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대학생 J씨는 조별과제 발표를 마치고 지하철 2호선에 올랐습니다. 피곤에 지쳐 좌석에 앉아 있던 중 맞은편에 앉은 여성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무릎까지 오는 원피스를 입고 고개를 숙인 채 조는 모습이었습니다. J씨는 무심코 휴대폰을 꺼내 사진 한 장을 찍었습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고, 지하철에서 졸고 있는 모습이 요즘 대학생활의 고단함을 보여주는 것 같아 친구에게 보여주려던 의도였습니다.
그 순간 옆에 앉아 있던 다른 승객이 J씨의 휴대폰을 보며 "지금 여자분 몰래 사진 찍으시는 거예요?"라고 물었습니다. J씨는 당황해 "아니, 그냥…"이라며 말을 얼버무렸고, 승객은 곧바로 지하철 보안관에게 신고해 J씨는 다음 역에서 내려 조사를 받았습니다.
경찰은 J씨의 휴대폰에서 해당 사진을 확인한 뒤 카메라등이용촬영죄 혐의로 입건했습니다. "성적 의도로 찍은 게 아니라 일상 사진일 뿐입니다."라는 J씨의 항변은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요?
오늘은 스마트폰 일상화 속에서 누구나 피의자가 될 수 있는 불법촬영(카메라등이용촬영) 혐의의 기준과 법원이 무죄를 판단하는 구체적인 논리를 살펴보겠습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 제1항은 "카메라나 그 밖에 이와 유사한 기능을 갖춘 기계장치를 이용하여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를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여 촬영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규정합니다. 법정형의 상한이 징역 7년으로 매우 무겁지만, 실제 적용되는 구성요건은 해석상 주의가 필요합니다.
이 죄가 성립하려면 세 가지 요건이 증명되어야 합니다. 첫째는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를 촬영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법조문 자체에는 어떤 부위가 이에 해당하는지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아 대법원 판례 기준이 핵심이 됩니다. 둘째는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여' 촬영해야 한다는 점으로, 상대방이 인지하지 못했다면 통상 의사에 반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셋째는 고의입니다. 카메라등이용촬영죄는 고의범이므로 성적인 목적이나 인식을 가지고 촬영해야 성립합니다.
대법원은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신체인지 판단하는 명확한 기준을 확립해 두고 있습니다. 대법원 2008. 9. 25. 선고 2008도7007 판결에서는 "촬영한 부위가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인지 여부는 객관적으로 피해자와 같은 성별, 연령대의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사람들의 관점에서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에 해당하는지를 고려함과 아울러, 피해자의 옷차림, 노출의 정도 등은 물론, 촬영자의 의도와 촬영에 이르게 된 경위, 촬영 장소와 촬영 각도 및 촬영 거리, 촬영된 원판의 이미지, 특정 신체 부위의 부각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구체적·개별적으로 결정하여야 한다."라고 판시했습니다.
즉 피해자의 주관적 느낌만을 기준으로 삼지 않고 같은 성별·연령대의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옷차림, 각도, 거리, 특정 부위의 부각 여부를 종합하여 사건마다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또한 대법원 2018. 3. 15. 선고 2017도21656 판결은 "사람의 신체 이미지가 담긴 영상도 위 조항의 사람의 신체에 포함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법률문언의 통상적인 의미를 벗어나는 것이 된다."라고 명시했습니다. 실제 사람의 신체가 아니라 모니터 화면이나 CCTV 영상에 비친 신체를 다시 촬영한 경우에는 본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실제 하급심 무죄 판결들을 보면 구체적인 판단 기준이 드러납니다.
○○○○법원 2022. X. X. 선고 2021고단XX 판결 사안에서 피고인은 지하철 맞은편 좌석에 앉아 있던 피해 여성의 전신을 촬영했습니다. 피해자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남색 원피스에 베이지색 가디건을 입고 있었고, 노출 부위는 목 윗부분과 손, 종아리뿐이었습니다. 피고인이 특정 부위를 확대하지 않았고 옆 승객들도 함께 찍힌 사안에서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법원은 "피고인이 피해자를 비교적 근접한 거리에서 촬영하기는 하였으나 그 영상은 피해자가 전동차에 앉아 있는 모습 전체를 담고 있어서 성적 욕망이나 성적 불쾌감을 유발하는 자세라기보다는 사람이 왕래하는 공개된 장소에서 자연스럽게 볼 수 있는 모습에 해당하고, 촬영 각도도 앉아 있는 피고인의 눈높이에서 자연스럽게 바라보거나 일반적인 사진 촬영의 각도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피고인이 피해자의 앞에서 위와 같이 피해자의 신체를 촬영한 것이 부적절하고 피해자에게 불쾌감을 유발하는 것임은 분명하지만, 촬영된 피해자의 모습에 비추어 보건대, 이로 인하여 피해자에게 불쾌감이나 불안감을 넘어 성적 불쾌감을 느끼게 하였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라고 판단했습니다. 전신 구도에서 특정 부위를 부각하지 않았고 눈높이 수준의 통상적인 각도였다면, 단순한 불쾌감을 넘어 법률상 '성적 수치심'을 일으켰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입니다.
공원에서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던 여성들의 뒷모습을 원거리에서 촬영한 사안(○○○○법원 2019. X. X. 선고 2019고단XX 판결)에서도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 치마 착용으로 허벅지 일부가 찍혔으나 피해자 모습이 화면 우측 상단에 작게 잡혔던 사안에 대해, 법원은 "원거리에서 일반적인 시야에 통상적으로 비춰지는 부분을 그대로 촬영한 것으로 보이고, 노출 부위나 신체 부위가 특별히 확대되거나 부각되지도 아니하였다."라며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을 유발하는 신체 촬영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거리에서 여성들의 전신을 촬영한 ○○○○법원 2018. X. X. 선고 2018고단XX 판결 역시 "객관적으로 피해여성들과 같은 연령대의 일반적, 평균적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정도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라며 일반적이고 평균적인 관점을 기준으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러한 법리에 비추어 볼 때 불법촬영 혐의 사건에서는 네 가지 쟁점을 중심으로 방어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첫째, 촬영 결과물이 성적 신체 부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밝혀야 합니다. 전신이나 얼굴, 손, 종아리 등 통상 노출되는 부위인지, 일상복 착용 상태였는지, 정상적인 시야 각도와 거리에서 촬영되었는지, 특정 부위를 확대하지 않고 배경과 함께 담았는지를 객관적으로 소명해야 합니다.
둘째, 촬영 당시 성적 동기나 고의가 없었음을 밝혀야 합니다. 일상적 대화 전달 목적이었거나, 풍경·군중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인물이 우연히 포함된 사정 등 촬영의 맥락과 구도를 통해 성적 목적이 없었음을 입증해 나가는 과정이 요구됩니다.
셋째, 상황에 따라 촬영에 대한 묵시적 동의나 승낙이 있었는지 검토해야 합니다. 다만 이는 공개된 장소에서의 행동 양태 등을 바탕으로 신중하게 주장해야 합니다.
넷째, 형사재판의 증명책임 원칙을 적극적으로 원용해야 합니다. 촬영물이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을 유발하는 신체에 해당한다는 점은 검사가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해야 하며, 이에 대한 증명이 부족하다면 무죄가 선고되어야 합니다.
수사나 재판을 앞두고 있다면 몇 가지 주의사항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우선 임의로 사진을 삭제해서는 안 됩니다. 억울함을 증명할 핵심 증거를 없애는 행위가 될 뿐 아니라, 자칫 증거인멸 의심을 사 구속영장 청구 등 수사 단계에서 불리한 정황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경찰 조사 초기 당황하여 "호기심에 찍었다"고 진술하면 조서에 성적 호기심을 자백한 취지로 기재되어 법정에서 매우 불리해질 수 있으므로 정확한 진술이 필요합니다. 아울러 문제의 소지가 있는 사진을 타인에게 전달하거나 온라인에 게시하는 행위는 초상권 침해나 명예훼손 등 추가적인 법적 분쟁을 낳으므로 삼가야 합니다.
스마트폰 촬영이 일상화된 환경에서는 누구든 의도치 않게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게 될 수 있습니다. 억울한 혐의를 받게 되었다면 원본 사진을 온전히 보존하고, 촬영 구도와 당시 상황의 맥락을 객관적으로 정리하여 초기부터 법리적인 방어권을 행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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