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권 없이 남의 부동산을 팔면 그 계약은 원칙적으로 본인에게 아무런 효력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부동산을 판 사람이 훗날 원래 소유자, 즉 본인의 지위를 상속으로 물려받으면 이야기가 복잡해집니다. 상속으로 명의상 소유자가 됐으니 자신이 예전에 한 매매가 무효였다고 주장하며 등기를 되찾아올 수 있을 것 같지만, 법원은 이런 주장을 신의칙 위반으로 보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 글에서는 무권대리로 판 부동산을 상속받은 사람이 왜 뒤늦게 무효를 주장할 수 없는지, 그 판단이 달라지는 예외는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무권대리 계약이 원칙적으로 본인에게 효력 없는 이유
대리권 없이 타인의 부동산을 판 사람의 행위를 무권대리라 합니다. 민법 제130조는 "대리권 없는 자가 타인의 대리인으로 한 계약은 본인이 이를 추인하지 아니하면 본인에 대하여 효력이 없다"고 정합니다. 즉 무권대리로 체결된 매매계약은 매수인과의 관계에서 원래 소유자(본인)를 구속하지 못하고, 소유권은 등기 명의가 이미 매수인 앞으로 넘어갔다 하더라도 실체법상으로는 여전히 본인에게 남아 있는 것으로 취급됩니다. 매수인 입장에서는 대금을 치르고도 소유권을 확실히 취득하지 못하는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는 셈입니다.
다만 이 무효는 매도인(무권대리인) 본인까지 완전히 자유롭게 해주지는 않습니다. 민법 제135조 제1항은 대리권을 증명하지 못하고 본인의 추인도 받지 못한 경우, 상대방의 선택에 따라 무권대리인이 계약을 이행하거나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정합니다. 부동산을 무단으로 판 사람은 그 순간부터 매수인에게 개인적으로 소유권이전등기 의무 또는 손해배상 의무를 지는 지위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이 책임은 상속이 벌어지기 전부터 이미 발생해 있던 것이라는 점이 뒤에서 다룰 신의칙 판단의 출발점이 됩니다.
본인이 나중에 그 매매를 추인하면 민법 제133조에 따라 계약 체결 시점으로 소급하여 유효하게 됩니다. 그러나 추인이 없는 한 본인에 대한 관계에서는 무효 상태가 그대로 유지되고, 본인이 사망해 상속이 개시되면 그 추인 여부를 결정할 권리, 즉 추인권과 추인거절권 자체가 상속재산의 일부로 상속인에게 넘어갑니다. 문제는 그 상속인이 다름 아닌 과거의 무권대리인 자신인 경우입니다.
무권대리 계약은 본인에게는 효력이 없지만, 판 사람 본인에게는 이행 또는 손해배상 책임이 별도로 남는다 — 이 책임이 상속 이후 신의칙 판단의 출발점이다.
대리권 없이 부모 땅을 판 자녀가 그 땅을 상속받으면 벌어지는 지위충돌
실제로 자주 문제 되는 상황은 이렇습니다. 자녀가 부모 소유 부동산을 부모의 위임 없이 임의로 매도하고 매수인 앞으로 등기까지 넘겨준 뒤, 시간이 흘러 부모가 사망해 그 자녀가 상속인이 되는 경우입니다. 무권대리행위는 본인에게 효력이 없으므로 이론상 그 부동산의 소유권은 매매 이후에도 계속 부모에게 남아 있다가, 부모의 사망과 동시에 상속재산으로서 자녀에게 이전됩니다. 매수인 앞으로 이미 마쳐진 등기는 실체관계에 부합하지 않는 등기가 되는 셈입니다.
이 시점에서 자녀는 한 사람 안에 두 개의 지위를 동시에 갖게 됩니다. 하나는 상속으로 취득한 적법한 소유자의 지위이고, 다른 하나는 과거 매매 당시 매수인에게 이행 또는 손해배상 책임을 지고 있던 무권대리인의 지위입니다. 학설상으로는 두 지위가 하나로 합쳐져 마치 처음부터 유권대리였던 것처럼 확정된다는 견해(인격혼동설)도 있지만, 판례와 다수설은 상속으로 지위가 소멸·혼동되지 않고 두 지위가 그대로 병존한다는 입장을 취합니다.
병존설에 따르면 상속인이 된 자녀는 이론적으로 여전히 추인을 거절할 형성권을 가진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추인을 거절하고, 자신의 매도행위가 애초에 무권대리로 무효였다며 매수인 명의 등기의 말소를 구하는 소송을 내는 사례가 실무에서 나타납니다. 그러나 이 주장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지는지는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이제 와서 무효"라는 주장이 통하지 않는 이유 — 대법원이 본 신의칙
대법원 1994. 9. 27. 선고 94다20617 판결이 바로 이 상황을 다뤘습니다. 대리권 없이 부동산을 매도해 매수인에게 소유권이전등기 이행의무를 지고 있던 사람이, 훗날 본인을 상속하여 소유자가 된 뒤 자신의 매도행위가 무권대리로서 무효였다고 주장하며 등기말소와 부당이득반환을 구한 사건입니다. 대법원은 이런 주장이 금반언의 원칙이나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결론의 논리는 명확합니다. 무권대리인은 원래 민법 제135조에 따라 매수인에게 소유권이전등기를 이행할 의무를 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상속으로 소유자가 되어 그 이행이 실제로 가능해진 바로 그 시점에, 오히려 계약이 무효였다고 주장하며 등기를 되찾으려는 것은 스스로 부담하던 의무를 정면으로 뒤집는 모순된 행위입니다. 민법 제2조가 정한 신의성실의 원칙은 이런 앞뒤가 다른 권리 행사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실무적으로 이 판례가 갖는 의미는, 단독으로 본인을 상속한 무권대리인에게는 사실상 추인거절권을 행사할 길이 막힌다는 것입니다. 서류상으로는 여전히 추인거절이라는 형성권이 존재하지만, 그 권리를 행사해 얻으려는 결과(등기말소·소유권 회복)를 법원이 신의칙으로 저지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효과가 없는 셈입니다.
상속으로 이행이 가능해진 순간, 그 이행의무를 부인하며 등기를 되찾으려는 것은 금반언의 원칙에 반한다 — 대법원 1994. 9. 27. 선고 94다20617 판결.
이 법리가 적용되려면 갖춰야 하는 조건
다만 이 신의칙 법리가 아무 경우에나 자동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판례가 전제하는 상황은 몇 가지 구체적인 조건을 갖춘 경우입니다.
매수인(상대방)이 계약 당시 대리권이 없다는 사실을 몰랐고, 모른 데에 과실도 없었을 것(선의·무과실) — 이 요건이 흔들리면 결론이 달라집니다.
무권대리행위를 한 사람이 본인의 지위를 단독으로 상속했을 것 — 공동상속이라면 다른 상속인의 지분까지 자동으로 같은 결론이 나지 않습니다.
매수인 또는 그로부터 전득한 제3자 앞으로 이미 소유권이전등기가 마쳐져 있을 것 — 단순히 이행이 미뤄진 상태가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결과를 되돌리려는 시도이기 때문에 신의칙 위반의 정도가 더 크게 평가됩니다.
이 조건들은 서로 맞물려 작동합니다. 단독상속이 아니라면 다음 항목에서 보듯 결론의 일부가 달라지고, 매수인이 애초에 악의였다면 그보다 뒤에서 살펴볼 예외가 적용됩니다.
공동상속인 중 한 명만 무권대리인이라면 결과가 달라진다
부모의 재산을 여러 자녀가 함께 상속하는 경우, 상속재산은 공동상속인들의 공유에 속합니다. 추인권이나 추인거절권처럼 상대방의 동의 없이 법률관계를 확정 짓는 형성권은 공유물의 처분행위와 성질이 비슷하다고 보아, 공동상속인 전원이 함께 행사해야 효력이 있다고 보는 것이 실무의 일반적인 설명입니다. 무권대리행위를 한 상속인 혼자 자신의 상속지분 범위에서만 추인하더라도, 매수인의 동의가 없는 한 그것만으로 온전한 효력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무권대리인이 아닌 나머지 공동상속인들까지 신의칙에 묶이는 것은 아닙니다. 나머지 상속인들은 애초에 매도행위와 아무런 관련이 없었으므로, 자신들의 상속지분에 대해서는 자유롭게 추인을 거절하고 무효를 주장할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무권대리행위를 직접 한 상속인 본인의 지분 범위에서는, 매수인이 선의·무과실이라면 앞서 본 신의칙 법리가 그대로 적용되어 추인거절이 제한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결국 같은 부동산 하나를 두고도 지분에 따라 결론이 갈리는 복잡한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모 소유 토지를 삼남매가 각 3분의 1씩 공동상속했는데, 그중 첫째가 생전에 그 토지 전부를 무권대리로 매도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매수인이 선의·무과실이라면 첫째의 상속지분 3분의 1에 대해서는 신의칙상 추인거절이 제한되어 매매가 사실상 그대로 유지되지만, 둘째와 셋째의 상속지분 3분의 2에 대해서는 두 사람이 자유롭게 추인을 거절할 수 있어 그 부분 등기는 원인무효로 다투어질 여지가 남습니다. 결국 매수인은 3분의 1 지분에 대한 공유지분만 확정적으로 보유하게 되고, 나머지 3분의 2 지분을 둘러싸고 별도의 소유권 분쟁이 이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공동상속인 전원이 함께 추인하거나 거절해야 원칙적으로 온전한 효력이 생깁니다.
무권대리행위를 한 상속인 본인의 지분 범위는 신의칙상 추인거절이 제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머지 공동상속인의 지분에 대해서는 별도로 무효를 다툴 여지가 남습니다.
등기말소·부당이득반환청구까지 막히는 실제 소송 구도
실제 소송에서는 단순히 "그 매매가 무효"라는 확인만 구하는 경우가 드뭅니다. 매수인이나 전득자 명의로 마쳐진 등기의 말소를 구하는 동시에, 그동안 그 부동산을 사용·수익해 온 것에 대한 부당이득반환(임료 상당액 등)까지 함께 청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94다20617 판결에서도 등기말소 청구와 부당이득반환 청구가 함께 다뤄졌고, 대법원은 두 청구 모두 금반언의 원칙이나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해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신의칙이 하나의 청구원인만 막는 것이 아니라, 그 청구가 어떤 형태를 취하든 근본적으로 같은 모순행위에서 비롯됐다면 전부 막힌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매수인 입장에서는 이 신의칙 법리 덕분에 이미 마쳐진 등기와 점유가 사실상 그대로 보호받는 효과를 얻습니다. 다만 이것이 그 매매가 소급적으로 "추인된 것"과 완전히 같은 법적 효과를 갖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판례는 어디까지나 무권대리인이었던 상속인의 무효 주장·등기말소청구권 행사 자체를 신의칙으로 저지하는 구조로 설명하고 있어서, 결과적으로 매수인이 보호받는다는 점은 같아도 법적 구성에는 차이가 있다는 점이 실무에서 종종 짚이는 부분입니다.
매수인이 애초에 무권대리 사실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면 어떻게 되나
이 신의칙 법리의 전제는 무권대리인이 민법 제135조에 따라 원래 매수인에게 이행 또는 손해배상 책임을 지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같은 조 제2항은 상대방이 계약 당시 대리권 없음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는 그 책임 규정 자체를 적용하지 않는다고 정합니다. 매수인이 애초에 대리권 없음을 알면서도 계약을 맺었거나,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알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면, 무권대리인이었던 상속인은 애초부터 제135조에 따른 이행책임을 진 적이 없었던 셈이 됩니다.
이 경우에는 "상속으로 이행이 가능해진 의무를 뒤집는다"는 금반언의 전제 자체가 성립하기 어려워집니다. 따라서 상속인이 신의칙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소유권을 근거로 등기말소를 구할 여지가 상대적으로 커집니다. 다만 매수인의 선의·과실 여부는 계약 체결 경위, 위임장이나 인감증명서 확인 절차, 매매대금 지급 경로 등 구체적 사정을 통해 다투어지는 사실관계의 문제여서, 어느 한쪽으로 단정하기보다 개별 사안의 증거관계를 꼼꼼히 따져봐야 할 부분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무권대리로 판 부동산을 상속받으면 그 매매가 자동으로 유효해지나요?
A. 자동으로 유효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무권대리인 지위와 상속받은 소유자 지위는 법적으로 별개로 병존하지만, 판례는 상속인이 뒤늦게 무효를 주장하며 등기말소를 구하는 것을 신의칙 위반으로 보아 사실상 그 주장을 막습니다. 결과적으로 매수인의 등기가 그대로 유지된다는 점에서는 유효해진 경우와 비슷한 결과가 나타납니다.
Q. 상속인이 여러 명이고 그중 한 명만 무권대리행위를 했다면 어떻게 되나요?
A. 추인 여부는 원칙적으로 공동상속인 전원이 함께 결정해야 온전한 효력이 있고, 무권대리행위를 하지 않은 다른 상속인들은 자신의 지분에 대해서는 자유롭게 무효를 주장할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무권대리행위를 직접 한 상속인 본인의 지분 범위에서는 신의칙상 추인거절이 제한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Q. 매수인이 애초에 대리권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도 계약했다면 결론이 달라지나요?
A. 매수인이 대리권 없음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던 경우에는 민법 제135조에 따른 무권대리인의 책임 자체가 애초에 발생하지 않습니다. 이 경우 상속인이 신의칙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소유권을 근거로 등기말소 등을 주장할 여지가 상대적으로 커집니다.
Q. 등기가 이미 제3자에게 넘어갔다면 되찾을 방법이 아예 없나요?
A. 신의칙 법리는 등기말소뿐 아니라 부당이득반환 청구까지 함께 제한하는 경향이 있어, 단독상속이고 매수인이 선의·무과실이라는 요건이 갖춰졌다면 되찾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다만 매수인 측에 악의·과실이 있었거나 공동상속으로 다른 상속인의 지분이 남아있는 경우에는 그 부분에서 다툴 여지가 남습니다.
Q. 본인이 생전에 이미 추인을 거절했다면 상속 이후에도 그 거절이 그대로 유지되나요?
A. 본인이 생전에 명시적으로 추인을 거절했다면 그 시점에 계약은 이미 확정적으로 무효가 되고, 이후에는 추인 자체가 불가능해집니다. 무권대리인이 나중에 본인을 상속하더라도 이미 확정된 무효를 뒤집을 근거는 없다고 보는 것이 판례의 취지와 맞닿아 있습니다.
Q. 이런 분쟁에서 준비해야 할 자료는 무엇인가요?
A. 매수인 측이라면 계약 당시 위임장·인감증명서 확인 여부와 대금 지급 내역 등 선의·무과실을 뒷받침할 자료를 준비해 두어야 합니다. 무권대리행위를 한 상속인 측이라면 공동상속 여부와 각자의 상속지분부터 확정해 신의칙이 적용되는 범위를 먼저 가늠해 보는 것이 우선입니다.
맺음말
무권대리로 판 부동산을 상속받았다고 해서 곧바로 소유권을 되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법원은 오히려 이런 주장을 신의칙과 금반언의 원칙에 반한다고 보아 배척해 왔고, 이는 무권대리인으로서 이미 지고 있던 이행책임을 상속을 계기로 뒤집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다만 이 법리는 상대방의 선의·무과실, 단독상속인지 공동상속인지 같은 구체적 조건에 따라 결론이 달라지므로, "상속받았으니 무조건 안 된다"거나 "무조건 된다"고 단정할 문제는 아닙니다.
이런 분쟁은 결국 등기부와 상속관계, 그리고 계약 당시의 정황을 함께 살펴야 결론이 나오는 문제입니다. 특히 용인 처인이나 양평처럼 오래전 매매·명의 정리가 느슨했던 외곽 토지에서는 상속을 계기로 이런 다툼이 뒤늦게 불거지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상속받은 부동산에 과거 대리 매매 이력이 있다면 등기부와 상속관계부터 먼저 확인해 보시길 권합니다.
조력이 필요하시면 010-3432-1451 강대현 대표변호사에게 연락주십시오. 신속히 도와드리겠습니다.
의뢰인을 위한 최선의 전략을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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