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갑자기 쓰러져 119에 신고했는데 구급차가 늦게 도착하거나, 구급대원이 현장에서 머뭇거리는 사이 이송이 늦어져 환자가 끝내 사망하는 사고가 종종 벌어집니다. 유족 입장에서는 "조금만 더 빨리 왔더라면"이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지만, 이 억울함을 국가배상으로 연결하려면 병원을 상대로 의료과실을 묻는 것과는 전혀 다른 법리를 통과해야 합니다. 소방공무원의 구조·구급 활동에는 현장에서 즉시 판단해야 하는 폭넓은 재량이 인정되기 때문에, 이송이 늦었다는 결과만으로 국가의 배상책임이 곧바로 인정되지는 않습니다. 이 글에서는 119 구급대의 이송 지연으로 환자가 사망했을 때 국가배상을 청구하기 위해 갖춰야 하는 법적 요건과, 법원이 실제로 무엇을 기준으로 과실 여부를 가리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국가배상, 병원을 상대로 한 소송과 무엇이 다른가
119 구급대의 이송 지연으로 환자가 사망했을 때 책임을 묻는 절차는 병원 의료진의 과실을 다투는 소송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병원을 상대로 한 소송은 환자와 의료기관 사이의 진료 관계에서 발생한 불법행위 또는 채무불이행 책임을 추궁하는 것이지만, 119 구급대원은 소방공무원이라는 공무원 신분을 갖고 있어 그 직무집행 과정에서 발생한 과실은 국가배상법 제2조의 적용을 받습니다. 이 조문은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해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그 손해를 직접 배상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피고가 누구인지도 병원 소송과 다릅니다. 2020년 4월 1일부터 전국 소방공무원이 지방직에서 국가직으로 일원화되면서, 119 구급대원의 과실을 이유로 한 손해배상 소송은 원칙적으로 국가(대한민국)를 상대로 제기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소방장비·시설의 설치·운영 비용을 시·도가 일부 부담하는 구조가 여전히 남아 있어, 국가배상법 제6조(비용부담자 등의 책임)에 따라 그 비용을 부담하는 지방자치단체도 국가와 함께 피고가 될 수 있습니다. 소송을 준비할 때는 관할 소방서와 그 상급기관인 소방청, 그리고 비용부담 관계에 있는 시·도를 함께 특정해두는 것이 안전합니다.
119구급대원의 이송 지연을 이유로 국가배상을 구하는 것은 병원을 상대로 의료과실을 추궁하는 것과 전혀 다른 절차다 — 전자는 국가배상법 제2조가 정한 공무원의 직무상 의무 위반을, 후자는 의료수준에 못 미친 진료행위를 각각 문제 삼는다.
국가배상이 인정되려면 갖춰야 하는 다섯 가지 요건
국가배상법 제2조가 정한 배상책임은 다음 다섯 가지 요건을 모두 갖춰야 인정됩니다. 하나라도 빠지면 아무리 이송이 늦었어도 배상청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공무원의 직무집행 관련성 — 구급대원이 출동·현장처치·이송이라는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어야 합니다.
고의 또는 과실 — 평균적인 구급대원이라면 그 상황에서 취했을 조치를 게을리했는지를 봅니다.
법령 위반(위법성) — 단순히 결과가 나빴다는 사정만으로는 부족하고, 직무상 의무 자체를 위반했어야 합니다.
손해의 발생 — 환자의 사망이라는 손해가 실제로 발생해야 합니다.
상당인과관계 — 의무 위반과 사망 사이에 법적으로 인정되는 인과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이 가운데 실무에서 가장 치열하게 다투어지는 부분은 '법령 위반(위법성)'과 '상당인과관계' 두 가지입니다. 구급대원에게 어떤 의무가 있었고 그 의무를 어느 정도 위반해야 위법하다고 평가되는지, 그리고 그 위반이 사망이라는 결과와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야 하는지는 아래에서 순서대로 살펴보겠습니다.
구급대원의 현장 응급처치·환자평가 의무 — 어디까지 법적 의무인가
119 구급대원에게는 현장에 도착하면 환자에게 접근해 의식·호흡·맥박 등 상태를 확인하고 필요한 응급처치를 실시하며 응급환자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119구조·구급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21조가 정한 이른바 환자평가의무입니다. 이 의무는 단순한 행정 지침이 아니라, 위반 시 국가배상책임의 근거가 되는 법적 의무로 다뤄집니다.
실제로 수원고등법원은 2025년 7월 10일 선고한 2024나18853 판결에서 이 의무의 위반 여부를 정면으로 다뤘습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급대원이 환자를 직접 대면하지 않은 채 약 5분간 전화 통화만 진행했고, 가족이 "아버지는 들어가셔도 돼요"라고 말하자 현장을 떠났으며, 그 뒤 환자가 사망한 사안이었습니다. 법원은 구급대원이 직접 접근해 상태를 평가했어야 함에도 이를 하지 않았다며 환자 접근·평가 의무 위반을 인정했습니다. 전화 통화만으로 상태를 짐작하고 철수하는 것은, 현장에 도착한 구급대원에게 요구되는 통상적인 주의의무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본 것입니다.
의무를 위반해도 배상책임이 바로 인정되지 않는 이유 — 재량권 판단
다만 위 판결이 보여주듯, 구급대원의 의무 위반이 인정된다고 해서 국가배상책임까지 자동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소방공무원의 출동 판단, 이송 여부와 방법, 병원 선정은 현장에서 순간적으로 내려야 하는 전문적 재량의 영역이라는 것이 판례의 기본 태도입니다. 그 결과가 나빴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위법하다고 평가하지 않고, 재량권의 불행사나 이송 지연이 현저하게 불합리하여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없는 정도에 이르러야 비로소 위법성이 인정됩니다.
앞서 본 수원고등법원 2024나18853 판결도 이 지점에서 결론이 갈렸습니다. 법원은 구급대원의 환자평가 의무 위반은 인정했지만, 신고 당시 전달된 증상만으로는 망인이 응급환자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보았고, 구급대원이 119구조·구급에 관한 법률 제15조가 정한 강제진입 권한을 행사하지 않은 것도 현저하게 합리성을 잃어 사회적 타당성이 없다고까지는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결국 의무 위반은 인정되었음에도 유족의 손해배상 청구는 기각되었습니다. 단순한 의무 위반 인정과 국가배상 인정 사이에는 이처럼 상당한 간극이 있다는 점을 미리 알아두어야 합니다.
이 간극을 좁히려면 신고 당시 전달된 증상이 얼마나 구체적이고 응급성을 짐작하게 했는지, 구급대원이 현장에서 실제로 확인할 수 있었던 정보가 무엇이었는지, 이송을 미루거나 강제조치를 취하지 않은 데 합리적 사유가 있었는지, 그리고 구급대원 현장응급처치 표준지침 등 내부 지침을 벗어난 처리가 있었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히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신고 당시 통화 내용이나 목격자 진술로 응급성이 뚜렷했음에도 대응이 미흡했다는 사정을 갖출수록 위법성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병원 수용 거부로 이송이 늦어졌다면 — 국가와 병원, 책임 주체가 다르다
이송 지연이 구급대원의 판단 착오가 아니라, 이송병원을 물색하는 과정에서 여러 병원이 잇달아 수용을 거부해 벌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로 불리는 상황입니다. 이때는 구급대원 자신의 병원 선정·연락 과정에 잘못이 있었는지와, 병원 측이 정당한 사유 없이 수용을 거부했는지를 나누어 살펴야 합니다. 전자는 국가를 상대로 한 국가배상 청구의 대상이 되고, 후자는 해당 병원을 상대로 한 별도의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대상이 됩니다.
2026년 4월 부산지방법원 서부지원은 편도선 제거 수술 뒤 상태가 악화된 4세 환아가 여러 병원의 수용 거부로 이송이 지연되다 사망한 사건에서,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이송 중인 응급환자의 수용을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한 병원과 미신고 대리 당직의를 배치하고 적절한 응급처치를 하지 않은 병원에 공동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해 청구액의 70%에 해당하는 4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다만 이 사건의 피고는 병원들이었을 뿐 119 구급대나 국가가 아니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구급대 자체에 판단 착오, 예컨대 인근에 수용 가능한 병원이 있었는데도 이를 확인하지 않고 먼 병원만 고집했다는 사정이 별도로 있었다면, 그 부분만 국가배상의 대상이 됩니다.
구급대원의 병원 선정·연락 과정 자체에 잘못(관할 정보 미확인, 연락 지연 등)이 있었는지 → 국가배상 대상.
병원이 정당한 사유 없이 응급환자 수용을 거부했는지(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상 진료거부 금지 위반) → 병원 상대 민사소송 대상.
두 사정이 함께 확인되면 국가와 병원을 공동피고로 삼아 함께 소송을 진행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이송이 빨랐다면 살았을 것이라는 인과관계, 어떻게 증명하나
의무 위반이 인정되더라도 그 위반과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없다면 배상책임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다만 상당인과관계는 이송이 빨랐다면 100% 생존했을 것이라는 확정적 증명까지 요구하는 것은 아니고, 의무를 제대로 이행했더라면 사망이라는 결과를 회피했을 상당한 개연성을 보이면 됩니다. 법원은 이를 판단할 때 구급활동일지에 기록된 시각별 처치 내용, 119 신고 접수·출동 지령 녹취, 병원 도착 후 진료기록과 사망원인, 필요하다면 부검감정서까지 종합해 판단합니다.
따라서 유족 입장에서는 신고접수부터 현장도착, 처치 개시, 이송 개시, 병원 도착까지 각 구간에서 실제로 얼마나 시간이 지체됐는지, 그리고 그 지체가 생존 가능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시간 단위로 특정해두는 작업이 핵심입니다. 예컨대 심정지 환자의 경우 처치가 지체된 몇 분이 소생 가능성에 미치는 영향을 의학적 소견으로 뒷받침할 수 있다면, 인과관계 판단에서 유리한 자료가 됩니다.
소송 준비에서 놓치기 쉬운 절차 — 소멸시효와 증거 확보
국가배상청구권에는 소멸시효가 있습니다. 피해자나 유족이 손해와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민법 제766조 제1항), 그 사실을 몰랐더라도 불법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5년(국가재정법 제96조)이 지나면 시효로 소멸합니다. 사고 직후에는 장례와 슬픔으로 시간을 보내다 뒤늦게 소송을 준비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기록이 남아있는 초기에 자료부터 확보해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구급활동일지와 119 신고접수·지령 녹취록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보할 수 있고, 병원 진료기록은 의료법에 따른 열람·복사청구로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자료들을 시간순으로 정리해 어느 구간에서 얼마나 지체가 있었는지를 표로 정리해두면, 소송 과정에서 위법성과 인과관계를 함께 뒷받침하는 자료가 됩니다. 배상신청을 국가배상심의회에 먼저 하는 절차는 임의적 절차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지만, 초기 자료 확보와 사실관계 정리는 어느 경로를 택하든 반드시 필요한 작업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119 구급차가 늦게 왔다는 사실만으로 국가배상을 받을 수 있나요?
A. 단순히 도착이나 이송이 늦었다는 사정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구급대원에게 부여된 직무상 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만한 구체적 사정과, 그 위반이 사망이라는 결과와 상당인과관계가 있다는 점까지 함께 증명해야 인정됩니다.
Q. 구급대원이 환자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철수했다면 그 자체로 배상책임이 인정되나요?
A. 환자 접근·평가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볼 여지는 있지만, 신고 당시 전달된 증상으로 응급성을 짐작하기 어려웠거나 강제조치를 취하지 않은 데 합리적 사유가 있었던 경우처럼 정황에 따라 위법성까지는 인정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Q. 여러 병원이 수용을 거부해 이송이 늦어졌다면 누구를 상대로 소송해야 하나요?
A. 구급대의 병원 선정 과정 자체에 잘못이 있었다면 국가를 상대로, 병원이 정당한 사유 없이 수용을 거부했다면 해당 병원을 상대로 각각 책임을 물을 수 있고, 두 사정이 겹치면 함께 소송을 진행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Q. 국가배상 소송의 피고는 국가인가요, 소방서가 있는 지방자치단체인가요?
A. 소방공무원이 국가직으로 전환된 이후에는 원칙적으로 국가가 피고가 되지만, 소방장비나 시설 비용을 일부 부담하는 지방자치단체도 국가배상법 제6조에 따라 함께 피고가 될 수 있습니다.
Q. 사고가 난 지 한참 지났는데 지금이라도 소송할 수 있나요?
A. 손해와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불법행위가 있은 날로부터 5년이 지나지 않았다면 청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구급활동일지나 녹취 같은 핵심 증거를 확보하기 어려워지므로 서두르는 것이 안전합니다.
Q. 구급활동일지나 신고 녹취는 유족이 직접 확보할 수 있나요?
A.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구급활동일지와 신고접수·지령 녹취록을 확보할 수 있고, 병원 진료기록은 의료법에 따른 열람·복사청구로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자료들을 시간순으로 정리하는 것이 소송 준비의 출발점입니다.
맺음말
119 구급대의 이송 지연으로 가족을 잃은 유족에게 국가배상이라는 절차가 있다는 사실은 위안이 되지만, 실제로 청구가 받아들여지려면 넘어야 할 문턱이 낮지 않습니다. 구급대원에게 어떤 구체적 의무가 있었는지, 그 의무 위반이 재량권을 현저히 벗어날 정도였는지, 그리고 그 위반이 사망이라는 결과와 상당인과관계가 있는지를 하나씩 증명해야 합니다. 의무 위반이 인정되더라도 배상책임까지는 인정되지 않은 판결이 실제로 존재하는 만큼, 막연히 '늦었으니 책임이 있을 것'이라고 단정하기보다 시간대별 기록부터 확보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특히 수원을 비롯한 경기남부처럼 인구가 밀집해 구급 수요가 몰리는 지역에서는, 신고부터 이송까지 각 구간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초기에 정리해두어야 뒤늦게 소송을 준비할 때 자료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지 않습니다. 구급활동일지·신고녹취·진료기록을 갖춰두었다면, 그 자료를 토대로 국가배상 청구가 가능한지부터 검토해 보시길 권합니다.
조력이 필요하시면 010-3432-1451 강대현 대표변호사에게 연락주십시오. 신속히 도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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