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물에 얼굴이 안 나와도 피해자가 특정되면 유포죄가 성립하나요
사건 개요
연인 사이였을 때 촬영해 둔 은밀한 영상이 헤어진 뒤 인터넷 커뮤니티나 지인들의 단체 대화방에 떠도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는 상담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영상을 확인해 보면 정작 얼굴은 한 번도 제대로 잡히지 않습니다. 방향이 어긋난 각도, 이불 아래 가려진 얼굴, 어두운 조명 — 정작 신체만 또렷하게 드러나 있을 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는 이중으로 괴롭습니다. 영상이 퍼졌다는 사실 자체도 고통스럽지만, "얼굴도 안 나오는데 그게 나라는 걸 어떻게 증명하느냐"는 말을 주변에서, 심지어 수사 초기 단계에서 듣기도 합니다. 가해자 쪽에서도 "얼굴이 안 나왔으니 신원을 특정할 수 없어 처벌될 일이 없다"는 태도로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는 신체의 문신이나 점, 방 안의 가구 배치, 대화 속에 등장한 단어 몇 마디만으로 그 사람을 알아본 지인이 나타나면서 사건이 시작되는 일이 흔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얼굴이 나오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유포죄 성립이 부정되지 않습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성폭력처벌법)이 정한 반포죄는 '얼굴을 식별할 수 있는 촬영물'을 요건으로 하지 않습니다. 다만 신원이 명확히 확인되지 않는 촬영물일수록, 그것이 특정한 사람의 의사에 반하여 유포된 것인지를 뒷받침할 별도의 정황이 필요해지고, 그 정황을 얼마나 갖추었는가에 따라 수사·재판의 결과가 갈립니다.
핵심 쟁점
이런 사건에서 실제로 다투어지는 지점은 크게 네 가지입니다. 첫째, 성폭력처벌법 제14조가 정한 반포죄의 구성요건이 '얼굴이 식별될 것'을 요구하는지입니다. 둘째, 촬영대상자의 신원이 명확히 확인되지 않는 경우 그럼에도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여' 반포했다고 볼 수 있는지, 그 판단기준이 무엇인지입니다. 셋째, 얼굴이 없는 촬영물에서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 정표(간접증거)에는 실제로 무엇이 있고 이를 어떻게 증거로 남기는지입니다. 넷째, 유포 경위에 따라 가중처벌이나 처벌 대상 확대가 이루어지는지입니다.
대법원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바 있습니다(대법원 2023. 6. 15. 선고 2022도15414 판결). 인터넷 커뮤니티에 성명불상 남녀의 나체 사진을 올린 사건에서, 대법원은 성폭력처벌법 제14조 제2항 위반죄는 반포 등 행위 시를 기준으로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여 그 행위를 함으로써 성립하고, 촬영 자체가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지 않았더라도 성립에 지장이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나아가 촬영대상자의 신원이 파악되지 않는 등 그 의사를 명확히 확인할 수 없는 경우에는, 촬영물을 토대로 확인할 수 있는 촬영대상자와 촬영자의 관계 및 촬영 경위, 그 내용이 성적 욕망·수치심을 유발하는 정도, 촬영대상자의 특정가능성, 촬영물의 취득·반포 경위 등을 종합하여 의사에 반한 반포인지를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즉 얼굴이 나오지 않아 곧바로 신원을 알 수 없더라도, 이런 정황들을 통해 특정가능성이 인정되면 처벌 대상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김강희 변호사의 해결방법 [1]: 얼굴 없는 촬영물에서 '특정가능성'을 증거로 세우기
얼굴이 나오지 않는 촬영물 사건에서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이 "이게 나라는 걸 어떻게 증명하느냐"는 자신감입니다. 하지만 위 대법원 법리대로, 특정가능성은 얼굴 하나로만 판단되지 않습니다. 이런 사건에서 김강희 변호사는 다음 순서로 특정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구성합니다.
1) 신체적·공간적 특정 정표를 최대한 확보합니다.
문신, 점, 흉터, 반지·시계 등 액세서리, 손이나 발의 특이한 모양처럼 신체에 남은 표지는 물론, 영상 속에 함께 잡힌 방의 벽지·가구 배치·침구·창문 밖 풍경 같은 공간적 특징까지 하나하나 대조합니다. 이런 요소들은 피해자 본인이 아니면 정확히 지목하기 어려운 것들이라, 피해자가 "이것이 내 방이고 이것이 내 몸"이라고 구체적으로 특정할수록 신빙성이 올라갑니다. 실제로 지인이 영상을 보고 피해자를 알아본 경위가 있다면, 그 지인의 진술도 특정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2) 촬영자·유포자와 피해자의 관계 및 유포 경위를 정리합니다.
대법원이 판단기준으로 제시한 요소 중 하나가 촬영대상자와 촬영자의 관계 및 촬영 경위입니다. 전 연인 관계였다는 사실, 촬영 당시 상황(합의된 촬영인지, 몰래 촬영된 것인지), 이별 이후 협박이나 다툼이 있었는지 등을 문자메시지·통화기록·대화 캡처로 확보해 두면, 얼굴이 없어도 "왜 하필 이 사람이 이 영상을 올렸는가"라는 맥락이 만들어지고, 이는 그 반포가 특정인의 의사에 반한 것이라는 판단을 뒷받침합니다.
3) 성적 수치심 유발 정도와 확산 범위를 함께 기록합니다.
게시글의 제목·본문·댓글, 조회수, 재게시된 링크와 게시 시각을 캡처해 남깁니다. 이는 대법원이 말한 '촬영물의 내용이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하는 정도'와 '취득·반포가 이루어진 경위'를 뒷받침하는 자료이자, 이후 삭제지원과 손해액 산정의 기초 자료로도 함께 쓰입니다.
김강희 변호사의 해결방법 [2]: 가중처벌과 확산 차단까지 끌고 가는 전략
특정가능성을 세운 다음에는, 사건을 단순 반포죄 하나로 끝내지 않고 성폭력처벌법이 마련한 가중·확대 처벌 조항까지 검토해 수사기관에 함께 제시합니다.
1) 영리목적·정보통신망 이용 여부를 확인해 가중처벌을 끌어냅니다.
영리를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반포한 경우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가중됩니다(성폭력처벌법 제14조 제3항). 텔레그램방·웹하드·다크웹 사이트처럼 광고수익이나 대가를 목적으로 유포가 이루어진 정황(유료 회원제, 광고 배너, 코인·포인트 거래 흔적)이 확인되면 이를 적극적으로 제시해, 단순 개인 간 유포보다 무거운 법정형이 적용되도록 다툽니다.
2) 소지·구입·저장·시청한 사람까지 처벌 대상에 포함시킵니다.
촬영물을 유포한 사람뿐 아니라 이를 소지·구입·저장 또는 시청한 자도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같은 조 제4항). 얼굴이 없다는 이유로 최초 유포자 한 명만 문제 삼는 데 그치지 않고, 게시물을 내려받아 재유포하거나 소지한 정황이 확인되는 계정·인물까지 함께 고발 대상에 포함해 수사기관이 유포망 전체를 추적하도록 요청합니다. 상습으로 반복된 정황이 확인되면 법정형의 2분의 1까지 가중되는 상습범 규정(같은 조 제5항)도 함께 다툴 수 있습니다.
3) 삭제지원·해시값 등록으로 2차 유포를 먼저 차단합니다.
형사절차와 별개로, 여성가족부 산하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 삭제지원을 신청하면 게시물의 원본 파일을 해시값으로 등록해, 동일한 파일이 다른 사이트에 다시 올라와도 자동으로 걸러내는 조치를 받을 수 있습니다. 형사고소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확산을 막는 조치는 별도로, 그것도 가능한 한 빨리 병행해야 합니다.
결론
얼굴이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증명할 방법이 없다"고 단정하고 신고를 포기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그러나 법원은 얼굴 하나만으로 특정가능성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신체의 특징, 촬영이 이루어진 공간, 촬영자와의 관계, 유포가 이루어진 경위까지 종합적으로 살핀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정황들을 피해자 스스로 알아차리는 즉시 기록해 두는 것입니다. 영상이 퍼진 정황을 캡처하고, 자신만이 알 수 있는 특정 정표를 정리해 두는 것만으로도 이후 수사·재판의 방향이 크게 달라집니다. 얼굴이 안 나왔다고 해서 지레 포기하지 마시고, 지금 갖고 있는 자료만으로도 대응이 가능한지 한 번 점검을 받아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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