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서울대] 법무법인 도모 대표변호사 고준용입니다.
최근 건설 표준도급계약서나 부동산 매매계약서에 유치권 포기(배제) 특약을 미리 넣어두는 경우가 늘면서, 정작 대금을 다 받지 못한 시공사나 매도인이 “계약서에 그렇게 써 있으니 정말 아무것도 못 하는 거냐”고 문의하는 사례가 잦아지고 있습니다.
건축주나 매수인 쪽에서는 “계약서에 유치권을 포기한다고 딱 박아놨으니, 나중에 공사대금을 좀 늦게 줘도 상대방이 건물을 붙잡고 버틸 일은 없다”고 안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막상 대금 지급이 늦어지고 상대방이 실제로 점유를 풀지 않으면, “계약서에 포기라고 써 있지 않느냐”는 항변만으로는 정리되지 않는 다툼이 시작됩니다.
최근 대법원은 유치권 포기 특약의 효력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그 특약이 정말 조건 없는 포기였는지는 문언뿐 아니라 계약 체결 경위와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까지 종합적으로 살펴 판단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아래에서는 유치권 포기 특약이 왜 원칙적으로 유효한지, 그럼에도 어떤 경우에 여전히 유치권을 주장할 여지가 남는지, 그리고 분쟁이 생겼을 때 어떤 절차로 다퉈야 하는지 최근 판례를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유치권은 대금을 받을 때까지 물건을 붙잡아 둘 수 있는 강력한 권리입니다
타인 소유 물건을 점유한 채권자는 다섯 가지 요건을 모두 갖춰야 유치권으로 버틸 수 있습니다.
민법 제320조는 타인의 물건 또는 유가증권을 점유한 자가 그 물건에 관하여 생긴 채권의 변제를 받을 때까지 그 물건을 유치할 권리가 있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실무에서 가장 흔한 사례는 공사대금을 받지 못한 시공사가 완공된 건물을 비워주지 않고 점유를 계속하는 경우, 매매대금을 다 받지 못한 매도인이 목적물을 넘겨주지 않고 점유하는 경우입니다.
유치권이 성립하려면 ①타인 소유의 물건을 점유하고 있을 것, ②그 물건 자체에 관하여 생긴 채권일 것(견련관계 — 예컨대 건물 신축공사대금은 그 건물과 견련관계가 있지만, 별개의 대여금 채권은 견련관계가 없습니다), ③그 채권의 변제기가 이미 도래했을 것, ④점유가 불법행위로 시작된 것이 아닐 것, ⑤당사자 사이에 유치권을 배제·포기하기로 하는 특약이 없을 것, 이 다섯 가지가 모두 충족되어야 합니다.
이 중 실무에서 분쟁이 가장 첨예한 지점이 바로 다섯 번째, 특약의 존재 여부입니다. 최근에는 건설 표준도급계약서나 부동산 매매계약서에 “수급인(매도인)은 유치권을 포기한다”는 조항을 미리 넣어두는 경우가 많아졌고, 실제로 대금을 받지 못한 채권자가 그 조항 때문에 정말 유치권을 행사할 수 없는지를 두고 다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유치권은 다섯 가지 요건을 모두 갖춰야 성립하고, 계약서에 이를 배제하는 특약이 있는지가 실제 분쟁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이 됩니다.
2. 계약서에 포기 특약이 있으면 유치권은 처음부터 발생하지 않습니다
유치권은 채권자 보호를 위한 수단에 불과해, 당사자가 미리 포기하기로 정한 특약도 유효합니다.
유치권은 법률이 정한 담보물권이지만, 어디까지나 채권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대법원은 당사자가 계약으로 미리 유치권의 발생 자체를 막는 특약을 맺을 수 있고, 이러한 특약은 유효하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유치권은 법정담보물권이기는 하나 채권자의 이익보호를 위한 채권담보의 수단에 불과하므로 이를 포기하는 특약은 유효하고, 유치권을 사전에 포기한 경우 다른 법정요건이 모두 충족되더라도 유치권이 발생하지 않는다(대법원 2016. 5. 12. 선고 2014다52087 판결).
이 판례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포기로 인한 유치권의 소멸 내지 불성립은 그 특약을 맺은 상대방뿐 아니라 그 밖의 사람도 주장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즉 특약을 맺은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훗날 그 물건을 넘겨받는 매수인이나 임차인도 “유치권 포기 특약이 있었다”는 사실을 근거로 유치권 주장을 막을 수 있습니다.
계약서에 명확한 유치권 포기 특약이 있다면, 원칙적으로 유치권은 처음부터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취급됩니다.
3. 그러나 포기 특약이 조건부였다면 유치권이 되살아날 수 있습니다
문언에 ‘포기’라고만 적혀 있어도, 실제로는 조건이 붙은 포기였는지를 다시 따져봐야 합니다.
문제는 계약서의 “유치권을 포기한다”는 한 문장만으로 모든 상황이 정리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대법원은 유치권 배제 특약에도 조건을 붙일 수 있고, 그 조건을 붙이려는 의사가 있었는지는 별도로 심리해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유치권 배제 특약에도 조건을 붙일 수 있고, 조건을 붙이고자 하는 의사가 있는지는 의사표시에 관한 법리에 따라 판단하여야 하며, 처분문서에 나타난 당사자의 의사해석이 문제 되는 경우에는 문언의 내용, 약정이 이루어진 동기와 경위, 약정으로 달성하려는 목적,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논리와 경험칙에 따라 합리적으로 해석하여야 한다(대법원 2018. 1. 24. 선고 2016다234043 판결).
예를 들어 도급계약서에 “수급인은 준공과 동시에 유치권을 포기한다”는 문구가 있었는데, 실제로는 도급인이 공사대금 대부분을 지급하지 못한 채 준공만 마친 상황이라면, 그 특약이 “대금을 정상적으로 지급받는 것을 전제로 한 포기”였는지, 아니면 “대금 지급 여부와 무관한 무조건적 포기”였는지를 계약 체결 경위와 협상 과정, 표준계약서 여부 등을 살펴 다시 판단해야 합니다. 조건이 성취되지 않았다고 인정되면, 문언과 달리 유치권은 여전히 살아 있는 것으로 취급됩니다.
계약서에 ‘포기’라는 단어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포기가 어떤 전제 위에 있었는지가 실제 결론을 좌우합니다.
4. 특약의 효력이 미치는 범위에 따라 실제 결과는 크게 달라집니다
누구에게 특약을 주장하느냐, 그리고 특약이 무조건부인지에 따라 결론이 갈립니다.
정리하면 유치권 포기 특약을 둘러싼 결론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뉩니다. 첫째, 특약이 문언 그대로 무조건적 포기로 인정되는 경우입니다. 이때는 계약 상대방은 물론 그 물건을 이어받은 매수인·임차인 등 제3자에 대해서도 유치권 주장 자체가 막힙니다.
둘째, 특약에 조건이 붙어 있고 그 조건이 아직 성취되지 않은 경우입니다. 이 경우 채권자는 여전히 유치권을 행사할 수 있고, 상대방이 명도소송이나 인도청구를 하더라도 유치권 항변으로 맞설 수 있습니다. 다만 조건의 존재는 이를 주장하는 채권자 쪽에서 계약 체결 경위 등 구체적 정황으로 입증해야 하므로, 준비 없이 다투면 오히려 불리해질 수 있습니다.
셋째, 특약 자체가 채권자에게 지나치게 일방적인 부합계약 조항으로 형식적으로만 삽입돼 있어 그 해석 자체가 다투어지는 경우입니다. 이런 사안은 계약이 개별 협상을 거쳤는지 정형화된 표준양식인지, 당사자 간 교섭력의 차이는 없었는지까지 함께 살펴야 하므로 사실관계 정리가 특히 중요합니다.
5. 유치권 포기 특약을 둘러싼 분쟁은 이런 절차로 진행됩니다
소송 전 자료 정리가 특약의 성격을 다투는 데 가장 중요한 단계입니다.
유치권 포기 특약을 둘러싼 다툼은 통상 ①상대방에게 계약서상 특약 조항과 대금 지급(미지급) 상황을 정리해 내용증명을 보내는 단계 → ②그래도 물건 인도나 명도가 이뤄지지 않으면 관할 법원(부동산 소재지가 수원이라면 수원지방법원)에 건물명도소송 또는 유치권부존재확인소송을 제기하는 단계 → ③계약서, 정산자료, 대금 지급 내역 등을 증거로 제출해 특약의 문언과 진정한 의사를 다투는 변론·증거조사 단계 → ④판결 확정 후 강제집행(인도집행)으로 이어지는 순서로 진행됩니다.
특약의 존재나 조건 성취 여부를 다투기 전에, 아래 순서로 자료부터 확인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계약서에서 유치권 포기(배제) 조항의 정확한 문언과, 그 조항이 표준양식인지 개별 협상을 거친 것인지를 확인합니다.
계약 체결 당시 주고받은 이메일·문자·회의록 등을 통해 그 조항에 조건이나 전제를 붙이려는 의사가 있었는지 정황을 정리합니다.
실제 대금 지급 내역과 미지급 금액, 점유(유치)를 시작한 시점, 경매·압류 절차 진행 여부를 함께 확인합니다.
이렇게 정리된 자료를 바탕으로 유치권 분쟁에 전문성 있는 변호사의 검토를 받으면, 특약의 효력 범위를 명확히 하고 명도소송이나 유치권부존재확인소송에서 실질적인 대응 전략을 세울 수 있습니다.
마치며
유치권 포기 특약을 둘러싼 분쟁은 “계약서에 이미 적혀 있으니 끝난 문제”라고 여기다가, 실제로 대금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닥친 뒤에야 뒤늦게 대응에 나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치권 포기 특약을 근거로 물건을 넘겨받으려는 건축주·매수인 입장에서는, 특약 문언만 믿기보다 그 특약이 조건 없는 포기였음을 뒷받침할 계약 체결 경위와 정산 자료를 함께 준비해야 예상치 못한 유치권 항변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반대로 대금을 받지 못한 채 유치권을 주장하려는 시공사·채권자 입장에서도, 계약서에 포기 문구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지레 포기할 것이 아니라 그 조항이 어떤 전제 위에 있었는지를 먼저 따져봐야 합니다.
저는 유치권 포기 특약을 근거로 물건을 넘겨받으려는 쪽과, 반대로 특약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치권을 주장하려는 쪽 양쪽 사건을 모두 다뤄온 변호사로서, 계약서 문언 하나만으로는 결론이 정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 번 확인해 왔습니다.
계약서에 포기 특약이 있다고 지레 포기하거나, 반대로 안심하고 방치하기 전에, 고준용 변호사를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계약서에 유치권을 포기한다고 써 있으면 무조건 유치권을 못 쓰나요?
A. 원칙적으로는 그렇습니다. 대법원은 유치권 포기 특약을 유효하다고 보아, 특약이 있으면 다른 요건을 모두 갖춰도 유치권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판단합니다. 다만 그 특약이 조건부였는지는 별도로 다퉈볼 여지가 있습니다.
Q. 유치권 포기 특약에 조건이 붙어 있다는 건 어떻게 증명하나요?
A. 계약서 문언만으로 부족하면 계약 체결 동기와 경위, 이메일·문자 등 협상 과정, 당사자가 실제로 달성하려던 목적을 종합적으로 살펴 판단합니다. 정황 자료를 구체적으로 준비할수록 유리합니다.
Q. 저는 특약을 맺은 당사자가 아닌데도 그 특약을 근거로 유치권을 막을 수 있나요?
A. 가능합니다. 대법원은 포기로 인한 유치권의 소멸(불성립)은 특약의 상대방뿐 아니라 그 밖의 사람도 주장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어, 물건을 이어받은 매수인·임차인 등도 이를 원용할 수 있습니다.
Q. 표준계약서에 형식적으로 들어간 포기 조항도 그대로 유효한가요?
A. 표준양식이라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무효가 되지는 않지만, 개별 협상 없이 형식적으로 삽입됐다는 점은 그 조항이 조건부였는지, 진정한 의사에 부합하는지를 판단할 때 함께 고려되는 사정입니다.
Q. 유치권을 포기했더라도 공사대금 자체를 못 받는 건 아니지 않나요?
A. 맞습니다. 유치권 포기는 물건을 붙잡아 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일 뿐, 공사대금채권 자체가 소멸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물건을 넘겨준 뒤에는 별도로 지급명령이나 대금청구소송 등으로 회수해야 합니다.
Q. 명도소송과 유치권부존재확인소송 중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나요?
A. 물건을 넘겨받는 것이 목적이라면 명도소송(인도청구)이 직접적이고, 유치권의 부존재 자체를 먼저 확정해 두고 싶다면 확인소송을 병행하기도 합니다. 사안의 시급성과 입증 준비 상황에 따라 전략이 달라지므로 사전 검토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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