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를 매수하거나 상속받았는데 등기부에도, 계약서에도 나오지 않는 남의 분묘가 그 땅 위에 자리하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언제 누가 설치했는지도 모르는 분묘를 마주하면 당장 파내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소유자라는 이유만으로 임의로 분묘를 훼손하면 오히려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승낙 없이 설치된 분묘라도 일정한 조건을 갖추면 분묘기지권이라는 별도의 권리가 성립해, 토지 소유자라도 함부로 철거를 요구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있다는 점입니다. 이 글에서는 언제 개장·이장을 청구할 수 있고 언제는 지료만 받을 수 있는지, 그 기준과 실제 절차를 짚어보겠습니다.
법무법인 도모 강대현 대표변호사
분묘기지권이란 — 내 땅이라도 함부로 파낼 수 없는 이유
분묘기지권은 민법에 명문 규정이 없는 관습법상 물권으로, 지상권과 비슷하게 타인의 토지 위에 있는 분묘를 수호하고 봉제사하기 위해 그 분묘가 있는 기지 부분의 토지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대법원 2017. 1. 19. 선고 2013다17292 전원합의체 판결은 사회 관념이 변했다는 이유로 관습법의 효력을 부정할 수 있다고 하면서도, 분묘기지권에 관한 관습법만큼은 여전히 법적 규범으로서의 효력을 유지한다고 판시했습니다. 즉 토지 소유자라는 사정만으로 분묘를 마음대로 걷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판례가 인정하는 분묘기지권의 성립 유형은 세 가지입니다. 자기 소유 토지에 분묘를 설치한 뒤 그 토지를 타인에게 양도하면서 분묘에 관해 별다른 약정을 하지 않은 양도형, 타인 토지에 소유자의 승낙을 얻어 분묘를 설치한 승낙형, 그리고 승낙 없이 분묘를 설치했더라도 일정 기간 점유가 계속된 취득시효형입니다. 이 글에서 다루는 '승낙 없이 설치된 분묘' 상황은 세 번째 취득시효형과 직결됩니다. 아직 그 요건을 채우지 못한 단계라면 분묘기지권 자체가 성립하지 않으므로, 토지 소유자는 민법 제214조의 소유권에 기한 방해배제청구권을 근거로 개장과 토지 인도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
양도형 — 자기 땅에 분묘를 설치한 뒤 토지를 양도하면서 이장 특약을 하지 않은 경우.
승낙형 — 토지 소유자의 승낙을 얻어 분묘를 설치한 경우.
취득시효형 — 승낙 없이 설치했지만 일정 기간 평온·공연하게 점유해 온 경우.
분묘기지권이 아직 성립하지 않은 단계라면, 승낙 없이 설치된 분묘는 소유자의 방해배제청구권 행사 대상일 뿐 소유자가 곧바로 파낼 수 있는 자력구제의 대상은 아니다.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의 성립 요건 — 20년 평온·공연 점유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은 타인 토지에 소유자의 승낙 없이 분묘를 설치한 사람이 20년간 평온·공연하게 분묘를 수호하고 봉제사하며 그 기지를 점유해야 성립합니다. 여기서 평온·공연이란 폭력적인 방법으로 점유를 유지하지 않고, 남몰래 숨기지도 않은 채 통상적인 방식으로 분묘를 관리해 왔다는 의미입니다. 등기를 갖추지 않아도 성립한다는 점도 특징입니다. 다시 말해 20년이라는 기간을 채우기 전까지는 아무리 오래 방치된 분묘라도 소유자의 개장 청구를 막을 근거가 되지 못합니다.
실무에서는 분묘가 언제 설치됐는지를 특정하는 일 자체가 가장 큰 쟁점이 됩니다. 봉분의 형태나 마모 정도, 비석에 새겨진 날짜, 종중 문서나 족보, 인근 주민의 인우보증 등으로 설치 시점을 추정하게 되는데, 이 시점이 명확하지 않으면 20년 경과 여부를 둘러싼 다툼이 길어질 수 있습니다. 또한 점유가 계속되던 중 토지 소유자가 개장을 요구하거나 소송을 제기하는 등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있다면, 그 점유의 평온·공연성이나 시효 진행 자체가 다투어질 여지가 생깁니다.
20년 요건은 자동으로 채워지는 기간이 아니라 평온·공연한 점유가 끊김 없이 이어졌는지를 함께 따지는 요건이다.
가령 토지를 매수한 지 5년밖에 안 됐더라도, 그 전 소유자가 분묘가 있는 상태 그대로 오랫동안 방치해 왔다면 20년 기산점은 새 소유자의 매수 시점이 아니라 분묘가 처음 설치되고 점유가 시작된 시점부터 계산합니다. 반대로 최근 몇 년 사이 새로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분묘라면 애초에 20년 요건 자체가 문제 되지 않으므로, 소유자는 곧바로 방해배제청구를 검토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같은 '오래된 분묘'라도 설치 시점을 어떻게 특정하느냐에 따라 대응 방향이 완전히 갈리기 때문에, 현장 조사와 자료 수집이 소송의 승패를 좌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장사법 시행 이후 설치된 분묘는 사정이 다르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 2001년 1월 13일 시행되면서 상황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이 법 제27조는 토지 소유자의 승낙 없이 그 토지에 설치된 분묘에 대해, 토지 소유자가 관할 시장·군수·구청장의 허가를 받아 분묘를 개장할 수 있다는 명문의 근거를 마련했습니다. 실무에서는 이 조항이 시행일인 2001년 1월 13일 이후에 새로 설치된 분묘부터 적용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 결과 이 시점 이후 승낙 없이 설치된 분묘는 20년이 지나더라도 토지 소유자가 장사법에 근거해 언제든 개장 절차를 밟을 수 있는 구조여서, 사실상 시효취득 주장이 받아들여지기 어렵습니다.
반면 2001년 1월 13일 이전에 이미 설치되어 있던 분묘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그 설치 시점부터 20년 요건을 충족했는지가 여전히 문제 되고, 앞서 본 2013다17292 전원합의체 판결과 대법원 2021. 4. 29. 선고 2017다228007 전원합의체 판결이 이런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의 존속 자체는 재확인했습니다. 그래서 분묘를 발견했다면 등기부, 항공사진, 현장의 비석이나 봉분 상태 등으로 설치 시기가 2001년 1월 13일을 기준으로 언제인지부터 확인하는 것이 대응 방향을 가릅니다.
예를 들어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종중 선산이 아니라 최근 들어 개발이 이루어진 토지라면, 옛 항공사진이나 지적도상 지목 변경 이력만으로도 분묘가 2001년 1월 13일 이후에 조성됐음을 뒷받침할 수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자료가 확보되면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 주장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다는 점을 근거로, 협의 단계에서부터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서 개장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개장 절차 두 갈래 — 행정적 공고 절차와 소송
연고자가 누구인지 확인되거나 확인 가능한 경우, 장사법 제27조에 따른 절차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토지 소유자는 개장을 하려면 미리 3개월 이상의 기간을 정해 그 뜻을 분묘의 설치자 또는 연고자에게 알려야 하고, 개별 통보가 어려우면 일간신문 등에 공고하는 방법으로 갈음할 수 있습니다. 이 기간이 지나도 연고자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관할 시장 등의 허가를 받아 개장할 수 있는데, 소송 없이 진행할 수 있어 시간과 비용 면에서 유리한 경우가 많습니다.
연고자가 개장에 응하지 않거나 이의를 제기하면 소유권에 기한 분묘굴이(개장) 및 토지인도청구 소송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승소해 판결이 확정된 뒤에도 상대방이 임의로 분묘를 옮기지 않으면, 소유자가 직접 파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민사집행법상 대체집행 절차를 통해 법원이 정한 방법으로 강제 개장이 이루어집니다.
행정적 경로 — 3개월 이상 공고·통보 후 관할 시장 등의 허가로 개장. 소송 불필요.
사법적 경로 — 분묘굴이 및 토지인도청구 소송 제기 후 확정판결로 대체집행.
연고자를 알 수 없는 무연분묘라면
분묘의 연고자가 누구인지 전혀 확인되지 않는 경우에는 장사법상 무연분묘 처리 절차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분묘의 위치와 개장 사유, 공고기간 안에 신고하지 않으면 개장한다는 취지를 공고하고, 그 기간이 지나도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개장 절차를 진행하게 됩니다. 조상에 대한 봉제사라는 관습법상 취지가 걸려 있는 만큼, 연고자 확인 절차를 소홀히 진행하면 나중에 뒤늦게 나타난 연고자와 분묘발굴을 둘러싼 분쟁이 생길 수 있어 공고 절차와 그 증빙을 꼼꼼히 남겨두어야 합니다.
실무적으로는 공고 전에 인근 이장·통장이나 오래 거주한 주민들에게 탐문해 연고자 단서가 있는지부터 확인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겉으로는 무연분묘처럼 보여도 후손이 타지에 거주하며 관리만 못 하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아, 탐문 없이 곧바로 공고·개장 절차로 넘어가면 뒤늦게 나타난 연고자로부터 분묘발굴에 따른 민형사상 책임을 추궁당할 위험이 남습니다.
분묘기지권이 이미 성립했다면 — 철거 대신 지료 청구
20년 요건이 채워져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이 이미 성립한 경우라면, 토지 소유자는 원칙적으로 분묘 자체의 철거나 이장을 강제로 청구할 수 없습니다. 다만 대법원 2021. 4. 29. 선고 2017다228007 전원합의체 판결은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자라 하더라도 토지 소유자가 지료를 청구한 날부터는 지료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해, 종전에 무상이라고 보던 견해를 바꾸었습니다. 분묘기지권이 성립했다고 해서 토지 소유자가 아무 권리도 없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지료의 액수는 법정지상권에 관한 민법 제366조를 유추적용해 분묘 기지 부분의 토지 사용에 대한 대가 상당액으로 정해지는 것이 판례의 태도입니다. 분묘기지권은 분묘가 존속하고 봉제사가 계속되는 동안 유지된다고 보는 것이 판례상 일반적인 설명이므로, 철거가 목적이 아니라면 지료 청구를 통해 토지 소유권의 경제적 가치를 회복하는 방향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효취득형 분묘기지권이 이미 성립했다면 승부처는 '철거'가 아니라 '지료'로 옮겨간다.
소송으로 개장을 구할 때 유의할 점 — 임의 발굴은 형사처벌
형법 제160조는 분묘를 발굴한 자를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토지 소유자라 하더라도 장사법상 공고·허가 절차나 법원의 확정판결·대체집행 없이 임의로 분묘를 파내면 분묘발굴죄로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소유자라는 지위가 자력구제를 정당화해 주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소송을 준비한다면 등기부등본, 현장 사진, 분묘 설치 시기를 뒷받침할 항공사진이나 인우보증서, 종중 기록 등을 미리 확보해 두는 쪽이 유리합니다. 연고자가 확인되는 경우라면 소송 전에 이장 비용 분담이나 이장지 마련 등을 협의해 원만히 해결되는 사례도 적지 않으므로, 소송에 앞서 협의 여지를 먼저 타진해 보는 것도 실무적으로 도움이 됩니다.
대체집행으로 개장이 진행되는 경우에도 유골이나 유해는 함부로 폐기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어서, 법원이 정하는 방법에 따라 개장 후 화장이나 다른 봉안 장소로의 이전 등 후속 조치까지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개장에 드는 비용은 원칙적으로 패소한 상대방이 부담하게 되지만, 실제 집행 단계에서 소유자가 먼저 비용을 지출하고 추후 상환을 구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 이 부분도 미리 염두에 두는 것이 좋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제 땅에 있는 분묘를 제가 직접 파내도 되나요?
A. 분묘기지권이 성립하지 않았더라도 임의로 파내면 형법상 분묘발굴죄로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장사법에 따른 공고·허가 절차나 법원의 판결·대체집행을 거쳐야 하고, 소유자라는 사정만으로 자력구제가 허용되지는 않습니다.
Q. 분묘가 설치된 지 20년이 넘었으면 무조건 철거를 못 하나요?
A. 20년간 평온·공연하게 점유돼 온 사실이 인정되어야 취득시효형 분묘기지권이 성립하므로, 단순히 시간이 지났다는 사정만으로 자동 성립하지는 않습니다. 또한 장사법 시행일인 2001년 1월 13일 이후 설치된 분묘라면 시효취득 주장이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Q. 분묘기지권이 성립했다면 토지 소유자는 아무 권리도 없나요?
A. 철거까지는 구할 수 없어도 대법원 판례에 따라 지료를 청구할 권리는 있습니다. 지료를 청구한 날부터는 분묘기지권자에게 토지 사용의 대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Q. 연고자가 누구인지 전혀 모르는 분묘는 어떻게 하나요?
A. 장사법상 무연분묘 처리 절차에 따라 일정 기간 공고한 뒤에도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개장할 수 있습니다. 공고 절차를 생략하고 임의로 개장하면 나중에 연고자가 나타났을 때 분쟁의 소지가 남습니다.
Q. 개장 소송에서 이기면 상대방이 안 움직여도 강제로 파낼 수 있나요?
A. 확정판결을 받은 뒤에도 상대방이 임의로 이행하지 않으면 민사집행법상 대체집행 절차를 통해 법원이 정한 방법으로 강제 개장이 가능합니다. 스스로 강제로 파내는 것과는 절차가 다릅니다.
Q. 행정적 공고 절차와 소송, 둘 중 무엇을 먼저 시도해야 하나요?
A. 연고자가 확인되고 협의 여지가 있다면 장사법상 공고·허가 절차가 시간과 비용 면에서 유리한 경우가 많습니다. 협의가 안 되거나 연고자가 개장에 응하지 않는다면 소유권에 기한 소송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맺음말
승낙 없이 설치된 분묘라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철거를 청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분묘가 언제 설치됐는지, 2001년 1월 13일 장사법 시행 전후 어느 시점인지, 20년 점유 요건을 채웠는지에 따라 개장을 청구할 수 있는 사안인지 지료만 청구할 수 있는 사안인지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임의로 파내려 하기보다 설치 시기부터 확인하고, 그에 맞는 절차를 골라 밟는 것이 가장 빠른 해결책입니다.
특히 수원을 비롯한 경기남부 지역에서는 상속이나 개발 과정에서 오래된 분묘를 뒤늦게 발견하는 사례가 드물지 않습니다. 설치 시기 판단과 개장 절차 선택은 자료 검토가 함께 필요한 작업인 만큼, 분묘를 발견한 초기 단계에서부터 방향을 잡아 두시길 권합니다.
조력이 필요하시면 010-3432-1451 강대현 대표변호사에게 연락주십시오. 신속히 도와드리겠습니다.
의뢰인을 위한 최선의 전략을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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