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저는 실제 형사사건을 수행하며 쌓아온 검토 방식과 업무 기준을 체계적으로 활용하고자, 사무소 전용 내부 AI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생성형 AI에 사건 내용을 입력하고 “이 사건을 분석해 달라”고 요청하는 방식은 아닙니다. 제가 사건 기록을 검토할 때 사실관계를 정리하는 순서, 진술의 모순을 짚어내는 지점, 수사기관이 중요하게 볼 만한 증거, 변호인 의견서 작성 시의 논리 배치 등을 업무 단위별로 나누고, 그 기준에 맞추어 AI가 초벌 검토를 수행하도록 만드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 시스템을 구축하며 가장 경계한 것은 “AI에게 법률문서를 대신 쓰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형사사건에서는 기록을 얼마나 정확하게 읽어내는지, 의뢰인의 설명과 객관적 증거 사이에서 일치하거나 충돌하는 지점을 얼마나 신속하게 찾아내는지, 수많은 사실 중 법률상 의미가 있는 사실을 선별해내는지가 중요합니다. 결국 사건을 수행하고 최종 판단과 전략을 세우는 주체는 변호사입니다. 다만 사람이 반복해야 하는 기록 구조화, 쟁점 추출, 누락 가능성 점검 작업을 일정한 기준에 따라 AI가 먼저 수행해 둔다면, 변호사는 더 중요한 판단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현재 내부 AI는 크게 다섯 가지 업무 방향을 중심으로 설계하고 있습니다. 구조 정리, 공소사실 기재례, 서면 초안, 인사이트, 기타 지시입니다. 사건 자료를 입력한 뒤 원하는 업무 방향을 선택하면, 같은 사건이라도 전혀 다른 관점에서 결과를 생성합니다. 사건의 전체 구조부터 파악해야 할 때는 구조 정리를 선택하고, 수사기관이 어떤 형태의 범죄사실을 구성할 수 있는지 확인할 때는 공소사실 기재례를 선택하며, 변호인 의견서를 작성하기 위한 재료가 필요할 때는 서면 초안을 선택하는 방식입니다. 기록에서 눈에 잘 띄지 않는 쟁점이나 방어 포인트를 살필 때는 인사이트 기능을 활용하고, 특정 증거나 진술만 따로 분석하는 등 정형화하기 어려운 작업은 기타 지시로 수행합니다.
이 시스템의 특징은 사건 내용을 단순 요약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형사사건 기록을 입력했을 때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가 진술했다”, “피의자가 부인했다” 수준으로 줄이는 것이 아니라, 범행 전 상황, 범행 당시의 행위, 범행 직후의 행동, 피해자의 최초 진술과 이후 진술 변화, CCTV나 카드사용내역 등 객관적 자료, 피의자 진술과 객관적 자료의 일치 여부, 법률상 구성요건과 연결되는 핵심 사실, 향후 추가로 확인해야 할 자료를 명확히 구분하여 정리합니다.
다만 실제 의뢰인의 사건 기록에는 의뢰인뿐만 아니라 피해자, 참고인 등 다수의 개인정보와 민감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블로그에 그대로 공개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이번 글에서는 실제 사건 기록 대신, 공개된 언론기사를 입력하여 내부 AI가 어떤 방식으로 사건을 정리하는지 예시로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예시로 사용한 자료는 2026. 8. 19. 경향신문에 보도된 이른바 ‘부축빼기’ 절도 사건 기사입니다. 기사에 따르면, 피의자 A씨는 2026. 6. 27. 새벽 대전 서구의 한 골목길에서 술에 취해 누워 있던 피해자 B씨에게 접근했습니다. A씨는 피해자에게 물을 건네고 부축해 주는 척하면서 피해자가 소지하고 있던 명품 지갑과 17만 원 상당의 백화점 상품권을 가져간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이후 A씨는 다음 날 피해품인 지갑과 상품권을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판매하려 했고, 피해자가 이를 발견하여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경찰은 중고거래 구매자로 가장해 A씨와 약속을 잡은 뒤 거래 장소에서 A씨를 긴급체포했습니다.
이 정도 길이의 기사만 보더라도 법률적으로 검토해야 할 내용은 상당히 많습니다. 일반적인 시각에서는 “취객을 도와주는 척하며 지갑을 훔친 사건”으로 요약할 수 있겠지만, 형사사건 기록을 다루는 변호사는 여기서 그칠 수 없습니다. 피의자가 처음부터 절취 의도를 가지고 접근했는지, 부축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했는지, 피해자가 술에 취해 누워 있었더라도 재물에 대한 점유가 법률상 계속 인정되는지, 피의자가 피해자의 옷에서 재물을 꺼내는 장면이 찍힌 CCTV가 존재하는지, 중고거래 사이트에 올라온 물품이 실제 피해품과 동일한지, 게시물 작성자가 피의자라는 사실을 어떤 방법으로 특정했는지 등을 꼼꼼히 확인해야 합니다.

내부 AI에서 ‘구조 정리’를 선택하면 이러한 방식으로 사건의 뼈대를 먼저 잡습니다. 예시 사건의 경우, 피의자가 취객에게 접근해 부축하는 과정에서 명품 지갑과 상품권을 절취했다는 혐의와 이후 중고거래 사이트에 판매하려다 체포되었다는 전체 흐름을 개요로 구성합니다. 이어 핵심 쟁점으로 피의자의 접근행위와 재물 취거행위의 관계, 피해자의 점유 유지 여부, 중고거래 게시물과 현장 체포 경위의 증명력 등을 분리합니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면 법률 검토 방향도 달라집니다. 절도죄가 문제 되는 사건이라면 타인의 재물을 취거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당시 피해자의 점유 상태, 피의자의 불법영득의사, 실제 피해품의 특정 등이 함께 검토되어야 합니다. 기사에 “훔쳤다”고 적혀 있다는 이유만으로 범죄사실을 단정하고 검토할 수는 없습니다. 실제 사건에서는 경찰이 확보한 CCTV 영상, 피해자의 최초 신고 내용, 현장 상황, 압수물, 중고거래 계정 가입정보와 대화내역 등을 확인한 뒤 비로소 어디까지 객관적으로 입증되는지 판단해야 합니다.
이때 내부 AI는 확정된 사실과 아직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구분하도록 설계했습니다. 언론기사에는 A씨가 피해자를 부축하며 물건을 몰래 가져갔다고 적혀 있지만, 실제 기록 검토 상황이라면 “부축 당시 CCTV에서 피의자가 주머니 속 물건을 꺼내는 장면이 직접 확인되는지”는 별도로 짚어야 합니다. 피해자가 자신의 지갑을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발견했더라도, 해당 지갑이 피해자 물건임을 특정할 고유 특징이나 구매내역이 존재하는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기사에 나타나지 않은 부분은 임의로 채우지 않고 “기록상 확인 필요”로 남겨두는 방식입니다.

‘공소사실 기재례’를 선택하면 관점이 바뀝니다. 검찰이 이 사건을 기소한다고 가정했을 때 어떤 사실이 공소사실 구성요소로 들어갈 수 있는지를 형사소송 실무 문장 구조에 맞춰 재배열합니다. 공개된 기사 내용만으로 단순화해 작성한다면, “피고인은 2026. 6. 27. 새벽경 대전 서구의 한 골목길에서 술에 취하여 누워 있던 피해자 B에게 접근하여 물을 건네고 피해자를 부축하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소지하고 있던 명품 지갑 1개와 액면금 합계 17만 원 상당의 백화점 상품권을 가져가 이를 절취하였다.”는 형태의 기본 범죄사실 구조를 도출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실제 사건은 훨씬 복잡합니다. 정확한 범행 시각과 장소, 피해품의 종류와 가액, 구체적인 취거 방법, 피해품의 소유관계를 기록과 증거에 맞추어 엄밀히 특정해야 합니다. 핵심은 AI가 공소사실을 임의로 꾸며내는 것이 아니라, 기록 속 정보를 공소사실 구성방식에 맞춰 배열함으로써 “수사기관이 어떤 범죄사실을 구성할 수 있는가”를 미리 짚어보는 데 있습니다. 피의자를 변호하는 사건일수록 상대방이 어떤 논리로 범죄사실을 엮어낼지 먼저 이해해야 다툴 지점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서면 초안’을 선택하면 변호인의 시각에서 사건을 재구성합니다. 피의자가 범행을 인정하는 사건이라면 맹목적인 부인 서면이 아니라, 인정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구분하고 피해회복 여부, 피해품 반환 여부, 범행 경위와 범행 후 정황, 전과관계 등 양형 요소를 논리적으로 배치합니다. 반대로 범행을 부인한다면 CCTV 내 실제 취거 장면 유무, 피해품과 압수품의 동일성 입증 여부, 중고거래 계정의 실사용자 특정 여부를 중심으로 방어 논리를 세웁니다.

‘인사이트’를 선택하면 혐의 사실 외에 사건 전체에서 추가 확인이 필요한 지점을 추출합니다. 이번 예시 사건에서도 경찰이 구매자로 가장해 거래 약속을 잡은 과정, 현장 긴급체포의 구체적 경위, 체포 후 피해품 확보 절차, 중고거래 게시물과 피의자 계정·기기 사이의 연결고리 등이 추가 검토 대상이 됩니다. 범행 자체뿐 아니라 수사 절차상 수집된 증거의 적법성까지 함께 살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기능이 유용한 이유는 형사사건 기록이 처음부터 정돈된 상태로 주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의뢰인의 진술은 시간 순서가 뒤섞이기 일쑤이고, 피의자신문조서에는 여러 쟁점이 혼재하며, CCTV, 문자, 카카오톡, 카드사용내역, 통화내역 등 객관적 자료도 곳곳에 흩어져 있습니다. 사건이 복잡할수록 변호사는 머릿속에서 이 자료들을 끊임없이 연결해야 합니다.
저는 기록을 단순히 ‘읽는 것’과 ‘구조화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록 500쪽을 통독했다고 해서 사건을 온전히 파악한 것은 아닙니다. 피해자 진술 중 범죄 구성요건과 연결되는 지점, 진술을 뒷받침하는 객관적 증거, 진술과 충돌하는 정황, 피의자 설명과 기록의 부합 여부를 서로 엮어내야 비로소 사건의 골격이 잡힙니다.
그래서 제가 구축한 내부 AI 역시 단순 요약보다 ‘구조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같은 기록을 넣더라도 시간 순서, 인물별 진술, 증거의 의미, 구성요건별 사실, 수사기관의 예상 논리, 변호인의 방어 논리를 입체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사건을 들여다보는 시야를 다각화하는 셈입니다.
실제 형사사건을 수행하며 정립해 온 검토 기준과 서면 작성 방식도 시스템에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 CCTV 확보를 최우선으로 점검해야 하는지, 피해자의 최초 진술과 후속 진술을 왜 분리해 살펴야 하는지, 자백 사건에서도 따로 확인해야 할 사실관계는 무엇인지, 무혐의를 다툴 때 핵심이 되는 객관적 자료는 무엇인지 등은 실무 경험에서 축적되는 영역입니다.
결국 제가 만드는 시스템의 본질은 “AI가 변호사를 대신한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변호사의 판단 기준을 정교한 구조로 마련해 두고, 그 기준에 따라 기록을 더 빠르고 반복적으로 검증하는 데 있습니다. AI가 도출한 결과 역시 그대로 쓰이지 않으며, 제가 원기록과 대조하고 사실관계를 재확인한 뒤 논리를 보강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특히 형사사건에서는 AI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추측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내부 AI 결과물에는 기록에 없는 내용이나 추가 확인이 필요한 부분을 명시하도록 했습니다. 예시 화면에서도 사건 당일 CCTV, 피해품 압수·환부 자료, 중고거래 대화내역, 신고 및 접촉 경위 등 추가로 확인해야 할 목록이 별도로 표시됩니다. 그럴듯한 답변을 빠르게 내놓는 것보다, 현재 기록만으로 무엇을 알 수 없는지 명확히 짚어내는 것이 형사 변호에서는 훨씬 중요합니다.
앞으로는 경찰 피의자신문 대비 예상 질문과 위험요소 추출, 검찰 송치 후 보완수사 쟁점 점검, 공판 단계의 공소사실·증거목록·증인진술 연계 등으로 활용 범위를 넓혀갈 예정입니다. 변호인 의견서 초안 작성 역시 수사기관과 재판부가 사건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논리 순서를 체계화하는 방향으로 고도화하고 있습니다.
내부 AI를 구축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의뢰인의 사건을 마주했을 때 기록을 한 번 더 들여다보고, 한 가지 관점이라도 더 검토하며, 놓치기 쉬운 사실 하나를 더 찾아내기 위함입니다. 형사사건에서는 몇 초짜리 CCTV 영상, 최초 신고 시의 단어 하나, 범행 직후의 메시지 한 줄, 카드결제 몇 분의 차이가 사건 전체의 흐름을 바꾸기도 합니다.
제가 바라보는 법률 분야의 AI 활용은 “글을 빨리 써내는 도구”라기보다 “더 꼼꼼히 확인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기록을 읽고 판단하는 본질적 역할은 변호사가 맡되, 반복 점검해야 할 지점을 시스템화하여 축적된 실무 관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이번 경향신문 절도 사건은 설명을 돕고자 기사 몇 줄을 넣어본 예시에 불과합니다. 실제 사건에서는 피의자신문조서, 피해자 진술조서, CCTV, 통신내역, 압수조서, 수사보고서 등 수많은 자료가 복합적으로 얽힙니다. 자료가 방대할수록 단순 요약보다는 자료 간 연결고리를 정확히 짚어내는 작업이 필수적입니다.
앞으로도 AI를 보여주기식 수단으로 쓰지 않고, 기록 검토, 조사 대비, 의견서 작성, 공소사실 분석, 증거관계 검토 등 실무 전반에 맞춰 정교하게 다듬어 갈 계획입니다. 훌륭한 형사변호는 신기술만으로 완성되지도 않으며, 과거의 방식만을 고수한다고 완성되지도 않습니다. 실전에서 다져진 경험과 기준을 중심에 두고, 기술을 도구 삼아 기록을 더 깊이 살피며 논리를 촘촘히 세우는 것이 제가 나아가는 방향입니다.
위 화면은 내부 AI에 언론기사를 입력해 ‘구조 정리’와 ‘서면 초안’ 기능을 적용한 예시입니다. 의뢰인의 비밀을 보호하기 위해 실제 사건 기록을 공개할 수는 없으나, 이번 예시를 통해 AI를 단순 문장 생성기가 아닌 사건 사실관계와 증거관계를 구조화하는 내부 실무 도구로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충분히 확인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형사사건의 핵심은 기록을 얼마나 정확하게 읽어내는가에 있습니다. 앞으로도 모든 사건에서 직접 기록을 검토하고 의뢰인의 목소리를 경청하며 변론의 방향을 설정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놓칠 수 있는 부분을 한 번 더 짚고, 방대한 기록 속 핵심 사실을 신속히 포착하기 위한 도구로 내부 AI를 지속해서 발전시켜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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