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렌식, 지금 내 상황에서 뭘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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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렌식, 지금 내 상황에서 뭘 해야 하나 

배성권 변호사

압수수색영장을 받았거나, 수사관에게서 "휴대폰 좀 제출해 주시죠"라는 말을 들으셨다면 지금 머릿속이 복잡하실 것입니다. 지운 것까지 다 나온다던데, 통째로 넘어간다던데 하는 이야기만 들으셨을 테니까요.

포렌식은 단계마다 할 수 있는 일이 완전히 다릅니다. 아직 제출 전이라면 선택지가 있고, 이미 선별 절차에 들어갔다면 그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이 따로 있습니다. 아래에서 본인 상황에 해당하는 부분부터 읽으시면 됩니다.


상황 1. 임의제출을 요구받았습니다 (아직 제출 전)

지금 벌어지는 일

수사관이 영장 없이 휴대폰을 달라고 하는 상황입니다. 형사소송법 제218조에 근거한 임의제출입니다. 말 그대로 '임의'이므로 거부할 권리가 있습니다.

다만 거부하면 수사기관은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합니다. 영장이 발부되면 결국 같은 결과가 되고, 협조하지 않았다는 인상만 남습니다. 그래서 거부가 늘 유리한 것은 아닙니다.

지금 판단해야 할 것

혐의를 부인하고 실제로 문제될 자료가 없는 사안이라면, 임의제출에 응하고 협조적 태도를 확보하는 편이 나은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로 사안이 복잡하거나 별건이 얽힐 여지가 있다면 신중해야 합니다.

이 판단은 혼자 하지 마시고, 제출 전에 상담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제출 후에는 되돌릴 수 없습니다.

절대 하지 말 것

제출을 요구받은 뒤 자료를 지우는 행위입니다. 이유는 상황 5에서 자세히 말씀드립니다.


상황 2. 압수수색영장이 집행되었습니다

지금 벌어지는 일

법관이 발부한 영장이므로 거부할 수 없습니다. 형사소송법 제215조에 따른 절차입니다.

지금 해야 할 것

영장에 적힌 범죄사실과 압수 대상을 반드시 확인하세요. 영장은 제시받을 권리가 있고, 사진을 찍거나 내용을 메모해 두셔야 합니다. 이후 선별 범위를 다툴 때 기준이 되는 문서입니다.

압수한 물건에 대해서는 압수목록을 교부받으실 수 있습니다(형사소송법 제129조).

기억하실 것

영장이 발부되었다는 것은 수사가 상당히 진행되었다는 신호입니다. 그리고 이 단계 이후 대응 방향에 따라 구속영장이 추가로 청구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안의 경중을 정확히 판단해야 하는 시점입니다.


상황 3. 기기를 제출했고, 포렌식 일정을 통보받았습니다

지금 벌어지는 일

포렌식은 두 단계로 진행됩니다.

① 이미징 — 기기와 동일한 복제본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저장된 정보 전체를 통째로 복제합니다.

② 선별 — 그 복제본에서 사건과 관련된 파일만 골라내는 과정입니다.

핵심은 두 번째, 선별입니다. 이미징은 전체를 복제하는 기계적 작업이라 지켜보는 실익이 크지 않습니다. 실무에서도 통상 선별 절차부터 참여합니다.

지금 해야 할 것

참여 의사를 명확히 밝히고 일정을 조율하세요. 이것은 부탁이 아니라 법이 정한 권리입니다.

형사소송법 제219조와 제121조는 압수·수색영장 집행에 피의자 또는 변호인이 참여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임의제출한 경우도 동일합니다.

왜 참여해야 하는가

경찰 단계에서 수사기관은 어떤 자료를 확보했는지 알려주지 않습니다. 선별 절차에 참여하면 앞으로 어떤 자료와 어떤 의심을 바탕으로 수사가 전개될지 미리 파악할 수 있습니다. 방어의 출발점이 여기입니다.

카메라이용촬영물 반포 사건에서 선별 절차에 직접 참여하여 불송치 받은 사례는 다음 링크를 참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m.blog.naver.com/b_seong/223694584853


상황 4. 선별 절차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

경찰청이나 검찰청의 별도 포렌식실에 들어가, 복제된 파일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사건과의 관련성을 가려냅니다. 파일의 일자나 유형이 특정된 경우에는 시간이 줄지만, 그렇지 않으면 끝없는 확인 작업이 이어집니다. 수사관과 나란히 앉아 눈이 아파올 때까지 화면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반드시 당사자도 함께 참여하세요. 변호사도 그 파일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있고, 사실관계를 가장 정확히 아는 사람은 결국 당사자입니다.

가장 중요한 당부

지쳤다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네 시간쯤 지나면 지쳐서 "그냥 다 가져가시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순간의 피로 때문에 포기한 자료가 나중에 결정적으로 불리한 증거가 됩니다. 선별 범위를 좁히는 것이 곧 방어입니다. 혐의와 무관한 자료가 선별되지 않도록 끝까지 다투셔야 합니다.

절차가 끝나면

확인서와 함께 포렌식한 파일을 교부받게 됩니다. 다만 실무상 교부하지 않는 수사관도 있으므로, 교부를 요청하시고 받지 못했다면 그 사실을 기록해 두세요.


상황 5. 아직 제출 전인데, 지워버리고 싶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립니다. 절대 하지 마십시오.

정크 데이터를 반복해서 넣었다 지우며 기존 데이터를 덮어쓰는 방식으로 포렌식을 회피하려는 시도가 있습니다. 법리만 보면 처벌되지 않을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형법 제155조 제1항의 증거인멸죄는 타인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한 경우에 성립합니다. 자기 자신의 형사사건 증거를 지운 것만으로는 이 죄로 처벌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안심하시면 안 됩니다. 실무에서 훨씬 무서운 문제가 셋 있습니다

첫째, 구속영장입니다.

형사소송법은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는 때를 구속사유로 정하고 있습니다. 데이터를 조직적으로 덮어쓴 정황이 드러나면, 증거인멸 우려를 인정하는 가장 강력한 근거가 됩니다.

둘째, 공범이 있는 사건입니다.

지운 자료가 공범의 형사사건 증거이기도 하다면, 증거인멸죄가 성립할 여지가 생깁니다.

셋째, 양형입니다.

수사를 방해했다는 평가는 형량에 그대로 반영됩니다.

지우는 행위는 얻을 것이 불확실하고, 잃을 것은 확실합니다.


포렌식은 단계마다 할 수 있는 일이 다르고, 지나가면 되돌릴 수 없습니다. 특히 제출 전과 선별 절차, 이 두 시점이 개입 가능한 지점입니다.

압수수색영장이 발부된 단계라면 사안의 경중을 정확히 판단해 대응 방향을 잡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혼자 판단하지 마시고 상담을 받아보시기 바랍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형사법 전문변호사 배성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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