 둔 유통조직의 총책이 필리핀·태국 등에서 마약을 조달해 국내 판매책들에게 반복적으로 물량 공급을 지시하면서도 본인은 한 번도 국내에 입국하지 않은 경우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조직 하부의 운반책·판매책이 국내에서 검거되고 실제 마약이 국내로 반입된 정황이 확인되더라도, 총책 본인의 조달·지시 행위 자체는 전부 해외에서 이뤄졌다면 그 부분만 떼어 보면 국외범 문제가 됩니다. 이런 경우 마특법 제6조·제12조가 총책에게 별도의 처벌 근거를 제공합니다 — 실제로 물량을 조달하고 지시한 사람이 국경을 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처벌을 피해가지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자금세탁이 별도 범죄인 이유 — 불법수익 은닉·가장의 구조
마특법 제7조가 처벌하는 것은 마약을 팔거나 나른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렇게 얻은 돈의 출처를 숨기는 행위입니다. 요건은 마약류범죄의 발견 또는 불법수익등의 출처에 관한 수사를 방해하거나 몰수를 회피할 목적으로 불법수익등의 성질·소재·출처·귀속관계를 숨기거나 가장하는 것입니다. 마약 판매로 얻은 돈을 그대로 갖고 있는 것과, 그 돈을 정상적으로 번 것처럼 꾸미는 것은 보호법익이 다른 별개의 범죄로 취급되고, 두 행위가 함께 이뤄지면 실체적 경합으로 형이 더해집니다.
실무에서 확인되는 자금세탁 수법은 여러 단계를 거칠수록 추적이 어려워지는 방향으로 설계됩니다.
차명계좌를 여러 단계에 걸쳐 옮겨 다니며 자금 출처를 흐리는 방식.
해외 소재 유령회사(페이퍼컴퍼니) 명의로 정상 무역대금인 것처럼 송금을 가장하는 방식.
자금을 가상자산으로 환전해 여러 지갑을 거쳐 재환전하는 방식.
환치기(비공식 외환거래) 조직을 이용해 국경을 넘는 송금 흔적 자체를 남기지 않는 방식.
이런 은닉·가장 행위는 미수에 그쳐도 처벌되고, 실행에 나아가기 전 예비·음모 단계에서도 처벌 대상이 될 만큼 초기 단계부터 규제가 넓게 설정돼 있습니다.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3조에도 비슷한 구조의 은닉·가장죄가 있지만, 마약자금에 관한 한 마특법이 특별법으로 우선 적용됩니다.
형법 제6조와 다른 점 — 이중범죄 요건 없는 세계주의
외국인의 국외범을 처벌하는 또 다른 통로로 형법 제6조가 있습니다. 이 조문은 대한민국 또는 대한민국 국민을 상대로 저지른 범죄에 적용되지만, 단서에서 행위지의 법률에 의하여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거나 소추 또는 형의 집행을 면제할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고 정해 이른바 이중범죄(쌍방가벌성) 요건을 요구합니다. 실제로 서울고등법원 2013노1936 판결은 필리핀에서 벌어진 사체유기미수 사건에서, 피해자가 한국인이라 형법 제6조 본문에는 해당하더라도 행위지인 필리핀 법률상 범죄가 성립한다는 증명이 없다는 이유로 형법 적용을 부정하고 그 부분 공소를 기각했습니다. 국외범이라는 이유만으로 언제나 처벌이 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반면 마특법 제12조는 대한민국 또는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범죄일 것을 요구하지 않고 형법 제5조의 예에 따른다고 정합니다. 형법 제5조는 국가적 법익을 보호하기 위해 열거된 범죄에 피해자나 행위지 법률과 무관하게 적용되는 조문으로, 제6조 같은 이중범죄 단서가 없습니다. 즉 마특법이 정한 국외범은 피해자가 외국인이든 한국인이든, 유통된 마약이 한국 시장을 겨냥한 것이든 아니든, 행위지 법률상 처벌되든 안 되든 한국의 재판권이 미친다는 점에서 형법 제6조보다 넓은 세계주의를 채택한 것입니다. 국제 마약범죄를 각국이 서로 눈감지 않고 처벌하자는 국제협약의 취지가 국내법에 반영된 결과입니다.
재판권과 실제 처벌 사이 — 신병 확보, 인도, 이미 외국에서 처벌받았다면
국외범 조항이 있어 한국 법원에 재판권이 인정된다고 해서 자동으로 처벌이 이뤄지는 것은 아닙니다. 형사재판은 원칙적으로 피고인이 출석해야 진행되므로, 해당 외국인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하면 기소 이후에도 재판 자체를 열 수 없습니다. 실무에서는 수사기관이 인터폴을 통해 적색수배를 요청하고, 사건을 기소중지로 처리한 채 신병 확보를 기다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병 확보는 대상자가 자진해서 입국하다가 공항에서 체포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결국 범죄인 인도법에 따라 상대국에 인도를 청구하는 절차로 이어집니다.
인도청구가 받아들여지려면 상대국과 인도조약이 체결돼 있거나, 조약이 없더라도 상호주의가 보증돼야 하고, 상대국이 자국민 불인도 원칙을 내세우면 인도가 거절될 수도 있습니다. 한편 이미 외국에서 같은 행위로 형을 선고받아 복역했더라도, 그 외국 판결의 효력이 한국 법원의 재판권 행사를 막는 것은 아니어서 한국에서 다시 기소·처벌되는 것 자체가 봉쇄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형법 제7조는 외국에서 형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집행된 사람에 대해서는 그 집행된 형을 선고하는 형에 반드시 산입하도록 정하고 있어, 외국에서 이미 복역한 기간은 한국에서 선고되는 형량 산정에 그대로 반영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외국인이 국외에서 저지른 모든 마약범죄가 국외범 규정으로 처벌되나요?
A. 아니요. 마약류 불법거래 방지에 관한 특례법 제12조는 업으로 한 불법수입 등(제6조), 불법수익 은닉·가장(제7조), 불법수익 수수(제8조), 선동(제10조) 네 조문에만 적용됩니다. 반복성이나 영업성 없이 이뤄진 단순 1회 마약 소지·투약처럼 마약류관리법에만 해당하는 행위는 이 국외범 조항의 적용 대상에서 빠집니다.
Q. 한국인이 외국에서 마약범죄를 저지른 경우는 다른가요?
A. 네, 다릅니다. 형법 제3조는 대한민국 국민이 국외에서 저지른 죄 전체에 적용되므로, 마약류관리법 위반 행위라도 국적만으로 이미 한국 형법이 미칩니다. 외국인의 국외범이 문제되는 이유는 국적이라는 연결점이 없어 별도의 근거조문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Q. 재판권이 있으면 궐석재판으로도 처벌할 수 있나요?
A. 원칙적으로 어렵습니다. 형사재판은 피고인 출석을 전제로 진행되므로, 신병이 확보되지 않으면 기소 이후에도 실제 재판을 진행하기 어렵고 사건이 기소중지 상태로 장기화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터폴 수배나 범죄인 인도 절차를 통한 신병 확보가 실질적인 처벌의 관건입니다.
Q. 외국에서 이미 처벌받았다면 한국에서는 처벌을 면하나요?
A. 면하지 않습니다. 외국 판결의 효력이 한국 법원의 재판권 행사를 막지는 않아 다시 기소·처벌될 수 있습니다. 다만 형법 제7조에 따라 외국에서 이미 집행된 형은 한국에서 선고하는 형에 필수적으로 산입되므로, 이중으로 복역하는 결과까지 생기지는 않습니다.
Q. 마약 자금세탁은 왜 마약 판매죄와 별도로 기소되나요?
A. 마약류 불법거래 방지에 관한 특례법 제7조가 정한 불법수익 은닉·가장죄는 마약 판매행위와 보호법익이 다른 별개의 범죄이기 때문입니다. 판매행위는 마약류 유통 자체를 막기 위한 것이고, 은닉·가장죄는 범죄수익이 정상 자금처럼 세탁돼 다시 범죄에 재투입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어서, 두 죄는 실체적 경합으로 함께 처벌될 수 있습니다.
Q. 해외에서 마약 조직에 자금만 대고 국내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나요?
A. 자금 제공이 판매 대금을 마련해주는 등 불법수익등의 수수(제8조)에 해당하거나 조직의 밀수·유통을 업으로 지원하는 정도에 이르면 마특법 제12조의 국외범 규정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다만 실제 어느 조문에 해당하는지는 자금 제공의 성격과 반복성, 조직 내 역할에 따라 달라지므로 개별 사실관계를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합니다.
맺음말
외국인이 국외에서 저지른 마약 밀수와 자금세탁은 형법의 기본 원칙만 보면 처벌이 어려워 보이지만, 마약류 불법거래 방지에 관한 특례법 제12조가 형법 제5조의 예에 따라 업으로 한 밀수·자금세탁·불법수익 수수·선동을 별도로 처벌 대상에 올려두고 있습니다. 형법 제6조와 달리 피해자의 국적이나 행위지 법률을 따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조항은 국제 마약범죄에 국경이 방패가 되지 않도록 설계된 규정입니다.
다만 재판권이 인정된다는 것과 실제로 처벌이 집행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신병을 확보하지 못하면 기소중지 상태로 오래 남을 수 있고, 반대로 국내에 조금이라도 발을 들이는 순간 그동안 쌓인 수사자료를 근거로 곧바로 신병이 확보될 수도 있습니다.
수원지검·수원구치소 관할처럼 마약사건이 꾸준히 입건되는 지역에서는, 공범 중 해외 거주자가 있는 사건일수록 국외범 조항의 적용 여부와 신병 확보 가능성을 함께 따져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관련 조사나 기소 단계에 있다면 어느 조문이 적용되는지부터 먼저 점검해 보시길 권합니다.
의뢰인을 위한 최선의 전략을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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