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마취 수술을 받다가 예상치 못한 사고가 생기면, 많은 환자와 보호자들이 가장 먼저 수술실 CCTV 영상부터 떠올립니다. 2023년 9월 25일부터 의료법이 의무화한 수술실 폐쇄회로 텔레비전이 있으니 병원에 신청서만 내면 영상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환자가 직접 열람을 요청해도 병원이 원칙적으로 이를 거부하도록 법이 정하고 있고, 정해진 몇 가지 경로를 거쳐야만 영상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촬영 요청과 열람 요청이 왜 다른 권리인지, 소송 증거로 영상을 확보하려면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그리고 30일이라는 시간 제한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를 정리합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촬영 요청권과 열람 요청권 — 수술실 CCTV법이 나눠 놓은 두 가지 권리
수술실 CCTV를 둘러싼 오해는 대부분 두 개의 서로 다른 권리를 하나로 뭉뚱그리는 데서 시작됩니다. 의료법 제38조의2 제1항은 전신마취 등으로 환자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수술을 하는 의료기관에 수술실 내부 CCTV 설치 의무를 지웁니다. 같은 조 제2항은 환자나 보호자가 요청하면 병원이 그 수술 장면을 촬영해야 한다는 촬영 요청권을 규정합니다. 여기까지는 환자 쪽이 주도권을 쥔 절차이고,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병원이 촬영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촬영이 끝나고 영상이 저장된 뒤에는 상황이 완전히 뒤바뀝니다. 같은 법 제5항은 의료기관이 촬영한 영상정보를 원칙적으로 열람하게 하거나 제공해서는 안 된다고 못박고 있고, 열람·제공이 허용되는 경우를 정해진 사유로만 한정합니다. 즉 촬영은 환자가 요청하면 병원이 응해야 하는 권리이지만, 열람은 환자가 요청한다고 자동으로 주어지는 권리가 아닙니다. 이 구조를 모른 채 수술 후 곧바로 병원 창구에 가서 "내 수술 영상을 보여달라"고 요구하면 거의 예외 없이 거절당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촬영은 환자·보호자가 요청하면 병원이 응해야 하는 권리이고, 열람은 정해진 사유에 해당할 때만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별개의 권리다.
수술 전에 챙겨야 하는 촬영 요청 — 놓치면 영상 자체가 없다
열람 절차를 논하기 전에 먼저 확인해야 할 전제가 있습니다. 애초에 촬영 요청을 하지 않았다면 볼 영상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촬영 요청은 수술 전, 즉 마취로 의식을 잃기 전에 환자나 보호자가 병원에 명시적으로 해야 하는 절차입니다. 수술이 끝난 뒤에 뒤늦게 "그때 촬영해달라고 했어야 했는데"라고 후회해도, 애초에 저장된 영상이 없다면 열람이든 소송 증거든 논의 자체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다만 병원이 촬영 요청을 항상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의료법령은 응급수술을 시행하는 경우,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한 위험도 높은 수술인 경우, 수련병원에서 전공의 수련 목적 달성을 현저히 저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 그 밖에 이에 준하는 경우에는 병원이 촬영을 거부할 수 있도록 정합니다. 다만 이때도 병원이 임의로 거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환자나 보호자에게 거부 사유를 설명하고 이를 기록·보관해야 할 의무가 함께 따라옵니다.
응급수술을 시행하는 경우
환자 생명을 구하기 위해 적극적 조치가 필요한 위험도 높은 수술인 경우
수련병원에서 전공의 수련 목적 달성을 현저히 저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
그 밖에 이에 준하는 경우
실무에서는 수술동의서를 작성하는 자리에서 함께 촬영 요청서를 제출하는 것이 가장 확실합니다. 구두로 요청했다는 사실만으로는 나중에 다툼이 생겼을 때 요청 여부 자체를 증명하기 어려울 수 있으므로, 서면으로 요청하고 접수 확인을 받아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환자가 직접 열람 신청서를 내도 거부당하는 이유
영상이 촬영·저장돼 있다는 전제하에, 이제 열람 단계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의료법 제5항은 병원이 촬영한 영상정보를 열람하게 하거나 제공할 수 있는 경우를 세 가지로 한정합니다. 첫째, 범죄의 수사와 공소의 제기·유지, 법원의 재판업무 수행을 위해 관계 기관이 요청하는 경우입니다. 둘째,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의료분쟁 조정이나 중재 절차가 개시된 이후 환자 또는 환자 보호자의 동의를 받아 그 업무 수행을 위해 요청하는 경우입니다. 셋째, 환자뿐 아니라 해당 수술에 참여한 의료인 등 정보주체 모두의 동의를 받은 경우입니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환자 본인이 단독으로 이 세 가지 경로 중 어느 것도 시작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첫째 경로는 수사기관이나 법원이라는 관계 기관이 "요청하는" 것이지 환자가 직접 요청하는 것이 아니고, 둘째 경로도 중재원이 요청 주체입니다. 셋째 경로는 환자 동의만으로는 부족하고 집도의·마취의 등 그 수술에 참여한 의료인 전원의 동의까지 받아야 하는데, 의료과실을 의심하는 상황에서 상대방인 의료진 전원의 동의를 받기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습니다. 결국 환자 입장에서는 형사고소를 통해 수사기관을 움직이거나, 민사소송을 제기해 법원을 통하거나, 의료분쟁조정을 신청해 중재원을 통하는 방법이 사실상 유일한 통로가 됩니다.
소송 증거로 쓰려면 거치는 세 갈래 경로
실무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통로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형사고소입니다. 대리수술이나 무자격자 시술처럼 범죄 혐의가 뚜렷하다면 관할 경찰서에 고소장을 접수하고, 수사기관이 수사 목적으로 병원에 영상정보를 요청하도록 하는 방식입니다. 수사기관은 강제수사권을 갖고 있어 병원이 임의로 제출을 거부하기 어렵고, 필요한 경우 압수수색 영장을 통해 확보할 수도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민사소송을 제기하면서 법원을 통하는 방법입니다. 손해배상청구 소장을 제출한 뒤 문서송부촉탁이나 사실조회 신청을 함께 내면, 법원이 재판업무 수행을 위해 병원에 영상정보 제공을 요청하는 관계 기관이 됩니다. 다만 소를 제기하기 전 단계에서 영상이 이미 보관기간을 넘겨 삭제될 위험이 있다면, 본안 소송과 별도로 증거보전신청을 활용해 영상을 먼저 확보해 두는 방법도 검토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조정을 신청하는 경로입니다. 조정 절차가 실제로 개시된 이후 환자가 동의하면 중재원이 병원에 영상정보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 조정은 소송보다 절차가 간이하고 비용 부담이 적다는 장점이 있지만, 병원이 조정에 응하지 않으면 절차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고, 조정이 불성립되면 결국 별도로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느 경로를 택할지는 사안의 시급성과 증거 확보의 긴급성, 상대 병원의 태도를 함께 고려해 판단해야 합니다.
세 경로를 반드시 하나만 골라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형사고소를 접수해 두고 동시에 민사소송의 손해배상청구를 준비하는 식으로 병행하는 경우도 실무에서는 드물지 않습니다. 다만 어느 쪽이든 영상정보 요청의 '주체'는 환자가 아니라 수사기관·법원·중재원이라는 원칙은 달라지지 않으므로, 환자나 대리인은 그 관계 기관이 움직이도록 필요한 서류와 소명자료를 제때 갖추는 역할에 집중해야 합니다.
환자는 형사고소를 통한 수사기관 요청, 민사소송의 문서송부촉탁을 통한 법원 요청,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통한 요청 중 하나를 거쳐야만 수술실 CCTV 영상을 확보할 수 있다.
30일의 벽 — 보관기간과 보관연장 요청
의료법 제9항은 병원이 촬영한 영상을 30일 이상 보관하도록 정합니다. 최소 보관기간이라는 의미이지, 30일이 지나면 자동으로 삭제해도 무방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실무적으로는 사고를 인지한 시점부터 30일 안에 어떤 형태로든 조치를 취해두지 않으면 영상이 실제로 폐기될 위험이 있습니다.
이를 막는 장치가 보관연장 요청입니다. 보관기간이 끝나기 전에 열람·제공 요청이 접수돼 있으면, 병원은 그 요청에 대한 결정이 이루어질 때까지 영상을 삭제할 수 없습니다. 아직 형사고소나 소송 제기 전이라 하더라도, 관련 절차가 진행 중임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첨부해 보관연장 요청서를 제출하면 삭제를 미룰 수 있습니다.
형사고소장 접수증
의료분쟁조정신청서 접수증
정보주체(수술에 참여한 의료인 등) 일부의 열람 동의서
따라서 수술 중 이상 징후를 인지했다면 진료기록 사본 발급, 형사고소나 조정신청 준비와 함께, 늦어도 30일 안에는 병원에 보관연장 요청서를 제출해 영상이 폐기되지 않도록 조치하는 것이 실무상 가장 중요한 첫걸음입니다.
열람·제공 요청서 제출부터 통지까지 — 서식과 기한
실제로 열람·제공 요청 자격을 갖춘 기관(수사기관·법원·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움직이면, 절차는 정해진 서식과 기한에 따라 진행됩니다. 요청 기관은 의료법 시행규칙이 정한 영상정보 열람·제공 요청서 서식을 병원 개설자에게 제출하고, 병원 개설자는 요청을 받은 날부터 10일 이내에 열람 방법을 서면으로 통지하고 실제 열람이나 제공을 실시해야 합니다.
반대로 병원이 요청에 응하지 않기로 했다면, 마찬가지로 10일 이내에 거부 사유를 서면으로 통지해야 합니다. 거부할 수 있는 사유는 보관기간이 지나 영상정보를 이미 파기한 경우, 수사·재판 목적 요청인데 요청 기관이 그 자격을 증명할 서류를 제시하지 못한 경우, 수술에 참여한 정보주체 모두의 동의를 요건으로 하는 요청인데 동의를 다 받지 못한 경우, 그 밖에 보건복지부장관이 정당하다고 인정하는 사유가 있는 경우로 제한됩니다. 거부 통지를 받았다면 그 사유가 이 네 가지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부터 확인하고, 서류 미비가 이유라면 서류를 보완해 재신청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열람이나 제공에 비용이 드는 경우 병원은 실비 범위에서 요청자에게 비용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영상 복사에 드는 저장매체 비용 등이 여기에 해당하며, 통상 큰 부담이 되는 수준은 아닙니다.
영상이 입증하는 것과 입증하지 못하는 것 — 활용의 한계
어렵게 영상을 확보했다고 해서 소송의 승패가 곧바로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수술실 CCTV 영상이 특히 힘을 발휘하는 영역은 대리수술, 무자격자에 의한 시술, 마취 상태의 환자에 대한 부적절한 언행처럼 눈으로 보면 명백히 알 수 있는 고의적 불법행위를 입증하는 경우입니다. 이런 사안에서는 영상 자체가 결정적 증거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의료과실, 즉 의료진이 주의의무를 다했는지를 다투는 사건에서는 영상만으로 결론이 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수술 중 특정 시점에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가 화면에 담겨 있더라도, 그 조치가 당시 상황에서 의학적으로 적절했는지는 전문적 판단이 필요한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실무에서는 CCTV 영상을 확보한 뒤에도 별도로 진료기록 감정이나 신체감정을 함께 신청해, 영상에 담긴 조치의 의학적 타당성을 전문가의 판단으로 뒷받침하는 방식을 주로 사용합니다.
결국 CCTV 영상은 '무엇을 했는지'를 보여주는 사실관계 증거이고, '그것이 잘못이었는지'를 밝히는 몫은 진료기록 감정 등 다른 증거 방법이 맡는 구조입니다. 영상 하나만 믿고 다른 증거 수집을 소홀히 하면 오히려 입증이 불완전해질 수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수술 후에 병원에 가서 CCTV 영상을 보여달라고 하면 볼 수 있나요?
A. 원칙적으로 볼 수 없습니다. 의료법은 수사기관·법원 등 관계 기관의 요청,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요청, 수술 참여자 전원의 동의라는 세 가지 경우에만 열람·제공을 허용하고 있어, 환자가 병원 창구에 직접 요청하는 방식으로는 영상을 받을 수 없습니다.
Q. 수술 전에 촬영 요청을 못 했는데 나중에 영상을 볼 방법이 있나요?
A. 촬영 자체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애초에 저장된 영상이 없어 열람도 불가능합니다. 촬영 요청은 반드시 수술 전, 마취로 의식을 잃기 전에 해야 하는 절차입니다.
Q. 형사고소와 민사소송 중 어느 쪽이 영상 확보에 더 유리한가요?
A. 형사고소는 수사기관의 강제수사권을 이용할 수 있어 상대적으로 확보가 빠를 수 있고, 민사소송은 문서송부촉탁이나 증거보전신청을 통해 법원의 힘을 빌리는 방식입니다. 사안의 성격과 시급성에 따라 병행하거나 선택해야 합니다.
Q. 30일이 지나 영상이 이미 삭제됐다면 방법이 없나요?
A. 실제로 파기됐다면 그 영상 자체는 되살릴 수 없습니다. 다만 30일이 지나기 전에 열람·제공 요청이나 보관연장 요청이 접수돼 있었다면 병원은 결정이 날 때까지 삭제할 수 없으므로, 사고를 인지한 즉시 관련 서류부터 접수해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Q. 병원이 열람 요청을 거부하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요?
A. 거부 사유를 서면으로 통지받았다면 그 사유가 서류 미비 때문인지부터 확인하고, 보완할 수 있다면 재신청합니다. 소송이 진행 중이라면 법원에 문서송부촉탁 신청을 다시 내거나 사실조회를 요청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Q. CCTV 영상만 있으면 의료과실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나요?
A. 영상만으로는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대리수술처럼 고의적 불법행위를 입증하는 데는 강력하지만, 의료진의 주의의무 위반 여부를 밝히려면 진료기록 감정 등 전문적 증거를 함께 준비해야 합니다.
맺음말
수술실 CCTV는 촬영 의무화만으로 완결되는 제도가 아닙니다. 촬영된 영상을 실제로 소송 증거로 쓰려면 환자가 직접 열람을 신청하는 방식이 아니라, 형사고소·민사소송·의료분쟁조정이라는 정해진 통로 중 하나를 거쳐야 하고, 그 과정에서 30일이라는 보관기간을 놓치지 않는 것이 관건입니다.
영상을 확보한 뒤에도 그것만으로 의료과실을 입증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어느 통로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소요 시간과 확보 가능성이 달라진다는 점을 함께 고려해 초기 대응 전략을 세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결국 관건은 시간입니다. 병원의 영상 보관기간은 최소한의 기간일 뿐이고, 아무 조치 없이 흘려보내면 가장 결정적인 증거가 조용히 사라질 수 있습니다. 사고를 인지한 시점부터 형사고소, 민사소송, 의료분쟁조정 중 어느 경로로 갈지 방향을 빨리 정하고, 그 경로에 맞는 서류를 곧바로 준비해 병원에 접수시켜 두는 것이 진실을 밝힐 증거를 지키는 첫 단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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