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기로 한 날짜가 잡히면 진술거부권을 쓸지부터 고민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말을 안 하면 괘씸죄로 걸린다는 이야기가 워낙 퍼져 있어서, 권리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써도 되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 것입니다.
조사가 시작되기 전에 수사기관은 진술거부권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형사소송법 제244조의3은 일체의 진술을 하지 않거나 개개의 질문에 답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진술하지 않더라도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신문 전에 고지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고지 없이 받은 진술은 그 진술이 자발적이었더라도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로 보아 증거능력이 부정된다는 것이 대법원 92도682 판결입니다.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조문이 재판에서도 그대로 작동합니다. 대법원 2001도192 판결은 피고인이 범죄사실을 부인하거나 진술을 거부하는 것 자체를 인격적 비난의 요소로 삼아 형을 무겁게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자백을 강요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여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대법원은 피고인의 태도가 방어권 행사의 범위를 넘어 명백한 증거가 있는데도 진실을 적극적으로 숨기거나 법원을 오도하려는 데서 비롯된 경우에는 양형에서 참작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말하지 않는 것과 거짓을 말하는 것은 재판에서 전혀 다르게 취급됩니다.
그래서 실무에서는 진술거부권을 쓸지 말지보다 어느 질문에 답하고 어느 질문을 미룰지가 쟁점이 됩니다. 조문이 정하는 대로 개개의 질문마다 따로 행사할 수 있으므로, 다툼의 여지가 없는 부분은 답하고 혐의를 인정하는 쪽으로 읽힐 질문에만 답변을 미루는 방식이 가능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묵비하면 조서에는 남는 것이 없지만 수사기관이 다른 증거만으로 사건을 구성하게 되어, 나중에 해명할 기회가 오히려 줄어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조사 과정에는 변호인이 함께 들어갈 수 있습니다. 형사소송법 제243조의2는 피의자나 그 가족의 신청이 있으면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변호인을 신문에 참여하게 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고, 참여한 변호인은 신문이 끝난 뒤 의견을 진술할 수 있으며 신문 중이라도 부당한 신문방법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어느 질문에 답하지 않을지를 그 자리에서 판단해 줄 사람이 있는지에 따라 조서의 내용이 달라집니다.
조사가 끝나면 조서를 반드시 읽어 보셔야 합니다. 같은 조문이 조서에 기재된 진술의 열람과 정정을 예정하고 있고, 말한 취지와 다르게 적힌 부분은 그 자리에서 고쳐 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명한 조서는 이후 재판에서 그대로 증거가 되므로, 한 문장의 어감이 사건 전체의 인상을 좌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조사를 앞두고 계신다면 사건에서 다투는 지점이 사실관계인지 법적 평가인지부터 정리해 두셔야 합니다. 다툴 부분이 정해져야 어느 질문에 답을 미룰지도 정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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