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를 낸 분들이 경찰서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종합보험 다 들어 있는데요"입니다. 평소에는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보험이 통하지 않는 사고가 있고, 그때부터는 민사가 아니라 형사사건이 됩니다. 교통사고 12대 중과실입니다. 흔히 11대 중과실이라 불러 왔지만 지금 법에는 열두 개가 있습니다.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은 업무상과실치상에 대해 두 겹의 보호막을 둡니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공소를 제기할 수 없고(제3조 제2항 본문), 종합보험에 가입되어 있으면 피해자 의사와 무관하게 공소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제4조 제1항 본문). 그래서 대부분의 접촉사고는 보험 처리로 끝납니다. 문제는 제3조 제2항 단서입니다. 신호·지시 위반, 중앙선 침범, 제한속도 시속 20km 초과, 앞지르기 방법 위반, 철길건널목, 횡단보도 보행자 보호의무 위반, 무면허, 음주·약물, 보도 침범, 승객 추락 방지의무 위반,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어린이 상해, 화물 추락 방지조치 위반 — 이 열두 개 유형에 해당하면 처벌불원도 종합보험도 모두 무력화됩니다(제4조 제1항 단서 제1호). 여기에 도주(뺑소니)와 음주측정 불응·측정방해도 같은 효과를 갖고, 피해자가 불구·불치·난치에 이른 중상해 사안은 열두 개에 해당하지 않아도 공소가 가능합니다(제4조 제1항 단서 제2호).
그러니 이 사건들의 승부처는 보험 가입 여부가 아니라 단서 해당성입니다. 그리고 그 경계는 생각보다 자주 움직입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24년, 진로변경을 금지하는 백색실선이 단서 제1호의 '통행금지를 내용으로 하는 안전표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을 정리했습니다(대법원 2024. 6. 20. 선고 2022도12175 전원합의체 판결). 백색실선을 밟고 차로를 바꾸다 사고를 냈어도 12대 중과실이 아니므로, 종합보험에 가입되어 있으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중앙선 침범도 바퀴가 선을 넘었다는 사실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판례는 부득이한 사유 없이 침범했고 그 침범이 사고의 직접적 원인이 되었을 것을 요구하므로, 장애물을 피하려던 경위나 침범과 사고 사이의 인과가 다툼의 지점이 됩니다. 횡단보도 사고에서는 차량 신호 위반인지 보행자 보호의무 위반인지에 따라 적용되는 호가 갈립니다. 경찰이 적용한 단서 호가 무엇인지부터 확인하고, 그 호의 요건을 사고 경위와 대조하는 것이 방어의 첫 단계입니다.
단서에 해당한다면 다음 질문이 나옵니다. "합의해도 소용없는 것 아닌가요." 절반만 맞습니다. 12대 중과실 사건에서 합의는 공소권을 소멸시키지 못합니다. 처벌불원서를 내도 재판은 진행됩니다. 그러나 양형에서는 합의가 가장 큰 변수입니다. 하급심에서는 중앙선 침범으로 전치 12주의 상해를 입힌 초범이 항소심에서 합의한 사안에서 1심의 금고형이 벌금형으로 감경된 예, 중상해 사안에서 실질적 피해 회복을 이유로 벌금형의 선고유예까지 나온 예가 있습니다. 수사 단계의 합의는 약식기소(벌금)로 끝날 가능성을 높이고, 기소 후의 합의도 형의 종류를 바꿉니다. 합의가 늦었다고 포기할 이유가 없는 영역입니다.
합의의 시기와 방식은 이렇게 정리됩니다. 상대가 이미 보험사에서 치료비와 배상을 받고 있으므로, 형사합의금은 보험 배상과 별도의 돈이라는 점을 서로 분명히 해야 합니다. 합의서에 "형사합의금으로 지급하며 보험금과 별개"라는 취지와 함께, 지급한 돈이 민사 손해배상에서 공제되지 않도록 채권양도 방식을 쓸지는 문구로 확정해 두어야 합니다. 문구 하나로 갈리는 지점들은 형사합의서에 관한 별도의 글에서 정리해 두었습니다. 피해자 쪽에서 볼 때도 이 사건들은 처벌불원의 대가가 형을 좌우하므로, 전액 입금 확인 전에 합의서를 교부하지 않는 원칙이 그대로 적용됩니다.
수사는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경찰 실무는 중상해·보험 미가입 사고에서 사고 접수일부터 2주간 합의 기간을 주는 것을 기준으로 삼고 있어, 송치 전 합의 시도가 처분에 반영될 수 있는 기간은 생각보다 짧습니다. 사고 직후라면 블랙박스 영상과 보험 접수 내역을 확보해 두고, 내 사고가 열두 개 목록의 어느 호로 입건되었는지, 그 호의 요건을 실제로 충족하는지부터 따져 보는 것이 순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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