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앞에 물건을 놓아 막아 세웠다가, 혹은 남의 차 유리에 경고장을 붙였다가 재물손괴로 고소당했다는 상담을 받습니다. 대부분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부순 게 없는데 무슨 손괴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형법 제366조는 손괴와 은닉만이 아니라 기타 방법으로 효용을 해한 경우까지 함께 처벌하고, 실제 사건에서 걸리는 것은 대개 이 마지막 갈래입니다.
기준을 세운 것은 2021년 대법원 판결입니다. 효용을 해한다는 것은 그 물건을 본래의 사용목적에 제공할 수 없게 만드는 상태를 말하고, 여기에는 일시적으로 쓰지 못하게 한 경우도 들어간다고 보았습니다(대법원 2019도13764 판결). 사안은 이랬습니다. 자기가 굴삭기를 대던 자리에 남의 차가 서 있자, 차 앞에는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을 두고 뒤에는 굴삭기 부품을 바짝 붙여 놓았습니다. 차주는 17시간에서 18시간 동안 차를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대법원은 차에 흠집 하나 나지 않았어도 쉽게 치울 수 없는 물건을 붙여 놓은 행위 자체가 유형력의 행사라고 보았습니다.
그렇다고 불편을 준 것이 모두 손괴가 되지는 않습니다. 같은 잣대로 판단한 하급심은 주택 출입문 앞에 음식물쓰레기통과 철제 받침대를 쌓아 둔 사건에서 손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문이 열리지 않게 된 것이 아니고 물건을 옮기면 드나들 수 있었다는 이유였습니다. 선은 상대가 그 물건을 실제로 쓰지 못했는지, 원상회복이 얼마나 번거로운지에 그어집니다. 판례가 든 판단 요소도 물건의 본래 용도와 기능, 가해행위의 내용과 결과, 이용자가 느끼는 불쾌감, 원상회복의 난이도와 비용입니다.
부착물 사건이 이 기준을 잘 보여줍니다. 차량 전면 유리에 스티커를 붙이고 순간접착제를 덧발라 앞을 볼 수 없게 만든 사건, 떼기 어렵게 붙인 경고장 때문에 30분 가까이 운행하지 못한 사건에서는 손괴가 인정되었습니다. 반대로 산업현장 도로 바닥에 문구를 적은 사건에서는 통행과 안전에 지장이 없고 지우기도 어렵지 않다는 이유로 성립이 부정되었습니다. 락카로 표시한 석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낙서냐 아니냐가 아니라 지우는 데 무엇이 드느냐가 갈랐습니다.
한 가지 구별해 둘 것이 있습니다. 남의 물건을 무단으로 쓰는 것은 손괴가 아닙니다. 타인의 토지에 권원 없이 건물을 올려 소유자가 땅을 쓰지 못하게 된 사건에서, 대법원은 이를 효용의 침해가 아니라 이용가치를 가져다 쓴 것으로 보아 재물손괴죄의 성립을 부정했습니다(대법원 2022도1410 판결). 손괴는 못 쓰게 만드는 죄이지, 남의 것을 대신 쓰는 죄가 아닙니다.
여기까지가 성립의 문제라면, 상담에서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그다음입니다. 폭행죄와 달리 재물손괴죄에는 반의사불벌 규정이 없습니다. 합의서를 받고 처벌불원서를 내도 사건이 없어지지 않고 양형에 반영될 뿐입니다. 실제로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는데도 특수재물손괴로 징역 3개월이 선고된 사건이 있고, 한 피해자와 합의하고 다른 피해자에게 공탁까지 했는데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가 선고된 사건도 있습니다.
형이 무거워지는 지점은 대개 위험한 물건입니다. 단체나 다중의 위력을 보이거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해 저지르면 특수손괴가 되어 법정형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올라갑니다(제369조 제1항). 망치로 장례식장 출입문을 내리친 사건에 징역 3개월, 벽돌로 차량 앞유리를 깬 사건에 벌금 300만 원, 주차금지 표지판으로 차를 내리친 사건에 벌금 500만 원이 선고되었습니다. 손에 무엇을 들었느냐가 벌금과 징역을 가릅니다.
실수로 부순 경우는 사정이 다릅니다. 형법에는 과실로 남의 물건을 부순 것을 처벌하는 규정이 없어 원칙적으로 죄가 되지 않습니다. 다만 운전 중이었다면 도로교통법 제151조가 따로 작동해서, 업무상 필요한 주의를 게을리하거나 중대한 과실로 건조물이나 재물을 손괴하면 2년 이하의 금고나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
조사를 앞두고 계신다면 상대가 그 물건을 실제로 쓰지 못한 시간과, 원래대로 돌리는 데 든 비용부터 확인해 두셔야 합니다. 성립을 다투는 사건이라면 그 두 가지가 결론을 만들고, 성립이 분명한 사건이라면 합의를 언제 어떤 문구로 하느냐가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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