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피해자가 오랜 시간 끝에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하고도, 가해자가 파산과 면책을 신청했다는 소식에 이제 위자료를 받을 길이 사라진 건 아닌지 불안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파산과 면책은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정리해 새 출발을 돕는 제도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빚이 똑같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채무자회생법은 성범죄처럼 고의로 저지른 불법행위로 발생한 손해배상채무를 애초에 면책 대상에서 제외해 두고 있고, 이는 가해자가 파산선고와 면책결정을 모두 받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글에서는 성범죄 위자료가 왜 면책되지 않는지, 그리고 파산 절차가 진행 중이거나 이미 끝난 뒤에는 실제로 어떻게 청구해야 하는지를 짚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파산·면책 제도와 비면책채권 — 왜 모든 빚이 사라지지 않는가
개인파산·면책 제도는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진 채무자가 파산재단으로 재산을 정리하고 남은 채무의 책임에서 벗어나 다시 경제활동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돕는 절차입니다. 법원이 면책을 허가하면 채무자는 파산절차에서 배당받지 못한 나머지 채무에 대해서도 원칙적으로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다만 이 원칙에는 처음부터 예외가 정해져 있습니다. 채무자회생법 제566조는 본문에서 면책의 효력을 정하면서도, 단서에서 특정 청구권에 대해서는 그 책임이 면제되지 않는다고 못 박고 있습니다.
이 단서가 존재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파산제도가 보호하려는 대상은 '성실하지만 갚을 능력을 잃은 채무자'이지, 고의로 타인에게 해를 끼치고 그 손해배상채무를 파산으로 털어버리려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조세, 벌금·과료·추징금 같은 형사상 금전제재, 고의로 가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중대한 과실로 생명·신체를 침해한 손해배상, 근로자의 임금·퇴직금, 양육비 등이 대표적으로 면책되지 않는 청구권입니다. 성범죄로 인한 위자료는 이 가운데 '고의로 가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에 해당해, 가해자가 파산선고와 면책결정을 모두 받더라도 그 지급의무가 그대로 남습니다.
조세, 벌금·과료·형사소송비용·추징금 및 과태료
채무자가 고의로 가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성범죄 위자료가 여기에 해당)
채무자가 중대한 과실로 타인의 생명 또는 신체를 침해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근로자의 임금·퇴직금·재해보상금, 양육비 등 부양의무 관련 비용
비면책채권 제도는 '갚을 능력이 없는 것'과 '고의로 타인에게 해를 끼친 것'을 법이 다르게 취급한다는 선언이다.
채무자회생법 제566조 제3호 — '고의로 가한 불법행위'와 성범죄의 관계
비면책채권의 핵심 근거는 채무자회생법 제566조 제3호입니다. 이 조항은 "채무자가 고의로 가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을 면책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요건은 단순합니다. 채무자가 '고의'로 저지른 불법행위여야 한다는 것뿐입니다. 강간, 유사강간, 강제추행, 준강간, 카메라등이용촬영 등 형법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정한 성범죄는 모두 고의범입니다. 과실로는 성립하지 않는 범죄이기 때문에, 형사판결에서 유죄가 확정됐다면 민사상 손해배상채무의 '고의성' 요건은 사실상 함께 인정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여기서 비교할 만한 조항이 제566조 제4호입니다. 이 조항은 "채무자가 중대한 과실로 타인의 생명 또는 신체를 침해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을 규정하는데, 음주운전 사망사고처럼 고의는 없지만 중대한 과실로 큰 피해를 입힌 경우에 적용됩니다. 성범죄는 애초에 고의범이므로 중과실 여부를 따로 다툴 필요 없이 제3호로 바로 판단됩니다. 실무에서 파산법원이나 이후 강제집행 단계의 법원이 '고의' 요건을 확인할 때 살피는 자료는 형사판결의 유죄 확정 여부, 공소사실과 판결이유에 나타난 범죄사실, 필요하다면 수사기록입니다. 가해자와 형사합의를 했거나 형사공탁을 했다는 사정은 정상참작 사유가 될 뿐, 민사상 위자료채무가 고의불법행위에 해당한다는 판단 자체를 뒤집지 못합니다.
성범죄는 구성요건 자체가 고의범이어서, 형사판결의 유죄 확정이 곧 비면책채권 해당 여부를 판단하는 가장 강력한 근거가 된다.
채권자목록에 없어도 상관없다 — 제7호와 무엇이 다른가
일반적인 빚은 채무자가 파산을 신청하면서 채권자목록에 정확히 기재해야 합니다. 만약 어떤 채권을 목록에 빠뜨렸다면 원칙적으로는 그 채권도 면책되지만, 채무자회생법 제566조 제7호는 예외를 둡니다. 채무자가 채권의 존재를 알면서도 '악의로' 채권자목록에 기재하지 않았다면, 그 채권은 면책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만 채권자가 이미 파산선고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이 예외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이처럼 일반채권은 원칙적으로 면책되고, 악의적 누락이 증명될 때만 예외적으로 비면책채권이 됩니다.
성범죄 위자료는 이 구조와 처음부터 다릅니다. 애초에 제3호에 해당하는 청구권이기 때문에, 가해자가 피해자를 채권자목록에서 고의로 뺐는지, 아니면 실수로 빠뜨렸는지, 심지어 아예 목록 자체를 아무렇게나 작성했는지와 무관하게 결과는 같습니다. 위자료 채무는 처음부터 면책의 대상이 아니었으므로, 목록에 기재되어 있든 없든 그 책임이 그대로 남습니다. 다만 실무적으로 유의할 점은 있습니다. 목록에 기재되지 않으면 피해자는 가해자의 파산절차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통지받지 못해, 채권신고나 배당 참가의 기회를 놓칠 수 있습니다. 이는 면책 여부와는 별개로, 배당에 참여해 조금이라도 회수할 기회를 놓치는 절차적 손실이므로 따로 챙겨야 합니다.
가해자의 파산 여부는 개인회생·파산 통합사건검색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목록 기재 여부와 무관하게 위자료 채권은 살아있으므로, 뒤늦게 알았더라도 청구권 자체가 소멸하지 않는다.
다만 배당 참가는 시기가 정해져 있으므로, 파산절차 진행 사실을 안 즉시 법원에 채권신고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손해배상소송이 진행 중일 때 가해자가 파산을 신청하면
이미 위자료 청구소송을 제기해 재판이 진행 중인데 가해자가 파산을 신청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때는 파산채권에 관한 소송절차가 일단 중단됩니다. 파산채권자인 피해자는 파산사건을 맡은 법원에 자신의 채권을 신고해야 하고, 파산관재인이나 다른 채권자가 그 채권의 존재나 액수에 이의를 제기하면 피해자는 계속 중이던 소송을 수계하여 청구취지를 채권확정소송으로 변경해 다투게 됩니다. 비면책채권이라고 해서 이 절차 자체를 건너뛸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실무에서 자주 놓치는 부분입니다.
예를 들어 피해자가 형사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민사소송을 제기해 다투던 중, 가해자가 갑자기 개인파산을 신청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 경우 진행 중이던 민사소송은 중단되고, 피해자는 파산법원에 채권신고서를 제출해 자신의 위자료 채권을 알려야 합니다. 파산관재인이 채권의 존재나 금액을 인정하지 않으면 피해자는 중단됐던 소송을 다시 수계해 채권확정소송 형태로 이어가야 합니다. 이 절차를 놓치면 파산절차 안에서 배당받을 기회 자체를 잃을 수 있으므로, 소송이 중단됐다는 통지를 받으면 신고 기한부터 먼저 확인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면책결정이 확정된 뒤에는 어떻게 청구하나
면책결정이 확정되어도 비면책채권은 소구력과 집행력을 그대로 유지합니다. 이미 확정판결이나 지급명령, 재판상 화해조서 같은 집행권원을 가지고 있다면, 파산절차에서 배당받지 못한 잔액에 대해 채무자 개인의 재산에 곧바로 강제집행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채무자의 재산은 파산선고 당시 파산재단으로 편입된 재산이 아니라, 면책 이후 채무자가 새로 취득한 재산이나 파산재단에서 제외된 자유재산을 뜻합니다. 파산·면책을 받았다고 해서 채무자의 급여, 이후 취득한 부동산, 예금 등에 대한 강제집행이 막히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아직 판결을 받지 못한 상태라면, 가해자의 파산·면책 여부와 관계없이 별도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비면책채권은 면책결정으로도 소멸하지 않으므로 소를 제기할 실익, 즉 소의 이익이 그대로 인정됩니다. 다만 소송이 오래 지연되면 지연손해금이 계속 늘어나는 대신 집행까지의 시간도 함께 늘어나므로, 가해자의 재산 상태를 확인하며 가압류 등 보전처분을 함께 검토하는 편이 유리한 경우가 많습니다.
면책결정은 채무자의 '새로운 삶'을 보장하는 절차일 뿐, 고의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채무의 집행력까지 없애주지는 않는다.
가해자가 재산을 미리 빼돌렸다면 — 부인권과의 관계
가해자가 파산을 신청하기 전에 재산을 배우자나 가족 명의로 넘기거나 헐값에 처분하는 경우도 실무에서 드물지 않게 나타납니다. 파산선고 전에 이런 정황을 확인했다면 피해자는 민법상 사해행위취소소송을 검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파산선고가 있고 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채무자회생법 제396조는 이런 재산 회수 권한, 즉 부인권을 파산관재인이 소·부인의 청구·항변의 방법으로 행사하도록 정하고 있고, 개별 채권자는 파산선고 후에는 자신의 채권만을 위한 사해행위취소소송을 별도로 제기할 수 없습니다. 이미 제기해 둔 소송이 있었다면 그 절차는 중단되고, 파산관재인이 이를 수계해 부인소송으로 이어가게 됩니다.
이 구조가 피해자에게 불리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파산관재인이 부인권을 행사해 회수한 재산은 파산재단으로 편입되어 전체 채권자를 위한 배당재원이 되고, 비면책채권자인 피해자도 그 배당 절차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배당으로 위자료 전액을 회수하지 못했다면, 앞서 살펴본 대로 면책결정 이후 채무자가 새로 취득하는 재산에 대해서는 여전히 강제집행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가해자의 재산 이전 정황을 알게 됐다면, 파산관재인에게 이 사실을 알려 부인권 행사를 요청하는 것이 개인적으로 소송을 따로 제기하는 것보다 실효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가해자가 파산선고와 면책결정을 모두 받으면 위자료를 영영 못 받나요?
A. 그렇지 않습니다. 성범죄 위자료는 채무자회생법 제566조 제3호가 정한 비면책채권에 해당해, 면책결정이 확정되더라도 그 지급의무는 그대로 남습니다. 파산절차에서 배당받지 못한 잔액은 이후에도 계속 청구할 수 있습니다.
Q. 가해자의 파산 사실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이미 늦은 건가요?
A. 위자료 채권 자체는 채권자목록 기재 여부와 무관하게 살아있으므로 청구권이 소멸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파산절차 안에서 배당에 참여할 기회는 신고 기한이 있으므로, 사실을 안 즉시 관할 법원에 채권신고 여부와 기한을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Q. 형사합의를 했는데도 민사 위자료를 따로 청구할 수 있나요?
A. 형사합의금과 민사 손해배상은 별개의 청구권입니다. 합의서에 손해배상 전부에 대한 포기나 합의가 명시되지 않았다면, 남은 손해에 대해 별도로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고 이 채권도 마찬가지로 파산으로 면책되지 않습니다.
Q. 이미 확정판결을 받은 위자료도 파산 이후 강제집행이 가능한가요?
A. 가능합니다. 확정판결은 그 자체로 집행권원이 되므로, 면책결정 이후 채무자가 새로 취득한 재산이나 자유재산에 대해 강제집행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판결의 소멸시효가 남아 있는지만 함께 확인하면 됩니다.
Q. 가해자가 파산 직전에 재산을 가족 명의로 옮겼다면 어떻게 하나요?
A. 파산선고 전이라면 사해행위취소소송을 검토할 수 있지만, 파산선고 이후에는 이 권한이 원칙적으로 파산관재인에게 넘어갑니다. 재산 이전 정황을 파산관재인에게 알려 부인권 행사를 요청하는 방법이 실무적으로 더 효과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Q. 판결을 아직 받지 못했는데 가해자가 파산을 신청했다면 소송을 포기해야 하나요?
A.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소송절차가 일단 중단되므로, 파산법원에 채권신고를 하고 이의가 있으면 채권확정소송으로 청구취지를 바꿔 절차를 이어가야 합니다. 이 절차를 놓치면 배당 참가 기회를 잃을 수 있어 유의해야 합니다.
맺음말
성범죄 가해자가 파산을 신청했다는 소식은 피해자에게 위자료를 받을 길이 막힌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지만, 법은 애초에 그런 결과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고의로 가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은 채무자회생법이 정한 비면책채권이어서, 파산선고와 면책결정을 모두 거쳤더라도 위자료를 받을 권리 자체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파산절차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채권신고나 소송 수계 같은 절차를 놓치지 않아야 배당 기회를 지킬 수 있고, 면책 이후에는 집행권원을 근거로 채무자의 새 재산에 강제집행을 이어갈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수원지방법원을 비롯한 경기남부 지역에서도 성범죄 형사사건과 뒤이은 손해배상, 가해자의 파산신청이 함께 얽히는 사건이 드물지 않게 진행됩니다. 절차마다 신고 기한과 대응 방식이 달라 놓치기 쉬운 지점이 많은 만큼, 가해자의 파산 소식을 접했다면 위자료 채권의 성격과 앞으로의 대응 방향부터 먼저 점검해 보시길 권합니다.
조력이 필요하시면 010-3432-1451 강대현 대표변호사에게 연락주십시오. 신속히 도와드리겠습니다.
의뢰인을 위한 최선의 전략을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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