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나 월세로 살고 있는 건물이 계약기간 도중에 팔렸다는 통보를 받으면 임차인은 당혹스러워집니다. 법은 원칙적으로 건물이 팔리면 새 소유자가 기존 임대인의 지위를 그대로 넘겨받는다고 정하고 있어, 임차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계약관계가 자동으로 승계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대법원 판례는 이 원칙에 중요한 예외를 인정합니다 — 임차인이 새 소유자와의 관계를 원하지 않는다면, 일정한 요건 아래 승계를 거부하고 임대차 자체를 해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 거부권이 아무 때나 무제한으로 인정되지 않고, 이의를 제기하는 시기와 그 사이의 행동에 따라 이미 승계를 받아들인 것으로 취급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임차인이 언제, 어떤 요건 아래 승계를 거부하고 계약을 끝낼 수 있는지, 그리고 거부했을 때 보증금은 누구에게 청구해야 하는지 짚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임대인 지위승계 — 건물이 팔리면 임대차는 왜 자동으로 새 소유자에게 넘어가나
임차인이 새 소유자에게 기존 임대차 그대로를 주장할 수 있으려면 먼저 대항력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 제1항에 따라 주택의 인도와 주민등록(전입신고)을 마치면 그다음 날 0시부터 대항력이 생기고, 이때부터 소유자가 매매·상속·경매 등 어떤 원인으로 바뀌더라도 임차인은 새 소유자에게 임대차 내용을 그대로 주장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조문이 같은 법 제3조 제4항입니다. "임차주택의 양수인(그 밖에 임대할 권리를 승계한 자를 포함한다)은 임대인의 지위를 승계한 것으로 본다"고 정해, 건물을 산 사람이 자동으로 종전 임대인의 자리에 들어서도록 합니다.
이 승계는 당사자 사이의 합의가 아니라 법률 규정에 따른 것이어서, 대법원 1996. 2. 27. 선고 95다35616 판결은 이 지위 이전에 임차인의 동의를 받을 필요도, 임차인에게 통지할 필요도 없다고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임대차보증금 반환채무를 포함해 임대차계약에서 발생하는 일체의 권리와 의무가 양수인에게 포괄적으로 넘어가는 대신, 종전 임대인의 임대인으로서의 지위는 면책적으로 소멸합니다. 이 구조는 원래 임차인을 보호하려는 취지에서 나온 것입니다 — 집이 팔렸다는 이유로 보증금을 반환받을 상대방 자체가 사라지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대항력을 갖춘 임차인의 임차주택이 양도되면, 양수인은 동의나 통지 절차 없이도 임대인의 지위를 당연히 승계한다 —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법률상 당연승계 규정이다.
그런데도 거부가 가능한 이유 — 임차인 보호를 위한 예외 법리
당연승계가 원칙이라면, 임차인이 이를 거부한다는 것이 이상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제도 자체가 임차인을 보호하려고 만들어진 것인데, 정작 그 임차인이 새 소유자와의 관계를 원하지 않는데도 승계를 강제로 떠안기면 오히려 제도 취지에 반하게 됩니다. 대법원 1998. 9. 2.자 98마100 결정은 바로 이 지점을 짚어, "임차인이 원하지 아니하면 임대차의 승계를 임차인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밝히면서, 임차인이 "곧 이의를 제기함으로써 승계되는 임대차관계의 구속을 면할 수 있고, 임대인과의 임대차관계도 해지할 수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이 판례가 인정하는 것은 임차인이 아무 이유 없이 계약을 깰 수 있는 자유가 아니라, 딱 하나의 특수한 상황 — 소유자가 바뀌었다는 사정 그 자체를 이유로 종전 계약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좁은 문입니다. 다만 이 문은 열려 있는 채로 무한정 유지되지 않습니다.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시기와, 그 전후로 임차인이 실제로 어떻게 행동했는지에 따라 거부권 행사가 인정되기도, 부정되기도 합니다. 아래에서 그 구체적인 요건을 순서대로 살펴보겠습니다.
거부의 첫째 요건 — 대항력을 갖춘 임차인이어야 승계할 지위 자체가 있다
대항력이 없는 임차인이라면 애초에 "승계를 거부한다"는 논의 자체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대항력을 갖추지 못한 임차인은 새 소유자에게 임대차를 주장할 수 없으므로, 새 소유자는 법률상 이 임대차에 구속되지 않고 승계라는 효과 자체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임차인은 여전히 계약을 체결한 종전 임대인에게 채권적으로 보증금 반환 등을 청구할 수 있을 뿐, 새 소유자를 상대로는 애초부터 아무 권리도 주장하지 못합니다.
반대로 인도와 전입신고를 마쳐 대항력을 갖춘 임차인은 원칙적으로 새 소유자에게 임대인 지위 승계 효과를 그대로 받게 됩니다. 바로 이 대항력이 있기 때문에 "승계를 거부한다"는 별도의 의사표시가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대항력이 없다면 거부할 지위 자체가 없고, 대항력이 있다면 원칙적으로 승계되는 자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거부 의사를 밝혀야 하는 구조입니다.
대항력이 없는 임차인 — 새 소유자에게 임대차를 주장할 수 없어 승계 논의 자체가 발생하지 않음. 종전 임대인에게만 채권적으로 청구 가능.
대항력을 갖춘 임차인 — 원칙적으로 새 소유자에게 임대인 지위가 당연승계됨. 이를 원하지 않으면 별도로 이의를 제기해야 함.
대항력 판단 기준 — 주택의 인도와 전입신고를 모두 마친 다음 날 0시.
거부의 둘째 요건 — 양도 사실을 안 때로부터 상당한 기간 내에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
대법원 2002. 9. 4. 선고 2001다64615 판결은 임차인이 승계를 거부하려면 임차주택의 양도 사실을 안 때로부터 상당한 기간 내에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고 봅니다. 다만 이 "상당한 기간"이 며칠, 몇 주로 못 박혀 있는 것은 아니고, 임차인이 양도 사실을 언제 알았는지, 그 뒤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를 종합적으로 살펴 사안마다 판단합니다. 기간 자체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점은 임차인에게 유리하게도, 불리하게도 작용할 수 있어 오히려 신속한 대응이 중요해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실무적으로는 양도 사실을 알게 된 즉시 종전 임대인과 새 소유자 양쪽 모두에게 승계를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분명히 밝히는 것이 안전합니다. 구두로 의사를 전달했다가 나중에 다툼이 생기면 언제, 어떤 내용으로 이의를 제기했는지 입증하기 어려워지므로, 내용증명 우편처럼 발송 시점과 내용이 함께 남는 방법을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시간을 끌수록 다음 항목에서 다룰 "승계를 인정한 것으로 보이는 행동"이 쌓일 위험도 커집니다.
예를 들어 2년 임대차 계약 중 8개월이 지난 시점에 건물이 팔렸다는 통보를 부동산 중개사로부터 전해 들은 임차인이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 경우 통보를 받은 그날을 기준으로 상당한 기간을 셈하게 되므로, 통보를 받고도 한두 달 넘게 아무 반응을 하지 않다가 뒤늦게 승계를 거부하겠다고 나서면 이미 늦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통보를 받은 직후 곧바로 내용증명을 발송해 이의를 표시해 두었다면, 실제로 이사하거나 보증금을 받기까지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이의제기 자체의 효력은 그 발송 시점을 기준으로 인정받을 여지가 커집니다.
거부의 셋째 요건 — 승계를 인정한 것으로 보이는 행동을 하지 않아야 한다
이의를 제기하는 시기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그 사이의 행동입니다. 2001다64615 판결의 사안에서 임차인은 새 소유자에게 명시적으로 수령거절 의사를 밝히지 않은 채, 경매절차가 진행되자 임차인으로서 권리신고와 배당요구를 했습니다. 법원은 이 행위를 오히려 승계를 인정하는 전제에서 나온 행동으로 보아, 뒤늦게 승계를 거부한다고 주장해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앞서 살펴본 대로 이의는 명시적으로도, 묵시적으로도 할 수 있지만 거꾸로 승계를 인정하는 것으로 보이는 행동 역시 명시적 진술 없이도 성립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실무에서 흔히 문제 되는 행동은 새 소유자에게 차임을 계속 납부하거나, 새 소유자와 임대차계약서를 다시 쓰거나 갱신을 협의하는 경우입니다. 이런 행동은 뒤늦게 "사실 승계를 원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더라도 앞뒤가 맞지 않는 태도로 비칠 위험이 큽니다. 승계를 거부할 생각이라면 이의를 표시하기 전까지 새 소유자를 임대인으로 대하는 듯한 행동 자체를 자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새 소유자에게 차임을 계속 납부하는 행위
새 소유자와 임대차계약을 다시 체결하거나 갱신에 합의하는 행위
경매절차에서 임차인으로서 권리신고·배당요구를 하는 행위
새 소유자를 상대로 임대차 관련 시설 수선 등을 요구하는 행위
승계 거부는 시기(상당한 기간 내)와 태도(승계를 인정하는 것으로 보이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를 함께 충족해야 인정된다 — 어느 한쪽이 무너지면 거부 주장 자체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의를 제기하면 실제로 벌어지는 일 — 해지의 상대방과 보증금 청구
요건을 갖춰 이의를 제기하면 임차인은 새 소유자에게 승계되는 임대차관계의 구속에서 벗어나고, 임대차 자체는 종전 임대인과의 관계에서 해지됩니다. 여기서 실무상 헷갈리기 쉬운 지점이 있습니다 — 해지의 상대방이 현재 소유자인 새 주인이 아니라, 계약을 체결했던 종전 임대인이라는 점입니다. 승계를 거부한다는 것은 새 소유자와의 임대차관계 자체를 처음부터 없던 것으로 만드는 것이므로, 임차인은 결국 목적물을 반환(퇴거)해야 하는 대신 보증금은 종전 임대인에게 청구하게 됩니다.
대법원 2021. 11. 11. 선고 2021다251929 판결은 임차인이 승계에 이의를 제기한 경우에도 종전 임대인의 보증금반환채무가 소멸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즉 새 소유자가 이 채무를 넘겨받지 않는 대신, 원래 계약을 맺었던 종전 임대인이 계속 그 책임을 집니다. 실무적으로는 이의 제기와 퇴거, 보증금 반환을 하나의 절차로 묶어 처리하기보다 별개의 트랙으로 정리해야 하며, 종전 임대인이 자금 사정 등을 이유로 반환을 미룰 경우 임차권등기명령 신청 등 별도 절차를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종전 임대인이 이미 매매대금을 전부 받아 자금 여력이 없다고 버티는 경우도 드물지 않으므로, 이의를 제기하는 단계부터 종전 임대인의 자력과 소재를 함께 파악해 두는 것이 뒤이은 보증금 반환 절차를 수월하게 만듭니다.
상가건물이라면 —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에도 같은 구조가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논의는 주택뿐 아니라 상가건물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제3조 제2항도 "임차건물의 양수인(그 밖에 임대할 권리를 승계한 자를 포함한다)은 임대인의 지위를 승계한 것으로 본다"고 정해, 주택임대차보호법과 사실상 같은 문구로 당연승계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대항력을 갖춘 상가임차인 — 건물의 인도와 사업자등록을 마친 임차인 — 이라면 건물이 팔렸을 때 새 소유자에게 임대인 지위가 당연승계되고, 이를 원하지 않는 경우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은 요건 아래 승계를 거부할 수 있다는 법리가 실무에서 같은 방식으로 다루어집니다.
다만 상가는 영업을 계속하는 중에 소유자 변경 소식을 듣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사정이 조금 다릅니다. 이의를 제기해 계약관계를 끝낸다는 것은 곧 그 자리에서 영업을 접어야 한다는 뜻이 될 수 있어, 권리금 회수 문제나 새로운 영업장소 확보까지 함께 고려해 이의 제기 여부와 시점을 신중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새 소유자와 임대차조건을 협의하며 영업을 계속 이어가는 편이 나은지, 승계를 거부하고 종전 임대인에게 보증금을 받아 정리하는 편이 나은지는 개별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가령 새 소유자가 기존 임대차 조건보다 훨씬 높은 차임이나 불리한 갱신 조건을 요구해 오는 경우, 무작정 그 조건에 응하기보다 승계 거부라는 선택지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협상력의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 정한 계약갱신요구권이나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 규정은 어디까지나 승계된 임대차관계가 유지될 때 작동하는 별개의 제도이므로, 승계를 거부해 계약관계를 끝내기로 한 이상 그 이후에는 이런 보호 규정을 새 소유자에게 주장할 근거도 함께 사라진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건물이 팔렸다는 사실을 듣고도 아무 말 안 하면 자동으로 새 주인과 계약이 이어지나요?
A. 대항력을 갖춘 임차인이라면 별다른 의사표시가 없어도 임대인 지위는 새 소유자에게 당연히 승계됩니다. 승계를 원하지 않는다면 양도 사실을 안 때로부터 상당한 기간 내에 이의를 제기해야 하며, 아무 조치 없이 시간이 지나면 승계를 받아들인 것으로 취급될 수 있습니다.
Q. 이의를 제기하는 방법이 따로 정해져 있나요?
A. 법에 정해진 특정 서식은 없고,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승계를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가 분명히 드러나면 됩니다. 다만 분쟁에 대비해 내용증명 등 서면으로 종전 임대인과 새 소유자 모두에게 그 뜻을 명확히 통지해 두는 것이 안전합니다.
Q. 이의를 제기한 뒤에도 계속 그 건물에 머물 수 있나요?
A. 이의 제기는 승계를 거부하고 임대차 자체를 종료시키는 것이므로, 새 소유자와의 관계에서는 더 이상 임대차상 권리를 주장하기 어렵습니다. 보증금을 돌려받을 때까지 점유를 유지할 수 있는지는 별개 문제이므로, 퇴거 시점과 보증금 반환 절차를 함께 정리해 두어야 합니다.
Q. 보증금은 새 주인과 종전 주인 중 누구에게 받아야 하나요?
A. 승계에 이의를 제기했다면 임대인 지위가 새 소유자에게 넘어가지 않은 것으로 취급되므로, 보증금은 원래 계약을 맺었던 종전 임대인에게 청구해야 합니다. 판례도 임차인이 이의를 제기한 경우 종전 임대인의 보증금반환채무가 소멸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습니다.
Q. 경매로 소유자가 바뀐 경우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되나요?
A. 소유권 변동의 원인이 매매든 경매든 상속이든 상관없이 임대인 지위 당연승계 규정은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다만 경매절차에서 임차인으로서 권리신고나 배당요구를 하면 오히려 승계를 인정한 행동으로 해석되어 뒤늦은 이의 제기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합니다.
Q. 상가를 임차하고 있는데도 같은 방식으로 승계를 거부할 수 있나요?
A.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에도 임차건물의 양수인이 임대인 지위를 승계한다는 사실상 동일한 규정이 있어, 대항력을 갖춘 상가임차인에게도 같은 법리가 실무에서 적용됩니다. 다만 영업을 계속하는 상황에서는 이의 제기가 곧 영업 중단으로 이어질 수 있어 권리금·이전 비용까지 함께 고려한 판단이 필요합니다.
맺음말
건물이 팔렸다고 해서 임차인이 무조건 새 소유자와의 관계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 거부권은 대항력을 갖춘 임차인에게만 열려 있고, 양도 사실을 안 때로부터 상당한 기간 내에 이의를 제기해야 하며, 그 사이 승계를 인정한 것으로 보이는 행동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세 가지 요건을 함께 충족해야 인정됩니다. 이 중 하나라도 어긋나면 뒤늦게 거부 의사를 밝혀도 이미 승계를 받아들인 것으로 취급될 위험이 있습니다.
특히 광교·수지처럼 최근 아파트·오피스텔 매매와 임대차가 활발한 지역에서는 임대차 도중 소유자가 바뀌는 사례가 드물지 않게 발생합니다. 건물 매매 소식을 들었다면 곧바로 자신의 대항력 취득 시점과 이의를 제기할 실익부터 점검해 보시길 권합니다.
조력이 필요하시면 010-3432-1451 강대현 대표변호사에게 연락주십시오. 신속히 도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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