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 혐의로 조사를 받던 중 어느 날 구속영장이 청구됐다는 연락을 받으면, 억울함을 다투기도 전에 신병부터 넘어갈 수 있다는 불안이 앞섭니다. 특히 회사 자금이나 조합비, 계 모임 자금처럼 회계장부와 전자자료가 핵심 증거가 되는 사건에서는, 검찰이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는 사유를 구속의 근거로 가장 먼저 내세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는 이 증거인멸 우려가 실제로 얼마나 구체적으로 소명됐는지에 따라 영장 발부 여부가 갈린다는 점인데, 정작 당사자는 심문 하루 전에야 변호인을 선임하고 부랴부랴 준비하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짧게는 하루, 길게는 며칠 안에 결과가 갈리는 절차이니만큼, 어떤 논리로 다퉈야 하는지 미리 알아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먼저 전체를 짚어보겠습니다: 횡령 사건에서 증거인멸 우려가 유독 자주 등장하는 이유
형사소송법은 피의자에 대한 수사를 원칙적으로 불구속 상태에서 진행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형사소송법 제198조 제1항). 구속은 도망이나 증거인멸을 막기 위한 예외적 조치일 뿐, 유죄를 전제로 한 처벌이 아닙니다. 그런데 유독 횡령 사건에서는 이 예외가 자주 문제 됩니다. 회계장부·전표·이체내역·메신저 대화 같은 핵심 증거가 대부분 피의자 본인이나 회사 내부에 남아 있고, 피의자가 자금 관리 권한을 가진 지위에 있는 경우가 많아, 수사기관 입장에서는 "피의자가 마음만 먹으면 증거에 손댈 수 있는 위치"로 보기 쉽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공범이 있는 사건이라면 상황은 더 복잡해집니다. 공동으로 자금을 관리했거나 지시를 주고받은 관계라면, 수사기관은 두 사람이 말을 맞출 가능성을 증거인멸 우려의 핵심 근거로 듭니다. 반대로 이미 압수수색이 끝나 회계자료와 전자기기가 모두 확보된 상태라면, "더 이상 인멸할 증거가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 자체가 구속의 필요성을 낮추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결국 같은 횡령 혐의라도 수사가 어느 단계까지 진행됐는지, 증거가 얼마나 이미 확보돼 있는지에 따라 구속 여부에 대한 판단이 크게 달라집니다.
법은 이렇게 판단합니다: 구속사유 3가지와 증거인멸 염려의 구체적 판단 기준
구속영장을 발부하려면 먼저 피의자가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그 위에 형사소송법 제70조 제1항이 정한 구속사유 중 하나가 인정돼야 합니다. 이 조항이 정한 구속사유는 세 가지입니다.
일정한 주거가 없는 때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는 때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는 때
여기에 형사소송법 제70조 제2항은 법원이 구속사유를 심사할 때 범죄의 중대성, 재범의 위험성, 피해자·중요참고인에 대한 위해 우려 등도 함께 고려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이 조항의 효력을 다툰 사건에서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필요적 고려사항 규정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헌재 2010. 11. 25. 2009헌바8). 즉 횡령 액수가 크고 피해자가 다수인 사건일수록, 증거인멸 우려와 별개로 이 조항이 구속 판단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실무상 중요한 것은 "증거인멸의 염려"를 얼마나 엄격하게 보느냐입니다. 단순히 수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거나, 피의자가 자백을 거부하고 혐의를 다툰다는 사정만으로는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무죄를 다투는 것은 피의자의 정당한 방어권 행사이지, 그 자체로 증거를 없애려 한다는 근거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법원이 실제로 살피는 것은 부정한 방법으로 증거를 인멸할 고도의 개연성과 구체적·긴박한 위험성이 있는지입니다.
횡령 사건에서 이 개연성을 판단할 때 실무상 자주 등장하는 요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피의자가 회계장부·전자자료에 접근하거나 삭제·수정할 수 있는 지위에 여전히 있는지
공범이 있는지, 있다면 아직 서로 연락이 가능한 관계인지
이미 압수수색으로 핵심 자료가 확보됐는지, 실제로 남아 있는 증거가 있는지
피의자가 증거를 은닉·삭제하려 한 정황(장부 폐기, 계좌 정리, 참고인 회유 시도 등)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는지
참고인이나 목격자가 피의자와 업무상 종속 관계에 있어 회유·압박에 노출되기 쉬운지
이 중 어느 하나라도 구체적 사실로 뒷받침되지 않은 채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다"는 문구만 반복된다면, 그 소명은 추상적 가능성에 그친 것으로 다퉈볼 여지가 있습니다. 형사소송법 제201조의2에 따른 구속 전 피의자심문에서 이 지점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짚어내는지가 영장 발부 여부를 가르는 실질적 승부처입니다.
김상훈 변호사의 대응, 이렇게: 영장실질심사 전 준비해야 할 다섯 가지
구속영장이 청구됐다는 통지를 받으면,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 기일까지 통상 하루 이틀밖에 시간이 없습니다. 이 짧은 시간 안에 다음을 준비합니다.
변호인의견서로 증거인멸 우려부터 정면으로 반박 — 압수수색이 이미 끝났다면 그 사실과 압수 목록을 제시해 "인멸할 대상이 남아 있지 않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소명합니다. 아직 압수수색 전이라면, 관련 자료를 임의제출하거나 계좌·문서를 자진 공개하는 방식으로 협조 의사를 보여주는 것도 방법입니다.
주거·직업의 안정성을 자료로 소명 — 재직증명서, 주민등록등본, 가족관계증명서 등으로 도주할 이유가 없음을 뒷받침합니다. 주거부정·도망염려는 별개 구속사유지만, 같은 심문에서 함께 심리되므로 같이 준비해 둡니다.
공범과의 관계를 명확히 정리 — 공범이 있는 사건이라면 이미 연락이 끊겼거나 접촉할 수 없는 사정, 또는 애초에 공모관계가 아니었다는 점을 소명해 말맞추기 우려를 낮춥니다.
수사 협조 태도를 구체적으로 제시 — 출석 요구에 응한 이력, 자료 제출 이력 등 그동안의 협조 정황을 정리해 제출하면, 심문관이 증거인멸·도망 우려를 낮게 볼 근거가 됩니다.
기각되지 않더라도 이후 절차를 함께 준비 — 영장이 발부되면 형사소송법 제214조의2에 따른 구속적부심사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보증금납입조건부 석방이 제한되므로, 애초에 실질심사 단계에서 이 우려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반박해 두었는지가 이후 단계에서도 계속 영향을 미칩니다.
망설이는 사이, 시간은 불리해집니다: 심문 하루 전이 아니라 통지받은 즉시 움직여야 하는 이유
구속영장실질심사는 청구부터 심문까지 준비 기간이 짧고, 한 번 구속되면 이후 방어권 행사 자체가 크게 제약됩니다. 압수 목록을 챙기고, 협조 정황을 정리하고, 공범 관계를 소명하는 작업은 모두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 통지를 받은 즉시 시작해야 합니다.
횡령 혐의로 구속영장 청구 소식을 들으셨다면, 증거인멸 우려를 구체적으로 다툴 수 있는 사정이 있는지부터 서둘러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법률 문제는 초기 대응이 중요합니다.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김상훈 변호사에게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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