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제품이 갑자기 폭발하거나 자동차가 이유 없이 급가속하는 사고를 당한 소비자는 흔히 "제품에 결함이 있었다는 사실을 직접 증명하라"는 벽에 부딪힙니다. 그런데 설계도면·제조공정·품질검사 기록은 전부 제조업체 내부에만 있고, 사고 원인을 과학적으로 밝히려면 전문 감정까지 필요해 일반 소비자가 이를 스스로 입증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런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제조물책임법 제3조의2는 소비자가 결함 자체를 증명하지 않아도 일정한 사실관계 세 가지만 밝히면 결함과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까지 추정해 주는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소비자가 실제로 증명해야 하는 세 가지 사실이 무엇이고, 이 추정이 어떻게 깨질 수 있는지, 실무에서 어떤 증거를 준비해야 하는지 짚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제조물 결함의 세 가지 유형부터 구분해야 하는 이유
제조물책임법 제2조 제2호는 결함을 성격이 전혀 다른 세 유형으로 나눕니다. 제조상의 결함은 제조업자가 아무리 주의를 기울였더라도 원래 설계와 다르게 제조·가공되어 안전하지 못하게 된 경우이고, 설계상의 결함은 더 안전한 대체설계를 채용할 수 있었는데도 채용하지 않아 제품 자체의 설계가 위험하게 된 경우입니다. 표시상의 결함은 합리적인 설명·지시·경고를 붙였더라면 피해를 줄이거나 막을 수 있었는데도 이를 하지 않은 경우를 말합니다.
이 구분이 실무에서 중요한 이유는 뒤에서 살펴볼 결함 추정 규정을 적용할 때 어떤 사실을 증명 대상으로 삼을지가 유형마다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제조상 결함은 대개 개별 제품 하나의 불량 문제로 좁혀지지만, 설계상·표시상 결함은 같은 라인에서 생산된 제품군 전체의 문제로 확장될 수 있어 입증의 방향과 자료 수집 범위 자체가 달라집니다.
제조상의 결함 — 설계와 다르게 만들어져 개별 제품이 안전하지 못하게 된 경우.
설계상의 결함 — 더 안전한 대체설계가 가능했음에도 채용하지 않은 경우.
표시상의 결함 — 합리적인 경고·설명·지시를 하지 않아 위험을 줄이지 못한 경우.
결함의 존재는 제조물책임 성립의 출발점이고, 어떤 유형의 결함을 주장하느냐에 따라 이후 증명해야 할 사실관계의 방향이 달라진다.
소비자가 결함을 직접 증명하기 어려운 이유 — 정보의 비대칭
결함의 존재와 그로 인한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는 원칙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비자가 증명해야 합니다. 그러나 제품이 어떤 공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 품질검사에서 어떤 수치가 나왔는지는 전부 제조업체 내부 자료이고, 사고 직후 제품은 폭발이나 화재로 훼손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사고 원인을 되짚기조차 쉽지 않습니다. 여기에 정밀한 원인 감정에는 상당한 비용과 전문 인력이 필요해, 소비자가 결함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법원은 법 개정 이전부터 이미 증명책임을 완화하는 법리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대법원 2000. 2. 25. 선고 98다15934 판결은 텔레비전이 정상적으로 시청하던 중 폭발한 사고에서, 소비자 측이 제품의 구체적인 결함 내용까지 과학적으로 증명하지 못하더라도 그 사고가 제조업자의 배타적 지배하에 있는 영역에서 발생했고 그러한 사고가 어떤 자의 과실 없이는 통상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정을 증명하면 결함으로 인한 사고로 추정할 수 있다는 취지로 판단해, 이른바 간접반증을 통한 증명책임 완화의 길을 열었습니다.
이 판례가 제시한 틀은 이후 2017년 제조물책임법 개정(2018. 4. 19. 시행)으로 제3조의2라는 명문 규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판례로만 존재하던 법리가 법 조문이 되면서, 소비자는 이제 판례를 인용해 법원을 설득하는 대신 법이 정한 세 가지 사실만 증명하면 됩니다.
제품 내부 정보와 사고 증거가 모두 제조업자 쪽에 몰려 있는 구조적 불균형이, 소비자의 증명책임을 완화하는 법리와 입법으로 이어졌다.
제3조의2가 정한 세 가지 사실 — 이것만 증명하면 결함이 추정된다
제조물책임법 제3조의2는 피해자가 다음 세 가지 사실을 증명하면, 제조물을 공급할 당시 그 제조물에 결함이 있었고 그 결함으로 손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정합니다. 결함의 존재와 인과관계, 두 가지를 동시에 추정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소비자에게는 매우 강력한 규정입니다.
① 해당 제조물이 정상적으로 사용되는 상태에서 피해자의 손해가 발생하였다는 사실 — 오사용·개조·비정상적 취급이 아니었음을 뜻합니다.
② 그 손해가 제조업자의 실질적인 지배영역에 속한 원인으로부터 초래되었다는 사실 — 설계·제조·품질관리 등 제조업자만 관여할 수 있는 영역에서 원인이 비롯되었음을 뜻합니다.
③ 그 손해가 해당 제조물의 결함 없이는 통상적으로 발생하지 아니한다는 사실 — 정상적인 제품이라면 그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경험칙을 뜻합니다.
이 세 가지는 전부 결함 자체가 아니라 결함을 둘러싼 정황, 즉 간접사실입니다. 소비자는 제품 내부에 구체적으로 어떤 부품이 어떻게 잘못됐는지까지 밝힐 필요가 없고, 정상적으로 쓰다가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 사고 원인이 제조업자의 영역 안에 있었다는 사실, 그런 사고는 결함 없이는 웬만해서는 벌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료와 정황으로 뒷받침하면 됩니다.
정상 사용 중 발생 + 제조업자의 지배영역 + 결함 없이는 통상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 이 세 가지만 증명하면 결함과 인과관계까지 함께 추정된다.
추정이 깨지는 경우 — 제조업자의 반증
제3조의2는 단서를 하나 두고 있습니다. 제조업자가 결함이 아닌 다른 원인으로 그 손해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면 추정은 그대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소비자가 세 가지 사실을 증명해 일단 결함이 추정되더라도, 그것으로 소송이 자동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실무에서 제조업자가 시도하는 반증은 대체로 몇 가지 유형으로 나뉩니다. 소비자가 사용설명서에서 금지한 방식으로 제품을 개조하거나 사용했다는 사실, 부품 교체나 수리를 제조업자가 지정하지 않은 업체에서 받았다는 사실, 제품의 통상적인 내구연한을 훨씬 넘겨 사용해 자연적인 노후화로 손상이 생겼다는 사실, 유통·보관 과정에서 제3자에 의해 제품이 훼손되었다는 사실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런 사정이 증명되면 애초에 소비자 측이 주장한 '정상적으로 사용되는 상태'라는 첫 번째 요건 자체가 흔들리게 됩니다.
결함 추정은 확정판결이 아니라 반증으로 뒤집힐 수 있는 법률상 추정이므로, 소비자 측도 정상 사용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함께 준비해야 한다.
실제 사고에 어떻게 적용되나 — 가전·자동차 사고의 적용 방식
가전제품 폭발·발화 사고가 대표적인 적용 사례입니다. 앞서 본 텔레비전 폭발 사건처럼, 소비자가 평소와 다름없이 시청하던 중 제품이 폭발했다면 이는 정상 사용 상태에서 발생한 손해이고, 텔레비전의 회로·부품 설계와 제조는 전적으로 제조업자의 영역에 속하며, 정상적으로 설계·제조된 텔레비전이라면 시청 중 저절로 폭발하는 일은 통상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 세 가지 정황이 갖춰지면 제조업자 측이 다른 원인을 밝히지 못하는 한 결함으로 인한 사고로 추정됩니다.
자동차의 급발진이 의심되는 사고에서도 같은 틀이 적용됩니다. 운전자가 통상적인 방법으로 제동장치를 조작했는데도 차량이 갑자기 가속했다면 정상 사용 요건을, 가속과 관련된 전자제어장치·엔진제어시스템은 제조사만 설계·제어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지배영역 요건을,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차량이라면 운전자의 조작과 무관하게 급가속하는 일이 통상적으로 벌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세 번째 요건을 각각 주장하게 됩니다. 다만 급발진 소송은 사고기록장치(EDR) 자료 분석과 자동차 자체의 기계적 특성 때문에 다른 제품보다 다툼의 여지가 크고, 법원마다 구체적 판단이 갈릴 수 있는 영역이라는 점은 유의해야 합니다.
정상 사용 입증 — 사용설명서대로 조작했음을 뒷받침하는 자료(구매내역, 사용 이력, 목격자 진술 등).
지배영역 입증 — 문제가 된 부품·시스템이 제조업자의 설계·제조·품질관리 범위 안에 있었다는 점.
통상성 입증 — 동종 제품이 정상 상태에서는 그런 사고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점(유사 사고·리콜 이력 등 참고자료 활용).
제품군마다 세 가지 요건을 채우는 구체적 자료는 다르지만, 정상 사용 · 제조업자 지배영역 · 결함 없이는 발생하지 않는다는 통상성이라는 뼈대는 동일하다.
결함 추정을 뒷받침할 증거는 이렇게 준비해야 한다
가장 먼저 지켜야 할 원칙은 사고가 난 제품 그 자체를 임의로 수리하거나 폐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고 제품은 세 가지 요건을 뒷받침하는 가장 직접적인 증거이고, 한 번 수리하거나 버리면 감정 자체가 불가능해져 정상 사용 여부와 결함 여부를 다툴 근거를 잃게 됩니다. 사고 직후에는 제품을 있는 그대로 보관하고, 파손된 부위와 주변 상황을 사진·영상으로 최대한 상세히 남겨두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한국소비자원의 소비자위해감시시스템(CISS)에 사고를 신고하고 안전성 조사나 원인 감정을 의뢰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소비자원 조사 결과나 감정 자료는 소송에서 세 가지 요건, 특히 지배영역·통상성 요건을 뒷받침하는 유력한 근거가 됩니다. 필요하다면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공인 감정기관의 감정을 함께 활용해 원인 규명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사고 제품 원상태 보존 — 임의 수리·폐기 금지, 사진·영상으로 파손 상태 기록.
구매내역·사용설명서·사용 이력 — 정상 사용 요건을 뒷받침하는 기초 자료.
한국소비자원 CISS 신고 및 안전성 조사·감정 의뢰 결과.
목격자 진술, 사고 당시 현장 영상(블랙박스·CCTV 등).
동종 제품의 리콜 이력이나 유사 사고 신고 내역.
사고 제품 자체를 원상태로 보존하는 것이 결함 추정을 뒷받침하는 가장 기본이자 가장 자주 놓치는 증거 확보 원칙이다.
손해배상 범위와 청구기한 — 놓치면 안 되는 두 가지 기한
제조물책임법 제3조 제1항은 제조업자에게 과실이 없어도 결함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도록 하는 무과실책임을 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제3조 제2항은 제조업자가 제조물의 결함을 알면서도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손해가 발생한 경우, 실제 손해액의 3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합니다. 결함을 알고도 방치한 제조업자에게는 통상적인 손해배상보다 훨씬 무거운 책임이 따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청구기한도 반드시 챙겨야 합니다. 제7조에 따라 손해배상청구권은 피해자나 법정대리인이 손해와 배상책임자를 모두 안 날부터 3년, 제조업자가 그 제조물을 공급한 날부터 10년 중 먼저 도래하는 기간 안에 행사해야 합니다. 다만 신체에 누적되어 건강을 해치거나 일정한 잠복기간을 거쳐 증상이 나타나는 손해는 그 손해가 실제로 발생한 날부터 기간을 다시 계산하므로, 뒤늦게 증상이 나타난 경우라도 곧바로 청구권이 소멸하는 것은 아닙니다.
안 날부터 3년, 공급일부터 10년 — 두 기간 중 먼저 차는 쪽이 기준이 되므로, 사고를 인지한 시점부터 기한을 계산해 두어야 한다.
자주 묻는 질문
Q. 결함이 있다는 것 자체를 증명하지 않아도 배상받을 수 있나요?
A. 제조물책임법 제3조의2가 정한 세 가지 사실(정상적 사용 중 손해 발생, 제조업자의 실질적 지배영역, 결함 없이는 통상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하면 결함과 인과관계가 함께 추정되어, 결함 자체를 과학적으로 입증하지 않아도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제조업자가 다른 원인을 증명하면 추정은 깨질 수 있습니다.
Q. 오래되거나 이미 고장 이력이 있는 제품이라도 추정 규정을 쓸 수 있나요?
A. 세 가지 사실 중 첫 번째가 정상적으로 사용되는 상태에서 손해가 발생했다는 점이므로, 사용설명서를 어기거나 통상적인 노후화로 인한 고장이라면 이 요건 자체가 인정되기 어렵습니다. 정상 사용 여부는 사용 이력과 관리 상태로 판단됩니다.
Q. 제조업자가 반증에 성공하면 소송은 어떻게 되나요?
A. 제조업자가 결함이 아닌 다른 원인(소비자의 오사용, 제3자의 개조, 유통과정에서의 훼손 등)으로 손해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면 결함 추정은 복멸되고, 그 이후에는 다시 일반 원칙에 따라 결함과 인과관계를 다투게 됩니다.
Q. 제조업자가 결함을 알고도 방치한 경우 배상액이 늘어나나요?
A. 제조업자가 제조물의 결함을 알면서도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손해가 발생한 경우, 제조물책임법 제3조 제2항에 따라 실제 손해액의 3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이 인정될 수 있습니다.
Q. 언제까지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하나요?
A. 손해와 배상책임자를 안 날부터 3년, 제품을 공급받은 날부터 10년 중 먼저 도래하는 기간 안에 청구해야 합니다. 다만 신체에 누적되거나 잠복기를 거쳐 나타나는 손해는 그 증상이 실제로 나타난 날부터 기간을 계산합니다.
Q. 사고가 난 제품을 수리하거나 버려도 되나요?
A. 사고 제품 자체가 결함을 뒷받침하는 핵심 증거이므로 임의로 수리하거나 폐기하면 세 가지 요건을 입증할 자료를 잃게 됩니다. 감정이나 소비자원 조사가 끝나기 전까지는 사고 당시 상태 그대로 보관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맺음말
제조물 사고를 당한 소비자에게 가장 큰 장벽은 사고 자체가 아니라 '결함이 있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하느냐'였습니다. 제조물책임법 제3조의2는 이 장벽을 낮추기 위해, 결함 그 자체가 아니라 정상적인 사용 중 손해가 발생했다는 사실, 그 원인이 제조업자의 지배영역에 있었다는 사실, 그런 손해는 결함 없이는 통상 벌어지지 않는다는 사실 세 가지만 증명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 추정은 제조업자의 반증으로 뒤집힐 수 있는 만큼, 사고 직후 제품을 보존하고 정황 자료를 촘촘히 남겨두는 것이 결과를 가르는 실질적인 변수가 됩니다.
수원을 비롯한 경기남부 지역에서도 가전제품이나 자동차 관련 제조물 사고로 상담을 요청하는 경우가 꾸준히 있습니다. 사고 원인이 애매해 보이더라도 세 가지 요건에 맞춰 자료를 정리하면 생각보다 청구가 가능한 경우가 많으니, 제품을 임의로 처분하기 전에 먼저 요건에 맞는 자료부터 점검해 보시길 권합니다.
조력이 필요하시면 010-3432-1451 강대현 대표변호사에게 연락주십시오. 신속히 도와드리겠습니다.
의뢰인을 위한 최선의 전략을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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