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상대방이 기한을 넘겨 이행을 미루면 곧바로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민법상 원칙은 다릅니다. 원칙적으로는 상당한 기간을 정해 이행을 재촉하는 최고 절차를 거쳐야 해제권이 생깁니다. 그런데 웨딩 케이터링이나 행사장 장식, 특정 출국일에 맞춘 물품처럼 정해진 시점을 넘기면 더 이상 계약의 의미가 없어지는 계약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이런 계약을 법률용어로 '정기행위'라 부르고, 민법 제545조는 이 경우 최고 없이 곧바로 해제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정기행위로 인정받는 요건과 판단 기준, 절대적·상대적 정기행위의 구별, 그리고 해제 이후 실제로 다투게 되는 지점까지 차례로 정리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원칙은 최고 후 해제 — 이행지체 해제의 기본 구조
계약 당사자 일방이 채무를 이행하지 않는다고 해서 상대방이 곧바로 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민법 제544조는 상대방이 상당한 기간을 정해 이행을 최고하고, 그 기간 안에도 이행하지 않을 때 비로소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정합니다. 최고 없이 곧장 해제 통보부터 보내면 그 해제 자체가 무효로 다투어질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상당한 기간이란 채무자가 이행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을 뜻하며, 계약 내용과 이행 난이도에 따라 통상 며칠에서 길게는 수 주까지도 인정됩니다.
다만 민법 제544조 단서는 이미 예외를 하나 두고 있습니다. 채무자가 미리 이행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명백히 표시한 경우에는 최고 자체가 무의미하므로 최고 없이 해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기행위 해제는 이와는 결이 다른 별도의 예외입니다. 채무자의 거부 의사와 무관하게, 계약의 성질 자체가 '그 시점을 넘기면 이행해도 소용없는' 계약이라는 점에서 최고를 생략할 근거가 나옵니다. 두 예외를 혼동하면 정기행위가 아닌 계약에서 최고 없이 해제를 시도했다가 오히려 채무불이행 책임을 되짚어 물을 상황에 놓일 수 있습니다.
정기행위란 무엇인가 — 최고 없이 해제되는 요건
민법 제545조는 "계약의 성질 또는 당사자의 의사표시에 의하여 일정한 시일 또는 일정한 기간내에 이행하지 아니하면 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경우에 당사자 일방이 그 시기에 이행하지 아니한 때에는 상대방은 전조의 최고를 하지 아니하고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정합니다. 이를 요건으로 풀어보면 두 가지입니다. 첫째, 계약의 성질상 또는 당사자가 정한 의사표시상 특정 시일·기간 안에 이행하지 않으면 계약의 목적 자체를 달성할 수 없어야 합니다. 둘째, 채무자가 실제로 그 시기까지 이행하지 않았어야 합니다.
여기서 핵심은 '계약목적 달성 불가능'입니다. 단순히 늦어져서 불편하거나 손해가 발생하는 정도로는 부족하고, 그 기한을 넘기면 이행 자체가 채권자에게 더 이상 의미가 없어져야 합니다. 예식 당일 오전까지 납품하기로 한 웨딩 케이터링을 예식이 끝난 뒤 받는다면 그 이행은 채권자에게 아무런 효용이 없습니다. 반대로 일반적인 가구 배송이 며칠 늦어졌다고 해서 그 가구를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는 것은 아니므로, 이런 계약은 통상 정기행위로 인정되지 않고 원칙으로 돌아가 최고를 거쳐야 합니다.
정기행위 해제의 핵심은 '늦어서 손해'가 아니라 '늦으면 이행 자체가 무의미해지는지'다 — 이 구분이 최고를 생략할 수 있는지를 가른다.
절대적 정기행위와 상대적 정기행위 — 판단 기준
정기행위는 다시 두 유형으로 나뉩니다. 절대적 정기행위는 계약의 성질 자체에서 정기성이 나오는 경우입니다. 결혼식 당일 케이터링, 장례식용 화환, 특정 행사일에 맞춘 현수막·부스 시공,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춘 트리·장식품 납품처럼 그 날짜를 넘기면 누가 봐도 이행의 의미가 사라지는 계약이 여기 해당합니다. 이런 계약은 당사자가 따로 '이 날짜를 넘기면 필요 없다'고 명시하지 않아도, 계약의 객관적 성질만으로 정기행위임이 인정됩니다.
상대적 정기행위는 계약 자체의 성질만으로는 정기성이 드러나지 않지만, 당사자가 의사표시로 특정 시점을 정기행위의 기준으로 삼은 경우입니다. 해외여행용 캐리어를 주문하면서 '출국 3일 전까지 반드시 도착해야 한다'는 조건을 명시한 경우, 웨딩드레스를 주문하면서 '예식 1주일 전 최종 피팅과 인도'를 특약으로 못 박은 경우가 그 예입니다. 상대적 정기행위는 그 의사표시가 계약 체결 당시 상대방에게 명확히 전달됐어야 인정된다는 점에서, 절대적 정기행위보다 분쟁이 생겼을 때 입증 부담이 더 큽니다.
절대적 정기행위 — 계약의 객관적 성질상 정기성이 인정됨(결혼식 당일 케이터링·장례용품·행사일 시공 등).
상대적 정기행위 — 당사자 의사표시로 특정 시점을 정기행위 기준으로 삼음(출국 며칠 전 필착 특약 등).
공통 판단축 — 그 시점을 넘기면 채권자에게 이행 자체가 무의미해지는지 여부.
실제 분쟁에서는 이 둘의 경계가 겹치는 사례가 자주 나옵니다. 예컨대 특정 행사의 무대 배너를 행사 전날까지 납품하기로 한 계약은, 배너 자체는 행사가 끝난 뒤에도 물리적으로 만들 수 있으므로 절대적 정기행위인지 애매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배너의 용도가 오직 그 행사에서 쓰기 위한 것이라는 사정이 계약 체결 경위상 분명하다면, 법원은 계약의 성질상 정기행위로 판단할 여지가 큽니다. 반대로 같은 배너라도 상시 매장에 걸어둘 목적이었다면 정기행위로 보기 어렵습니다. 결국 물건 자체의 종류가 아니라 그 물건이 채권자에게 갖는 용도와 목적이 기준이 됩니다.
상대적 정기행위로 인정받으려면 — 계약서에 남겨야 할 것
상대적 정기행위는 절대적 정기행위와 달리 계약서나 주문서에 정기성을 뒷받침하는 기록이 남아 있어야 분쟁 시 인정받기 쉽습니다. 단순히 "빨리 해달라"는 구두 요청만으로는 정기행위로 인정받기 어렵고, 그 시점이 왜 계약의 목적 자체와 직결되는지가 상대방에게 명확히 전달됐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웨딩드레스 계약서에 예식일을 명시하고 "예식 1주일 전까지 인도, 미인도 시 계약목적 달성 불가"라는 문구를 넣었다면 상대적 정기행위로 인정받을 여지가 커집니다.
반대로 계약서에 막연히 "가급적 빨리"라거나 "늦어도 한 달 이내"라고만 적혀 있다면, 나중에 실제로 기한을 넘겼을 때 이를 정기행위로 주장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법원은 계약서 문구뿐 아니라 계약 체결 경위, 목적물의 성질, 거래 관행까지 종합해 판단하므로, 특정 일자가 계약의 목적과 결부돼 있다는 사정을 문자메시지·이메일·견적서 등 객관적 자료로 남겨두는 편이 실제 분쟁에서 훨씬 유리합니다.
이행불능과의 차이 — 왜 자주 헷갈리는가
정기행위 해제와 자주 혼동되는 것이 민법 제546조의 이행불능 해제입니다. 이행불능도 최고 없이 곧바로 해제할 수 있다는 점은 같지만, 근거가 다릅니다. 이행불능은 채무자의 책임 있는 사유로 이행 자체가 객관적으로 불가능해진 경우입니다(목적물 멸실 등). 정기행위는 이행 자체는 여전히 가능하지만, 정해진 시기를 넘기는 순간 그 이행이 채권자에게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지는 경우입니다. 둘 다 최고를 생략한다는 결과는 같아도, 요건과 주장·입증해야 할 사실관계는 전혀 다릅니다.
실무에서는 이 둘을 섞어서 주장하다 요건 불일치로 낭패를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행 자체는 여전히 할 수 있는 상황(예식이 끝났어도 음식 자체는 만들 수 있는 경우)이라면 이행불능이 아니라 정기행위 법리로 접근해야 하고, 반대로 목적물이 아예 소실돼 이행할 방법 자체가 없어진 경우라면 정기행위가 아니라 이행불능으로 구성해야 합니다. 어느 근거로 해제를 주장하느냐에 따라 상대방이 반박할 지점도 달라지므로, 해제통지를 보내기 전에 사실관계를 정확히 어느 조문에 맞출지 먼저 정리해야 합니다.
상사거래라면 정반대 — 확정기매매의 자동해제 추정
당사자 쌍방이 모두 상인인 상사매매라면 민법이 아니라 상법 제68조의 확정기매매 규정이 적용됩니다. 요건 자체는 민법 제545조와 거의 같지만 효과가 정반대입니다. 상법 제68조는 이행시기를 넘기면 상대방이 즉시 이행을 청구하지 않는 한 계약이 해제된 것으로 본다고 정합니다. 민법에서는 채권자가 해제하겠다는 의사표시를 별도로 해야 계약이 끝나는 것과 달리, 상사매매에서는 가만히 있으면 오히려 계약이 자동으로 해제된 것으로 취급됩니다.
이 차이는 실무에서 꽤 중요합니다. 상인 간 거래에서 이행기를 넘긴 뒤에도 그 물건을 여전히 받고 싶다면, 채권자 쪽에서 지체 없이 '그래도 이행해달라'는 청구를 명확히 해야 계약이 살아남습니다. 반대로 개인 소비자 계약이라면 민법 제545조가 적용돼, 채권자가 가만히 있어도 계약이 자동으로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해제 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 지위에 있습니다. 계약 상대방이 상인인지, 그 거래가 상행위에 해당하는지부터 확인해야 어느 조문으로 접근할지가 정해집니다.
민법 제545조는 채권자가 가만히 있어도 해제 여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구조인 반면, 상법 제68조는 정반대로 채권자가 즉시 이행을 청구하지 않으면 계약이 저절로 해제된 것으로 본다 — 상대방이 상인인지에 따라 대응 방식이 뒤바뀐다.
최고는 없어도 해제 의사표시는 필요하다
정기행위에서 흔히 오해하는 지점이 하나 있습니다. 최고를 생략할 수 있다는 것이지, 기한이 지나면 계약이 저절로 소멸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민법 제543조에 따라 해제는 상대방에 대한 의사표시로 이루어지는 형성권이므로, 정기행위라도 채권자가 명확히 해제하겠다는 뜻을 상대방에게 전달해야 계약관계가 종료됩니다. 기한이 지났는데도 별다른 조치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면, 상대방은 계약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주장하며 뒤늦게 이행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정기행위 요건이 충족됐다고 판단되면 곧바로 내용증명 등 확인 가능한 방법으로 해제 의사를 통지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반대로 기한을 넘긴 뒤에도 그 이행을 여전히 받고 싶다면, 이행을 요구하는 뜻을 명확히 표시해야 정기행위 해제권을 스스로 포기한 것으로 볼 여지가 생깁니다. 애매하게 시간을 끌다가는 해제할 수 있었던 권리 자체를 놓칠 수 있으므로, 정기행위인지 판단이 섰다면 해제할지 이행을 받을지부터 신속하게 정해야 합니다.
해제 이후 — 원상회복과 손해배상 청구
정기행위를 이유로 계약을 해제하면 민법 제548조에 따라 각 당사자는 원상회복 의무를 집니다. 이미 지급한 계약금·중도금은 물론 그 받은 날부터의 이자까지 함께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민법 제551조는 해제권 행사가 손해배상 청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명시하므로, 대금 반환과 별개로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웨딩 케이터링이 무산돼 급히 다른 업체를 대체 섭외하며 추가로 지출한 비용, 행사 시공물을 다시 발주하며 든 웃돈 등이 대표적인 손해 항목입니다.
다만 손해배상 범위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통상적으로 발생하는 손해(통상손해)는 별도 입증 없이도 인정되는 경우가 많지만, 특별한 사정으로 발생한 손해(특별손해)는 채무자가 계약 당시 그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어야 배상 범위에 들어갑니다. 또한 정기행위 해제도 결국 채무불이행 책임의 한 유형이므로, 이행하지 못한 원인이 천재지변처럼 채무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사유였다면 해제나 손해배상보다 위험부담 법리로 문제를 풀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해제통지 — 정기행위 요건이 갖춰졌다면 내용증명 등 기록이 남는 방법으로 신속히 발송.
대금 관련 자료 — 계약서, 계약금·중도금 지급 내역, 입금 확인증.
손해 입증 자료 — 대체업체 섭외 견적서·영수증, 추가 지출 내역, 지연으로 발생한 구체적 피해 정리.
기한·목적 결부 자료 — 예식일·출국일 등 특정 시점이 계약목적과 연결된다는 사정을 보여주는 문자·이메일·견적서.
자주 묻는 질문
Q. 정기행위인지 아닌지는 누가 정하나요?
A. 계약서에 그렇게 적혀 있다고 자동으로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계약의 성질과 당사자 사이에 오간 의사표시, 거래 경위를 종합해 판단됩니다. 다툼이 생기면 결국 그 시점을 넘기면 이행이 채권자에게 무의미해지는지가 핵심 쟁점이 됩니다.
Q. 배송이 며칠 늦었다는 이유만으로 최고 없이 해제할 수 있나요?
A. 단순히 늦어져 불편하거나 손해가 생기는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그 기한을 넘기면 이행 자체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지는 계약이어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원칙으로 돌아가 상당한 기간을 정해 최고부터 해야 합니다.
Q. 정기행위로 해제했는데 상대방이 계약이 아직 유효하다고 주장하면 어떻게 하나요?
A. 해제 의사표시가 상대방에게 도달한 사실과 정기행위 요건이 충족됐다는 사실을 자료로 뒷받침해야 합니다. 계약서상 기한 조항, 그 기한이 목적물의 용도와 결부돼 있다는 정황, 해제통지 발송 기록을 함께 정리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Q. 이행불능과 정기행위 중 어느 쪽으로 주장해야 할지 헷갈립니다.
A. 이행 자체가 객관적으로 불가능해졌다면 이행불능, 이행은 여전히 가능하지만 시기를 넘겨 의미가 없어졌다면 정기행위로 접근해야 합니다. 사실관계에 맞지 않는 근거로 해제를 주장하면 나중에 요건 불일치로 다투어질 수 있습니다.
Q. 거래 상대방이 회사인데도 민법 제545조가 적용되나요?
A. 양쪽 모두 상인이고 그 거래가 상행위에 해당한다면 민법이 아니라 상법 제68조의 확정기매매 규정이 우선 적용됩니다. 이 경우 가만히 있으면 오히려 계약이 자동으로 해제된 것으로 취급되므로, 이행을 계속 원한다면 즉시 이행을 청구해야 합니다.
Q. 해제 후 대금은 돌려받았는데 추가로 든 비용도 청구할 수 있나요?
A. 원상회복으로 대금과 이자를 돌려받는 것과 별개로,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함께 청구할 수 있습니다. 다만 통상 발생하는 손해를 넘어서는 특별손해는 채무자가 그 사정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만 배상 범위에 포함됩니다.
맺음말
정기행위 해제는 최고 절차를 생략할 수 있다는 편의만 있는 제도가 아닙니다. 요건을 잘못 판단하면 정기행위가 아닌 계약을 최고 없이 해제했다가 오히려 그 해제 자체가 무효로 다투어지고, 채무불이행 책임을 반대로 지는 상황도 생길 수 있습니다. 계약의 성질상 정기성이 뚜렷한지, 아니면 상대적 정기행위로서 그 의사표시를 명확히 남겨뒀는지부터 먼저 점검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상사거래인지 개인 간 계약인지에 따라 적용되는 조문과 결과가 정반대로 갈리는 것도 실무에서 자주 놓치는 지점입니다. 기한을 넘긴 계약을 두고 해제할지, 그래도 이행을 받을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면 시간을 끌지 말고 어느 조문에 해당하는지부터 정리해보시길 권합니다. 수원과 경기남부에서도 이런 유형의 계약 분쟁 문의가 꾸준히 이어지는 만큼, 기한과 관련된 특약이 있는 계약이라면 처음부터 그 문구를 분명히 남겨두는 편이 나중의 다툼을 줄이는 길입니다.
조력이 필요하시면 010-3432-1451 강대현 대표변호사에게 연락주십시오. 신속히 도와드리겠습니다.
의뢰인을 위한 최선의 전략을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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