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로 다쳐 치료를 받고 손해배상을 청구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적은 금액만 인정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해자 측이 "원래 있던 허리디스크나 퇴행성 질환 때문에 증상이 더 심해진 것"이라며 기왕증 기여도를 주장하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 배상액이 절반 가까이 깎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기왕증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자동으로 감액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여 정도를 법원이 어떻게 산정하고 어느 손해 항목에 어떤 방식으로 반영하는지에 따라 최종 금액이 크게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이 글에서는 기왕증 기여도 감액이 어떤 법리에 근거하는지, 법원이 기여도를 어떻게 판단하는지, 피해자가 부당한 감액을 피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기왕증 기여도 감액이란 — 손해의 공평한 분담 원칙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은 원칙적으로 가해자가 발생한 손해 전부를 배상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나 피해자에게 사고 이전부터 있던 질환, 이른바 기왕증이 사고로 인한 상해나 후유장해의 발생·확대에 함께 작용한 경우까지 가해자에게 손해 전부를 물리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 판례의 입장입니다. 이때 법원은 기왕증이 상해 결과에 기여한 정도만큼을 참작해 배상액을 깎는데, 이를 실무에서 기왕증 기여도 감액이라 부릅니다.
그 법적 근거는 민법 제763조, 제396조가 정한 과실상계 규정의 유추적용입니다. 과실상계는 본래 피해자의 잘못을 이유로 배상액을 깎는 제도이지만, 기왕증처럼 피해자에게 귀책사유가 전혀 없는 체질적 소인이나 질병의 위험도라 하더라도, 그 질환의 양태·정도에 비추어 가해자에게 손해 전부를 배상시키는 것이 공평의 이념에 반한다고 판단되면 법원이 같은 법리를 유추적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기왕증 기여도 감액은 피해자를 벌하는 제도가 아니라, 가해행위와 무관하게 이미 존재하던 위험을 피해자와 가해자가 나누어 부담하게 하는 형평 장치입니다.
교통사고 손해배상 소송에서는 특히 이 쟁점이 자주 등장합니다. 추돌사고로 목·허리 통증을 호소하는 피해자 중 상당수가 사고 이전에 이미 퇴행성 디스크나 척추관협착증 같은 진단을 받은 적이 있는 경우가 많고, 보험사나 가해자 측 대리인은 소송 초기부터 진료기록을 검토해 이런 기왕증 이력을 찾아내 기여도 주장의 근거로 삼습니다. 그래서 피해자로서는 소송이 시작되기 전부터 자신의 과거 진료기록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먼저 파악해두는 것이 유리합니다.
기왕증 기여도 감액은 피해자의 잘못을 탓하는 제도가 아니라, 가해자의 행위와 무관하게 이미 존재하던 질환의 위험을 가해자와 피해자가 나누어 부담하게 하는 손해의 공평한 분담 장치다.
과실상계와 무엇이 다른가 — 귀책사유 없는 소인도 감액 사유가 되는 이유
기왕증 기여도 감액을 과실상계와 혼동하기 쉽지만 둘은 성격이 다릅니다. 과실상계는 피해자가 사고 발생이나 손해 확대에 잘못을 저질렀을 때(무단횡단, 안전벨트 미착용 등) 그 책임비율만큼 배상액을 줄이는 제도입니다. 반면 기왕증 기여도는 피해자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어도, 심지어 피해자가 그 질환의 존재조차 몰랐던 경우라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체질적 소인이나 지병은 피해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것이지만, 그로 인해 손해가 실제보다 더 커졌다면 그 확대분까지 가해자에게 전가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논리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법원이 아무 근거 없이 기여도를 인정하지는 않습니다. 가해행위와 피해자 측 요인이 경합해 손해가 발생하거나 확대되었다는 점, 그리고 그 정도가 가해자에게 손해 전부를 부담시키는 것이 형평에 반할 만큼 유의미하다는 점이 소송상 드러나야 합니다. 단순히 진료기록에 과거 질환이 언급되어 있다는 사정만으로는 부족하고, 그 기왕증이 이번 사고로 인한 상해·후유장해와 실제로 상관관계가 있다는 점까지 나타나야 감액이 인정됩니다.
법원의 기여도 판단 기준 — 신체감정과 제반사정
대법원 2011. 5. 13. 선고 2009다100920 판결은 법원이 기왕증의 기여도를 정할 때 반드시 의학적으로 정확하게 판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대신 변론 과정에서 드러난 기왕증의 원인과 정도, 상해 부위 및 정도, 기왕증과 전체 상해 사이의 상관관계, 치료 경과, 피해자의 연령·직업·건강상태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해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 판례의 태도입니다. 결국 기여도는 하나의 수학 공식으로 딱 떨어지게 산출되는 값이 아니라, 법관의 재량적 판단이 개입하는 영역입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자의적인 것은 아닙니다. 실무에서는 신체감정촉탁 결과에 크게 의존합니다. 소송 과정에서 법원이 감정의에게 상해와 기왕증의 상관관계, 기왕증이 현재 후유장해에 기여한 비율을 구체적으로 묻고, 그 감정 결과를 바탕으로 기여도를 확정하는 방식이 일반적입니다. 다만 같은 사안이라도 감정병원이나 감정의사에 따라 기여도 판단에 편차가 크다는 점은 실무상 자주 지적되는 문제입니다.
기왕증의 원인과 정도 — 언제부터 어떤 질환이 있었는지, 사고 전 증상의 정도.
상해 부위 및 정도와 기왕증의 상관관계 — 같은 부위인지, 인과관계가 의학적으로 설명되는지.
치료 경과 — 사고 후 치료기간이 통상보다 길어졌는지, 회복이 더뎠는지.
피해자의 연령·직업·건강상태 — 나이가 많을수록, 기존 질환이 진행성일수록 기여도가 높게 인정되는 경향.
기여도는 어떻게 계산에 반영되나 — 노동능력상실률과 손해항목별 적용
일실수입(장래 얻을 수 있었던 수입 손해) 산정에서 기여도는 통상 노동능력상실률에 곱하는 방식으로 반영됩니다. 예를 들어 신체감정 결과 노동능력상실률이 24%로 나왔는데 그중 기왕증의 기여도가 50%로 인정된다면, 사고로 인한 순수한 노동능력상실률은 12%(24%×0.5)로 낮아져 그만큼 일실수입 손해액이 줄어드는 식입니다. 기여도가 높게 인정될수록 최종 배상액에 미치는 영향도 커지는 구조입니다.
여기서 실무상 중요한 원칙이 하나 더 있습니다. 대법원 2019. 8. 9. 선고 2017다20159 판결은 일실수입의 노동능력상실률을 산정하면서 기왕증의 기여도를 참작했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치료비·개호비 등 다른 손해 항목을 산정할 때도 동일한 기여도를 참작해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나아가 대법원 2019. 5. 30. 선고 2015다8902 판결은 원심이 기왕증을 가해자의 책임제한 사유로만 반영하고 기왕치료비·향후치료비 산정에서는 이를 별도로 고려하지 않은 것을 잘못이라고 지적하며, 기여도는 손해항목별로 개별적으로 반영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했습니다. 즉 어느 한 항목에서만 기여도를 적용하고 다른 항목에서는 적용하지 않는 계산은 그 자체로 법리 오해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치료비 항목에서도 방식은 비슷합니다. 예를 들어 기왕치료비가 1,000만원이고 그중 기왕증으로 인해 치료기간이 늘어나거나 치료범위가 넓어진 부분의 기여도가 30%로 인정된다면, 사고로 인한 순수 치료비는 700만원 선으로 정리됩니다. 개호비(간병비) 역시 기왕증이 없었다면 개호가 필요하지 않았거나 더 짧은 기간만 필요했을 것이라는 사정이 인정되면 같은 방식으로 기여도만큼 공제됩니다. 결국 소송 상대방이 제시하는 손해액 계산서를 받아보면, 각 항목마다 기여도가 실제로 동일하게 반영되어 있는지 항목별로 대조해보는 작업이 꼭 필요합니다.
일실수입 산정에서 기왕증의 기여도를 참작했다면 치료비·개호비 등 다른 손해 항목에도 같은 기여도를 일관되게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확립된 태도다.
기여도 감액과 과실상계, 적용 순서가 만드는 차이
한 사건에 기왕증 기여도와 피해자의 과실이 함께 문제 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예컨대 피해자에게 무단횡단 과실이 30% 있고 기왕증 기여도가 40%로 인정되는 사안이라면, 두 감액을 어떤 순서로 적용하는지에 따라 최종 배상액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실무상 정착된 계산 순서는 먼저 손해액 산정 단계에서 기왕증의 기여도를 참작해 손해액을 확정한 다음, 그렇게 확정된 손해액을 기준으로 피해자의 과실비율만큼 과실상계를 하는 방식입니다.
이 순서가 뒤바뀌면 안 되는 이유는 두 감액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기왕증 기여도는 애초에 가해자의 행위로 인한 손해의 범위를 정하는 단계이고, 과실상계는 그렇게 정해진 손해액 중 가해자가 배상할 몫을 정하는 단계입니다. 순서를 바꿔 과실상계를 먼저 하고 기왕증 기여도를 나중에 적용하면 중복 감액이나 과소 감액이 생길 수 있어, 소송에서 상대방이 제출한 계산서의 순서를 반드시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무에서 다투는 지점 — 기왕증의 존재와 기여도의 증명책임
기왕증 기여도 감액은 가해자 측이 자신에게 유리한 감액 사유로 주장하는 것이므로, 그 기왕증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사실과 그것이 현재 상해·후유장해에 기여했다는 사실은 원칙적으로 이를 주장하는 가해자 측이 증명해야 합니다. 단순히 진료기록에 과거 통원 이력이 남아 있다는 정도로는 부족하고, 그 질환이 이번 사고로 인한 상해와 의학적으로 상관관계가 있다는 점까지 나타나야 합니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반대로, 사고 이전에 해당 부위나 질환으로 별다른 증상 없이 정상적으로 일상생활과 근로를 해왔다는 자료를 확보해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건강검진 결과, 사고 전 진료기록의 부재, 동료나 가족의 진술 등이 기여도를 낮추는 데 활용될 수 있습니다. 또한 신체감정 결과에 기여도가 과도하게 높게 나온 경우, 감정 결과에 대한 사실조회 신청이나 재감정 신청을 통해 다툴 여지도 있습니다.
실무에서는 신체감정촉탁 시 감정사항을 어떻게 작성하는지도 결과에 영향을 미칩니다. "기왕증이 이번 상해에 기여한 정도"만 막연히 묻기보다, 기왕증의 구체적 병명·발병 시기·사고 전 치료 이력을 먼저 특정하고 그것이 현재 후유장해와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지를 세분화해 질문하면 감정의 입장에서도 근거를 구체적으로 밝히기가 쉬워집니다. 감정 회신이 애매하게 나오면 그 자체가 나중에 기여도를 다투는 근거가 될 수 있으므로, 감정사항 작성 단계부터 신경 쓸 필요가 있습니다.
사고 전 진료기록 부재 또는 경미한 통원 이력 — 기왕증이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었다는 정황.
건강검진 결과지 — 사고 직전 시점의 건강상태를 객관적으로 뒷받침.
신체감정 결과에 대한 사실조회신청 — 기여도 산정 근거를 구체적으로 따져 묻는 절차.
기여도가 과도하다고 판단되면 재감정 신청도 검토 가능.
위자료에도 기여도가 적용되나 — 정신적 손해와의 접점
치료비·개호비·일실수입 같은 재산적 손해와 달리, 위자료는 법관이 제반 사정을 참작해 재량으로 정하는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입니다. 그런데 기왕증으로 인해 상해나 후유장해가 확대된 경우, 그 확대된 부분에 대응하는 정신적 고통까지 가해자에게 전부 배상시키는 것은 역시 공평에 반한다는 것이 실무의 일반적 설명입니다. 이 때문에 위자료를 산정할 때도 기왕증 기여도가 법관의 재량 판단 요소 중 하나로 반영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위자료는 애초에 법관의 재량 폭이 넓은 항목이어서, 치료비나 일실수입처럼 기여도 수치를 그대로 곱하는 산술적 방식이 강제되지는 않습니다. 실제로는 기왕증의 존재와 그 기여 정도를 위자료 액수를 정하는 여러 참작 사유 중 하나로 반영하는 방식이 일반적입니다. 따라서 위자료 감액 폭이 재산적 손해 항목의 감액 폭과 산술적으로 정확히 일치하지 않더라도 그 자체가 위법한 것은 아니며, 전체적으로 기왕증이 합리적으로 참작되었는지가 관건입니다. 판결문에서 위자료 액수를 정하는 이유를 밝힐 때 기왕증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경우도 있어, 위자료 단계의 감액 여부는 재산적 손해 항목만큼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함께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기왕증이 있으면 무조건 배상액이 깎이나요?
A. 아닙니다. 기왕증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자동 감액되지 않고, 그 기왕증이 이번 사고로 인한 상해나 후유장해의 발생·확대에 실제로 기여했다는 점이 증명되어야 합니다. 사고와 무관하게 안정적으로 관리되던 질환이었다면 기여도가 인정되지 않거나 낮게 인정될 수 있습니다.
Q. 기왕증 기여도는 누가 증명해야 하나요?
A. 감액을 주장하는 가해자 측에서 기왕증의 존재와 그것이 상해·후유장해에 기여했다는 상관관계를 증명해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다만 실무상 신체감정 결과가 핵심 증거로 작용하므로, 피해자도 감정 과정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사정을 적극적으로 주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Q. 노동능력상실률에서만 기여도를 반영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A. 아닙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일실수입 산정에서 기여도를 참작했다면 치료비·개호비 등 다른 손해 항목에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동일한 기여도를 일관되게 반영해야 합니다. 한 항목에서만 감액하고 다른 항목은 그대로 두는 계산은 법리 오해로 다퉈볼 수 있습니다.
Q. 과실상계와 기왕증 기여도가 동시에 문제 되면 어떻게 계산하나요?
A. 실무상 정착된 방식은 먼저 기왕증 기여도를 참작해 손해액을 확정한 다음, 그 손해액을 기준으로 피해자의 과실비율만큼 과실상계를 하는 순서입니다. 이 순서가 바뀌면 최종 배상액이 달라질 수 있어 상대방 계산서의 순서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Q. 신체감정에서 기여도가 너무 높게 나왔다면 다툴 방법이 있나요?
A. 감정 결과에 대한 사실조회신청으로 감정의에게 판단 근거를 구체적으로 따져 묻거나, 사정에 따라 재감정을 신청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사고 전 건강검진 결과나 진료기록 부재 등 기왕증이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었음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함께 제출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Q. 위자료도 기여도만큼 똑같은 비율로 깎이나요?
A. 위자료는 법관의 재량 폭이 넓어 기여도 수치를 그대로 곱하는 산술적 방식이 강제되지는 않습니다. 기왕증의 존재와 기여 정도가 위자료를 정하는 여러 참작 사유 중 하나로 반영될 뿐이라, 재산적 손해 항목의 감액 비율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맺음말
기왕증 기여도 감액은 가해자에게 부당한 면죄부를 주는 제도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위험을 공평하게 나누어 부담시키기 위한 손해배상법의 형평 장치입니다. 다만 그 적용 범위와 방식을 둘러싸고 다툴 지점이 많습니다. 기여도가 인정되는 근거가 충분한지, 노동능력상실률뿐 아니라 다른 손해 항목에도 일관되게 반영되었는지, 과실상계와의 적용 순서가 올바른지에 따라 최종 배상액이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특히 신체감정 결과가 기여도 판단의 핵심 근거로 작용하는 만큼, 감정 절차에서 사고 전 건강상태를 뒷받침하는 자료를 충실히 제출하고 감정 결과를 꼼꼼히 검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상대방이 제시한 기여도나 계산 방식에 의문이 든다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근거를 따져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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